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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산리(葛山里)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에 있는 법정리(里).
동쪽은 산지이며 서쪽으로는 평지이다. 철도가 가까이 있다. 갈산리의 동쪽은 산지이며 서쪽은 평지이다. 동쪽은 부강리, 서쪽은 연동면, 남쪽은 부강리, 북쪽은 산수리와 접하고 있다. 부강면의 전반적인 지형은 남동고북서저형으로 나타난다. 부강면 지역은 옥천계의 변성퇴적암과 시대 미상의 심성암류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하천 주변으로 충적층이 형성되어 있다. 부강면의 서북쪽에 있으며 갈산1리와 갈산2리로 나뉜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칠산, 갈곡, 삼거리, 수산을 병합하고 ‘갈곡’과 ‘칠산’의 이름을 따서 갈산리라 하였다.
-1995.3.1 이전까지는 충청남도 연기군 동면 지역에 속해 있었으나 1995년 3월 행정구역 개편으로 부용면에 편입되었다. 충청남도에서 충청북도로 이관 후 대략 17년 만에 원래 속했던 도시로 다시 돌아온 셈이다.
-2012년 7월 세종특별자치시에 편입되었다.
자연마을에는 상갈, 하갈, 봉무, 칠미, 석골, 웃골이 있다. 상갈은 갈산리의 가장 위쪽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하갈은 가장 아래쪽의 마을이란 뜻으로 이름 지어졌다. 칠미는 일곱 개의 명당 터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석골은 돌이 많아 석골이라 불리었고 웃골은 구레골이라고 불렸으며 예부터 구리가 많이 묻혀서 구레골이라 불렸다. 충청북도 청원군 부용면에 속해 있다가,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으로 편입되었다. 갈산리에는 다음과 같은 마을이 있다. 상갈은 갈산1리의 가장 위쪽에 있는 마을로 웃골이라고도 한다. 하갈은 갈산1리의 아래쪽에 있는 마을이다. 댓골은 갈산1리 지역으로 원텃말 아래[서쪽]에 있다. 칠미는 갈산1리 아래쪽에 있는 마을이다. 원래 현재 마을에서 남쪽에 위치한 고굴미에 있었는데, 지금의 자리로 옮겨 마을을 이루었다. 원텃말은 갈산1리 지역으로, 상갈 아래[서쪽]에 있다. 원텃말을 원래 터에 있는 마을로 설명하기도 한다.
불무골[붕무 또는 붐우골]은 갈산2리 지역으로 칠미 남쪽에 위치하며, 쇠를 다루는 풀무간[대장간]이 있는 골짜기 또는 마을로 해석된다. 불무골은 가운데뜸, 양달뜸, 위뜸의 작은 세 개의 마을로 나뉜다. 석골은 갈산2리 지역으로 불무골 동쪽에 위치한다. 과거 충청북도 청원군 부용면 부강8리와 경계를 이루던 마을이다.
총 114가구에 221명이 살고 있다(2020년 8월 기준). 면적은 1.95㎢이다. 갈산리 서쪽은 평지이며, 철도가 가까이 있다. 경부선 철도와 호남고속철도가 지나간다.
갈산리(葛山里)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에 있는 리(里).
한강이 남북으로 흐른다.
자연마을로는 검암, 공촌, 방맛골, 오리정 등이 있다. 검암은 뒷산에 검은 바위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검은바위라고도 부른다. 공촌은 공씨가 살았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방맛골은 말을 놓아 먹였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오리정은 통진부 때 오리정이 있었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갈산리(葛山里)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에 있는 리(里).
가래산의 서북쪽 자락에 있으며, 대부분 산지와 구릉지이다. 서남쪽으로 백호내[白虎川]가 흐르며, 백호들[虎坪], 사지뱅이들, 버드나무골, 산소골 등이 있다.
자연마을로는 갈산리[갈산(葛山), 갈미(葛美)]), 둠벙골(소암리), 안갈미 등이 있다. 갈산리는 호평촌의 주산(主山)인 매봉산(鷹峰山)에 칡꽃이 아름답게 피었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갈미동네'라고도 불린다. 구릉지의 밖의 마을을 바갓갈미[外葛美]라 하고 계곡의 안쪽은 안갈미[內葛美]라 한다. 둠벙골은 큰 둠벙(웅덩이의 충청도 방언)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갈산리(葛山里)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에 있는 법정리(里).
