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함께 브랜드로 본 세계
“한국 호구냐”“스벅보다 낫다” 캐나다 국민커피 마셔보니
지난해 12월 서울 강남구 신논현역 3번 출구 앞엔 개점을 기다리며 빗속에서 수백 명이 줄을 서는 진풍경이 펼쳐졌죠. 전날부터 23시간 기다린 사람도 있었는데, ‘오픈런’의 대상은 놀랍게도 커피였어요. 캐나다의 커피 브랜드 팀홀튼(Tim Hortons)이 한국에 낸 첫 매장이었죠.
캐나다 커피 브랜드 ‘팀홀튼’의 한국 1호점인 서울 강남구 신논현역점이 지난해 12월 14일 처음 문을 열었을 당시의 모습.
수백 명이 빗속에서 우산을 쓴 채 개점을 기다렸다. 뉴스1
팀홀튼은 60년 전 캐나다의 국민 영웅이 세운 커피 체인점이에요. 캐나다에선 시장 점유율, 매장 수 모두 세계 최대 커피 체인 스타벅스를 압도합니다. 이런 팀홀튼이 스타벅스가 점령한 ‘커피 왕국’ 한국에 도전장을 낸 거죠.
오늘은 캐나다인이 사랑하는 팀홀튼에 대해 이야기하려 해요. 한국 상륙 3개월째인 팀홀튼 신논현역점을 찾아가 교민과 외국인에게 현지와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물어보고, 가장 인기 있다는 커피도 마셔봤습니다.
커피와 관련된 역사, 세계 각국의 다채로운 커피 문화도 소개합니다. 더불어 오는 7월 청담동에 1호점을 여는 ‘커피계의 에르메스’ 싱가포르 바샤커피도 미리 맛봤습니다. 갓 내린 커피처럼 깊고 풍부한 이야기 속으로 빠져보시죠.
📃 목차
◦캐나다 울린 국민영웅 커피, 14조에 팔리다
◦단풍나무 아래서 ‘캐나다 국민 커피’ 마셔보니
◦브라질에서 이 커피 거절하면 실례!
◦韓에 몰려온 해외 커피...승자는 어디?
📌[500자 더] 산업혁명도, 독립혁명도 커피로 가능했다?!
📌[500자 더] 미리 마셔 본 ‘커피계의 에르메스’, 그 맛은?
캐나다 울린 국민 영웅 커피, 14조에 팔리다
팀홀튼은 캐나다의 전설적인 아이스하키 선수 팀 홀튼이 1964년 창업한 커피 전문점이에요.
홀튼은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토론토 메이플리프스 등에서 수비수로 활약하며
스탠리컵을 네 번이나 수상한 ‘국민 영웅’이었죠.
그런데, 당시 NHL 선수들은 요즘처럼 많은 연봉을 받지 못했다고 해요.
네 딸의 아버지였던 홀튼은 생계를 위해 온타리오주 해밀턴에 팀홀튼 1호점을 열었어요. 홀튼은 자신의 카페를 ‘누구나 언제든지 내 집처럼 편안히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었죠. 그의 바람처럼 부담 없는 가격에 커피와 도넛을 판 팀홀튼은 엄청난 인기를 끌었어요.
커피 브랜드 팀홀튼을 만든 캐나다의 전설적인 아이스하키 선수 팀 홀튼. 사진 캐나다백과사전 사이트 캡처
홀튼은 카페를 프랜차이즈로 키우기로 마음먹고 전직 경찰관인 론 조이스와 동업했어요. 아이스하키 스타와 전직 경찰의 만남도 캐나다인의 마음을 사로잡았어요. 아이스하키는 캐나다의 국기(國技)죠. 북미 경찰관들은 잠복근무 중 도넛을 즐겨 먹는다고 해요. 이러한 브랜드 이미지까지 더해져 팀홀튼은 창업 10년 만에 매장이 30개로 늘어났어요.
안타깝게도 홀튼은 1974년 2월 21일 44세의 나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어요. 요절한 국민 영웅을 기리는 캐나다 국민들은 팀홀튼을 그의 ‘유산’이라고 생각하게 됐죠. 지난달이 그의 사망 50주기였네요.
