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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1. 도안(圖案)의 비밀
세 사람은 나란히 대청에 가서 앉았다.
무림인들과 뭇 제자들이 차례로 도착했다.
용 도주는 각처 석실의 등불을 끄도록 명했다.
다른 사람이 무공에 열중하여 모임에 참석하지 않을까봐 염려
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다투어 자리에 앉게 되었다.
과거 삼십 년간 협객도에 온 무림의 우두머리들 가운데 수명이
다해 세상을 등진 분들 외에는 모두 다 모이게 되었다.
삼십 년 간 이 사람들은 조석으로 스물 네 칸의 석실에서 왔다
갔다 했기 때문에 한번도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본 적이 없었다.
용 도주는 큰제자에게 사람의 수를 파악하도록 했다.
사람들이 모두 참석한 것을 알고 다시 그 제자에게 몇 마디 분
부를 했다.
그 제자는 어안이 벙벙해진 표정으로 빠르게 움직이지를 못했
다.
목 도주 역시 자기의 큰제자에게 무어라고 나직이 몇 마디 당
부를 했다.
두 명의 큰제자가 사부들이 똑같이 그와 같이 말하는 것을 듣
고 무어라고 한마디 여쭌 후에는 십여 명의 사제들을 이끌고 대
청에서 나갔다.
용 도주는 석파천의 곁에 와 나직이 말했다.
[소형제, 방금 석실에서 있었던 일을 다른 사람에게 절대 말해
서는 안 되오. 아무리 친근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무공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리지 마시오. 그렇지 않으면 한평생 무
궁한 화근과 무궁한 번뇌가 생기게 될 것이오.]
석파천은 공손히 응수했다.
[알겠습니다. 삼가 도주의 분부를 받들겠습니다.]
용 도주는 다시 당부했다.
[또 옛날 속담에도 보물을 지니고 있는 것이 도적을 불러들이
게 되고 화를 도래한다고 했소. 그대가 절세신공을 지니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부러워하고 질투하는 일이 생
길 것이고 또한 전수해 달라고 강요하거나 청탁을 하러오는 사
람이 생기게 될 것인데 만약 이를 거절한다면그 자들은 온갖 방
법을 다해 그대를 해치려고 할 것이오……]
여기까지 말한 용 도주는 빤히 석파천을 바라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대의 무공이 아무리 고강하다 하더라도 너무나 착하고 고지
식해서 강호의 잔꾀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오. 그러니 그 일만은
결코 입밖에 내지 않도록 하시오.]
석파천은 공손히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도주께서 염려해 주신 데 대해 이 후배는 감사드
리는 바입니다.]
용 도주는 그의 손을 잡고 나직이 당부했다.
[애석하게도 나와 목 형제는 그대가 하늘이 내린 재주를 크게
펼쳐 강호에 위세를 떨치는 웅지를 보지 못하는 것이 유감이구
료.]
목 도주 역시 그들 두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짐작하
고 있는 듯 석파천을 바라보았다.
석파천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는 관심과 애석하다는 빛이 가
득 서려 있었다.
석파천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 두 분 도주는 정말 나에게 잘 대해주고 있구나! 내가 육지
로 되돌아가 수아를 만나게 되면 다시 그녀와 함께 섬에 와서
두분 어르신에게 인사를 드려야겠다.'
용 도주는 그에 대한 당부가 끝나자 자기의 자리로 돌아가 앉
았다.
그런 연후 그는 군웅들에게 입을 열었다.
[여러 친구들, 우리들이 이 섬의 한자리에 모이게 된 것도 인
연인가 하오. 이제 모든 사람들의 연분이 끝나게 되었으니 헤어
져야 겠구료.]
군웅들은 그 말을 듣자 깜짝 놀라서는 다투어 질문을 했다.
[그것은 무엇 때문이오?]
[섬에 무슨 일이 일어났소?]
[두 부 도주는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이러는 것이오?]
[두 부 도주는 섬을 떠나 멀리 가시려는 거요?]
한데 바로 이때였다.
갑자기 뒤쪽에서 우르릉 쾅 하니 우뢰와 같은 폭음이 여러 차
례 들려왔다.
군웅들은 즉시 입을 다물었다.
이 섬에 무슨 괴이한 변고가 난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의 빛을
보였다.
용 도주는 재차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을 이곳에 모시게 된 것은 협객행이라는 무학도해(武
學圖解)의 비밀을 풀고자 했기 때문이었소. 그러나 애석하게도
세월이 나를 놓아주지 않는구료. 이 협객도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다속으로 꺼져들게 될 것이오.]
군웅들은 깜짝 놀라 또다시 다투어 질문을 했다.
[무엇 때문이오?]
[지진 때문이오?]
[화산 폭발이오?]
