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2번부터는 읽으면서 계속 속에서 꿈틀꿈틀하더군요..^^
한동의 비전이 어떻고 한동인의 믿음이 어떻고..
이것은 제3자 개인이 판단할 문제가 아닙니다.
북한을 위해서 우리가 뭘 할수 있었나요? 실업자들을 위해서, 삼풍 무너졌을때, 성수대교가 끊어졌을때 그럼 바로 달려가서 구원사업을 했어야 타당했습니까? 사람들은 사람들 나름대로의 개인에게 주어진 일이 있습니다. 저는 크리스챤으로서 언젠가 부름받을 그날을 기다리며 제 분야에서 실력을 쌓아가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는 나름대로의 능력이 있는 것이기에 각자의 분야가 다를 수 있는 것이구요
가끔 '내가 저 일을 해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할때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유성에(맞는지 모르겠군요..오래된 기억이라..)있는 창조과학연구회에 갔을때 그생각이 들었고 그 이후로도 이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 적은 많았지만 이제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일이 힘들고 확실하게 하나님의 일을 하는것이지만 이게 나의 길인가.
생각해 보십시다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모든일이 나의 일은 아닙니다.
한동대는 대학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는 대학이기에 대학이
가지는 방법으로 뜻을 행해야 한다고 봅니다.
대학이 가지는 방법이 무엇이겠습니까
성수대교와 삼풍이 무너지던때, 실직자가 난무할때 한동에 기쁨의 찬양이 있었다구요? 어찌 그렇겠습니까..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보십쇼
한동에는 서울에 사는 학생이 30퍼센트 이상 됩니다. 한동인들의 가족과 친지들에게 축복이 함께하여 재난이 요리조리 피해가는것도 아닌데 재난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을 수 없겠지요. 이것은 접어두더라도 한동인도 인간인데 차마 기쁨의 찬양을 할 수 있겠습니까
몇몇 정신없이 홀리한 사람들을 한동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제 제가 아주 싫어하는 어떤 사람때문에 그런 성급하게 일반화시킨 비판은 진절머리가 납니다
그리고 세상과 괴리된 신선함에 대해서 말씀드리죠
한동을 싸잡아 욕하며 횡수에 글쓰는 몇몇 사람들이 지적하는 것과도 일치하는군요. 무식한 한동인이라는..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횡수란에 회자되는 것들은 사실 정말 유치한 내용들이지요
밑에서 말씀하시들 소위 정치적인 문제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기 짝이없고 교회의 문제들에 대해서도 무관심하다..등등..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저는 제정신이냐고 묻고 싶습니다.
일단 이과 사람들을 봅시다.
타 대학 학생들도 일단 이공계열 학생들은 정치적인 문제등에 대해 민감하지 못합니다. 학생수가 워낙 많다보니 관심있는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만 그 전체의 학생수를 생각해보시지요. 그들이 과연 얼마나 되는 비율입니까?
문과학생들은 어떤가요
법학부, 언론정보문화학부, 국제어문학부정도가 있겠군요
밥학부는 일단 사법시험 준비에 돌입하게되면 세상과의 벽을 쌓아야 합니다. 법대생들에게 시사에 대해 무식하고 말하는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렇게 질문한다면 그들은 이렇게 답하겠지요.'그건 사시에 안나와'
이들을 비판할겁니까? 이것은 한동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국 대학의 사법시험은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모두 동일하게 적용되는 문제일 것입니다.
언론정보문화학부
어쩌면 눈치채고 계실지도 모르겠지만 언정사람들은 횡수에 별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왜일것 같습니까?
횡수라는 곳이 건전한 토론의 장으로 터무니없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아는 고학번 언정선배의 말을 빌리면 넓게 얕게 지식을 쌓은 물흐리는 몇몇 사람들때문에 너무나도 짜증이 난다 하더군요
그들이 몰라서 횡수에 참여를 안하겠습니까? 기독교문화를 공부하고 시사를 연구하는 언정사람들이? 정 의심나면 가서 물어보십쇼
'우리 학교 사람들은 너무 시사에 대해 무지한것같다.. 당신은 이문제 어떻게 생각하느냐?'
