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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진탐자 원문보기 글쓴이: 승웅
대표적 율법 십계명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사람을 하나님의 사랑의 교제의 대상을 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엿 새 동안 천지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은 이레되는 날을 특별히 구별하여 복을 주고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그 날은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서 사랑의 교제를 하도록 정하신 것입니다. 성경에는 거룩이라는 말이 수도 없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거룩의 반대는 속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의 본래 뜻으로 보면 거룩은 반드시 하나님과 관련이 있는 것을 거룩하다고 하였고 하나님이 제외된 것은 그것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하여도 거룩이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의 계획속에 사람과 하나님을 만나도록 하는 제도를 만드셨습니다 즉 시간을 거룩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레되는 날입니다. 안식일이란 하나님이 계신 날입니다. 그래서 성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그러므로 그 분은 안식일의 주인이 되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의 과정으로 시간에다 복을 주신 것입니다. 이 세상 어느 신도 어느 종교도 시간을 엄격하게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일주일 제도의 기원은 성경에서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성경 요한 일서 4장 7절에서 8절을 봅시다 “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
하나님은 자신이 사랑이기 때문에 우리도 서로 사랑하면서 살라고 하십니다.. 사랑하면서 사는 자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을 실천하며 사는 방법은 무엇일가요 그것은 사랑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만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을 알고 그분에게서 사랑을 공급받아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서 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생활인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의 전체적인 내용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과의 사랑과 인간 상호간의 사랑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은 마태복음 22장에서 어느 계명이 크냐고 묻는 어느 율법사의 질문에 답변을 통하여 “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이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 라고 설명 하십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계명이라면 모세가 시내 산에서 받은 두 돌비에 기록된 십계명으로 알고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10개중 하나를 중요하다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열개 모두를 두개로 나타 내시므로 모두가 중요함을 말씀 하시고 계십니다 .
십계명은 두개의 돌비에 기록 되어 있는데 첫 번째 돌비에는 첫째부터 넷째까지의 계명이 기록되어 있고 두 번째 돌비에는 다섯째부터 열째까지의 계명이 기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첫째부터 넷째까지의 계명의 내용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뜻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이 구체적으로 즉 첫째 는 하나님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것이고 둘째는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것이고 셋째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는 것이고 ,넷째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돌비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인간 상호간의 사랑이 있어야 할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거기에는 이웃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다섯째 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 여섯째 살인하지 말라 일곱째 간음하지 말라 여덟째 도적질 하지 말라. 아홉째 거짓 증거 하지 말라. 열째 탐내지 말라 등으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2개의 계명과 모세가 하나님으로 부터 직접 받은 두 돌비에 있는 십계명은 동일한 것임을 알 수 가 있다.
그러면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처음으로 받은 사람일까요. 그렇지가 않습니다 예수님이 설명 하신 것처럼 십계명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하라는 내용이라고 하면 이 십계명의 이야기는 태초에 창조 당시로 거슬러 올라 갑니다 창세기 2장 1절과 2장 18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이 지으시던 일곱째 날이 이를 떼에 다 이루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하나님이 일곱째 날에 안식 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을 주고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 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날에 안식 하시니라. ” 이 말씀에서 우리는 안식일을 거룩히 하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 하나님은 안식일을 창조의 한 과정으로 말씀을 하시므로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할 생활 법칙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 창세기 2장 18절을 보자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
여기에서는 사람은 혼자 살수 없도록 하나님이 그 배필을 마련하여 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은 인간은 결혼을 통하여 인간 상호간에 사랑을 하면서 살도록 하는 제도를 마련하여 주신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조시부터 하나님이 인간의 생활 방법 2가지를 축복으로 주셨는데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으로 부터 사랑을 공급받는 방법으로 안식일 제도를 주셨고 인간이 서로 사랑하면서 가정을 이루고 가족을 사랑하는 제도로 결혼 제도를 주셨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계명은 하나님과 인간을 사랑하라는 두개로 줄여지고 다시 그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하면 될 것입니다.
