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발송된 『만장이』「골골샅샅이」를 보시고
유독 말씀들이 많으셨습니다.
「골골샅샅이」는
‘한군데도 빼놓지 않고 갈 수 있는데는 어디든지’
라는 뜻으로
국어사전을 뒤져 찾아낸 이름입니다.
이 꼭지의 시작의도는
유명관광지나 언론에서 다루는 곳은
다들 잘 아시니
그런 지면에서 잘 안다루는 곳,
혹은
우리 주변에 가까이 있어서
무시하고 지나치는 곳,
여행을 간다는 마음의 부담없이
자유롭게 가볼 수 있는 곳...
을 쑤셔보고자 함이었습니다.
자기 나라도 잘 모르면서
우르르 외국여행 몰려다니며
외화 낭비하는 꼬라지에,
꼬라지를 부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번엔 헌책방얘기를 썼는데요,
의외로 재미있어 하시는 분 많아
저도 즐거웠습니다.
실은 더 할말이 많았는데
지면에 맞게 줄인 게
여전히 말이 많았습니다.
두서도 좀 없었구요.
다음번 「골골샅샅이」 글을 끝으로
더이상 쓰지 않을 예정이니
괴로우시더라도 한번만 더 참으시면 될듯 합니다.
참고로,인터넷상의 헌책방도 소개합니다.
perso.wanadoo.fr/librairie.lephenix
파리 동양학 전문서점
www.asc-net.or.jp/komabook
일본 도쿄 지요다구의 고려서점 사이트.
한국학 관련자료 풍부
www.enfer.com
프랑스의 에로티시즘 관련 서점
제가 잘 하는 공상 중의 하나가
이일 저일 다해보고
나중에 할머니가 됐을 때(그때까지 살아있다면)
헌책방을 하는 모습인데요.
그냥 헌책방이 아니라
한쪽은(혹은 한층은) 갤러리,
또 한쪽은 온갖 빈티지 구제 의상 소품을 파는 가게,
또 한쪽은 커피를 들며 헌책을 볼 수 있는 헌책방,
그리고 또 한쪽은 떡볶이 좌판.
개인적으로 책도, 옷도, 쓰던 사람의 손길도
다 예술이라고 생각해서 말입니다.
물론 제가 만든 떡볶이도 예술이구요.헤헤.
이거 다 하려면 돈이 엄청 많아야겠죠?
꿈인데 뭐 어때요.
관계자의 말을 들으니,
학교에 기증되는 책(대개 돌아가신 교수님이
도서관에 기증하시는 수만권 분량의 책)이
그다지 반갑지만은 않다고 하더군요.
물론 교수님이나 유족들은
학교나 학생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신 거겠지만
그리 기증되는 경우가 많다보니
중복되는 책이 많고
정작 필요한 책이 드문 경우가 많아서 말입니다.
집안에서도 쓸데없다고 여겨지는 책은
자리만 차지하는 우선처치대상 1호 아닙니까.
책보단 돈으로 줬으면 좋겠다 그러더군요.
필요한 책을 바로 구입할 수 있게 해주니까요.
저도 나이가 많아지면
비례해서 책도 아주 많아질텐데
그걸 그 필요 못느끼는 사람들에게 공짜로 주어
천덕꾸러기로 만드느니
정말 필요로 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보이고,주고,팔고
그러면 어떨까해서 말입니다.
지금의 저처럼
정말 갖고 싶은데도
가격 때문에 선뜻 못사는 젊은이들이 그때도 있을 테니까요.
할머니쯤 되면
지금처럼 욕심사납게 저혼자 끌어안고 보지 말아야 할테니까요.
물론 전 그때 그 가게에 있는 겁니다.
한쪽에서 떡볶이를 휘저으면서.
이쁜 총각한텐 덤도 주고요.
떡볶이냄새가 다른 권역으로 넘어가지 않는 방법을
궁리하기도 하죠.
공상은 끝도 없고 약도 없습니다.
김승옥의 소설 ‘싸게 사들이기’를 보면
헌책방얘기가 나오죠.
주인공인 대학생은 헌책을 싸게 사기 위해
일단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하면
바로 사지 않습니다.
우선 주인을 주의산만하게 해놓고
그틈에 그 책의 한 쪽을 찢어내죠.
그리고나서야
그 책을 사겠다고 주인에게 보입니다.
그리고 그 찢겨나간 부분을 보이며
이렇게 책이 상했으니 싸게 팔라 하는 겁니다.
그럼 주인은 그 학생의 수에 넘어가구요.
전,물론 책장을 찢진 않습니다.
사고 싶은 책을 그렇게 후지게 만들고 싶진 않아서요.
깎아준댔자 천원,이천원인데
다른 데 안쓰고
고이고이 책상태를 보존하는 쪽이 낫지요..