갈산리의 서부와 북부는 해발고도 40여m의 저산성 구릉지를 형성하고 있으며, 동부와 남부는 낮은 평야 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 평야 지대는 경지 정리가 잘 되어 있는데, 광석평야(光石平野)의 주변부에 해당한다.
본래 노성군(魯城郡) 광석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은동리(銀洞里)·입석리(立石里)의 각 일부와 득윤면(得尹面) 상동리(上洞里)의 일부를 병합하고 갈산리라 하여 논산군 광석면에 편입하였다.
-1996.3.1 논산군이 시로 승격되면서 논산시 광석면 갈산리가 되었다.
행정구역은 갈산1리와 갈산2리로 나누어져 있다. 예부터 마을 앞 넓은 들에서 쌀이 나오고, 산에서는 칡이 많이 나온다 하여 갈미(葛米) 또는 갈산(葛山)이라 불리고 있다.
자연부락으로는 갈미, 큰동네, 날근터, 도래뜸, 산정말, 은동골, 쟁미턱 등이 있다. 마을 앞 넓은 들에서는 쌀이 나오고 산에서는 칡이 많이 나온다 하여 갈미(葛米) 또는 갈산(葛山)이라 하였다.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은동리, 입석리의 각 일부와 상동리 일부를 병합하여 갈산리라 했다. 광석면의 남서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총 164세대에 357명(남자 179명, 여자 178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2015.12.31 현재). 면적은 3.78㎢이다(2008년 6월 기준). 이 중 경지 면적은 2.68㎢로 밭이 0.48㎢, 논이 2.20㎢ 등이다. 저산성 구릉지에서는 밭농사가 이루어지고, 평야 지대에서는 벼농사가 이루어지는데, 주요 산업은 벼농사를 주로 하는 농림업이다. 구릉지와 평야 지대 사이의 경사변환선, 구릉지 사이의 곡간과 도로변에 자연마을이 들어서 있는데, 산정말과 갈산 등이 대표적이다. 마을들의 대부분은 가촌(街村), 열촌(列村), 괴촌(塊村) 등의 집촌(集村) 형태를 취하고 있다. 문화 유적으로는 충청남도 기념물 제27호인 갈산리 곰솔 등이 있다.
천안논산고속도로가 서부에서 북동~남서 방향으로 지나는데, 북동쪽으로는 광석면 중리, 남서쪽으로는 성동면 정지리에 연결된다. 국도 4호선이 서부와 남부에서 북서~남동 방향으로 지나며 북서 방향으로는 광석면 득윤리와 연결되고, 남동 방향으로는 광석면 산동리와 각각 연결된다.
국도 4호선이 서논산 IC에서 교차되며, 이 외에도 기타 도로가 중부에서 남북 방향으로 지나고, 서부에서 동서 방향으로 각각 지나고 있다. 남북 방향의 기타 도로는 남쪽으로는 경계 지대에서 종점을 이루고, 북쪽으로는 광석면 중리에 연결된다. 동서 방향의 기타 도로는 동쪽으로는 남북 방향 기타 도로에 연결되고, 서쪽으로는 광석면 득윤리에 연결된다.
갈산리(葛山里)
충청남도 당진시 순성면에 있는 법정리(里).
갈산리는 몽산[299m]에서 발원한 당진천이 성북리를 관통하여 흘러온 다음 마을 한복판을 북동류하여 당진시 수청동으로 흘러 들어간다. 마을 동남쪽 송악읍 경계에는 오봉산[135.2m]이 솟아 있고 당진천 주변을 제외하고는 충적지가 거의 없으며 중산간 지대를 이룬다. 옛날 임금에게 진상했다는 동림밤으로 유명했다. 당진시 시곡동으로 넘어가는 신수리 고개가 유명하다.
갈산리는 본래 면천군 정계면(淨界面)의 지역이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신수리(薪水里), 상동림리(上東林里), 하동림리(下東林里)와 석소지리(石所之里), 엄치리(奄峙里)의 각 일부와 당진군 동면의 수청리 일부를 병합하여 갈산리라 해서 당진군 순성면에 편입되었다.
-2012.1.1 당진군이 당진시로 승격되어 당진시 순성면 갈산리로 개편되었다.