이 두 계명은 다른 계명과 다른 점이 있는데 둘 다 모두 시간에 관한 내용이 들어 있고 생명에 관련이 되어 있고 다른 모든 계명들은 “하지말라”는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표현으로 되어 있지만 이 두 계명은 기억하여 지켜라, 공경하라는 적극적 표현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십계명을 살펴보면 첫째 돌비에서는 안식일을 지키라는 계명이 대표적이고 둘째 돌비는 결혼을 통하여 나타나는 가족간의 사랑 즉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이 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성경은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통하여 인간 상호간의 사랑을 할 수 있다고 하므로 사랑의 하나님을 아는 것은 인간 사랑을 실천하는 힘의 근원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십계명의 대표적인 계명은 말할 것도 없이 네 번째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이 지키라는 계명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은 7일 단위로 되어 있습니다. 교회를 다니든 안 다니든 많은 사람들 직장이나 학교에 다니는 사람은 물론이고 개인 사업하는 사람도 6일을 일하면 하루는 쉬도록 되어 있는 이 일주일 제도는 지금 읽은 말씀을 통하여 이 지구와 인간이 생겨남과 동시에 마련되어 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책 성경은 이 제도가 이 지구의 창조의 한 과정으로써 하나님이 마련하신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학자들이 연구한 바에 의하면 사람은 같은 일을 매일 반복하면 6일 까지는 능률이 향상하지만 7 일 부터는 저하된다고 합니다 . 그래서 6일 단위로 하루씩 쉬어 주는 것이 일의 능률도 오르고 건강에도 좋다는 사실을 밝혀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만드셨으므로 우리들의 몸의 구조와 생리를 가장 잘 알고 있어 우리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칠일마다 하루씩 쉬어 주는 안식일 제도를 축복으로 주신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잘 쉬는 것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을 찬양하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일곱째 날을 기억하여 거록히 구분하여 지키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안식일이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안식일 교인들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안식일이라는 말을 쓰지 않을 뿐만 아니라 거부감조차 나타내고 있습니다
생각할수록 이상한 일이 아닙니까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에 대해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고 계십니다 에스겔 20장 12절 같은 장 20절에서 보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당신의 백성이 되는 표징이라고 까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구약 시대의 제사 제도 즉 양을 잡아 성소에 그 피를 뿌리고 양을 불사르는 제도인 의문의 율법이 폐지되었다는 의미 속에 안식일 제도를 포함시켜 안식일 제도는 이미 폐지된 것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적용 시키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모순이 됩니다.
왜냐하면 제사 제도는 아담과 하와의 타락 후에 에덴의 회복을 위해 하나님 자신이 화목 제물이 되실 것을 예표하는 것이고 안식일은 타락하기 전의 창조의 한 과정으로써 하나님께서 인류의 기본적인 생활 방법으로 정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은 안식일은 구약 시대의 유대인들에게 주어진 것이고 십자가 이후의 신약 시대에는 폐지 된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라면 할례 제도와 같이 아브라함에게 주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안식일을 창조의 한 과정으로써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에게 주어진 것으로 나옵니다. 또 성경 어디를 보아도 안식일을 폐지시킨 곳은 없습니다. 오히려 예수님도 사도들도 안식일을 규례대로 철저하게 지킨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
따라서 우리는 한 가지 분명한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안식일 제도를 포함한 십계명은 우리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우리 인간들이 가장 행복하게 살수 있는 생활 방법으로써 인간에게 축복으로 주신 변할 수 없는 법칙인 것입니다.
그것은 일주일 중 하루를 일을 하지 말고 쉬라는 형식이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인간은 하나님 없이는 살수 없다는 뜻이며 사람은 하나님과의 사랑의 교제 속에서 행복할 수 있고 그것을 기초로 인간들끼리 사랑하며 살라는 법칙인 것입니다 .
안식일 제도는 인간의 타락 이전부터 주어진 인간의 생활의 원칙을 제시한 것입니다. 그 법칙이 준수되지 않았기에 인간은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랑과 기쁨의 안식일을 자유를 억압하는 고통스러운 날로 타락시켰고 오늘날 카토릭과 개신교는 다른 날로 바꾸어 버림으로 하나님의 거룩함을 훼손시켰습니다. 이제는 그러한 안식일을 원래대로 회복 시켜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떠나서는 안 될 인간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인간은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절실한 것입니다.
창조로 맺어진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맺어 주는 제도인 안식일, 그 안식일의 정신은 사람은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즉 사람은 하나님과 독립해서는 살 수 없는 존재로 창조가 된 것입니다. 죄란 하나님과의 분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다면 인간은 타락을 예방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안식일의 정신은 사람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계명에서는 결혼으로 맺어진 아담과 하와는 서로 사랑으로 연합되어야 했던 것입니다 .
