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4시간짜리 등반을 하고 오늘은 300k를 달려 한반도의 끝자락 여수에 도착
했습니다. 오동도 방파제를 들려 동백섬에서 쓸쓸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리플레이
해볼 참이었는데 매형이 추어탕 먹으러 가자며 컴백 홈을 재촉합니다. 엑스포 해양공원
노상에 토네이도를 처박아 놓고 한 4k 정도 보이는 방파제까지 뚜벅 이로 걸어갈 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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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이라 대체적으로 한산했지만 경기 탓도 있을 것입니다. 2층짜리 페리호가 해양
경비선일 줄은 몰랐네요. 배가 죽여줍니다. 바로 가까이에서 사진을 찍었더니 유난히
거대해 보입니다. 저는 이런 배를 본드 섬 갈 때 타보았는데 타이타닉 호 처럼 거대한
배가 침몰하는 걸 보면 바다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어마 무시한 것 같습니다. 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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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도에 마지막으로 온 것이 10년은 되었을 것입니다. 그때는 엑스포 만들기 전이라
방파제까지 차가 들어갈 수 있었는데 지금은 발품을 팔지 않으면 갈 길이 없어졌습니다.
듣기 싫은 안내방송을 계속 내보내는 것도 체계가 없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리라.
이런 하찮은 일로 까칠해지는 제가 아직도 사춘기 중이라서 그러니 이해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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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2 여름(1981)에 여수 친구 도환이네로 놀러 간 적이 있습니다.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생생한 걸 보면 내게 강렬했던 고교 추억으로 남았다는 반증이겠지요. 도환 이는 나보다
한 살이 많은데 무슨 사연이 있는지 우리 학교까지 유학을 왔을 것입니다. 놈이 1학년이라
탁곤 이네 하숙집에서 통성명을 했을 땐 아는 척만 하다가 나중에서야 친구를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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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선배들도 고작해야 당구장 출입이 다인데 우리들은 난생처음 골프도 쳐보고 나이트
클럽에서 밤새 흔들었어요. 촌놈이 이래도 되는지 어리둥절했습니다. 돌산 너머를 가기
위해 통통배를 탔던 일과 직접 바다에서 멱을 감았던 경험은 신기 그 자체였습니다.
도환이 친구들도 떡 대가다들 좋아서 우리가 꼭 여수를 접수한 것 같았습니다. 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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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살에 골프에 입문했으니 구력으로 치면 30년이 훌쩍 넘었고 만 현재 100 돌이를 넘지
못하고 있으니 제가 몸치거나 운동에 당최 소질이 없는 것 같아요. 바닷가에서 사는 아이
들이 아니면 대체적으로 물을 무서워할 것입니다. 촌놈들에게 꿇리지 않으려고 바다 속
수영시합을 수락했어요. 물에 들어간 지 얼마나 됐다고 갑자기 하늘이 시커멓게 바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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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가 치기 시작하는 겁니다. 연병, 큰일 났습니다. 저 수영 잘 못한단 말이에요.
간신히 뭍으로 올라와 위기는 모면했지만 하마터면 뒈질 뻔 했습니다. 그 무렵 가는
곳마다 조 용필의 ‘단발머리’와 이용의 ‘잊힌 계절’이 스피커로 들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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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글리 파머를 하고 나온 이용은 새로운 오빠부대를 편성하고 있었고 저도 언제부터가
발라드의 유혹에 서서히 끌려갔습니다. " 우우우, 우우우우, 우,우,우,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10월의 마지막 밤을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 져야 하는 건가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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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심인가요.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 져야 하는 건가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우리는 이때도 빌보드 차트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잭슨 5나 도나 서머, 바브라 스트라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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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는 우리의 우상이었어요. 그날 만성 리 해수욕장에서 똥 폼을 잡았고 오후엔 시계를
저당 잡히고 간 곳이 어느 사창가입니다.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패스하겠습니다. 추어탕을
먹고 장장 4시간 동안 여수 전역을 샅샅이 뒤졌는데 익숙한 지명이 휙휙 지나갑니다.
만성 리 검은 모래 해수욕장, 풀 하우스, 문 선명's 스파, 해상교통관제센터에 내려 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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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데크 길을 걸어갔습니다. 낚시꾼들이 두어 명 있었고 혼자 보기 아까운 바다를 보았어요.
아주 가까이서. 누나가 두 아들을 차례로 바꿔줬으니 건성으로 통화해도 내 탓은 하지
마시라. 매형이 난개발을 비판하면서 구시렁거리는 게 대개 거슬렸지만 분위기 깰까 봐
참고 들어줬습니다. 60이 되어도 성격은 바뀌지 않는 것 같아요. 여수까지 내려온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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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때 매형이 어머니께 혼나고 삐쳐서 처갓집 안 올까 봐 일부러 내려온 것입니다.
누나 말이 그렇잖아도 이번 추석은 시댁에서 보내겠다는 말을 했다 나 봅니다. 소심한
인간 같으니라고. 아침부터 운전을 한 탓에 피곤이 밀려왔습니다. 매형에게 핸들을 맡긴
채 돌산대교를 한 바퀴 돌고 '낭만포차'에서 내렸습니다. 낭만포차 거리는 원래는 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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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는 상가였는데 시에서 포차 20대를 한정판으로 내어주면서 대박을 터트린 모양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별것도 아닌 것 같은데 말입니다. 이문세의 '여수 밤바다'가 이곳을 핫 플로
만들었을까요? 배속에서 신호가 오는 것이 벌써 4시간이 지났네요. 겨울에 부산 해운대에
갔다가 먹은 세꼬시 생각이 나서 단골집을 찾아 고고싱했어요. 깔이 끝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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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콜이 무진장 당기지만 인 안 성을 해야 하니 참아야 합니다.
뭔 일로 매형이 술을 다 마다하네요. 별일 일세. 누나네 홈에 들어와 보니 20년 전
우리 집에 있던 보물 1호 영국산 호프 통이 눈물 나게 반갑습니다. 화실인지 무당집인지
모를 방안 분위기가 누나의 폐쇄적인 포지션을 알려주는듯했어요. 1시간쯤 오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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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형을 씹고 있는데 목욕탕 다녀온 매형이 벌써 들어왔네요. 누나가 밤바다 버스킹으로
꼬셨지만 갈 길이 멀어 사양을 했어요. 그만 간다며 나왔는데 글쎄 예정에도 없는 토킹
어바웃을 2시간이 넘게 했습니다. 무슨 말을 했을까요? 소공소곤.
2019.9.2.mon.악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