팀 홀튼이 1964년 온타리오주 해밀턴에 연 팀홀튼 최초의 매장(위 사진). 이 매장은 지금도 그 자리에 남아 있으며
2014년 리모델링됐다(아래 사진). 사진 캐나다백과사전 사이트, 페이스북 캡처
그가 세상을 떠난 뒤 동업자였던 조이스는 홀튼의 가족으로부터 100만 캐나다달러(약 9억8000만원)에 경영권을 인수하고 사업을 공격적으로 확장했어요. 실화를 바탕으로 한 팀홀튼의 TV 광고도 큰 인기를 얻었죠. 팀홀튼을 함께 마시는 아버지와 아들, 캐나다 땅에 도착한 아내에게 팀홀튼을 건네는 이민자의 이야기 등으로 캐나다인들은 팀홀튼 하면 ‘따뜻한 정’을 떠올리게 됐어요.
현재 팀홀튼 본사는 토론토에 있습니다. 미국·중국·인도 등 15개국에 진출했죠. 그런데 사실 현재의 팀홀튼은 캐나다 회사가 아니에요. 버거킹을 보유한 브라질 사모펀드 3G캐피털이 2014년 팀홀튼을 110억 달러(약 14조6700억원)에 인수했거든요.
팀홀튼의 커피와 도넛. 사진 팀홀튼 사이트 캡처
그럼에도 팀홀튼에 대한 캐나다인의 충성도는 여전합니다. 캐나다인의 80%가 최소 한 달에 한 번 이상 팀홀튼을 찾는다고 해요. 월드커피포털에 따르면 캐나다 내 시장 점유율이 54%로 스타벅스(21%)를 압도하고 있죠. 매장 수 역시 3500개로 스타벅스(1465개)보다 두 배 이상 많고요.
참, 팀홀튼의 대표 커피는 크림과 설탕을 넣은 ‘더블더블’인데요. 한국 교민들에겐 한국에서 즐기던 믹스커피를 떠올리게 한다고 합니다.
정근영 디자이너
단풍나무 아래서 ‘캐나다 국민 커피’ 마셔보니
지난달 29일 찾은 팀홀튼 신논현역점은 캐나다 분위기가 물씬 났어요. 입구 좌우로 캐나다를 상징하는 커다란 단풍나무 조형물이 세워져 있었죠. 팀홀튼의 테이크아웃 컵은 캐나다 국기를 연상시키는 붉은색인데요. 이 컵을 본떠 만든 대형 모형도 눈길을 끌었죠.
지난달 29일 찾은 팀홀튼 신논현역점 입구엔 테이크아웃 컵을 본떠 만든 대형 컵 모형이 있다.
이 옆에서 실제 테이크아웃 컵을 들고 사진을 찍어봤다. 임선영 기자
335㎡(101평) 규모인 실내에 들어서자 천장엔 단풍 모양의 장식품이 매달려 있었죠. 개점 첫 달처럼 매장 밖에 대기줄이 있는 정돈 아니었지만 빈자리가 거의 보이지 않더군요.
매장에선 캐나다 현지에서 먹던 팀홀튼이 그리워서 방문한 교민, 외국인 등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밴쿠버에서 20년째 거주 중인 이도경(84) 할머니는 “캐나다인에게 팀홀튼은 집 같은 존재”라고 설명하더군요. 편안하고 조용한 분위기에서 가성비 커피와 도넛을 즐길 수 있어서죠. 이 할머니도 캐나다에서 ‘사랑방’처럼 수시로 가는 곳이라 한국을 찾은 김에 친구와 함께 온 것이었어요.
캐나다와 가까운 미국 미시간주에 사는 케빈 길보(43)는 “팀홀튼은 캐나다에 갈 때마다 가는 곳인데, 한국에 여행을 왔다가 개점 소식을 듣고 왔다”고 했어요.
지난달 29일 찾은 팀홀튼 신논현역점은 점심 시간이 되자 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북적였다. 임선영 기자
캐나다 팀홀튼과 비교하면 맛은 거의 같지만, 팀홀튼 고유의 포근한 분위기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반응이 나왔어요. ‘한국형 팀홀튼’은 규모가 크고 테이블도 많아 여느 프랜차이즈 카페처럼 시끌벅적하다는 것이었죠. 또 현지와 달리 키오스크로만 주문을 받는 것도 낯설다는 평이었습니다.
앞서 팀홀튼은 캐나다에서 ‘가성비 카페’라고 설명드렸죠. 팀홀튼의 한국 진출을 두고 가장 말이 많은 게 현지보다 많게는 두 배가 넘는 가격이에요. 캐나다에선 2.49캐나다달러(약 2450원)인 아메리카노가 국내에선 4000원, 1.83캐나다달러(약 1800원)인 블랙커피가 국내에선 3900원이죠. 2.99캐나다달러(약 2900원)인 미니 도넛(팀빗) 10개는 한국에선 7000원이에요. 팀홀튼 측은 “운영 비용 등을 책정한 것”이란 입장이지만 “한국 소비자가 호구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죠.
