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와도 축구를 했다. 아니 비가 오면 운동장 진흙탕에 미끄러지는 재미가 있어 일부러 비오는 날 점심시간에 운동장으로 나가서 체육복이 엉망이 될 때 까지 축구를 하곤 했다.
드디어 학교 축구팀을 만들어서 유니폼까지 맞추어 입었다.
학교 내에서 시합을 하다가 도저히 우리를 상대할 팀이 없었다.
그래서 다른 학교 아이들과 축구를 했다.
짜장면 내기였다.
우리 학교는 인문학교라서 형편없는 실력의 운동부 야구부가 있었고, 강릉농고 강릉상고 축구부는 전국적으로 유명했다.
농고 상고 아이들과의 시합은 질 것이 뻔했다.
그렇지만 너무 붙어보고 싶었다.
일요일 아침에 모여서 조기축구를 하면서 연습을 열심히 해서 드디어 강릉상고 아이들과 시합이 성사되었다.
막상 붙어보니 별거 아니었다.
강릉상고 축구의 명성은 선수들만이었다.
우리가 큰 점수 차이로 이겼다.
드디어 짜장면을 꽁짜로 먹게 되었다.
그러나 상대편 아이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우리는 반발하며 항의했고 드디어 운동장에서 싸움이 벌어졌다.
학교 수위가 말리는 바람에 우리들은 다음을 약속했다.
모산봉에서 만나기로.
모산봉에서 만나던 날 그날도 비가 내렸다.
우리는 확실히 수중전에는 강했다.
비가 올 때 축구를 너무 해서 그런 모양이었다.
상대편이 항복을 하고 짜장면을 얻어 먹었다.
상대편 아이들은 탕수육에 고량주까지 마시면서 취했다.
“야! 니들 한번 더 붙어”
“뭘로 붙어? 축구로?”
“아니, 한 번 더 싸우자”
다음 장소는 강릉중학교 운동장이었다.
그날은 추석 전 날이었다.
보름달이 두둥실 떠 있었다.
강릉중학교 운동장 옆의 미루나무에서 귀뚜라미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하얀 장갑을 끼고 ‘진짜사나이’를 부르며 운동장으로 갔다.
상대가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지나서 미루나무 뒤에서 한 놈이 다가왔다.
우리의 몸을 수색했다.
의아해 하면서 몸들 맡긴 순간, 미루나무 뒤에서 놈들이 뛰쳐 나왔다.
각자 무기를 들고 있었다.
삽과 곡괭이 그리고 장대 끝에 낫을 달고 덤벼들었다.
우리는 도망을 쳤다.
담을 넘어 지붕 위로 도망가기도 하고, 학교 교실에 숨기도 하고,
그날 우리는 부상자가 두 명이 나왔다. 한 아이는 팔이 낫에 찔렸고, 한 아이는 머리를 삽으로 맞아서 머리가 깨졌다.
우리끼리 모여서 병원 응급실로 가서, 머리와 팔을 꿰매고 도망을 쳤다. 돈이 없어서였다.
부모님을 부르지 못했다.
우리는 고스란히 패배를 인정했다.
그날 비가 오지 않아서인가.
지금이라면 패싸움은 커다란 범죄일 것이다. 경찰이 오고 병원에 실려가고 부모님들이 오고 치료비를 물어주고 학교에서 처벌을 받고.
아마 이런 절차들일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우리는 우리의 패배를 당연한 듯 받아 들였고, 조용하게 학교를 다녔다.
부모님들은 지금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 학교에도 전혀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다.
싸움에 진 것은 우리였고, 알려지는 것은 창피한 일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그때 같이 싸웠던 다른 학교 아이들과도 친구가 되었다.
서로 억한 심정은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싸움은 싸움이고 우정은 우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