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철교를 건너는 동안
잔물결이 새삼스레 눈에 들어왔다
얼마 안 되는 보증금을 빼서 서울을 떠난후
낯선 눈으로 바라보는 한강 ,
어제의 내가 그 강물에 뒤척이고 있었다
한 뼘쯤 솟았다 내려 앉는 물결들 , 서울에 사는 동안 내게 지분이 있었다면
저 물결 하나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결 일으켜
열 번이 넘게 이삿짐을 쌋고
물결 , 일으켜
물새 같은 아이 둘을 업어 길렸다
사랑도 물결 , 처럼
사소하게 일었다 스러지곤 했다
더는 걸을 수 없는 무릎을 일으켜 세운 것도
저 낮은 물결 , 위에서였다
숱한 목숨들이 일렁이며 흘러가는 이 도시에서
뒤척이며 , 뒤척이며 , 그러나
같은 자리로 내려앉는 법이 없는
저 물결 , 위에 쌓았다 허문 날들이 있었다
거대한 점묘화 같은 서울
물결 , 하나가 반짝이며 내게 말을 건넨다
저 물결을 일으켜 또 어디로 갈 것인가
- <사라진 손바닥> ,문학과지성사 ,2004년 -
(작가소개)나희덕 시인.대학교수
1966.충남논산 출생.1989중앙일보 신춘문예에'뿌리에게'등단.
첫댓글 나는
이삿짐에 연탄 난로가 하나씩 늘어나고
석유 난로도 늘어났다.
연탄가스 마시는 횟수도 늘어난다.
점쟁이 왈
열한번의 이사가 팔자에 있다했다.
한강 물결 바라보며
이사 다니는 사람들은 그래도 행복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