국제어문도 횡수에 생각보다 활동이 없습니다. 정치학을 배우는 그들이 한국의 정치문제에 대해 몰라서 그러는 것입니까? 솔직히 그 얄팍한 싸움짓거리는 한겨례21만 읽어봐도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횡수의 수준으로 볼때 정치적인 문제에 대한 건이 회자된다면 그것은 신문이나 월간지 수준의 것이 될것입니다. 틀림없이! 그렇다면 정치학을 전공한 입장에서 참 같잖아 보이겠지요. 저같으면 그냥 무시합니다.
시사적인 문제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에대해 자신 나름대로 생각을 쌓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 쌓은것을 드러내는 사람들..
쌓은것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단지 쌓아가고만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을 드러내기를 강요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이공계가 많은 한동에서, 같잖은 횡수의 분위기속에서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고, 교계의 문제에 대해 심각한 토론이 이루어지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쪽에 학생들이 무지한 것은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것은 아니지요
그외 비판해주셨던 무비판적인 한동인에 대한 것은 수긍할 가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도 역시 한동인 '전체'로 보지 않으셨으면 하군요
적어도 대학생이라는것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성급한 비판은 화를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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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아래 김재수 선배님이 쓴 글이 다 맞다고 생각하면 그건 오해다.
1번은 나도 동감한다. 하지만 2번부터는 한동대의 홀리파(들어오면 알게된다)들을 한동 구성원 전체로 이해한 면이 보인다.
한동대에 대해 자부심을 많이 축적해 가지고 왔으면 한다. 지금부터 괜히 비판만 잔뜩 들어서 지치지 말고...
그리고 학교 입학해서는 제발 '난 수능에서 평소보다 너무 못봐서 여기왔다느니. 뭐 서울의 유명한 대학 붙었는데 하나님때문에 여기왔다느니' 그딴 소리 하지 말자. 짜증이 난다. 그런 소리 하려면 제발 좀 딴데 가라. 왜 여기와서 안 좋은 모습들 보고 그걸 고쳐나갈 생각하지 않고 자기한탄만 하고.. 그런 인간들이 한동 곳곳에 잠재해 있다.
그리고 한동인들을 바로 보는 법 하나
'한동대를 비판하는 거와 욕 하는 거의 차이를 분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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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일로 보낼까도 했지만
역시 한동안에 있는 더러움들을 02학번 후배님들이 모두가 알권리가 있다고 생각해서 올립니다.
이 글을 밑에 설명처럼 95학번 선배이자 제2회 총학생회장을 하셨던 김재수 선배님께서 총장님의 구속 당시 쓴 글입니다.
읽어보시고 한동에 모습을 정확히 봐주셨으면 합니다.
"내 사랑 한동" 이라는 글이 인터넷에 올라와있었는데 사라졌군요. 아쉽습니다... 여러분에게 꼭 읽어보게 하고 싶은건데...
1년에 고민끝에 전 아직도 한동에 소망을 가집니다.
<복음과 상황>, <새벽이슬>, <뉴스앤조이> 같은 잡지들은 한동대의 기독교 대학으로써의 정체성, 지역사회와의 갈등 등 크고 작은 문제들을 오래 전부터 다루려고 했지만, 좀처럼 한동대에 대한 기사를 적지 못했다. 그 동안 한동대는 비판적 글쓰기의 성역이었기 때문이다. 한동대에 대한 한국교계의 큰 기대가 부담스럽기도 했고, 신설 대학에 흠 잡는 것도 조심스러웠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 한동대의 김영길 총장과 오성연 부총장의 구속과 구명운동이 기독교계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화제가 되면서, 한동대는 위 저널들의 지면에 활자화되기 시작하고 있다.
지난 6월호 <복음과상황>에서는 한동대 재학생이 최근 사태의 과정을 소개하고, 사람들이 한동대에 가지고 있는 오해에 대한 변론을 펼쳤다. <새벽이슬>은 한동대와 한정추(한동대정상화추진위원회) 사이의 갈등의 역사와 상반된 주장을 요약해서 소개하였다.
그리고 <뉴스앤조이>는 최근 사태가 낳고 있는 기독교대 비기독교적 대립 상황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고 있고, 한동대의 온누리 교회식 영성과 기독교 대학으로서의 정체성을 비판하고 있다. 반면 <빛과소금>은 한동대학교와 김영길 총장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논조의 기사를 소개하고 있다. 각 저널들이 이번 사태를 두고 다양한 접근 방식과 견해를 내어놓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이 글은 조금 다른 시각에서 한동대 문제를 바라보려고 한다. 필자는 한동대를 1회 졸업하였고, 재학시절 총학생회장을 한 바 있다. 그래서 보다 피부에 와 닿는 이야기들을 끄집어 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최근 복상에서 연재되고 있는 SF 논의는 한동대를 바라보는데 무엇보다 시기적절한 시각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허구다.