갈산리(葛山里)는 순성면의 북서쪽 끝에 있는 마을이다. 구릉성 지대에 위치한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당진 시내와 합덕 간을 연결하는 지방도 615호선이 마을을 지나가며, 유명한 시인 윤곤강의 묘소가 있다. 평지가 대부분의 지역을 이루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마을 중앙으로 당진천이 흐르고 있으며, 그 주변에 들판이 조성되어 있다. 마을 남서쪽에는 아미산이 자리하고 있으며, 북동쪽에는 송악 저수지가 위치하고 있다. 갈산리는 산이 갈모처럼 생겼으므로 갈뫼, 갈미 또는 갈산(葛山)이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갈산, 돌소지, 상동림 마을 등이 있다. 갈산 마을은 산이 갈모처럼 생겼다 해서 갈미 마을이라 불리다 후에 갈산 마을이라 개칭되었다. 돌소지 마을은 상동림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며, 상동림 마을은 동림 위쪽에 있다는 뜻에서 명명되었다. 갈산리는 상동림, 하동림, 신수동, 원갈뫼, 석소지, 오리골, 새삼골, 느락골의 8개 자연 마을이 있다.
상동림(上東林)은 옛 면천군 정계면 상동림리 지역이다. 동림 위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 밤나무 숲이 우거져서 밤을 진상하기도 했다고 전한다. 당진군 동림밤의 특산지이기도 하였다. 하동림(下東林)은 옛 면천군 정계면 하동림리 지역이다. 옛날 밤나무 숲이 우거진 동림의 아래쪽에 있었다. 신수동(薪水洞)은 옛 면천군 정계면 신수리 지역으로, 원갈뫼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원갈뫼[元葛山]는 옛 면천군 정계면 갈산리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이전의 '원 갈산리' 지역을 말한다. 갈산, 원갈미, 원갈산 등으로도 불린다. 석소지[石所之里]는 옛 면천군 정계면 석소지리 지역으로, 돌이 많은 곳에 위치하였다. 돌소지, 돌밧이라고도 부른다. 오리골은 신수동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오릿골이라고도 부른다. 새삼골은 석수지 북쪽에 있는 산골짜기에 있다. 느락골은 석수지 동쪽, 송악면 가교리와의 경계에 있는 마을이다. 면적은 4.239㎢ 이고 인구는 191세대에 총 444명[남자 240명, 여자 204명]이다(2016년 현재). 남쪽은 성북리, 동쪽은 송악읍 가교리, 북쪽은 당진시 시곡동, 서쪽은 당진시 대덕동과 경계를 접하고 있다. 조선 시대 김재기의 정려가 있다.
갈산리(葛山里)
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에 있는 리(里).
아미산 자락에 위치하며, 대부분 낮은 산지와 구릉으로 되어있다. 반교천이 관류하며, 천 주변에 진굴들이 있다.
백제시대에는 대산현, 조선시대에는 홍산현 내산면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에 내대리(內垈里)를 병합하여 갈산리라 하고 부여군 외산면에 편입되었다.
자연마을로는 갈산리(꾀까리, 고갈, 갈산), 안골(내대, 내대리)가 있다. 갈산리는 꾀깔봉 밑이 된다 하여 붙여졌고, 안골은 꾀까리 안쪽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갈산리(葛山里)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에 있는 법정리(里).
마을이 평지에 자리잡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전반적으로 평지이며 서북부는 낮은 구릉지의 지세를 나타낸다. 좌세천(佐世川)이 동부 지역을 관통한다.
갈산리는 조선 시대에 해미현 이도면 회선동리와 좌세리(佐世里) 지역이였으나
-1895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갈현리, 회선동(會仙洞), 산지동, 좌세리 등 4개 동리로 분리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다시 4개의 마을을 통합하여 서산군 운산면 갈산리로 개편하였다.
-1989년 서산읍이 시로 승격할 때 서산군에 속하였다가
-1995년 서산군이 서산시와 통합하면서 서산시 운산면 갈산리가 되었다.
행정구역 개편으로 여러 리가 병합되었는데 그 중 갈현리와 산지리의 이름을 따서 갈산리가 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갈현리(葛峴里)의 ‘갈’자와 산지동(山芝洞)의 ‘산’자를 따서 갈산리(葛山里)라 하였다.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에 갈우고지[葛峴里], 회츈골[會仙洞], 무르틔[山芝洞], 좌셰[佐世里] 등 관련 지명이 보인다.
