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27일(금)
* 시작 기도
주님...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다고 하셨습니다(딤전 5:6).
이는 사데 교회를 향한 주님의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지만 죽은 자임을 명하셨지요(계 3:1).
주님의 뜻을 알고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가 살아 있는 자이나 나는 은혜라는 미명 하에 주의 말씀을 업신여기는 자였음을 고백합니다.
조건의 규정을 무조건의 규정으로 치부하며 살아왔나이다.
이런 자들은 구약의 거짓 선지자들의 전형인데 말입니다.
이런 나를 주의 보혈로 씻어 정하게 하시고 나 자신을 알고 주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한 자 되게 하옵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세상의 fun을 사랑하던 나는 죽고 진실로 하늘의 기쁨인 Joy를 사랑하는 자로 변화시켜 주소서.
이 하루도 주의 말씀이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엡 5:15-21
제목 : 이제는 영혼을 건져 올리는 복음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15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 나의 묵상
우리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아야 할 것인데 얼마나 어리석고 미련하게 행하는지 모른다.
주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일을 할 때는 요모조모 따져보면서 신중한 듯 억지로 하면서도 죄를 짓는 일은 생각없는 자처럼 한 번 꽂히면 일사천리로 저지르고 마는 모습을 본다.
그것은 죄가 주는 마성 때문이다.
짜릿한 쾌감과 육신의 즐거움, 즉 fun을 좋아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한다.
특히 현대인들은 깊은 생각보다 한 번 꽂히는 감각적인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지혜롭게 생각하기보다 자신의 감각이 끌리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바로 이 육신이 즐거워하는 fun을 제어하고 하늘의 기쁨이요 영생의 기쁨인 joy를 즐거워하며 사모하는 것이다.
fun은 마시면 금세 다시 목마르는 야곱의 우물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joy는 마시면 다시 목마르지 않는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다.
세상이 주는 야곱의 우물은 순간적으로 짜릿함과 쾌감이 있으나 마시고 나면 후회와 회한이 몰려오고 급기야 영이 상하고 만다.
하지만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joy는 우리의 영을 하늘의 기쁨으로 충만케 하며 더 원할 것 없는 상태로 이끈다.
그것은 오직 주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한 상태를 말한다.
(단 12: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단 12:10)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하게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때가 악할수록 사람은 자기의 육신과 감각을 만족하며 살아간다.
그러므로 이런 때일수록 세월을 아껴야 한다.
'세월을 아끼다'는 말의 의미는 '건져 올리다'는 뜻이다.
이는 낚시를 하는 사람이 물고기를 건져 올리는 것을 말한다.
주께서 우리를 사람 낚는 어부로 삼으셨으므로 우리가 아껴야 하는 세월은 다름 아니라 영혼을 건져 올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창세전부터 아들과 언약을 맺어 사람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영생은 아버지의 소원이요 아버지의 뜻이다.
아들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이 뜻을 이루시고자 창세전부터 시작하여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이 세상에서의 모든 삶에서 철저하게 복종하여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셨다.
자기의 뜻대로 하지 않으시고 오직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셨다.
그것은 아버지의 소원인 영생이다.
(요 12:49~50)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요 6: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요 6: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아버지의 뜻과 아들의 순종은 연합하여 하나가 되었다.
아버지 품속에 계시면서 연합하신 주님은 이 땅에서도 오직 아버지 안에 거하시면서 아버지의 말씀에 복종하실 때 창세전부터 사랑하심으로 주신 그 영광을 받으셨다.
이제 우리가 아들 안에 거하여 아들에게 복종함으로 주님이 주시는 사랑 안에서 그 영광을 보아야 한다.
아들의 생명을 얻은 자로 살면서 지혜롭게 행해야 할 것은 다름 아니라 영생이다.
주께서 복종하여 사랑 안에 거하신 것처럼 우리도 아들에게 복종하여 그의 사랑 안에 거해야 한다.
(요 15: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주님이 주신 계명은 영생을 얻도록 사도적 사명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는 일이다.
이 일을 행하는 자가 가장 지혜로운 자요 또한 궁창의 빛난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날 것이다.
나는 평신도로 섬길 때나 목사가 되어서나 전도는 사람을 교회로 데려오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나는 그 일에 많은 부담을 가지고 있었고 또한 잘 하지도 못하였다.
전도는 나의 일이 아니라 남의 일이었다.
그리고 전도는 그런 은사를 가진 특별한 사람이 하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목사가 되어서 내가 가장 못하는 전도부를 맡아 섬기게 되었다.
잘 하지도 못하고 은사도 없지만 내게 맡겨진 일이기에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전도팀을 이끌고 전도하러 나가기도 하고 또 전 교회적으로 전도축제를 기획하여 성도들을 달달 볶기도 하였다.
무조건 한 사람이 두 명 이상을 데리고 오도록 강요하였다.
전도를 하지 못하면 부끄러워 교회에 나오지 못할 정도로 다그치기도 했다.
성도들은 정말 순한 양처럼 잘 따랐다.
많이 데리고 온 사람들에게는 푸짐한 상금이나 상품을 주기도 하였다.
장로나 권사들은 직분에 대한 체면이 있어서 억지로라도 순종하였다.
전도축제 당일이면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 들어온다.
명단을 체크하고 선물을 나눠주고 예배실로 안내를 한다.
눈코 뜰새없이 바쁘다.