대신 잔꾀를 쓰는 경우가 있긴 한데-
그 아저씨는 9권을 사면 9권 값 그대로 받으시지만,
11권을 사면 10권 값만 받으시거든요.
하지만 12권을 사면 또 12권 값을 그대로 받으세요.
우수리가 약간만 떨어져야 하는 거죠.
해서 10권 사게 되거나 12권 사게 되면
11권을 골라요.
한번은 이집에서
‘일러스트레이티드 영어사전’을 찾아냈는데
말이 영어사전이지
A4크기 판형의 천페이지 가량 되는데 컬러도록과 다름없었어요.
본국에서 출판된 건데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칼을 설명하는 항목에는
동서고금의 칼들이 종류별로 실려있고,
프라 안젤리코를 설명하는 항목에는
그의 그림이 한판 가득 실려있고,
모르스 부호를 설명하는 항목에는
모르스 부호가 그대로 실려있는 그런 책이었어요.
나 “얼마예요?”
아저씨 “이런 건 구하기도 힘든 건데...”
나 “(비쌀 것을 예감하며)얼만데요?”
아저씨 “으음...오천원은 줘야겠는데?”
나 “(속으로 좋아죽겠으면서도 꾹꾹 누르며)
지금 삼천원 밖에 없는데.
(카드를 주로 쓰는 탓에 지갑엔 달랑 삼천원)“
아저씨 “내,얼굴 기억해 둘 테니 이천원은 나중에 가져와요.”
그리곤 내 얼굴을 뚫어져라 보시고 입력하신 아저씨.
그책은 지금 제 책상 위에 있습니다.
그 헌책방은 내 일상 동선 바깥에 위치한 곳이라
맘먹고 가지 않으면 잘 안가게 되는 곳입니다.
해서 이천원을 바로 갚지 못하고
거의 2주나 지나서야
이천원을 들고 어슬렁어슬렁 가게 됐습니다.
마음 속으론,
내가 이천원 떼어 먹은 걸로 아시고
아저씨가 인간에 대한 불신감으로
사람을 대하고 있는 건 아닐까
소심떨면서 말입니다.
나 “죄송해요,아저씨.여기 이천원이요.”
아저씨 “엉,이걸 왜 날 줘요?”
이런,이 아저씨 날 잊다니...
그 입력은 다 어디로 날리고.
그래서 그 사정을 말하니 너무나 좋아하시더군요.
그리곤 아무책이나 갖고 싶은 거 있으면 가지라 하시대요.
뭐 당연히 갚을 걸 갚은 거라
그날은 돈만 드리고 그냥 오긴 했지만
내심,다음번엔 값을 더 잘 쳐주시겠거니
머리를 굴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얼마가 지난 후 다시 찾은 그 책방,
아저씨는
여전히 9권이면 9권 값그대로
12권이면 12권 값그대로 챙기시더군요.
‘이천원 건’을 까맣게 잊으신 게지요.
아저씨에겐 제가 매번 새롭게만 보이나 봅니다.
제가 가장 싫어하는 선물은 꽃과 책입니다.
여자친구끼리 주고받는 꽃인 경우를 말합니다.
(다 경험이 있으신지 모르겠지만)
이건 그냥 당일치기로 간단히 사는
‘떼우기用’인 경우가 많아서요.
치장만 요란하고 별 의미가 없는 수가 많습니다.
청혼할 때 들고가는 의미심장한 꽃과는 거리가 멀죠.
전,인사치레로,인맥상
마음에는 없지만 선물은 한다는 경우를 만들지 않는 성격이라
조금이라도 선물하는데 돈아깝다는 생각이 들거나
성의껏 하기 싫은 경우엔
아예 선물을 안하는 편입니다.
그게 오히려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선물하고 싶은 사람에겐
생일이건 아니건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땐
과자 하나건
현찰이건
예쁘게 만지작거려서 주는 걸 좋아하지요.
선물이란 건 어차피
당사자가 꼭 필요해서 직접 골라내는 게 아니기 때문에
완벽하게 필요에 딱 들어맞을 순 없습니다.
가장 좋은 건,
그사람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걸 주는 거지만
차선은
내가 그 사람에게 꼭 주고 싶은 거
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흔히 오가는 꽃이나 책은
비실용적이어서 싫은 게 아니라
그사람에 대한 성의가 부족하여
선물 고를 여유없이 막판에
하는수없이 선택된 경우가 많기에 싫더라 이거지요.
아이들이 주는 사탕이나
지우개붙은 연필,
한복짓고 남은 공단 조각 같은 것도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책선물은 참 부담입니다.
물론 마음에 안드는 책만을 말합니다.
준 사람 생각해서 그래도 읽어는 봐야겠고
읽자니 시간이 아깝고...
뭐 덕분에
구효서,김승옥,한강,이문열 등등의 소설들도
휘이 읽을 수 있긴 했습니다.