자연마을로는 가루고개, 좌세가 있다. 가루고개는 가루고개 밑에 있는 마을이라하여 생긴 이름이다. 좌세는 갈산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이다. 안동 김씨의 정문이 있다해서 정문동이라고도 부른다. 갈산리는 운산면의 중심지인 용장리의 서부에 인접해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면적은 4.6㎢이며(2010년 12월 기준), 인구는 총 396세대에 833명(남자 431명, 여자 40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2014.12.31 현재).
자연 마을로는 가루고개[갈현동, 가룰]·좌세[정문거리]·회선동·무띠울[산지지]·무르티·골말 등이 있다. 좌세는 갈산리의 중심 마을로서 안동 김씨의 정문(旌門)이 있다 해서 정문동(旌門洞)이라고도 부른다. 갈현동(葛峴洞)이라고도 부르는 가루고개마을은 갈산리에서 태봉리(胎封里)로 넘어가는 가루고개 밑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교육 기관으로 대철중학교가 있다. 유적으로는 갈산1리의 은봉산에서 남쪽으로 뻗은 능선의 중하단부에 산막 고분군이 있고, 동쪽으로 뻗은 능선 하단부의 남동향 경사면에 골말 고분군이 있으며, 이에 근접하여 청동기 시대의 돌칼 출토지가 있다. 갈산리와 가좌리(佳佐里)의 경계를 이루는 동암산(銅岩山) 정상부에 테뫼식 토성인 동암산성(銅岩山城)이 있다. 이외 조선 효종 때의 효자인 김가근(金可近)의 정려가 있다. 국도 32호선과 서해안고속국도가 갈산리 중앙을 지나며 지방도 647호선이 동부 지역을 지나간다.
갈산리(葛山里)
충청남도 아산시 탕정면에 있는 법정리(里).
갈산리는 탕정면의 남부 중앙에 있는 마을이다. 삼봉산 남쪽 산줄기의 서부에서 곡교천의 북부 지역 사이가 영역이다. 서쪽은 개발지로 옛 모습을 찾기가 어렵다. 전체적으로 북부와 동부는 구릉성 산지이고, 남서부의 샛벌, 내건너들은 탕정평야의 일부로 평야지대이다. 서쪽에 명암천이 남쪽으로 흘러 동에서 서로 흐르는 곡교천으로 유입한다. 사방으로 연결되는 교통로가 신설 또는 확포장되어 외지와의 연결이 편리하다.
갈산리(葛山里)는 갈산1리, 갈산2리의 2개 행정리로 이루어졌으며 넓은 들판이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었으나 선문대학교 아산캠퍼스가 들어선 이후 시가지가 새로 형성되고 상업시설이 들어서는 등 변화를 겪고 있다.
갈산리는 본래 온양군 일북면에 속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여사리, 내금리를 병합하여 갈산리라 하고 아산군 탕정면에 편입되었다.
-1995.1.1 행정구역 조정으로 아산군과 온양시를 통합하여 아산시로 개편되면서 아산시 탕정면 갈산리가 되었다.
‘갈산리’라는 명칭은 전래 지명인 갈미마을에서 유래하였다. 갈미마을의 ‘갈’은 길이나 산줄기 등이 ‘갈라지다’는 의미를 지닌다.
곡교천과 그 지류 유역의 저지대를 차지하여 벼농사가 이루어진다. 또 천안시에 인접하여 근교농업이 활발하고 구릉지대에서는 과수재배도 성하다.
자연마을로는 갈산, 여술(여사리), 지므레, 안지므레 등이 있다. 여술은 지므레 남쪽 들 가에 있는 마을로 한내의 물이 맑으므로 여수라 하던 것이 변하여 여술 또는 여사리라 불리게 되었다. 지므레는 갈산리와 명암리 경계에 위치한 마을이다. 두 마을이 있는데 안지므레는 갈산리에, 바깥지므레는 명암리에 갈려 있다. 옛날에 감씨가 많이 살면서 열녀, 효부가 많이 나서 김호례(金好禮)라 하다가 변하여 지므레라 불린다.