[도주께서는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있소?]
용 도주는 천천히 입을 열고 말했다.
[조금전 나와 목 형제는 이 섬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화산의
용암이 분출되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소. 그 용암이 분출하게
되면 이 섬은 즉시 불바다로 화하고 말 것이오……]
그리고 그는 엄숙한 얼굴로 여러 사람들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
다.
[방금 은연중 들려온 우뢰소리는 큰 천재지변이 들어닥치게 되
는 것을 알린 것이외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빨리 이곳에서 떠나
가도록 하시오.]
군웅들은 반신반의했다.
서로 어떻게 할 바를 몰랐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석벽의 무공에 아직도 미련이 남아 목숨을
잃을지언정 이곳에서 떠나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와 같은 모양을 지켜보던 용 도주는 다시 말했다.
[여러분들이 믿을 수 없다면 석실로 가서 구경을 해보시오. 각
석실은 이미 무너져 앉았고 석벽도 망가졌을 게요. 지진이 일어
나지 않고 화산이 터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곳에 남아 있어 보
았자 할일이 없을게요.]
군웅들은 석벽이 이미 망가졌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라서는 다
투어 대청에서 달려나갔다.
그리고 뒷쪽에 있는 석실로 달려갔다.
석파천 역시 뭇 사람을 따라 함께 갔다.
각 석실은 아닌게 아니라 무너져 내려앉거나 벽이 허물어져 있
었고 석벽에 씌어 있던 그림과 글씨들은 모조리 망가져 있었다.
석파천은 용, 목 두 도주가 제자들을 시켜 일부러 망가뜨린 것
을 알고 미안하게 생각했다.
'모두가 나의 잘못으로 이와 같은 큰 화를 불러일으키게 되었
구나!'
한데 어떤 사람들은 석실과 도해가 훼손된 것은 지진에 의한
것이 아니고 사람의 손에 의한 것임을 발견했다.
따라서 그와 같은 사실을 떠들어대더니 재차 우르르하니 대청
으로 달려오게 되었다.
그들은 용, 목 두 도주에게 질문을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대청입구에 이르게 되었을 때 슬피 곡하는 소리가 크게
울려퍼지고 있지 않은가!
군웅들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용, 목 두 도주는 눈을 감고 앉아 있었고 뭇 제자들은 두 사람
의 주위에 엎드린 채 대성통곡하고 있었다.
석파천은 그만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을 느끼고 뭇 사람들을
헤치며 나아갔다.
[용 도주, 목 도주 어떻게 된 것입니까?]
두 사람의 얼굴은 이미 굳어져 있었다.
어느덧 그들은 세상을 등진 것이다.
석파천은 장삼과 이사를 돌아보며 물었다.
[두 분 도주는 조금전까지도 멀쩡하셨는데 어째서 금방……돌
아가시게 되었지요?]
장삼은 흐느끼며 말했다.
[두 분 사부님께서 돌아가시게 되었을 때 두 분이 품고 있던
커다란 숙원을 이루게 되어 이 세상을 떠나기는 하나 마음만은
그지 없이 평안하다고 하셨네.]
석파천은 여간 괴롭지 않았다.
그만 자기도 모르게 소리내어 울었다.
용, 목 두 도주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은 한편으로 연
세가 많은 이유도 있지만 도해의 비밀을 알게 된 이후라 이 세
상에 미련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석실에서 시험해 보느라고 손을 쓴 결과 끊임없이 뻗쳐
오는 석파천의 내력을 막다보니 그만 지쳐서 등불의 기름이 다
한꼴이 되고 말았다.
따라서 석파천은 두 도주의 죽음이 자기와 실제로 커다란 관계
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는 무어라고 형용할 수가 없는
가책과 슬픔을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황삼을 걸친 큰제자는 눈물을 훔치고 낭랑히 외쳤다.
[여러 귀빈들. 저의 은사들께서는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러
나 여러분들이 한시바삐 이 섬에서 떠나가셔야 한다는 유명을
남기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여러 군웅들을 돌아보며 다시 힘주어 말했다.
[여러분들이 이전에 얻은 상선벌악의 동패는 이후에는 도움될
일이 있을지 모르니 버리지 마십시오. 그리고 훗날 여러분들에
게 어려움이 있을 때면 남해가의 그 조그만 어촌으로 동패를 가
지고 찾아오십시오. 그러면 저희 형제들은 정성을 다해 조금이
나마 힘이 되어 드리도록 노력하겠소이다.]
군웅들은 크게 실망한 끝이었으나 그와 같은 말을 듣자 다시
기쁜 빛을 떠올렸다.
협객도의 뭇 제자들의 무공이 얼마나 놀라운가를 글들은 잘 알
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나선다면 이 세상의 어떠한 화근이라도 막지 않
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었다.