책이나 꽃 살 돈만큼으로
차라리 초콜릿이나 곰보빵을 사주면
그거 맛나게 다 먹고
고기 몇근쯤 늘려 보일 수 있을텐데...
몇백그램의 먹을거리가
몸 속에 들어가
몇 킬로그램의 고기덩어리로 변하는 과정을 잘 연구한다면
기아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ㅋㅋ
헤헤...또 꼬투리 잡힐까 봐
자세히 얘기하자면-
여기서 말하는 무성의한 꽃이나 책은,
받을 사람을 열렬히 생각하고
그를 위해 꼭 주고 싶어서 주는 꽃이나 책은 아닙니다,물론.
알아들으셨나요? 에이그...
게시판글은 게시판글일 뿐입니다.
심사용으로 연마해서 쓰는 글보다는
훨씬 조심성없이 써지는 편인 게 사실입니다.
물론 거짓을 쓰지도 않고
하고 싶은 말을 더 분방하게 쓰기도 하지만,
종종 요령부득으로,성의부족으로
달리 오해될 여지를 질질 흘려두기도 한다 이거지요.
사실 좀 미안한 일이지만,
그런 부분에서 어떤 발끈반응이 나올지,
물고늘어질지 예상이 되기도 하는데
그래도 그냥 내버려두기도 해요.
그리고 예상대로의 반응이 나오면
‘그럼그렇지’ 혼자 실실 웃습니다.
제 고정관념이 지지되는 순간이걸랑요.ㅋㅋ
저는
反證을 기다립니다.
제 고정관념을 깨뜨릴
그런 분을 기다립니다.
‘추정(推定)’이 ‘간주(看做)’로 고착되지 않도록.
이 인간은 이런 인간이니까
여기 이 단어나 어미나 조사가 의미하는 것은
이런 의미일 꺼야...
미리 틀만들어 끼워넣지 마세요.
미리 칼 빼들고 기다리진 마시라 이겁니다.
무라도 잘라야 하는 강박있지 않습니까,우리.
제 글은
저의 여러 면모 중의 하나일 뿐이고...
제 글이 길다고 헉헉대는 사람 생각해서
말을 줄이다보면 자세히 말못하는 경우도 많지 않겠습니까.
소설 잘 안읽습니다.국내외 막론입니다.
지금의 상상력은
10대까지
남들 오락실,만화방,극장 다닐때
코박고 줄창 읽어댔던 동화책,이야기책,소설책을
지금까지 우려먹고 있는 겁니다.
요즘에 뒤늦게 테트리스를 하는데요,거 재밌대요.
신경숙,은희경,공지영,윤대녕,하루키...
한번도 읽은 적이 없습니다.
저들을 무시해서가 아니구요
다른 책을 읽느라 그런 것 뿐이지요.
물론 다른 이유가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괜찮은 소설 아시면 추천해주세요.
수사 현란하고 ‘기술 들어간’글쓰기로 나온 것 말구요.
좋아하는 작가는...
글은,글로 세상에 나온 순간 이후로 작가와는 별개,
독자생존입니다.
작가보다 훨씬 오래 살 수 있지요,
여러곳에 갈 수도 있구요.
글이 어떻게 변신할진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 작가를 좋아한대도
그의 모든 작품을 좋아하진 않아요.
글 하나가 그 작가를 전부 대변한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 작가의 한 면일 뿐이라고 보는 편이지요.
<나무를 심은 사람> 장 지오노는 작가로서도 좋아합니다.
김유정의 <동백꽃>,제일 좋아하는 한국소설입니다.
개인적으로 작가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어
작가를 좋아할지 말지 정하지는 않았지만.
더 좋아하는 걸 알게 될 때까지는
계속 좋아할 겝니다.
언제든 바뀔 수도 있는 거구요.
좋아한다는 건,싫어한다는 건
언제나 ‘잠정적’인 것일 뿐입니다.
종종 회의(懷疑)적이 되곤 했습니다.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
책을 읽는다는 것에 대해.
남의 이론에,생각에 무임승차하는 건 아닌가,
책읽기보다 얼른 뭔가 하는 게
세상에 더 실질적으로 이로운 일 아닐까.
보통사람보단 책을 좀더 읽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지요.
밖에 나가 돌아다니는 편이 즐거웠어요.
낯선 사람만큼 흥분되는 건 없습니다.
그래서 여행을 하는지 모릅니다.
헌데
앞으론 가급적 회의(懷疑)하지 않으려 합니다.
‘회의’라는 것도 아무나 할 게 아니었습니다.
‘회의’할 만한 자격이 생길만큼
충분히 노력하기 전에는
섣불리 ‘회의’하고
그걸 핑계삼아 포기하지 말자는 생각입니다.
그건 ‘회의’가 아니라
‘싫증’일 뿐인지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