특산물로 봉지포도가 유명하다. 갈산리의 면적은 3.92㎢이며 인구는 440가구에 총 761명으로 남자가 393명, 여자가 368명이다(2019년 1월 기준). 갈산리는 넓은 들판이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상당수의 주민들이 지금도 농업을 주업으로 하고 있다. 1934년 개교한 탕정초등학교를 비롯하여 1993년 선문대학교 아산캠퍼스, 2014년 탕정미래초등학교가 개교하여 지역의 큰 변화를 이끌었다. 그런 가운데 갈산1리를 중심으로 시가지가 새로이 형성되고 갈산2리 도로 주변에도 상업시설이 들어서 성업 중이다. 아울러 선문대학교 아산캠퍼스의 규모 확대와 관련 시설의 증축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특히 인근 명암리의 변화가 갈산리의 개발 및 발전을 촉진할 것으로 보인다.
갈산리(葛山里)
충청남도 홍성군 홍북읍에 있는 리(里).
홍북읍의 북부에 위치하여 금마천의 머리쪽이 되며 동남쪽에 당산이 있는 농촌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갈울, 당산, 물머리, 광청미 등이 있다. 갈울은 갈산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갈대가 무성하였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당산은 당산 밑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물머리는 금마천의 머리쪽이 된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광청미는 갈울과 물머리 사이에 있는 마을이다. 갈울과 당산의 이름을 따서 갈산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갈산리(葛山里)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에 있는 법정리(里).
전주 IC와 가깝고 교통이 편리해 계속적인 발전이 이루어 지고 있다. 갈산리는 전주 IC와 가까워서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옥정리에 매봉산, 사당산, 강시기방죽이 있고 덕동에 덕동제 저수지가 있었다. 원갈산마을에서는 담배, 고구마와 벼농사를 짓는 농가가 있었다. 갈산리에는 혁신도시 지정으로 많은 아파트가 들어섰다.
갈산리는 이서면 신풍유적이 있는 곳으로 신풍유적지는 국내 최대 규모의 초기철기시대 움무덤 유적지이다. 2009년 전주·완주 혁신도시 개발지였던 이서면 갈산리, 금평리 일대에서 발견되었다. 당시 기원전 3세기 이후의 대규모 무덤군과 청동거울 등이 출토됐으며, 확인된 토광묘 수는 70여 기로 국내 최대 규모이다. 움무덤내부에는 좁은놋단검과 청동거울, 검은간토기 등 대표 부장품 등이 확인됐다. 신풍유적지에서는 2003년과 2005년 좁은놋단검과 거푸집, 잔무늬거울 등 철기시대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이들 유적은 전라북도 서부 평야지대가 초기철기시대 주요 세력의 거점이었음을 알려준다.
갈산리는 본래 전주군 이남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신흥리, 양동리, 덕동리, 옥정리, 갈산리, 신공리, 신풍리 각 일부 및 이서면 신제리를 병합하고 그 중심 마을 이름을 따서 ‘갈산리’라 해 이서면에 편입되었다.
-이후 1935.10.1 전주군이 전주부로 승격하면서 완주군 이서면으로 편입되었다. 갈산리는 2005년 혁신도시로 선정되었다.
갈산리는 1914년 지방행정제도를 전면적으로 개편할 때 여러 마을을 병합하는 과정에서 중심 마을의 이름을 따서 ‘갈산리’라 명명했다.
