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
- 기도는 나의 성소 / 임언기 신부 지음
뉴욕 대교구의 어느 사제가 로마의 한 성당에 기도하러 들어가다가 입구에서 한 거지를 만났다. 그를 얼핏 바라보던 그 사제는 그가 자신과 같은 날 사제가 된 신학교 동료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 사람이 지금 길에서 구걸을 하고 있는 것에 놀라며 그는 거지에게 자신이 누구라고 인사를 하였다. 그리고 그 거지에게서 그가 믿음과 소명을 잃어버렸다는 말을 듣고 몹시 충격을 받았다.
다음 날 그 사제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개인 미사에 참석하였고, 교황에게 인사를 할 수 있었다. 자기 차례가 되어 교황 앞에 무릎을 꿇은 그는 자신의 옛 신학교 동료를 위해 기도를 청하고 싶은 충동을 느껴 교황에게 간략하게 설명했다.
하루가 지나 그는 바티칸으로부터 교황과 저녁 식사에 그 거지를 데리고 참석해 달라는 초대를 받았다. 그 사제는 숙소로 돌아가 옛 친구에게 교황의 초대를 전하고, 그를 설득하여 씻기고 옷을 갈아입혀 교황 앞에 데려갔다. 저녁 식사 후에 교황은 거지와 둘만 있게 해달라고 사제에게 부탁하였다. 교황은 그 거지에게 자신의 고해성사를 청했다. 그러자 그는 놀라며 자신은 지금 사제가 아니라고 말했다. 교황의 대답은 이러했다.
“한 번 사제이면 영원한 사제입니다.”
거지는 “저는 이제 사제의 권한이 없습니다.”라고 고집했으나 교황은 “나는 로마의 주교입니다. 이제 내가 그 사제의 권한을 수여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교황의 고백을 듣고 나서 자신의 고백을 들어 달라고 교황께 청했다. 그는 몹시 흐느껴 울었다. 마지막으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그에게 어떤 교구에서 구걸하는지 묻고는 그를 그 교구의 특수 사목 사제로 임명하고 거지들을 돌보는 일을 맡겼다.
『아우스크루키 호이테』(Aus Cruci Heute) 2001년 10월호에 「한 번 사제는 영원한 사제이다」라는 제목으로 실렸던 이 기사는 사제직을 떠났다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만나 회심하게 된 어느 사제의 이야기이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이러한 삶의 면모를 보면서 '진짜 성인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구나!' 하고 느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로부터 교회의 맺고 푸는 권한을 받으신 첫 교황 베드로의 후계자이신 그분의 인격 안에서,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이신 그분 안에 정말로 우리 주님께서 살아계심을 묵상하게 된다.
이것은 탈선한 사제의 허물과 죄악과 실수를 합리화, 미화, 정당화시켜 주는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죽음보다 더 큰 사랑으로 인류의 모든 죄악과 불의, 불신과 미움을 흡수하신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의 승리다.
이것은 그 어떤 허물과 죄악과 실수 안에서도 그래도 아직 남아 있는 선성을 찾아내고 회복하고 촉진시켜서 새 사람이 되게 하는 용서와 자비의 진면목이요, 진수다. 이것은 착함 자체, 선함 자체이시며 절대선이신 주님께서 당신의 모습을 닮은 사람 안에서 당신께서 베푸신 선을 다시 찾으시고, 당신의 모습을 다시 각인시켜 주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무죄하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성모님의 살과 피를 취하고 오셔서 십자가에서 고난받고 버림받고 죽으신 이유다.
칠성사 중에서 영혼에 낙인(印號)이 박히는 성사는 세례성사·견진성사·성품성사인데, 이 인호는 천국, 연옥, 지옥 어디를 가든 사실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것이다.
'한 번 사제는 영원한 사제'(Tu es sacerdos in aeternum). 가톨릭 교회의 수장이신 교황님께서 몸소 그에게 고해성사를 봄으로써 단순한 겸손의 모범뿐만 아니라 그의 죄악과 허물과 관계없는 성품권의 위대함과 영원성을 증명하고 그것을 회복시켜 주셨다. 또한 그가 그동안의 죄악과 허물과 실수를 뉘우치고 교황님께 고해성사를 보게 함으로써 한 영혼을 구하고, 사제직이라는 성소가 얼마나 소중하고 주님의 큰 부르심인지, 자신의 성소를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을 키워 주신 것이다. 그는 분명히 이다지도 큰 용서와 자비로 표출되는 주님의 사랑을 교황님을 통해 얻어 입었기에 정말로 죽는 날까지, 하느님께서 불러 주시는 그날까지 참으로 겸손하게 충성 그리고 또 충성을 하느님과 교회에 드러냈을 것이다.
진정한 회개의 메시지는 세례자 요한의 하느님의 정의와 심판을 근거해서도 선포되지만, 잃어버린 양 한 마리, 잃어버린 은전 하나까지 찾아 나서시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근거해서 선포되는 것이다.
확실히 아무나 거룩하신 주님을 닮아 성인이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사랑, 사랑, 사랑은 허다한 죄를 용서해 준다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대로 사랑을 본질로 가지신 주님 사랑의 크기로 성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10, 37).
주님의 이 말씀이 귓가에 맴돈다.
- 기도는 나의 성소 / 임언기 신부 지음 / 도서출판 빅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