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지방자치단체가 두 달여 만에 지방세 고액 체납자들에게서 압류한 가상화폐만 886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규제 사각지대'에 있던 가상화폐를 재산 은닉 수단으로 악용한 체납자들이 상당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주목된다. 8일 이영 국민의힘 의원이 공개한 '가상화폐 체납 처분 추진 결과'에 따르면 전국 17개 광역시도는 지난 6월 말 기준 1만5912명이 숨겨둔 가상화폐를 찾아내 압류했다. 이들이 4대 가상화폐 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에 숨겨둔 가상화폐 평가액만 886억2838만원에 이른다.
시작은 서울시였다. 서울시는 지난 4월 지자체 최초로 지방세 고액 체납자의 가상화폐를 압류했다. 이를 본 다른 지자체들 사이에서 가상화폐 압류가 '유행'처럼 번졌다. 가장 많은 액수의 가상화폐를 압류한 지자체는 경기도다. 경기도는 체납자 1만2613명이 숨겨둔 530억원 상당의 가상화폐를 발견해 압류했다. 혼자 141억원 상당의 가상화폐를 보유한 사람도 있었다. 서울시는 1182명이 숨겨둔 가상화폐 259억원가량을 찾아 압류 조치했다. △인천(60억원·776명) △대전(15억원·148명) △충청북도(7억원·352명) △충청남도(2억9000만원·132명) 등도 체납자의 가상화폐를 속속 압류했다.
개인병원을 운영하는 경기도민 A씨는 가상화폐를 120억원어치 보유하고도 세금 500만원을 밀렸다. 상가 임대업자인 의사 B씨는 2018년부터 재산세 등 1700만원 상당의 세금을 내지 않고 버텼다. 조사 결과 B씨는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약 28억원을 보유한 사실이 드러났다.
지자체가 가상화폐 거래를 막자 체납자들은 세금을 내겠다고 꼬리를 내리고 있다. 가상화폐 가격이 더 오를 것으로 기대한 체납자들이 세금을 내고 압류를 푸는 게 이익이라고 판단하면서다. 가상화폐가 압류되면 가격 변동에 따라 가상화폐를 사고파는 게 불가능해진다. 실제 세종시가 밀린 세금이 400만원인 C씨의 가상화폐 3800만원어치를 압류하자 C씨는 곧바로 세금을 완납했다. 지난 3월 25일부터 '가상자산' 개념을 정의한 특정금융정보법이 시행되면서 가상화폐 압류를 위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 지자체는 체납자의 이름과 생년월일, 휴대전화번호 등만 있으면 거래소를 통해 체납자의 가상화폐 보유 현황을 조회할 수 있다. 밀린 세금을 내면 지자체가 압류를 풀어준다.
이영 의원은 "정부가 가상화폐 관련 제도 마련을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체납자들이 가상화폐를 새로운 재산 은닉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며 "공정 과세 실현을 위해 관계당국은 체납된 세금을 끝까지 추적해 징수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