초대한 사람들을 모시고 예배실로 가면 이분들을 위하여 특별히 섭외한 외부 강사들이 나와서 찬양과 간증을 하며 이들을 울리고 웃긴다.
마지막에 담임목사님이 나와서 복음메시지를 전하는데 그 시간은 5분을 넘지 않는다.
그리고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최선을 다해 준비한 음식을 대접한다.
초대되어 온 새가족들은 1시간 여 동안 세상적 쇼를 방불케 하는 fun을 즐기고 먹고 마신다.
그리고 다음 주에 또 오라고 재 초청을 한다.
교회 오면 이렇게 재미있다고 포장하여 광고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초대되어 온 새가족들의 입장에서는 1시간 여를 재미있게 보냈을지 모르나 하나님 아버지의 편에서는 세월을 아끼지 못하고 날려버린 시간이나 다름없다.
진정으로 그 영혼들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어떻게든 인간적인 방법을 다 동원하여 그들의 마음을 붙잡으려 한다.
물론 전도축제에 순기능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처럼 떼거지로 사람들을 초청해서 잔치를 하는데 한 영혼의 가치에 얼마의 무게를 둘 수 있겠는가?
축제가 끝나면 몇 십 명 혹은 몇 백 명 왔는지가 최대의 관심사이다.
그리고 이들을 다음 주에도 초청하여 다시 오기를 원하지만 다시 오는 이들은 극히 드물다.
설령 다시 온다고 해도 교회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
교회에 오면 복 받는다고 하면서 그들이 땅의 것에 치심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결국 엄청난 돈을 들여서 초대해놓고 그들을 지옥에 가도록 만드는 것이다.
물론 극단적 표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전도축제의 순기능이 있다고도 말하였다.
하지만 정말 주님께서 이 전도축제를 가뻐하실까에 대한 고민을 심각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내가 목사로서 이 일을 진행했었고 담임이 되어서도 여전히 같은 마음으로 행했기 때문이다.
나의 진솔한 고백은 이들의 영혼구원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단지 몇 명 왔는지가 최대의 관심사이다.
그리고 아들을 어떻게 하면 다시 오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고민하였다.
왜 다시 오게 해야 하는가?
그들을 구원하여 영생을 얻게 하는 목적도 물론 있다.
그러나 솔직한 심정은 교인 숫자를 늘려서 빨리 부흥?하여 큰 교회를 만들고 남부럽지 않은 교회로 키워가는 것이 목적이다.
그렇게 하면 주변의 많은 목사님들이 부러워한다.
그 성장 방법과 노하우를 알기 위해서 찾아오기도 한다.
그래서 교회 성장 세미나를 열어 교회가 빨리 부흥하는 노하우를 전수해 주기도 한다.
또 전도왕으로 인정받아 전국 교회에 초청받아 전도 노하우를 전한다.
그렇게 전도했더니 이런 축복을 주셨다고 하면서 철저히 땅의 복 받은 것을 자랑한다.
듣는 성도들은 그 이야기에 도전받아 "나도 전도 열심히 해서 저런 복 받아야지"라고 한다.
그런데 그들이 받기 원하는 복은 영생이 아니라 물질과 자식 잘 되는 그런 땅의 복이다.
이제는 영혼의 가치에는 별 관심이 없다.
말로는 영혼 영혼 하지만 결국 숫자 싸움이다.
그리고 주님이 원하시는 영생이 아니라 결국 한 사람 담임목사님의 업적을 위대하게 하는 행사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인정받을지 모르나 하나님께는 천벌 받을 짓이다.
그런데 이런 일을 내가 행했었다.
(마 23:1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나는 이처럼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이었다.
나는 죽기에만 합당한 자이다.
이런 나를 주님은 살려 주셨고 아들의 생명으로 다시 새 생명을 얻게 하셨다.
위로부터 태어난 내가 할 일은 숫자가 아니다.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살리는 일이며 영생을 누리게 하는 것이다.
예수 믿으면서도 썩어 없어질 땅의 것에서 자유하지 못하는 세상의 포로들을 자유케 하는 것이다.
지금도 이 복음을 전하고 있다.
비록 적은 무리이지만 이들에게 온전한 복음이 증거되어 이 땅에서부터 주님의 뜻인 영생을 누리는 자들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듣는 자들의 숫자가 문제가 아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듣는 자가 있다면 참된 영생의 삶을 살도록 전할 것이다.
이것이 아버지의 소원이요 주께서 복종하신 일이기 때문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는 이제껏 세상이 주는 즐거움에 취해 있던 자였나이다.
목사인 제게 영혼을 맡겨주셨건만 나는 이들을 이용해서 나의 이름을 내고 나의 만족을 누리는 육신과 정욕의 술에 취해 비틀거렸나이다.
나는 이것이 주를 위한 일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날 향하여 엄하게 책망하셨나이다.
(마 7:21~23)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이처럼 나는 불법을 행하는 자였나이다.
이런 나를 구원하시고 영생의 복락을 주셔서 날마다 영생을 누리며 살게 하심은 오직 주의 은혜입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여 참된 하나님의 자녀, 영생의 삶을 누리는 자들이 많아지게 하옵소서.
주의 뜻에 복종하여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하므로 내게 주시는 주의 영광을 날마다 보게 하소서.
오늘도 말씀 묵상을 통하여 주의 영광 가운데로 나아갑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