팀홀튼의 대표 메뉴인 ‘오리지널 아이스캡’(왼쪽)과 ‘더블더블’을 마셔봤다. 임선영 기자
호기심을 품고 처음 온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렸어요. 직장인 김대근(41)씨는 “커피, 도넛 맛 모두 평범한 것 같다”고 했어요. 반면에 아메리카노를 마시던 정모(32)씨는 “스타벅스(4500원)보다 저렴하지만 더 맛있다”고 하더군요.
저도 대표 메뉴들을 마셔봤는데요. 제 입맛엔 ‘더블더블’(3900원)은 한국식 믹스커피보단 좀 시큼하고 덜 달았어요. 커피와 크림, 얼음을 갈아 만든 ‘오리지널 아이스캡’은 한국의 아이스크림 더위사냥과 비슷했고요. 단풍나무 아래 야외 테이블에서 찬 바람을 맞으며 마신 고소한 아메리카노(아라비카 원두)는 지금도 생각나네요.
팀홀튼 신논현역점 입구엔 캐나다를 상징하는 단풍나무 조형물과 야외 테이블이 있다. 임선영 기자
📌500자 더: 산업혁명도, 독립혁명도 커피로 가능했다?!
커피의 기원은 5~10세기 에티오피아에서 처음 발견된 커피가 예멘으로 전해졌다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져요. 커피는 예멘에서 본격 음용되기 시작했고, 이슬람 수피교도가 밤샘 기도를 할 때 잠을 쫓으려 마셨다고 해요.
이후 오스만제국으로 전파돼 대중화됐어요. 누구나 출입할 수 있는 커피하우스(오늘날 카페)도 1554년 오스만의 수도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에서 처음 생겼죠. 커피를 유럽에 전파시킨 건 17세기 이탈리아 베니스 상인이라고 해요. 이후 커피하우스는 유럽 곳곳에 생겼고, 정치·경제 이슈를 토론하는 장으로 자리잡았죠.
1793년 뉴욕 맨해튼에 생긴 톤틴 커피하우스. 이곳에선 주식 거래가 이뤄지기도 했다. 사진 위키피디아 캡처
커피는 세계사를 바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18세기 영국 산업혁명 당시 공장 노동자들은 커피를 마시며 밤낮으로 일했어요. 이뿐인가요. 프랑스혁명 당시 바스티유 습격 사건을 촉발한 연설은 ‘드 포아’란 커피하우스에서 이뤄졌죠. 영국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는 런던의 커피하우스에서 근대 경제의 시초인『국부론』(1776년)을 대부분 집필했죠.
미국에서 커피는 영국으로부터의 독립 열망을 상징했어요. 독립혁명의 시발점이 된 ‘보스턴 차 사건’ 이후 미국에선 영국의 차 대신 커피를 마시자는 운동이 번졌죠. 미국의 헌법이 탄생하고, 독립선언문이 낭독된 곳도 ‘머천트’란 커피하우스였어요.
브라질에서 이 커피 거절하면 실례!
전 세계로 뻗어나간 커피는 각국에 뿌리내리면서 그 나라 고유의 문화로 발전했습니다. 세계 최대 커피 생산국 브라질에선 커피를 아침부터 잠들기 전까지 1인당 하루 평균 3~4잔을 마셔요. 원래 브라질인들은 주로 뜨거운 커피만 마셨지만, 2006년 스타벅스 매장이 처음 들어온 이후 차가운 커피도 마시고 있다고 해요.
브라질 가정엔 손님이 오면 물과 설탕을 끓인 뒤 커피를 섞는 ‘카페지뉴’(cafezinho, 한 잔의 커피)를 대접하는 문화가 있어요. 환영의 의미를 담기 때문에 이를 거절하면 실례라는군요.
브라질에서 손님이 오면 대접하는 ‘카페지뉴’. 물과 설탕을 끓인 뒤에 커피를 섞는다. 사진 브라질 풍미 사이트 캡처
이탈리아는 에스프레소를 바(bar)에서 선 채로 빨리 마시는 게 보편적이에요. ‘에스프레소부심’이 대단한 이탈리아에선 물을 탄 아메리카노를 ‘구정물’이라고 할 정도죠. 스타벅스가 2018년 첫 매장을 열었을 때 이탈리아인들은 스타벅스가 두오모 광장에 심은 나무에 불을 지르는 등 거세게 반발했어요.