이때 청삼을 입은 큰제자가 외쳤다.
[해변에 배들이 이미 준비되었으니 여러분들은 즉시 출발하도
록 하십시오.]
그리하여 군웅들은 다투어 용, 목 두 도주의 시체에 큰절을 하
고 작별을 고했다.
장삼과 이사는 석파천의 손을 잡았다.
장삼은 슬픔에 찬 어조로 당부했다.
[형제도 빨리 떠나게. 이후 우리들은 반드시 자네를 찾아보겠
네.]
석파천은 두 사람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백자재를 따라 많은 사
람들과 더불어 해변가에 이르렀다.
그리고 배에 올라서는 출항을 기다렸다.
그들이 탄 배는 커다란 해선이었는데 모두 세 척이나 되었다.
군웅들은 모두가 이 배들을 타고 떠나게 된 것이다.
이윽고 닻줄이 풀어지고 다시 감기게 되었는가 하면 다시 올려
졌다.
그리고 천천히 섬에서 멀어져 가게 되었다.
협객도에서 십 년 이상이나 살고 있던 사람들은 도해와 그림에
대해 거의 심취된 상태였다.
따라서 석벽이 망가진데 대해서 애석해마지 않았다.
또 어떤 사람들은 진작 한벌 베껴놓는 것인데 베껴 놓지 않았
다고 후회를 했다.
여기 저기서 애석해 하는 장탄식과 가슴을 치는 소리가 들려왔
다.
그러나 새로이 온 사람들은 고향에 돌아간다는 기쁨이 아쉬움
보다 더 컸다.
한데 협객도가 점점 멀어지자 석파천은 갑자기 한 가지 사실이
떠올 그만 등골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자기도 모르게 그는 발을 구르며 말했다.
[야단났군, 야단났어! 할아버지 오늘이 몇 일이지요?]
백자재는 깜짝 놀라서는 부르짖었다.
[어이쿠!]
그는 너무나 놀란 나머지 수염마저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나는 잘 모르겠는데……오늘이……몇 일이던가?]
정불사는 선실의 한쪽 모퉁이에 앉아있다가 물었다.
[도대체 갑자기 날짜는 왜 묻느냐?]
석파천은 다급한 음성으로 물었다.
[정 넷째 할아버지, 우리가 협객도에 온 지 며칠이나 되었습니
까?]
정불사는 곰곰히 생각하더니 말했다.
[백 일이 되어도 좋고 이백 일이 되어도 좋은데 누가 그까짓
것을 기억하고 있느냐?]
석파천은 초조해져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고
삼 낭자에게 물었다.
[우리들이 동짓날에 이곳에 왔는데 지금은 이월 말이 되었겠지
요?]
고삼 낭자는 잠시 헤아려 보더니 입을 열었다.
[우리들이 섬에서 보낸지 곧 넉 달이군! 오늘이 삼월 스무닷새
가 아니면 엿새가 될 거 같군.]
석파천은 그만 놀라 부르짖었다.
[삼월이라구요?]
고삼낭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백자재는 가슴팍을 쳤다.
[이거 야단났구나 야단났어!]
정불사는 껄껄 소리내어 웃었다.
[어 시원하다. 어 시원하다!]
석파천은 노해 부르짖었다.
[정 넷째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는 이월 말까지 백 할아버지가
돌아오시지 않는다면 바다에 뛰어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뭐가
시원하다는 겁니까? 수아도……바다에 뛰어든다고 했는데……]
정불사는 그만 멍청해졌다.
[이월 말에 바다에 뛰어든다구? 그럼 지금이 삼월 하순이란 말
이지……]
석파천은 울면서 부르짖었다.
[그래요.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정불사는 노해 부르짖었다.
[소취는 이월 말에 바다에 뛰어든다고 했으면 지금은 이미 죽
은지 스무날이 넘었을 것이니 별 도리가 없지 않느냐? 그녀의
고집이 너무나 세어서 탈이야……]
그리고 그는 오히려 백자재에게 화풀이를 하려고 했다.
[백자재 제기랄! 이 늙은 것아, 너는 어째서 진작 돌아가지 않
고 여태까지 버티고 있었느냐? 이 개가 낳은 늙은 녀석아!]
백자재는 가슴팍을 치면서 부르짖었다.
[맞아 맞아! 나는 후레자식이야! 나는 늙은 도적이야.]
첫댓글 우선 출석부 도장 찍고..
이제 천천히 개잡종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길 기대합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즐감~1
^^
즐감요
즐감했읍니다
즐감
즐감~2
ㅎㅎㅎ
좋아좋아
즐감하고 갑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즐감
즐겁게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독
잘읽었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잘 보고 갑니다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