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는 진실로 능하기도 어렵고 또한 말하기도 어렵다. 병법(兵法)에 비유하자면, 저 조괄(趙括)처럼 병법을 쉽게 말하면서 스스로 능하다고 여기는 자는 바로 그 오묘함을 터득하지 못한 경우와 같다.
나는 소싯적에 시에 종사하였지만 그다지 힘을 쏟지 않았는데, 약관(弱冠)의 나이에 진사(進士)가 되고 나서는 곧 필연(筆硯)을 버려 두고 감히 이로써 자임하지 않았으니, 이는 시에 능하기 어려움을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중간에 오래도록 병을 앓음으로 인하여 모든 인사(人事)를 끊고 고금(古今)의 여러 시집을 제법 읽었는데, 특히 초당(初唐)과 성당(盛唐)의 시법(詩法)을 좋아하게 되어 그 체격(體格)을 살피고 그 의취(意趣)를 탐구하여 다소나마 자득한 것이 있었다. 그런 뒤에야 시를 말하기 어렵다는 걸 더욱 믿게 되었다. 참으로 침잠하고 완색(玩索)해서 오묘한 경지를 단박에 깨달은 경우가 아니라면 진실로 논할 것도 없거니와, 글자 하나가 어울리지 못하거나 말 하나가 적합하지 않더라도 역시 시에 능함이 될 수 없으니, 시를 과연 쉽게 말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이런 까닭으로 혹여 시를 지었다 하더라도 곧바로 시고(詩藁)를 훼손하여 남에게 보여 준 적이 없었는데, 전란을 겪은 나머지 얼마 안 되는 시고마저 흩어져 거의 다 없어졌다.
그런데 정유년(1597)에 이르고 나서는 지우(知友) 두세 명의 강요에 못 이겨 이따끔씩 수창(酬唱)한 시가 있으면 대충이나마 수록하니 도합 약간 권(卷)이 이루어졌다. 마침 내 시를 보려는 자들이 있었는데, 그 양이 너무 많음을 불편하게 여겨 또 원래의 시고 가운데 절반만 취해 정서하여 사람들의 요구에 부응하였다. 이는 내가 감히 시에 능하다고 여겨서가 아니라, 요컨대 능하지 못함으로써 능한 이에게 질정하기 위해서일 뿐이다. 번역: 고려대학교 한자한문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