오랜만에 한동대를 방문하였다. 마침 도착하는 날 한동대 사태를 다루고 있는 <새벽이슬>과 <뉴스앤조이> 그리고 학보가 캠퍼스에 배포되고 있었다. 그런데 대학 측은 직원들을 통해 위의 저널과 학보를 수거하고 있었다. 이번 한동대 사태를 비판적인 논지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대신해 대량의 <빛과소금>이 배포되었다. 어떻게 대학사회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학교에 대하여 비판적인 대자보와 문서들이 강제 철거 또는 수거되던 것은 재학 시절부터 익숙히 겪었던 일이었다. 이번에도 한동대는 좀처럼 비판받을 수 없는 성역이었다. 그럴수록 한동대는 허구로 회칠하기 시작했다.
허구 1. 하나님의 대학
한동대는 스스로 하나님의 대학이라 부르고 있다. 대학의 소유와 경영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는 신앙 고백이다. 한동대의 각종 회의에서는 하나님의 방법을 고민하고 의논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법'이라는 수사법은 오히려 세상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하나님 운운하면서 비민주성과 불투명성을 정당화할 수 있는 허구의 수사법이다.
한동대는 학교 측의 의견에 수시로 반대한다고 해서 학부장 회의를 해산할 수 있는 곳이다. 심지어는 보직교수와 학부장들을 강제 사퇴시키는 곳이다. 심지어 학교의 비전을 밤새 바꾸기도 한다. 학교의 비전이 바뀐 것을 외부 홍보지를 통해서 알기도 했다. 글을 쓰고 있는 오늘 아침도 구명운동 시위를 위해 일제히 수업을 휴강하겠다고 공고를 냈다. 이렇게 비민주주의적이고 독단적인 의사결정이 한동대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이라는 허구 때문이다. 총장은 회의석상에서 공공연하게 민주주의는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라고 말한다.
한동대 교회는 모세가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따랐으면 홍해를 못 건넜다고 설교하여 총장을 지지한다. 학교에 비판적인 글과 말들이 등장하기만 하면, 한동대 목사들은 리더십에 대한 순종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설교한다.
한동대의 '하나님의 방법'은 불투명이라는 허구이기도 하다. <새벽이슬>은 이번 사태를 취재하기 위해 한동대와 한정추에게 보도 자료를 요청했다. 한정추가 적극적으로 자료를 제공하고 협조한 반면에, 한동대 측은 내용을 모두 소개하는 것이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로 보도 자료를 제공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방법은 감히 범부들이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일까? 그래서 한동대는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이미 한동대 학생들에게는 익숙한 일들이다. 대학 측과 간담회라도 하면, ‘학생들은 공부나 열심히 하면 된다’ ‘자세한 내용을 밝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는 학교측의 일방적인 설명을 4년 동안 들으며 학교를 다녔다.
허구 2. 세상을 변화시켜라
한동대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말은 “세상을 변화시켜라”이다. 그것은 잘 알려진 한동대의 비전이다. 필자 또한 “성공을 원하거든 서울대로 가고, 노벨상을 받으려거든 포항공대로 가고, 세상을 변화시키려거든 한동대로 오라”는 말에 반하여 한동대를 입학하였다. 그러나 학교의 비전 선언문은 학문과 기술을 잘 배우고, 좋은 믿음 갖고, 남보다 조금 정직하고 도덕적인 사람을 키우는 것을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의미 정도로 담고 있다. 리더십과 학생들의 인식 수준은 직장에서 유능하고, 교회에서 신앙생활 잘 하면 세상을 변화시키는 크리스챤이 되는 것이다.
2001년 한동대의 총학생회는 하나님의 대학도 모자랐는지 ‘하나님의 총학’이라는 모토를 걸고 있는데, 선거에서 들고 나온 공약이 ‘주일성수’, ‘말씀묵상’ 같은 것들이었다. 그것은 한동대의 정치・사회・문화적 역량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성경 열심히 읽고, 교회 잘 나가면 하나님의 인재라고 생각하는 정도의 수준이라 할 수 있다. 한동대 총학은 교회의 대학부 정도의 활동을 한다. 기도회를 주최하고, ‘총장님・부총장님 사랑해요’라는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한다.