즉 하와는 아담을 떠나지 않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은 안식일에서 하나님과의 연합인 첫 번째 계명이고 인간 상호간의 사랑은 결혼에서 보여주는 두 번째 계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타락한 원인을 찾는다면 인간이 하나님을 떠났고 인간끼리도 서로 떨어져 있었으니 결국은 십계명을 어겼기 때문에 타락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면 자연적으로 사람의 관계도 원만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므로 십계명의 대표적인 개명은 안식일 계명 하나로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우리 조상 아담과 하와는 사단의 꼬임에 빠져 하나님과의 연결 고리를 끊었습니다. 그리하여 불행의 길을 걷고 있는 우리 인간이 원래의 행복을 되찾기 위해서는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
그 회복을 위해서 하나님이 마련하신 방법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므로 하나님과의 신뢰 관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뜻을 이해한 사람은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바뀌게 됩니다 그 은혜와 용서하시는 사랑에 감동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무엇이든지 순종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하도록 놔두지 않았는데 각종 일거리와 걱정 근심거리를 주고 곡해된 사상과 잘못된 생활 방법을 통해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게 만듭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섬기는 구체적인 방법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일주일 중 엿새 동안은 네 힘써 일을 할 것이나 제칠 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아무 일도 하지 말라,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당신의 교제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우리가 자원하여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생활을 하기를 원하는데 엿새 동안은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만물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지만 일주일 중 하루만은 하나님과 직접 만나는 날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나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간을 정확하게 구분하시는 분이십니다. 다른 어떤 경전도 시간을 중요시 하지 않습니다. 오직 성경만이 시간을 중요하게 취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 창조를 통하여 연대와 날짜를 정하시고 시간을 정확하게 구분하여 일곱째 날을 거룩하게 하시면서 우리에게는 기억하여 지키라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몸과 마음, 재물 심지어 시간까지도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최대의 축복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우리 인간에게는 최대의 즐거움이 되는 것입니다.
다만 강제가 아닌 자발적인 것이될 때 그것은 모든 기능 면에서 최대의 활성화가 되고 능률이 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많은 사람, 우수한 종교 지도자들이 말 한대로 따르지 말고 우리의 기본적인 양심으로 성경을 근거로 판단을 해야합니다
7일 째 되는 날은 언제인가 대부분의 기독교인은 일주일중 하나님의 날로 구분하는 날은 일요일을 “주일”이라고 하여 교회를 가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날로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면 왜 그날을 성경에서 수백번 언급하는 “안식일”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기록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주일” 이라는 말을 사용할까. (요한계시록 1장 10절에 있는 주의 날은 토요일임이 역사적으로 밝혀지고 있고 예수님도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여 주일은 안식일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날은 제 칠일 즉 토요일임이 분명한데 왜 오늘날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첫째 날인 일요일을 주일로 하여 거룩 한날로 지키는가. 거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깊은 사연이 숨어 있습니다.
성경과 역사를 비교하여 공부하면 놀라운 사연들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런 것은 알 필요가 없고 그런 것을 따지는 사람을 율법주의자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나는 성경을 공부하는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아 우리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돈독히 하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죄의 성향을 바로잡아 가는데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기독교 신앙의 초점은 하나님의 생각이냐 인간의 방법이냐이며 둘 중 하나의 선택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자기가 선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자로 열십자는 가로와 세로의 두 막대가 걸쳐 있는 십자가입니다. 십자는 열 개가 두개로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 그것이 십계명이고 그 관계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 가셨습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정신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거부하게 되면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원리 중심되는 내용을 이해하는데 실패하게 됩니다. .
빈 마음이란 진리를 찾는 마음을 말합니다 내 마음에 들고 안들고를 떠나서 또 주위환경이나 다른 사람의 의견에 따르지 않고 오직 성경에 어떻게 기록되었는가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진리를 찾는 빈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십계명이 무엇인가. 여기에 대해서 우리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
첫댓글 '진탐자'님 안식일 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주님의 토라 역시 폐지된 것이 없습니다. 바울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에도 '희생제물'을 드렸을 뿐만 아니라, 고린도서에서는 '유월절을 지키라'고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메시아 예수님을 토안 '은혜'를 이해 못하고, '은혜'받지 못한 사람 처럼 행동을 하고 권면을 할까요? 바울이 '희생제물'드릴 때, 예루살렘에 있던 '야고보와 장로들'이 그렇게 하라고 제안을 하는 모습 등을 볼때, 이것들은 폐지된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이 아직도 절기들을 지키는 것은 -그 토라의 주인되신 분의 음성(복음)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토라의 목적과 성취가 어디까지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토라를 맹목적으로 지키지, 조목조목 이해를 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지요..그것이 복음의 비밀인것입니다 어떤자들에게는 복음이 비밀이라고 한것도 토라의 '정의"이니까요
'박용진'님 그러니까, '바울과 야고보와 장로들'은 주님의 에클레시아를 돌봐야 하는데, 적당히 타협하면서 '돌봤다'는 것인가요? 제가 '성취'에 대하여 한번 글을 올렸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성경에 기록'이 있습니다. '복음의 비밀'은 공개되어 있습니다. '성경 안에' 있습니다.