자연마을은 옥정마을, 덕동마을, 신흥마을, 원갈산마을이 있다. 옥정마을은 지기동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그곳에 풍수지리상 옥녀직금혈이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덕동마을의 덕은 ‘터’또는 ‘언덕’의 옛말이며, ‘텃골’또는 ‘언덕진곳’이란 뜻이다. 신흥마을은 치릇이 본 이름인데 옻나무가 많아 칠곳이라 한 것이 치릇으로 변하였다. 원갈산의 원(元)은 법정명과 구분하기 위하여 덧붙인 것이고, 갈산의 본 이름은 ‘갈뫼’인데 그것은 옆 산봉이 갈모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갈산리의 자연마을로 갈산, 옥정[지기동], 덕동, 신흥[치릇], 원갈산이 있다. 지기동은 갈산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유(柳)씨 문중의 터에 정착 조건을 찾아다니던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마을이 이루어졌다. 옥녀직금혈의 풍수설과 관련해 ‘지기동’이라 불렸고 이후에 옥정으로 개명되어 불렸다. 덕동[양동]은 갈산의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덕동’의 덕은 ‘터’ 또는 ‘언덕’의 고어로 ‘텃골’ 또는 ‘언덕진 곳’이라는 뜻이다. 150년 전 태인에 있던 사람들이 피난 차 왔다가 마을을 구성했다고 한다. 현재는 각성바지 마을이나 예전에는 전(田)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마을을 구성했다고 한다. 신흥은 치릇이 본래 이름인데 우리나라 지명 중 ‘치릇’은 옻나무가 많아 ‘칠 곳’이라 한 것이 ‘ㄹ’ 밑에서 ‘칠옷’으로 발음되고 다시 ‘옷→읏’으로 변음된 곳이 많아 ‘치릇’이라는 지명의 유래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신흥은 새롭게 지어 붙인 이름이다. 지기동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남쪽에 있는 매봉재에 복치혈이 있다고 한다. 원갈산의 ‘원’은 법정 이명과 구분하기 위해 덧붙인 것이고, 갈산의 본래 이름은 ‘갈뫼’인데 그것은 옆 산봉이 갈모처럼 생겨서 일컬어진 이름이다. 갈산리에는 이밖에 덕동과 치릇 사이 덕동 방죽 옆에 새롭게 생겼던 신제마을에 2세대가 살았고, 치릇 동쪽에 있던 독골에도 인가가 있었으나 현재는 없다. 갈산리의 자연마을 중 혁신도시 대상 지역에 해당하는 마을은 갈산, 지기동, 옥정, 덕동마을이다.
갈산리는 2005년 혁신도시로 선정되어 현재는 이노힐스, 지엘하늘가, 이안, 부영, 남양사이버 등 많은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섰다. 갈산리의 인구수는 총 2,743세대, 6,477명[남 3,219명, 여 3,258명]이다(2018.6.30 기준).
갈산리(葛山里)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에 위치한 리.
대부분이 산지로 이루어져 있는 마을이다.
1914년 갈산리, 각동, 지석면의 삼봉리 등의 전 지역으로 이루어졌다.
자연마을로는 갈산, 각봉 마을이 있다. 갈산은 산봉우리가 갈코처럼 원추형으로 생겨 갈모봉으로 부른 것에서 마을 이름이 생겼으며 각봉의 부분명으로는 각동과 삼봉이 있다. 각동은 집들이 몇 호씩 떨어져 있어 생긴 이름이고 삼봉은 등너머 마을 원봉에서 갈려져 나온 마을로 전에는 산봉으로 기록되었지만 원래 이름은 삼봉이고 산봉우리가 셋있다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갈산리(葛山里)
전라북도 익산시 성당면에 있는 리(里).
숭림산의 동쪽에 있으며 주민들의 대부분이 농사를 짓고 있다.
1914년 내갈리, 외갈리, 내장리의 전 지역과 수산리 일부로 구성되었다.
자연마을로는 장전, 갈산, 내수산, 솔통, 외수산, 당사골이 있다. 장전은 길을 따라 생긴 긴 밭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갈산은 본 이름인 갈매를 한자로 옮겨 적은 지명이다. 갈매는 산봉우리가 갈모처럼 원추형으로 생긴 곳을 일컫는다. 내수산과 외수산은 수산을 내외로 구분하여 이름 붙여졌다. 솔통은 솔밭이 많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발매는 수목이 없는 곳을 뜻하는 벌뫼의 음전으로 생긴 지명이다. 전북 유형문화재 제 176호인 남궁찬 묘석상이 있다.
갈산리(葛山里)
경상북도 봉화군 재산면에 있는 리(里).
높은 산이 병풍처럼 드리워져 있고 앞에는 큰 개울이 흐르고 있어 농사짓기에 알맞다. 마을이 평지이고 전답이 많아 자연히 사람들이 모여들어 큰 마을을 형성하였다.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겨울에도 세찬 바람은 불지 않는 곳이다.
