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에게는 정비인 효의왕후 외에 4명의 후궁들이 있었습니다.
원빈 홍씨, 화빈 윤씨, 수빈박씨, 의빈 성씨가 그녀들이지요.
정비인 효의왕후는 정조를 10살(당시 정조는 11살)의 어린 나이에 만나
금슬이 좋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산은 10살의 나이에 혼례를 치루고 효의
왕후를 맞아 들였지만 이는 세도가들이 왕권과 유착하기 위해 맺어지는 혼례
의 형태였습니다. 그 후로 후궁들도 세도가들에 의해서 들여 진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둘 사이에 자식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정조의 할머니인 정순왕후가 언문 교지에서, 왕비가 병이 있어 아이를
갖지 못하므로 후궁을 들이라는 명을 내리고 있는 것을 보면, 아이를 갖지
못하는 <부인과> 계통의 병이 아닐까 추측됩니다.
결국 그녀는 상상 임신까지도 겪게 됩니다.
산기가 있는 것 같아 산실청까지 차리나...,
아무리 기다려도(1년을 기다렸다는군요) 아이가 나오질 않았던 것이지요.
아무튼, 그녀는 평생 아이를 갖지 못하는 여자로써
묵묵히 시어머니, 시할머니를 봉양하며
숨죽이며 지내던 불행한 여자였습니다. (불쌍한 효의왕후ㅠㅠ)
태도는 온순하고 의연했던 것 같습니다.
정조 즉위 후 정국을 호령하던 홍국영이 그녀의 병을 고치지 못하게
방해했어도 의연한 태도를 보여 주위를 감동시켰다 하는군요.
(개인적으로 정조의 오른팔이 되다가 쫓겨나는 홍국영 좀 기대되는~~)
그렇기에 정조와도 금슬이 좋았는데, 아무래도 10살에 만나 혼례를 올리다
보니 동지애가 조금 더 깊었을것 같기도 합니다.
어쨌든 정조는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는 효의왕후 외에 그 어떤 여자와도
관계를 갖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왕위에 오르고 효의왕후가 아이를 가질 가망이 없자 후궁들을 들이게 되지요.
그것이 원빈 홍씨, 화빈 윤씨, 수빈 박씨 입니다.
원빈 홍씨는 당시 세도가였던 홍국영의 동생입니다.
풍산 홍씨 명문가의 딸이지요.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와도 인척이구요,
야심가 홍국영이 자신의 여동생을 왕에게 들여,
외척으로써 권력을 영원히 유지해 보고자 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원빈은 궁에 들어온 지 일 년 여 만에 자식도 보지 못한 채
죽어 버립니다. 동생의 죽음에 광분한 홍국영은 이것이 효의왕후의 짓이라며 떠들고 다니고....
왕실의 권위에 도전하던 홍국영은 결국 제 무덤을 제가 파 정계에서 영원히 축
출되고 말지요. 득을 보려다 오히려 화를 입은 경우입니다.
화빈 윤씨는 판관이었던 윤창윤의 딸이고,
수빈 박씨는 반남 박씨 명문가의 딸로,
정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순조>의 어머니입니다.
그녀들과 정조의 관계는 남녀의 관계라기 보다, 의무감이 앞서는 관계, 정치적
인 관계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지 않을까 싶네요.
그녀들의 존재 목적이야 오로지 왕자의 생산이었으니까요.
사이는 좋았다고 합니다만...
그러나 의빈의 경우는 좀 다릅니다.
의빈 성씨는 화빈 윤씨 처소의 궁녀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조에게는 유일한 궁녀 출신의 후궁이지요.
정조는.., 정조 자신이 자신있게 말했던대로,
(최측근이었던 정약용의 증언도 있습니다.)
궁첩을 가까이 하지 않던 왕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여자 문제에 대해 지극히 담담했었던 왕이었지요.
그런 정조가 유일하게 마음에 두어 후궁으로 삼은 여자가 바로 의빈이었습니다.
아무튼 의빈은 정조에게 첫 아들을 낳아 주었고(문효세자. 불행히도 5살의 어린 나이에 죽습니다. 그러다 몇 년 뒤 홍역으로 아들이 죽자, 곧 죽는데..
실록의 기록에도 독살을 의심하는 대목이 나오는 것을 보면,
거의 독살이 확실한 것 같습니다.
보통 실록 등의 정사에는 왕실과 관계된 이런 불미스러운 일들은 기록하지 않는 것이 상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이 이상하더니, 결국 이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는 정조의 말이나,
"당시 사람들이 ... 의심했다" 는 기록이 있는 것은, 독살이 의심되는 부분입니다.
더구나 정조는 의학의 대가였습니다. 그가 의심했다는 것은... 그럴 수도(독살일 수도) 있다는 얘기겠지요.
의빈성씨는 이렇게 죽고, 정조는 아주 슬퍼했다고 합니다.