이탈리아의 에스프레소. 사진 위키피디아 캡처
베트남은 현지에서 수확한 로부스타 원두를 사용한 커피에 계란이나 연유를 넣어 마셔요. 그래서 베트남에선 아라비카 원두를 쓰는 스타벅스보다 로부스타 원두를 쓰는 ‘하이랜드 커피’와 같은 토종 브랜드가 더 인기예요.
베트남에서 즐겨 마시는 계란커피. 사진 위키피디아 캡처
나라마다 커피를 즐기는 시간이 다르기도 해요. 멕시코엔 점심이나 저녁을 먹은 후 느긋하게 커피를 즐기는 ‘소브레메사’(sobremesa, 테이블 위에)란 전통이 있어요. 반면에 프랑스는 빵과 모닝커피를 먹는 문화가 있죠.
세계에서 커피 가맹점이 가장 많은 나라는 중국(4만9000여 개, 월드커피포털 집계)입니다. 중국 내 커피 열풍을 이끄는 토종 브랜드 ‘루이싱’은 지난해 연 매출(34억5000만 달러)도, 매장 수(1만6000여 개)도 스타벅스를 추월했어요.
중국에서 큰 인기인 토종 커피 브랜드 ‘루이싱’ 매장. 로이터=연합뉴스
호주는 체인점보다 개성이 다른 작은 카페들이 인기죠. ‘스벅의 고향’ 미국은 속도를 중요시해 테이크아웃과 드라이브스루를 선호한다고 해요.
韓에 몰려온 해외 커피…승자는 어디?
한국인의 커피 사랑은 각별하죠. 지난해 한국인의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은 약 405잔(유로모니터 집계). 세계 평균 153잔의 두 배를 웃돌죠. 커피 가맹점은 3만1100여 개(월드커피포털 집계)로 동아시아에선 중국 다음으로 많아요.
서울에 있는 한 스타벅스 매장. 연합뉴스
한국 커피 시장의 ‘절대 강자’는 스타벅스죠. 우선 매장 수는 1901개(지난 3일 기준)로 미국·중국·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아요. 지난해 매출이 2조9295억원으로 압도적인 업계 1위고요. 토종 저가 커피 브랜드인 이디야와 메가커피도 매장을 빠르게 확장해 그 수가 각각 3000개, 2709개나 됩니다.
앞서 이야기한 팀홀튼을 포함해 해외 브랜드들도 커피 수요가 높은 한국에 잇따라 진출하고 있어요. ‘신(新) 커피전쟁’이 시작된 거죠.
싱가포르에 있는 ‘바샤커피’ 매장. 1만원이 넘는 커피 가격과 화려한 실내 인테리어로 ‘커피계의 에르메스’라고 불린다.
사진 바샤커피 사이트 캡처
미국의 3대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인 ‘인텔리젠시아’는 지난달 서울 서촌에 1호점을 열었어요. 스페셜티 커피란 미스페셜티커피협회(SCAA)의 품질 평가에서 100점 만점에 80점을 넘긴 원두로 만든 커피죠. 미 서부의 3대 커피인 ‘피츠커피’도 조만간 국내 첫 매장을 연다고 해요.
싱가포르 고급 커피 ‘바샤커피’는 오는 7월 청담동에 1호점을 열어요. 커피 한 잔에 1만원이 넘는 가격과 화려한 인테리어로 ‘커피계의 에르메스’로 불리죠. 팀홀튼은 지난달까지 잇따라 한국 매장 5개를 열었고, 5년 내 150개 개점이 목표죠.
지난달 서울 서촌에 문을 연 미국의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 ‘인텔리젠시아’ 매장. 사진 인텔리젠시아
2000년대 중후반 엔제리너스·투썸플레이스·카페베네·파스쿠찌 등 여러 국내외 커피 브랜드들이 스타벅스의 아성에 도전했지만, 스타벅스의 완승으로 끝났죠.
이번 전쟁에선 누가 웃게 될까요. 그때보단 고급 커피 수요가 높아지고, 한편으론 저가 커피들도 업계 판도를 흔드는 상황이라 섣불리 예측이 어려워요. 시장이 이미 포화 상태란 지적도 나오죠.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선택지와 각 나라의 커피 문화를 체험하는 기회가 많아진다는 건 소비자에겐 긍정적인 점 아닐까요.
단, 한국 시장에서 유독 비싸게 받는 ‘코리안 프라이스’는 사양하고 싶습니다.
임선영
관심
중앙일보 기자
youngcan@joongang.co.kr
중앙일보 국제부 임선영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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