자연마을로는 큰마, 학다리, 도가못, 정자마, 무너무 등이 있다. 무너무는 마을에 있는 갈산천으로부터 물이 자주 넘쳐 처음엔 물너머 동네라고 하다가 쉬운 발음으로 변하여 무너무로 되었다. 지금은 큰 다리가 놓여져 있어 물이 넘는 일이 없다. 고추와 콩을 재배한다.
갈산리(葛山里)
경상북도 영주시 장수면에 있는 법정리(里).
구릉성 평지에 자리한 마을로, 들이 넓게 펼쳐져 있어 논농사가 주로 이루어지며 작은 하천이 마을을 감싸 흐른다. 갈산리 남서부 지역을 우곡천이 휘감아 흐르면서 내려가 화기리에서 옥계천으로 유입된다. 중부는 성산 자락이 넓게 자리 잡고 있다. 가장자리는 해발고도 150~200m 내외 구릉성 산지가 분포하며, 우곡천 유역과 산지 사이에 발달한 골짜기를 따라 농경지가 조성되어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영천군 두전면 갈산동, 파지동과 반구동 일부를 병합하여 영주군 장수면 갈산리가 되었다.
-1980.4.1 영풍군 장수면 갈산리,
-1995.1.1 영주시 장수면 갈산리로 개편되었다.
갈산리(葛山里)는 영주시 장수면 8개 법정리 중 하나로 행정리는 갈산1리, 갈산2리, 갈산3리로 구성되어 있다. 자연마을로는 갈미[상갈, 윗갈미], 돌마람[석천, 석종], 장구목이[금원], 바우실[바디, 바디실], 오룡계, 아랫갈미[하갈], 성골[성곡], 새마 등이 있다. 갈산리 명칭은 갈산(葛山)에서 유래했다. 칡이 많았던 갈산은 ‘갈뫼’로도 부르다가, 후에 음이 변하여 ‘갈미’가 되었다고 한다.
자연마을로는 갈미, 장구목이, 돌마람, 바우실, 세목골, 오룡계마을 등이 있다. 갈미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이다. 장구목이마을은 갈미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지형이 장구의 목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돌마람마을은 장구목이 서쪽에 있는 마을로, 주위에 돌이 많다 하여 칭해진 이름이다. 바우실마을은 바위가 많은 곳이라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고, 세목골마을은 바우실 동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오룡계마을은 바우실 남쪽에 있는 마을로, 다섯 용이 구슬을 다투는 명당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갈산리는 면적은 7.73㎢이며, 인구는 155가구, 288명[남 148명, 여 140명]이다(2019년 3월 기준). 남쪽 경계부로 국도제28호선이 통과하며, 남동단의 영주시 장수면 화기리에 중앙고속도로 영주 나들목이 위치하여 고속도로 이용이 편리하다. 벼농사, 생강·고추·수박 등 밭농사, 하수오·황기·도라지 등 약초 재배, 양돈·양계 등 축산업이 활기를 띤다. 주요 시설로는 갈산일반산업단지, 성곡저수지 등이 있다. 문화유산으로는 영주 의산서원[경상북도 기념물 제172호]이 있다.
갈산리(葛山里)
황해남도 청단군 서부에 있는 리.
북쪽은 칠봉리(七峰里), 동쪽은 화양리(花陽里)·양화리(陽花里)·화산리(花山里), 남쪽은 금학리(錦鶴里), 서쪽은 해주시 장방리(長芳里)와 경계를 이룬다.
1910년대에는 해주시 천결면 갈산리·좌랑리 지역이었고 그후에 벽성군에 편입되면서 영천면에 속하게 되었다.
-1952년 12월 북한 행정구역 개편 때 면이 폐지되면서 벽성군 영천면 갈산리·좌랑리가 통합되어 청단군 갈산리가 되었다.
리의 경계 지역에 있는 갈미산·무지산 등 100m 정도의 낮은 산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지역이 평탄한 평야로 되어 있다. 동부에는 무지평야(무지벌)가, 서부에는 감미평야(감미벌)가 펼쳐져 있다. 이 평야들을 지나 읍천에 합류하는 청년천과 청결천이 서쪽으로 흐른다.
경지면적에서 논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리에는 고등중학교, 인민학교 등의 교육기관과 병원이 있다. 교통은 배천선(해주~배천) 철도와 해주~청단 간 도로가 동서로 뻗어 있으며 해주까지는 16㎞, 군소재지인 청단읍까지는 7㎞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