강우성님 그렇습니다. 의미로써의 중요성이 폐지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날짜대로 1년단위로 지키는 것은 기념일로써의 중요성이지 생활로써의 중요성은 아닙니다. 유월절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달려 죄값을 치루어 우리의 구원을 이룩하신 의미로 대단히 중요 합니다. 그래서 안식일 날 우리는 창조주 뿐만 아니라 구속주로써의 예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함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신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진탐자'님, '안식일 교회'가 '안식일'을 강조하는 것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 것 같군요. '다른 주님의 절기'들도 기록이 되어 있는데 그런 것들은 '의미'로써 받아 들이고, '안식일'은 '의미'뿐만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안식일 교회'의 '안식일'준수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화잇의 말'에 순종하는 것은 아닐까요?
7일 주기로 이루어지는 것과 일년에 한번으로 행하는 것과의 차이점입니다. 생활과 기념은 차이가 있지 않습니까. 생명과 관계되는 것은 7일 주기로 이루어 집니다. 성경과 예언의 신 (화잇의 책) 자연의 법칙이 일치하는 것을 발견하고 기뻐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물론 일년에 한번씩오는 기념일도 중요하지만 7일 주기만큼 큰 영향을 주지는 않지요
'진탐자'님, '생활과 기념', '7일 주기와 1년에 한번' 이런 것들이 성경에 기록이 있나요? 비슷한 것도 없습니다.
일주일 제도가 성경에 없다는 이야기 입니까. 유대인들의 유월절은 1년에 하루 1월14일에 지키는 것이 아닌가요 유대인들이 일주일 중 일곱째날을 안식일로 지키고 유월절을 일년에 한번 지킨 기록이 성경에 없다니요. 그리고 일주일에 하루를 구분하여 다르게 보내는 것이 생활에 관련이 없나요, 기념일은 일년에 한번씩 지키는 것이 성경에 없다니요. 내가 억지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들립니까. 하여튼 많은 것 배웁니다.
'진탐자'님, 제가 질문을 잘못 드린 것 같군요. 저는 진탐자님께서 '7일 주기의 안식일'은 의미 뿐만이 아니라 생활에도 적용해야 하는 것이지만, '1년에 1번'있는 주님의 절기는 '의미'만이 중요하고 생활에 직접적으로 적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질문을 드린 것입니다. 7일 주기의 안식일과 1년에 1번씩있는 절기, 그리고 매달 있는 월삭등 모든 것이 다 중요하고 의미적인것 뿐만이 아니라, 생활적인 면에서도, 성경에 기록되 그대로 이고 전혀 폐지된 것이 없습니다. 제 견해가 잘못되었다면 근거 구절과 함께 코멘트를 부탁드립니다. 바울이 고전5:7~8에 유월절을 지키라고 에클레시아에 말하고 있습니
다. 바울이 어떻게 지키라고 말하고 있나요? 바울이 유월절이 폐지되었다고 생각을 하고 있나요? 바울이 예수님의 유월절 양으로써의 희생으로 이제는 '유월절'이 폐지된 것으로 이해를 하고 있나요? 토라는 폐지된 것이 없습니다. 변형된 것도 없습니다.
