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고종의 인산일에 서울을 찾은 울산의 이재락선생은 일제치하 독립만세운동을 목격한다. 일제의 감시를 피해 독립선언서를 품고 울산에 도착한 이재락선생은 울산에서도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한다. 학성이씨의 시조 이예선생을 모신 석계서원 앞뜰에 이재락 선생은 그의 사촌인 이직수 선생과 함께 무궁화묘목을 심고 결의를 다지며, 울주군의 남창장터에서 만세운동을 펼치게 된다.
지금도 울주군 석계서원에는 올해 101년이 된 무궁화가 아름답게 피어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가 잘 몰랐던 사실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이재락 선생은 심산 김창숙 선생과 사돈지간이며, 경주 최 부자 최준 선생과도 사돈 집안이라는 사실이다.
심산 김창숙은 당시 우리나라 유림의 거두로서, 1919년 3월 29일 파리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조선의 독립을 호소하는 장서를 전달한 `파리장서운동`을 주도한 인물이자, 지금의 성균관대학교를 재건하며 초대총장을 지냈다.
또한 경주 최부자로 익히 전 국민에게 알려져있는 최준선생 역시 막대한 규모의 자금으로 독립운동을 펼쳤으며, 지금의 영남대학교를 세웠다. 이러한 심산 김창숙, 최준의 두 집안과 사돈관계이며 함께 국내독립운동을 펼친 이가 바로 이재락선생이다.
이재락, 김창숙 그리고 최준. 이들은 국내의 군자금을 모금하여 상해임시정부와 의열독립투쟁을 이어가는 밑거름을 만들어 내었다. 이들의 목숨을 내어놓은 활동은 혈연관계를 이어간 것뿐만 아니라 당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우리시대의 민족정신이 된다. 이렇게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의 광복이 찾아왔다.
75년이 흐른 2020년 8월 15일 울산에서 아주 뜻 깊은 일이 있었다. 바로 `독립운동가 집안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울산의 독립운동가 이재락선생의 집안과 경주 최부자 최준선생의 집안의 만남이었다.
2020년 문화재청의 고택종갓집활용사업으로 선정된 `울산 학성이씨 근재공고택`에서 일반인들의 체험과 교육활동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진 "항일운동의 뿌리를 찾아서~"1박2일 스테이프로그램의 주제가 울산의 독립운동가 이재락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 걸으며, 이재락 선생과 경주 최부자 최준 선생의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함께 만나 지금을 살아가는 시대정신을 배우는 시간이 마련된 것이다.
무엇보다 독립운동가 집안이 사돈관계였으며 그 후손들이 직접 만나는 시간을 일반 체험객들과 함께 갖는다는 것이다. 이재락 선생집안의 후손 이동호 선생과 경주 최부자 선양회의 최창호이사의 만남은 8월 15일 무더운 날씨에도 오히려 훈훈한 감동을 준다. 처음만난 두 사람은 마치 오랫동안 만나온 사이처럼 격의 없이 친근해 보인다.
우리와 같은 일반인들은 이러한 모습이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두 집안의 독립운동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전해지고, 책으로만 봐왔던 독립운동가들의 실존해있던 이야기와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더욱 가까이 다가온다. 우리가 생각했던 독립운동은 의열투쟁만이 치열했다고 여겼는데, 국내의 군자금모금운동 역시 목숨을 내어놓고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의 연속이었음을 알게된다.
시퍼렇게 눈을 뜨고 감시하는 일제의 군경들을 피해 군자금을 모금한다는 것이 보통일이었겠는가. 이러한 이야기들이 생생하게 들려온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지금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전하는 두 집안의 가치관은 전혀 뜻밖의 말이었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말씀드릴 수 있는 독립운동가 집안의 덕목은 나눔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욕심을 적게 내고, 보다 많은 사람과 나누는 정신말입니다." "울산의 만세운동은 모두의 마음이 합해진거지요.
서슬퍼런 일제의 총구에도 어떤 이는 독립선언문을 베껴쓰고, 어떤 이는 그것을 나누고, 그렇게 날짜를 정해서, 장날에 모인 모든 사람들의 용기있는 마음 아니겠습니까" 모든 것이 나의 공이 아니다. 내가 잘나서 그런 것도 아니다. 마음을 하나로 모았고, 내가 아닌 우리를 위해, 나의 욕심이 아닌 모두를 위한 행동들이었다.
그것이 바로 용기였고, 떳떳함이었다. 이러한 8월 15일, 또 다른 광복절이 있었다. 전 국민이 힘을 하나로 모으고, 의료진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코로나19를 잘 극복해나가던 대한민국에 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전국각지로 퍼져나간 불안함은 이제 우리 모두의 몫이 되어버렸다. 75년 전 전체를 위해 희생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돌아보았으면 한다. 그들은 다수와 전체를 위해 용기를 내고, 힘을 합했고, 마음을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