학생들은 대자보를 스스로 거부하고, 비판에 대해서는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한동에 대한 비판일 때는 화내고 상처받는다. 그리고 영적전쟁을 선포하고 대적기도를 시작한다. 불의한 현실과 상황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하나님의 공의가 세상을 가득하게 해달라고 찬양하고 울부짖고 기도한다. 이것은 각종 잡지에서 신실한 믿음으로 소개되나, 믿음이 아닌 허구이다.
한동대 사람들은 종교적으로는 우등생일지 모르지만, 정치 사회적으로는 보수적 소시민이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고 성수대교가 무너지는 날에도 한동대는 기쁨의 찬양을 드리던 곳이었다. 국가가 IMF의 위기에 빠지고 실업자와 노숙자가 늘어나는 상황에서도 한동대의 설교는 상처와 위로의 하나님이었다. 북한 동포의 배고픔과 기아의 소식을 듣던 날에도, 한동이 간절하게 하나님을 부르며 하던 기도는 한동대의 재정 문제와 리더십의 건강을 위한 것이었다. 문화가 타락하고 사람들의 영혼은 죽어 가는 상황에서도, 한동대는 CCM을 부르고 그에 맞춰 춤을 부며 새로운 대학문화를 창조했다고 자축하는 곳이다.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한동대의 비전은 허구이다.
허구 3. 김영길 총장의 구명운동
경주교도소 앞에서 1800여명의 학생과 학부모들이 스승의 날 행사를 가진 것은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학내 비리가 터지면 으레 총장실 점거와 총장 퇴진의 구호가 캠퍼스를 뒤덮는 대학 현실과 스승의 권위가 추락하는 교육 현실에서 이 사건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사실 한동대는 이러한 신선함으로 넘쳐나는 곳이다. 그러나 문제는 세상과 괴리된 신선함이라는 점에 있다. 한국 사회가 각종 정치・사회 문제로 들끓을 때, 한동대 학생들은 게시판에 정치적 냉소조차 담아내지 못했다.
작년부터 한국 교회를 들끓게 하는 교회세습의 문제에 대해서도 대다수는 모르거나 무관심하다. 그렇지만 김영길 총장의 구속에 대해서는 모두가 분노하며, 공의가 없고 타락한 세상을 비판하고 나서는 것을 신선하다고만 볼 수 있을까?
그리고 이번 구명운동을 위해 만들어진 여러 인터넷 사이트의 글들과 비디오 자료를 살피면,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김영길 총장이 무너지면 하나님이 무너진다고 기도하는 목사, 김영길 총장은 이 시대의 모세라든지, 요셉이라든지 하는 학생들의 글들이 펼쳐진다. 이러한 상황을 우려한 어느 목사는 김영길 총장을 우상화하는 것은 문제가 있고,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안 된다는 글을 썼다. 그러나 학생들은 그 목사에게 위선자라며 비난하는 글들을 쏟아냈다.
한동대 학생들은 조금이라도 비판적 논지를 담는 기사를 보도하는 매체에 대해서 융단 폭격을 가하고 있다. 그 논리를 뜯어보면 하나같이 한동대는 하나님의 대학이고, 모든 상황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인데, 비판적 논지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신앙적 독선과 기독교 이기주의라는 허구이다.
다른 한 편으로는 이번 구명운동이 기독교 대 비기독교의 대결로 변질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뉴스앤조이>가 보도하고 있는 것처럼, <국민일보>는 김영길 총장의 구속을 단군상을 철거한 목사에 대한 구속 사건과 더불어 ‘우리 사회에 반기독교적인 정서가 번지고 있다’고 논조를 잡고 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총무 박영률 목사 또한 ‘기독교를 약화시키려는 전략’ 운운하며 기독교 대 비기독교의 대결 논지를 띄고 있다. 한동대의 총학생회을 주축으로 한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러한 상황에 우려를 표시한다고 인터뷰하였다.