강우성님은 그렇게 믿으시면 됩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생활과 요법은 구분될 수 있다는 이야기 입니다. 밤과 낮의 구분이 생활에 일주일 중에 하루를 구분하는 것 보다 사실은 더 중요 합니다. 천체의 움직임이 우리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천체의 움직임 보다는 생명에 관련된 것이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생활 패턴으로 주어진 것이고 유월절이나 부활절 크리스마스 등은 기념일로써 의미가 크다는 것이고 폐지 되었다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던 식으로는 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지금도 성전에서 양을 잡아 제사 드리던일을 지금도 하고 있는지 모르는데 강우성님도 양을 실제로 잡는 의식을 하고 있습니까. 하고 있다면 저하고 이야기는 도저히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강우성님은 기독교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통하여 단번에 드려진 제사를 믿는다면 제 이야기에 반대하지 않을 것으로 압니다. 정체성과 정의와 개념이 통일되지 않는 대화는 처음부터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곳은 기독교인 다시 말하면 십자가를 통하여 죄인을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토론하는 곳입니다.
'진탐자'님, 희생제물은 정해진 곳에서 하도록 토라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곳은 '성전(예루살렘)'입니다. 성전은 70년에 무너졌습니다. 그래서 희생제물을 드리는 것은 현재로써는 불가능합니다.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 이후, 그리고 승천하신 이후에 '희생제물'을 드렸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희생제물'에 대한 토라를 폐지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증명합니다. 성경에서 바울이 어떻게 행동하고 있나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로 '희생제물'에 관한 토라가 폐지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성경에 없습니다.
병이 낳앗는데 약을 계속 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단 병이 왜 걸렸는지 그 원인을 제거하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망은 죄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죄를 해결하므로 우리의 생명이 회복 되었습니다. 강우성님이 유월절이 폐지 되지 않았다는 것을 그렇게 강조하는 이유가 폐지 되었다고 하면 중요한 핵심이 빠진 것이 된다고 생각 하셔서 그렇게 강하게 주장하는 것을 보니까 강우성님한테는 폐지 되었다는 말을 쓰지 않아야 될 것 같습니다. 폐지라는 말을 서로 다르게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강우성님 유월절의 의미가 십자가가 아닌 다른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 성경을 공부 하려면 글자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고 중심사상과 기록된 목적이 바르게 세워져야 합니다. 지구가 원래 하나님이 창조 된대로 회복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다른 방법으로는 안되니까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하여 해결 하신 것을 믿는 것이 기독교이고 성경의 중심 내용이라는 것이지요. 죄의 값은 십자가로 치루어 졌지만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 들이고 생활을 바꾸어야 하는데 바꾸는 방법중에 중요한 것이 안식일이라는 것입니다.
'진탐자'님, 바울이 병이 낳았는데, 필요도 없는 '희생제물'을 드렸을까요? 그리고 '유월절'을 지키라고 했을까요? 유월절을 지키는 것이 왜 중요한 핵심이 빠지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나요? '유월절'이건 '희생제물'이건 모든 토라는 '메시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메시아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죄의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유월절'을 지키고, '희생제물'을 드리는 것이, 메시아 예수님을 통한 죄사함을 부정하는 것인가요? 만약 부정하는 것이라면, 왜 바울은 그런 하나님의 은혜에 반대되는 행동을 했을까요? 정답은 부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메시아 예수님을 통한 은혜에 반대되는 어떠한 것도 성경에서는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누가 반대되는 것으로 가르쳤나요? 토라에 기록이 되어 있나요? 메시아 예수님께서 그렇게 가르치셨나요? 아니면 사도들이 그렇게 가르쳤나요? 아무도 그렇게 가르친 사람 없습니다. 있다면, 초대 교부라고 불리는 사람들 중에 있겠지요. 그리고 그러한 신학이 누적되어 오늘날에 이른 것이 아닐까요? 우리가 바울보다 예수님의 사도들보다 더 많은 '진리'를 가졌다고 생각하나요? '성경'과 다른 '진리'란 없습니다. 가짜입니다.
강우성님 제가 좋아하는 성경구절이 고전 5장 7절로 8절입니다. 유월절 양이신 예수님이 희생이 되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또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라는 성경절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중 하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3달에 한번 정도 안식일에 세족예식과 성만찬 예식을 합니다. 십자가의 의미의 중요성을 통하여 내가 구원받았음을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폐한 것이 아니라 굳게 굳게 세워야 합니다. 저의 생각과 바울의 생각 요한의 생각이 같은 것 아닙니까
'진탐자'님, 성경에서 말하는 유월절은 '세족식, 성만찬' 이런것이 아닙니다. '화잇'은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모세를 통안 율법'은 폐지되었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말한 '유월절'이란, 이스라엘에게 주신 주님의 절기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과 요한은 '안식일 교회'처럼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