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그 저녁에 대하여
송진권
뭐라 말해야 하나
그 집 지붕 아래 수수깡 드러난 처마에 대하여
서까래를 밟으며 지나간 검댕 묻은 전깃줄을
꼬옥 쥐고 있던 애자에 대하여
처마마다 한발이나 되게 매달리던 고드름들에 대하여
댕그랑댕그랑 톰방톰방 뚝뚝 똑똑
오도독 오독 함께 살던 소리들에 대하여
그 집에 살던 사람들의 사진이 걸린 파리똥 앉은 사진틀에 대하여
저녁거리 시래기를 내리던 마른 손에 대하여
서까래에 매달려 있던 씨갑시 봉지들에 대하여
제비똥 떨어지지 말라고
제비집 아래 달아둔 송판에 대하여
처마 밑에 매달린 둘둘 말린 멍석이며
양말 주머니 매단 기다란 감전지에 대하여
고드름 떨어지는 소리에 놀란 개가
컹컹 짖던 것에 대하여
어떻게 다 말해야 하나
그득 불을 문 아궁이에 대하여
처음 내게 불 피우는 걸 알려주던 이에 대하여
재를 헤집으면 나오던 감자알이며
아궁이 속에 살던 강아지들에 대하여
어떻게 다 말해야 하나
숯검댕 묻은 굴뚝새에 대하여
시래기 삶는 내며
쇠죽 끓이는 냄새를 맡고
빼꼼히 들여다보던 송아지 콧구멍에서 나오던 허연 김에 대하여
― 송진권 시집, 『원근법 배우는 시간』 (창비 / 2022)
송진권
충북 옥천 출생. 2004년 창비신인시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자라는 돌』 『거기 그런 사람이 살았다고』, 동시집 『새 그리는 방법』 『어떤 것』. 천상병시문학상, 고양행주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