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림을 그리는 화가에게 "당신은 왜 그림을 그리십니까?"하고 물어보면
어떤 답변이 나올까요? 물론 갖가지 답변이 나올 것입니다. 화가
선생님마다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그에 걸맞은 답변이 나올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답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림이라는 것은 내 수신의 한 도구에 불과하다. 그 이상 아무 의미 없다. 수신 과정의 찌꺼기가 곧 그림이다."
그림이 수신의 도구라는 이 화가, 어느 분인지 짐작이 가시나요. 대한민국 화단의 대표적인 화가 박서보 선생님이십니다.
1931년생이시니 올해로 84세이십니다.
제가 소속된 미술 공부 모임에서 2015년 가을 학기를 대한민국 대표적인 미술가들을
모시고 대담 형식으로 수업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찌하다 보니 자격도 없는 제가 큐레이터 한
분과 함께 대담자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여간 부담이 되는 일이 아니었지만, 이번 기회에 대한민국 대표 미술가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공부할 기회라고 생각하고 수락을 하였습니다. 지난주 월요일 첫 번째 수업이 있었습니다. 그날 모신 화가 분이
박서보 선생님이십니다.
주말 내내 박서보 선생님에 대해 공부하였습니다. 어느 한 화가에 대해 이렇게 집중적으로
공부한 적은 생애 처음이었습니다. 인터넷을 뒤져 선생님의 모든 인터뷰를 다 읽어보고, 선생님 그림에 대한 평론도 상당수 읽어 보았습니다. 이틀을 박서보라는
분과 씨름을 하고 나니 그분의 인생과 그림에 대해 조금은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박서보 선생님은 공부를 하면 할수록 고개가 숙여지는 분이셨습니다. 화가로서는 물론 인생의
스승으로 좋아하고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생각 중 가장 핵심은 바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자기
수양의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왜 인생을 살아가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동양과 서양의 모든 현인들은 한마디로 대답하였습니다. <인격의 완성>, 다른 말로 바꾸면 <자기 수양>입니다.
돈을 버는 것도 명예를 얻는 것도 권력을 차지하는 것도 아닌 개개인 스스로가 가진 인격을 갈고닦아 인격을 높이는 것이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인격을 완성하면 그다음에 무슨 일이 생기는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인격의 완성 그 자체를 최고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박서보
선생님은 자기 수양을 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고 당당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선생님 인터뷰의 한
대목입니다.
"제가 즐겨 하는 말이 나는 선비처럼 살고 싶다 입니다. 선비가 옛날에 그림
그리고 글 쓰고, 붓글씨 쓴 것이 대가가 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수신의 한 수단이었습니다. 그림이라는 것은 내 수신의 한 도구에 불과합니다. 그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수신 과정의 찌꺼기가 곧 그림입니다. 생각을
비워내는 것입니다. 스님이 하루 종일 목탁을 두드리지 않습니까? 반복해서
하는 염불을 통해 자기를 비워냅니다. 그래서 참선의 경지로 도달하는 것입니다. 투명한 자기와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때 스스로 성불했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제가 그림을 그리는 것은 스님의 과정과 방법적으로만 다를 뿐이지 의미는 똑같습니다."
2011.5.20 월스트리트 저널은 박서보 선생님을 한국 현대미술의 아버지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한국 현대미술의 살아있는 역사이십니다. 그분이 안 계셨으면
오늘의 한국 현대미술은 다른 모습이 되었을 것입니다. 한국 현대미술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 선생님께 빚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박서보 선생님은 요즘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한국 <단색화>를 주도하신 분이십니다. 선생님은 1960년대부터 <묘법>
시리즈를 통해 단색화를 실천하셨습니다. <묘법>은
캔버스를 물감으로 뒤덮고 그것이 채 마르기 전에 연필로 선을 긋고, 또 그것을 물감으로 지워버리고, 다시 그 위에 선을 긋는 행위를 되풀이해 탄생합니다. 물렁물렁한
물감은 연필 긋기로 밀려나고 부풀어 오르기도 합니다. 연필로 그리고, 물감으로 지우는 행위의 반복, 그 과정과 결과가 바로 작품이지요.

<묘법>, 그릴 묘 방법 법, 그리는 방법입니다. 그린 내용이 아니라 그리는 방법에 주목하여 그 과정에서 무엇인가를 얻으려 하신 것입니다. 아마도 선생님의 말씀처럼 수만 번 선을 긋는 과정에서 자기를 비우고 투명한 자기와 만나고 계셨는가 봅니다.
수업에서 직접 선생님을 뵈니 정정하셨습니다. 제가 화두만 말씀드리면 선생님께서는 시공을
넘나 드나드시면서 당신의 예술 세계를 열정적으로 설명하셨습니다. 예정된 수업 시간 45분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더 여쭤 볼 것인 많은데 시간이 다
되어 버린 것입니다. 회원들에게 좀 더할까요 하고 동의를 구하자 당연하다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용기를 내어 꼭 여쭤 보고 싶었던 질문을 드렸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인터뷰에서 그림은 치유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말씀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치유의 도구로서의 미술을 좀 설명해 주시죠."
"20세기까지 아날로그 시대의 미술은 작가가 자신의 생각을 극대화하여 작품의 형태로 쏟아내는 것입니다. 이미 대중은 갖가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데 그 대중들은 작가의 개성인 작품들로부터 또다시 폭력을 당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 개성을 드러내는 이미지를 표현하지 않고 마음을 비워내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비워 냄으로써 대중들이 쉬어 갈 수 있게 하고 싶은 것입니다. 대중들이
제 작품을 보면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마음을 쉬고 치유받기를 희망하는 것입니다. 디지털 시대인 21세기의 미술은 치유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2000년도 이후
제 작품에 색채를 동원하고 있는데 색채도 치유의 한 수단입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회원들 모두 이 대목에서 기립하며 박수를 쳤습니다. 난해한 현대미술에 지쳐있던 그들에게 선생님의
말씀은 목마름에 시원한 생수였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작품,
그러나 작품값은 수십억 원, 그 작품을 비난하는 것은 금기시되어 가고 있는 현대미술에
대한 통쾌한 일갈. 너무나 듣고 싶었던 이야기였습니다.
박서보 선생님과의 90분 대담을 통해 우리가 왜 미술 작품을 좋아하고 왜 미술 공부를
하고 있는가에 대한 해답을 얻은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미술 작품을 구매하여 걸어놓고 보는 이유는 우리 스스로가 세상의 스트레스로부터 고통받고 있어 치유받아야 할 존재임을 알기
때문에 미술 작품을 통해 자가 치유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치유의 도구이어야 하는 미술 작품이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폭력 수단이라면 우리는 작품 감상을 통해 병을 더 키우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미술가가 작품 활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인생의 목적인 인격의 완성을 위한 자기 수양의 과정이라면 우리는 미술
공부를 통해 또 다른 방식으로 자기 수양을 하는 것입니다.
미술 작품을 감상하고 미술 공부를 하는 것이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들의 호사스러운 취미가 아니라 인생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절박한 <자기 수양의 과정>이요, <자기 치유의 과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왜 미술 작품을 좋아하고 미술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지 스스로도 잘 몰랐던 그 이유를 이제 정확하게 알 것 같았습니다.
여러분은 미술 작품을 좋아하시나요. 몸과 마음이 스스로 치유를 원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주말에 가족들과 미술관에 나들이하여 치유를 받아보심이 어떠신가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15.9.21. 조근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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