이건 분명 말도 안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난 생각하곤 한다.
누가 내게 우리 나라 최고의 영화를 묻는다면
난 서슴ㅎ치 않고 이만희 감독의 <晩秋 만추>라고 말할 것이라고.
<만추>를 우리 나라 최고의 영화로 꼽는다는 것이 말도 되지 않거나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나라 최고의 영화를 이 만희 감독의 <만추>로 꼽는 내 자신은
정작 그 영화를 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정말 말도 되지 않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그럼에도 만약 누가 내게 우리 나라 영화 사상
최고의 영화를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서슴치 아니하고 <만추>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 나라 영화 사상 최고의 여배우를 말하라고 한다면
조금도 망설이지 아니하고 <문정숙>씨의 이름을 말하게 될 것이다.
영화 <晩秋>는
1966년 12월에 명보극장에서 개봉되어 관객 15만명을 동원했다고 한다.
내 나이 11살.
만 10세가 되지 않았을 무렵이니 초등학교 4학년 때다.
우리 집은
우리 마을에서는 유일하게 영화 벽보를 붙일 수 있는 담벽을 갖고 있었다.
고향에는 두 개의 영화관이 있었다.
<고흥극장>과 <세기 극장>에서는 우리 집 담벽에 영화 포스터를 붙이고선
우리 할머니에게 <초대권>을 한 달에 몇 장씩 주었다.
고흥극장에서 영화 포스터를 붙이러 온 사람들과
세기 극장에서 영화 포스터를 붙이러 온 사람들의 신경전이 지금도 생각난다.
고흥극장에서 영화 포스터를 붙이고 갈 때는
세기극장 포스터를 반쯤 찢어 버렸으며,
세기극장에선 또 고흥극장 의 영화 포스터를 반쯤 찢어 버렸기에
우리 집 담벼락엔 늘 한 쪽 포스터가 찢겨서 너덜거렸다.
학교 공부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던 나는
한쪽 포스터가 심하게 너덜거리면 책가방에서
풀을 꺼내어 붙여 주었다.
그 때, 우리들은 지금의 참치캔처럼 동글납작한 캔에 들어있는
밀가루풀을 사용했는데,
여름이면 그 풀에 곰팡이가 슬어 있거나,
너무 오래되면 딱딱하게 굳어있기 십상이었다.
내가 찢겨서 너덜거리는 영화 포스터를 다시 붙여 줄 때는
주로 학교에서 미술공작을 하면서 풀을 사용하는 날이었다.
발돋움하여도 찢겨진 포스터는 밑부분밖에 풀칠을 할 수 없었다.
두 영화괸이 상대방의 포스터를 찢는 것은
세기극장이 문을 닫을 때까지 계속 되었다.
그러다가 세기극장이 문을 열면,
또 다시 서로 상대방의 포스터를 찢어 버리고.....
두 극장에서는 우리집 담벼락에 영화 포스터를 붙이는 댓가로
한 달에 서너 장의 초대권을 주었는데,
그 초대권은 할머니 몫이었다.
우린 할머니의 치마를 붙잡고 공짜로 영화를 보았다.
어느 날.
할머니께서는 서로 따라 가겠다고 울면서 매달리는 나와 내 동생 은지 중에
한 사람을 택할 수 없었는지 둘을 모두 데리고 극장엘 갔다.
다 큰 아이 둘까지 딸린 할머니의 초대권은 당연히 통과할 수 없었다.
-할매도 염치가 있어야지라.
초대권 한 장에 세 사람이 머다요?
한 명은 인되겄는디라.
우리 아들이 경찰서 누구누구인데
봐 달라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할머니는 하는 수 없이 초대권을 한 장 더 꺼내면서
아까워서 어쩔 줄을 몰라하셨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정애도 데리고 올 것인디......
우리 집 식모였던 정애 언니는 아주 가끔씩 할머니의 초대권을 얻어
나 혹은 은지 중의 한 명을 데리고 영화를 보러가곤 했다.
괜히 초대권 한 장 손해 보았다면서
그렇게 허비해 버린 금쪽같은 초대권 한 장 때문에
할머니는 거의 병이 날 지경이었다.
그 날 본 영화가 <삭발의 모정>이었던 것을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그렇게 할머니의 치맛자락을 붙잡거나
학교에서 보여 주는 단체 영화로
제법 영화를 보았으면서도 <晩秋>를 보았던 기억은 없다.
그러한 내가 어떻게 만추를 기억하고 있는지,
내 자신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나는 늘 늦은 가을이면
내가 본 적도 없는 <晩秋>란 영화 속의 가을을 기억한다.
나뭇잎이 수북하게 떨어진 늦가을의 공원.
여인의 바바리 코트 자락.
안타깝고 절절한 사랑과 여인의 서늘한 눈매.
나뭇잎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것을 보면
가장 먼저 기억나는 것이......
내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만추>라는 영화의 장면이다.
<만추>란 늦은 가을이란 뜻인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물론 같은 말이긴 하지만.....
<저물어 가는 가을>의 뜻이란 것을 알고
난 <만추>라는 말이 더 좋아졌던 적 있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영화 <晩秋>는 1966년 <이만희> 감독의 작품다.
한국 영화사 백년에서 걸작을 꼽으라면,
많은 영화 평론가들이 <오발탄>과 <만추>를 꼽는다고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영화의 필름은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영화를 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이 영화는
이미 전설이 되어 버린 셈이다.
본 적도 없는 영화 <만추>가 기억나는.......
영화 속에서의 계절처럼 저물어가는 가을이다.
본 적 없는 영화 속의
애수에 젖은 여배우의 서늘한 눈매까지 기억나는 그런 계절이다.
젊었던 날의 사랑이
생솔가지를 태우는 연기처럼 매웠다면......
중년의 사랑은 잘 마른 낙엽을 태우는 불꽃은 아닐까?
덧 없으면서도
서늘하게 감미롭고,
안타까우면서 절절하고,
모든 것을 송두리째 태운 뒤에......
이내 그 불꽃의 흔적마저 사라져 버리는......
그리고 말끔하게 잊혀지는....... 그런 사랑은 아닐까?
본 적도 없는 영화.
잘 마른 낙엽을 태우듯이
순식간에 서로를 태웠던 어느 남자와 여자의
안타깝도록 간절하고 짧았던 사흘 간의 사랑 이야기를 기억하면서
나도 문득 잘 마른 낙엽을 태우듯이
내 삶을 송두리째 태우면서 사랑을 시작하고 싶어지는,
영화 속에서처럼 저물어 가는 그런 가을이다.
흐르는 곡은 <만추>의 여주인공 문정숙씨가 부른
<나는 가야지>란 제목의 노래입니다.
우리는 배우로서의 문정숙씨만 기억하고 있는데.....
그녀는 몇 편의 영화와 연속극의 주제가를 불렀다고 하는군요.
'나는 가야지' - 문정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