그러나 6월 3일 한동대 학생들은 포항시 교회 연합과 더불어 단군상 철거 대문에 구속된 목사들의 구명운동에 나섰다. 김영길 총장 구명운동에 있어 교회연합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이 시위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대회장에서는 기독교인들이 고난 속에서 하나가 되었다고 선포되었다. 기독교 패권과 이기주의가 맞아 떨어지는 장면이었다.
한동대와 한정추의 대결의 측면에서 볼 때, 한동대는 지금까지 대화 및 화해의 시도를 전혀 하지 않았다. 그래서 감정의 골은 깊어만 갔고,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현재도 한동신문에 화해해야 한다는 짦은 글이 삽입되었다는 이유로 신문의 배포를 금지해 버린 대학 측의 모습을 볼 때, 과연 하나님의 방법은 무엇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조금의 잘못도 인정하지 않고 화해를 위해 애쓰지 않고, 계속해서 한동대는 완전무결할 정도로 옳다고만 주장하면서 펼쳐지는 김영길 총장의 구명운동은 허구이다. 하나님의 사랑도 공의도 없는 집단적 이기주의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미 99년에 <내 사랑 한동>이라는 A4 70장의 분량에 달하는 문건을 통해 제발 반성도 할 줄 알고, 비판이 오고갈 수 있는 기본적인 상식이 통하는 대학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수 차례 대학측과 대화를 하였지만, 그 문건의 내용이 모두 틀렸다는 것이 대학 측의 답변이었다. 혹 글의 내용에 오류가 있었다고 해도, 한동대의 비민주성과 신비주의적・경건주의적인 영성에 대한 비판을 조금도 인정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대학이라는 허구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하나님의 대학은 완벽해야 하는데, 학생들의 비판처럼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하나님의 대학이 아닐 수 있다는 두려움이 만들어낸 전형적인 허구이다.
한동대가 보여주는 허구는 사실 달리 특별할 것도 없다. 이미 한국교회를 판치고 있는 SF의 별종이다. 어쩌면 가장 강력한 형태의 변이일 수도 있다. 우리는 입시 때마다 한동대를 들어오기 위해 새벽기도를 1년 했다는 사람,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었다는 사람, 기도 응답으로 합격했다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은 한국교회의 제도권 속에서 오랫동안 교육받고 자라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 중에도 머나먼 지방으로 올 정도로 열정을 가진 한국교회의 대표 주자라 해도 될 만한 학생들이다. 그들은 순복음의 이원론과 기복신앙, 온누리식 개인주의와 경건주의, 빈야드의 신비주의, 교회세습의 비민주주의와 독선, 그리고 역사적 보수성이라는 한국교회의 SF를 누구보다 가장 많이 지니고 한동대에 모여 있다. 한동대를 보면 한국교회에 있는 모든 SF를 확인할 수 있다.
내 사랑 한동, 정직한 절망이라는 희망을
그리고 조국교회의 비판적 지지를
필자 또한 한동대의 구성원으로써 비판적인 글을 써서 발표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리고 한동대를 사랑하고, 누구보다 김영길 총장님을 잘 알고 사랑하며, 반면 한동의 허구에 대해서 책임을 가진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정직하게 절망할 때이다. 정직하게 절망하는 것이 희망의 시작이다. 한동대는 허구로 가득한 모습을 인정하고, 이 사건을 계기로 대학의 행정과 운영 그리고 연구와 교육에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해묵은 정체성 논의도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한정추와 대화를 통해 화해를 모색하는 참다운 기독교적 정신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 글을 읽는 한국의 교회와 크리스챤들께 참 부끄러운 한동대의 허구를 고백했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모든 허구를 담은 곳이 한동대라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정직한 절망을 통해 한국교회의 희망을 낳을 수 있는 공간이라 말하고 싶다. 그래서 감히 이번 한동대 사태에 대하여 비판적 지지를 보내주시길 부탁드린다.
*편집자 주: 김재수형제는 한동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경제대학원에 재학중이며 현재는 군인으로서 국방의 의무를 감당하고 있다. 한동대 재학 시절 2대 총학생회장으로 섬겼으며 '내사랑 한동'이라는 한동대에 대한 권면의 글을 다른 3명과 공동 저작하기도 하였다. 현재 새벽이슬에 '김재수의 사람을 위한 경제학'을 연재하고 있다. 자칭 지상에서 가장 슬픈 땅에서 민족과 세계를 위해 중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