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사람들은 집안에 혼례일이 정해지면 돼지부터 길렀다.
오일장에 가서 새끼돼지를 사 와 통시(변소)에 넣고는 음식물 찌꺼기와 쌀겨를 먹이로 주었다.
푸성귀나 고구마 줄기를 던져 줘도 잘 먹고 못 먹는 게 없었다.
통시에 가는 인기척이 나면 돼지는 잽싸게 달려와
똥을 낼름 받아 먹었다.
머리에 똥이 떨어지면 힘차게 흔들어대는 통에
늘 도망갈 준비를 해야했다.
잔칫날이 가까워지면 건장한 남정네들이 돼지를 통시에서 꺼내 올레길로 내몰았다.
죽으러 가는 그 와중에도 길섶에 긴 주둥이를 박고는 벌름거리며 먹이를 찾으려고 꿀꿀거렸다.
마지막 가는 길이라 사람들도 재촉하지 않고
뒤에서 천천히 걸어갔다.
바닷가에 닿으면 돼지 목에 밧줄을 묶고는 뾰족한
바위에 메달았다.
"꽥꽥..." 돼지 멱 따는 소리가 나더니 몇 분 후 조용해졌다.
보리짚으로 털을 대강 태우고 미리 갈아 둔 날카로운 칼로 그을림을 박박 긁어 내고는 바닷물에 끌고 와
해체 작업을 했다.
머리통과 앞다리, 뒷다리를 자르고 순대 만들 피를
받아놓고 내장은 깨끗이 씻어 둔다.
일 년에 서너 번도 고기맛을 못 보던 시절이라
친척네 잔칫날에는 매서운 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쳐도 할머니 치마자락을 붙잡고 따라갔다.
팥이 섞인 고봉 쌀밥에 고소한 검은 도세기 괴기
석 점과 순대 한 점의 맛은 천하진미였다.
보리와 고구마 수확을 제외하고 목돈을 만들기에는 도세기 키워 파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
집집마다 통시에서 키운 도세기는 비싼 값에 팔려
나갔고 집안 살림에 큰 보탬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흑돼지는 자취를 감췄다.
새마을운동으로 개량변소가 만들어지고
하얀 양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료공장이 생기고 거대한 양돈장들이 들어찼다.
이제는 민속촌에나 가야 흑돼지를 볼 수 있게 됐다.
제삿날에는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정육점을 찾아
먼 길을 걸었건만 이제는 근처의 마트에서
부위별로 나눠진 고기를 쉽게 사 먹을 수 있다.
비게가 많이 섞인 허여멀건한 고기맛은 별로지만
별수없이 갈비를 사다가 양념장에 재워 두었다.
장마철에 물이 고이면 보리짚도 깔아주고
발자욱 소리가 나면 먹이 주러 오는 줄 알고
반가워 꿀꿀 소리를 내던 흑돼지는
유년의 기억 속 한 장면이 되고 말았다.
첫댓글 어린시절 시골 풍경이 생생하게 기억나게 해 주셨네요 .
저도 궁금해져요
까만 흑 돼지들은 다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혹시 우리가 흑돼지 씨를 말리도록 다 잡아 잡쉈나?
소는 한 마리의 새끼를 낳지만
돼지는 8~12마리까지 새끼를 낳는다네요.
게다가 인공수정도 되고
번식력도 좋으니
빠른 시간에 많은 양의 돼지를
생산하고 팔 수도 있어 양돈업자들에겐
좋은 일이죠.
옛날 흑돼지 키우던 때는 발정기가 아니면
번식시키는 것도 힘들었을테고
빠른 시간에 200키로 이상 키우기도 무리였으니
양돈만 증가할 수밖에 없겠지요.
양돈업자가 아니라서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발정기에 담을 넘어 도망간 돼지를 찾아나서는
일도 잦았습니다. ㅋ~
제주에서 흙돼지 기르던 옛날이야기가 새롭네요 흙돼지 사라지고 허여멀건한 돼지가 처음에는 이상해 보였고 맛도 없다고들 했었는데 흙돼지에 비해 빨리크고 번식역도 좋다해서 그렇게 바뀐것 이라는데
지금 까만돼지 새끼를 본다면 무지 귀여울것 같으네요 ㅋ~
돼지는 3살 정도의 지능이 있다네요.ㅎ~
옛날에는 돈 나올 데가 없으니
집집마다 길렀지요.
돼지 판 돈으로 월사금도 내고.
쌀쌀한 날씨에 건강 조심하세요.
추억의 제주 생활 공유에서
역사가 된 생활을 읽어봅니다.
참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김옥춘 올림
척박한 제주섬에서 살아가는 건
원시 시대의 삶과 다름 없었지요.
허나 환경은 깨끗했답니다.
도살장이 없던 시절은 개인적으로 닭이나 소돼지등 가축을 잡앗지여
돼지를 묶어놓고 산채로 목을 따면 피를 빼내어 맛이 좋다는 풍습 때문이라고 생각듭니다
국민핵교시절 돼지 목따는 소리를 처음 들었는데
인간이 정말 끔찍하더군요
그렇치요.
인간이 얼마나 잔인한지?
'오뉴월에 개 패듯이' 말도 있지요.
개를 나무에 매달아 몽둥이로 때려 죽입니다.
그러면 고기 맛이 더 연하고 좋다고.
설마, 자기가 키우던 개도 그랬을까요?
제주에 여행 갔을 적에 흑돼지 구경을 못했네요
글을 읽으면서 아쉬운 마음이 많이 듭니다
추억속의 글을 담고 갑니다^^
민속촌에 가야 흑돼지를 볼 수 있답니다.
돼지는 이로운 동물이죠.
음식물 찌꺼기 처리하고
퇴비 만들어 주고
고기를 남기고
돼지 머리는
개업식 고사에, 마을제, 기우제 상에
반드시 올라가지요.
어릴 땐 돼지저금통에 동전도 넣었어요.ㅎ~
차가운 날씨에 건강 조심하세요.
"머리에 똥이 떨어지면 힘차게 흔들어 대는 통에 늘 도망갈 준비를 해야~"
60 여 년 전 실제 겪어 보았습니다. ㅎ
생생한 옛 추억을 소환해 주시는 아우라님~
날씨 조금씩 겨울 다워 집니다. 건강 유의 하세요.
지붕도 없이
긴 돌다리 두 개를 달랑 세워놓은 허술한
통시였죠.
돼지가 "좋아라" 꿀꿀
달려 나오는 게 다 보입니다.
아래를 내려다 보며
상황판단을 잘해서 잽싸게 피신해야 합니다.ㅋ~
물 다르고 음식 다른 고장에 오면 배가 아프게 마련이지요
설사를 하게 됩니다. 오물을 뒤집어 쓴 돼지는 머리를 푸르르 떨게 되고
이 오물이 엉덩이에 뛸까봐 궁둥이를 들었다 놨다 합니다.ㅎㅎ
이 경우는 뒷 마당 노천이고 창고 같은 치칸에는 막대기가 옆에 놓어 있어
돼지를 쫓아 내면서 얼릉 용변 보고 도망쳐 나옵니다. 실제 겪은 야그~ㅎㅎ
돼지가 나그네를 더 잘 알아 봅니다그려.ㅎ~
우리는 달밤에 나와
마당 한 켠 작은 텃밭에 앉아 소변은 봤지요.
호박 갯수 세어 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