"그지 없이 애석해하고, 슬퍼했다"고 하는군요.
역시 정조가 사랑하던 유일한 여자는 의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정조의 여자 관계는 이 정도 입니다.
참고로 화빈 원빈 수빈은 명문가 출신이지만
그러나 의빈의 경우는....
그녀는 궁녀 출신입니다.
잘해야 중인, 아니면 평민 출신이겠지요.
그런 그녀는 정조의 눈에 들고 나서 상의(5품)가 되었고,
그후 소용(3품) 이었다가,
아들을 낳은 후에야 비로소 빈(1품)의 품계를 받게 되었지요.
의빈의 성품은 곱고 욕심이 없었으며, 무엇보다 정조에게 많은 애정을
했다고 전해지며 정조 정비 효의왕후와도 사이가 깊었다고 합니다~~
훗날 의빈이 죽자 정조는 20여일동안 정사를 돌보지 않았고 이 때문에 많은 혼란이 빚기도 했으나 많은 대신들의 간청에 다시 정사를 돌봤다네요.
의빈은 출생년이 별로 전해진것이 없으며 그 또한 기록이 별로
남지 않아 궁에 들어가 어떻게 살았는지 잘 알 수 없습니다.
자식으로는 문효세자가 있고 옹주가 있었으나 모두 어린시절에 사망한것으로
추정됩니다.
정조가 가장 사랑했던 여인이었기에 궁에서
멀지 않은 용산에 첫 아들인 문효태자가 묻힌 곳에 묘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드라마에서처럼 다모가 아니고 나인이었으므로
평민 이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유일한 궁녀출신이고 대신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선택했기에 의빈성씨를 많이 아꼈다고 하지만 정조는
정비 효의왕후와도 사이가 좋았고, 나머지 후궁들과도 사이가 좋아서
정조의 여자들은 서로 싸우는 일 없이 잘 지냈다고 합니다.
효의왕후의 성품도 좋기로 유명하죠 ^^ 평생 혜경궁홍씨 봉양하면서
모시고 재물 탐하지 않고 아주 잘 내조하였습니다.
여기 저기 적이 너무 많았던 정조에게 있어 왕후와 후궁들이
어질어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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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티즈 867님 글을 퍼왔어요
읽기 쉽게 잘써주신것같아서 퍼왔는데 한번 읽어보세요
첫댓글 우와 잘봤어요^^ 이런 글 너무 좋아요
재밌게 잘읽었다긔.... 이런거 좋긔
와 잘봤다긔!^^
조목이 알아보기 쉽게 잘도 적어 주셨다규. 공부 잘하고 가요ㅎㅎㅎ
재밌네요 ㅋㅋ 의빈 성씨가 이산에 한지민?
넹 성송연..
여자에 관심도 없고, 의술,무예,그림,등....모든 학문에 능통하고..뭔가 예민하고 날카로운듯한 외모하며...뭔가 멋진...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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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333333333333뭔가 식흐한데다 영전 보니까 얼굴도 훈남이시던데 진정한 훈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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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여자관계 안 복잡했다니 괜히 정이 더 가긔 ㅋㅋㅋ
조선왕들치고는 되게 금욕적이네요 워낙 방탕했어야지 ... 영조도 금욕적인왕이었고 정조가 오래살았으면 좋았을텐대 하물며 순조가 장성할때까지만하더라도 그럼 역사는 바뀌었겠죠
이런 글 볼수록 정조가 넘 안타까워요. 어린나이에 아빠는 뒤주에 갇혀 죽어... 정치도 자기 맘대로 펴지 못한 채로 죽어...
일찍 가기엔 참으로 아까운 왕이 었네요.
제가 젤로 좋아하는 분.. 멋진분이신듯해여..
홍국영은 관점에 따라 평가가 완전 다른거 같아요... 어떤이는 그를 정조를 도와 개혁정치를 감행한어쩌구...머 그렇게 말하기도 하고,, 여기선 권력에 눈먼 사람 같이 느껴지고... 음.. 홍국영이라는 드라마(예전 김상경주연했던..)를 보면 또 다른 느낌인데 말이죠...
수빈박씨 우리 조상님~ ^^;
의빈 성씨가 극 중의 성송연인가요?? 허구의 인물이 아니었구나.....
정말 최고의 군주!!!
정조가 가장 대접(?)했던 후궁은 수빈박씨였다고...어제 읽은 책에서 봤어요. 유일한 나인출신 후궁은 의빈 성씨가 맞지만 그렇다고 유일하게 사랑한 여인은 아닌 것 같아요. 수빈 박씨는 정조가 후사가 없어서 삼간택인가 해서 들인 후궁이에요. 명문가의 일족이긴 하지만 집이 가난했었고...후궁이 된 후로도 검소하고 겸손했다고 하며, 순조가 왕이된 후까지도 살았다고 하네요. 조선사에서 아들이 왕이 된 이후에도 생존한 유일한 후궁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