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삶 자체가 전쟁(戰爭)이고 시장 전체가 전장(戰場)이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 없이 전쟁을 치르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긴 말이 필요 없다. 드라마 ‘왕건’에 나오는 견훤의 아들 ‘신검’ 꼴이 나기 십상이다. 그는 5천 명의 군사를 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병력이 천 명도 채 안 되는 벽진 성주에게 톡톡히 당하지 않던가. 그래서 전술과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전쟁을 막무가내로 치를 수는 없다. 무조건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덤빈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전략과 전술 그리고 더 나아가 전법이 요구되는 것이 전쟁이다. 그리고 전략, 전술, 전법 곧 전쟁술의 비밀을 터득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나폴레옹의 말처럼 역사의 명장들로부터 배우는 것이다.
만약 내게 21세기의 생존 전쟁터에서 살아 남기 위해 우리가 주목해야 할 명장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없이 롬멜 E. J. E. Rommel을 꼽겠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막의 여우’라고 불리던 독일의 맹장, 바로 그 롬멜 말이다.
그렇다면 왜 롬멜인가? 무엇보다도 그는 새로운 시대를 좌우할 전쟁 기술과 전쟁 양태의 변화를 읽어내고 그 변화에 본격적으로 대응한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진지전에서 기동전으로, 보병전에서 전차전으로 변화하는 양태를 정확히 포착해서 그 변화의 조건 속에서 새로운 전법을 창안하고 이것을 실전에 적용한 인물이 바로 롬멜이다.
1942년 5월 26일부터 6월 15일까지 약 3주에 걸친 아프리카 북부 사하라 사막 주도권 쟁탈전에서 리치 장군이 이끈 영국군은 제공권을 장악한 것은 물론 장비와 보급 면에서도 모두 우세했음에도 불구하고 롬멜의 아프리카 군단에 참패했다.
영국군이 패배한 결정적 요소는 리치 장군을 포함한 영국군 장성들이 종래의 보병 위주 전투를 염두에 두고 작전을 지휘한 데 있었다. 영국군을 이끈 리치 장군은 보병 부대가 아닌 완전 차량화 된 부대에 의해 실시되는 기동전의 본질과 광활한 사막이라는 전장의 지형적인 성격에 따른 새로운 전략 전술의 필요성을 간과했던 것이다.
반면에 독일군을 이끈 롬멜은 새로운 기동전의 변화한 성격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차전으로 구체화된 기동전은 완전히 새로운 전쟁 양태였다. 그것은 마치 오늘날 우리가 구경제가 아닌 신경제, 아날로그 경제가 아닌 디지털 경제와 마주하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진술적 대담성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아라비아 사막에서 맹활약 했던 ‘아라비아의 로렌스’에 견준다. 실제로 아라비아의 로렌스와 사하라 사막의 롬멜은 수적 열세와 보급 지연 그리고 제공권의 상실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적의 허를 찌르는 대담한 전략 전술을 전개해 상대를 농락했다는 점에서 흡사하다.
즉 로렌스와 롬멜은 기습전에 대한 천부적인 자질, 지형 분석과 전기(戰機)를 포착하는 심안(心眼), 유연성과 직관력의 조화, 진두지휘에 임하는 신념 등의 면에서 너무나도 닮았던 것이다.
지휘관을 평가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그가 적에게 얼마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었느냐 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도 롬멜의 위상은 확고부동하다. 롬멜의 천재적인 용병술, 그의 작전에 나타난 기습의 신속성과 지휘의 과단성은 그와 맞서 싸운 영국군에게도 하나의 신화처럼 받아들여졌다. 더구나 롬멜은 영국군 포로들에게도 매우 매너가 좋았는데 이런 점이 더욱 그를 매력적인 인물로 부각시켰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의 탁월함의 요체는 새로운 변화를 빨리 포착하고 그것에 제대로 대응했다는 사실에 있다. 대부분의 군사 지도자들이 종래의 전쟁 규범에 따라 움직이고 있을 때, 그는 과감히 새로운 전쟁 규범을 창출했다. 사람들은 이것을 그의 군사적 천재성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오늘의 시점에서 바라본다면 그는 ‘변화의 달인the master of change’이었던 셈이다.
지금 우리에게도 바로 이것이 필요하다. 변화하는 시장 상황 속에서 종래의 방식과 결별하고 새로운 시장 전쟁을 벌일 그 변화의 전범(典範)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롬멜한테 배워야 한다.
정진홍 지음 <감성 바이러스를 퍼뜨려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