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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Korean Democracy, the People Are a Wrathful God
한국 민주주의에서 인민은 격노한 신이다.
Koreans demanded, and received, the impeachment of their president. But there's a thin line between the collective will and mob rule.
By Michael Breen
한국인들은 대통령탄핵을 요구했고 이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집단의지와 떼법이라는 희미한 경계선이 존재한다.
마이클 브린
The preamble to the Constitution notwithstanding, “We the People” don’t exactly rule in the United States. A legal document, the Constitution, looms godlike over the affairs of Americans. Some form of that goes for most democracies. The laws are in charge, not the public — at least not directly.
헌법전문을 보면 그럼에도 우리 인민은 엄밀히 말해 미국을 통치하지 않는다. 법조문에 헌법은 미국인들의 일상사에 신처럼 어렴풋이 나타난다. 그런 형태가 민주주의적 요소의 대부분을 지탱한다. 적어도 직접적인 것이 아닌 그렇다고 대중에 의한 것도 아닌 법률이 이것을 떠맡는단 말이다.
South Korea presents an unusual case — and last week’s impeachment of President Park Geun-hye is a case in point — of a country where the rulers and the ruled not only believe that the people exist but in fact accept that the people, or some mystical conception of their collective will, are directly in charge.
한국은 유별난 경우다. 그리고 지난 주 대통령 박근혜 탄핵이 특히 그런데 통치하는 자와 통치 받는 자들은 인민의 존재를 믿을 뿐 아니라 인민이 그들의 집단의지라는 상징적 개념을 직접적으로 떠맡는다는 사실 또한 수용한다.
This notion lies behind the country’s feisty politics and helps explain why it is, arguably, the most directly democratic country in Asia. Whether that’s a good thing or not depends on how much you trust the people’s spontaneous collective judgment.
이런 통념이야말로 이 나라의 활기찬 정치의 이면인 것이고 왜 아시아에서 직접민주정치가 가장 격렬한 국가인지 설명하는 데 일조한다. 이것의 좋고 나쁨은 당신이 인민의 자발적인 집단정의를 얼마나 신뢰하느냐에 달려있다.
The idea of the people being in charge seems easy to understand, but it is actually difficult to grasp, and accept as valid, when you come from a more law-based version of democracy.
칼자루를 쥔 인민이란 개념은 이해하기 쉬울 것 같으면서도 당신이 보다 법치에 기반한 민주국가 출신이라고 가정한다면 그 실체가 손에 잡히고 적법한 것으로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Thus, for foreign correspondents in Seoul, where for the past few weekends hundreds of thousands of protestors have flooded the boulevards in the city center near the presidential Blue House, the events can be difficult to make sense of.
따라서 지난 몇 주 동안 수십만 명의 시위자들이 청와대 인근 시내 중심대로로 쏟아져 나온 걸 목격한 서울주재 외국인 특파원들에게 이 사건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Already a narrative is falling into place whereby the downfall of Park, who was impeached by Korea’s parliament on Dec. 9, is seen as having resulted from lawbreaking.
12월9일 국회로부터 법률위반행위로 탄핵당한 대통령 박근혜가 실각한다는 얘기는 이미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This argues that it started with statements by prosecutors that she allowed her best friend to shake down Samsung and other conglomerates and edit confidential drafts of presidential speeches in violation of secrecy rules.
이런 주장은 대통령 박근혜가 그녀의 가장 친한 친구로 하여금 삼성과 다른 재벌들의 돈을 갈취하고 국가기밀누설죄로 대통령 연설 기밀초안을 편집하는 행위를 허용했다는 검찰 측의 발표로 시작됐다.
But actually the downfall of Korea’s sixth democratically elected president was triggered by something else.
하지만 실제로 한국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여섯 번째 대통령의 몰락은 이것이 아닌 다른 것에 의해 촉발됐다.
It was We the People. They got angry because of a TV report that said their president was being manipulated and essentially being told what to do by a lady who was completely unknown to the public.
그것은 바로 인민이었다. 대중에 전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여성에 의해 대통령이 조종당했고 본질적으로 국정 현안을 지시받았다고 보도한 티브이 때문에 그들이 분노했다.
A few weeks later, the president has been impeached. If Korea’s democracy were as law-based as that of the United States, the process would have been like the two long years of Watergate investigations. She would have hung on until her term ended in February 2018.
몇 주 뒤 대통령은 탄핵되었다. 만약 한국의 민주주의가 미국만큼 법치에 기반한 사회였다면, 그 절차는 2년간의 워터게이트 조사와 같은 절차를 밟았을 것이다. 대통령은 2018년 2월까지 임기를 보장받았을 것이다.
So, what is the nature of this people power? In Korea, when popular feeling pushes past a certain limit break, it warps into a beast that is powerful enough to rip through decision-making and the established law.
그래서 이 인민의 힘이 지닌 본질은 무엇인가? 한국에서 대중정서가 한계점까지 빠르게 도달할 때 이는 정책결정과 확립된 법을 뒤엎을 정도로 강력한 야수로 돌변한다.
Koreans call it “public sentiment.” This is as tame an expression in Korean as it is in English and does not convey the underlying phenomenon. A more accurate phrase would be “the emotion of the masses” or “mob passion.” But these have negative connotations, and public sentiment for Koreans is anything but negative.
한국인들은 그것을 ‘국민정서’라 부른다. 이는 영어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어로도 친숙하게 쓰이는 표현이고 기저된 현상을 전달하지 않는다. 보다 정교한 표현은 ‘대중의 정서’ 내지 ‘군중열정’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부정적 함의가 담겨있지만 한국인들에게 국민정서란 절대로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It is the collective soul, and it is considered supreme. Koreans even have a saying about it: “The law of public sentiment is above the law.”
이는 집단영혼이며 가장 중요한 것으로 간주된다. 한국인들은 국민정서에 즈음해 이렇게 말하기까지 한다. “국민정서법이 법보다 위에 있다”
The Korean notion of democracy puts the people first. The unspoken deal with presidents, for example, is that the people choose someone to preside over public events, hobnob with foreign dignitaries, and generally get to feel as if she’s important.
한국에서 민주주의란 통념은 인민을 그 앞에 먼저 세운다. 예컨대 대통령과의 암묵적 거래는 공식행사와 외국고관들과 환담할 사람을 택하는 것이며 일반적으로 그가 중요한 인물이라는 것을 인식토록 하는 것이다.
But she’s there to do the bidding of “public sentiment.” As Kim Dae-jung, the Nobel Peace Prize winner and former president, used to say: “The people are God” — a God whom the Korean president is expected to honor.
그러나 그가 국민정서라고 명령하는 경우가 있다. 전 대통령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 김대중이 말했던 것처럼 “인민은 신이다”란 뜻은 한국대통령은 영예로운 자리로서 주목받는 신을 말하는 것이다.
The Korean president’s role as an object of public emotion is a function of the office’s enormous powers. By contrast, the prime minister, who in theory runs the cabinet, is a symbolic figure.
국민정서의 대상으로서 한국대통령의 역할은 직무 중 엄청난 권력행사로서 기능하는 것이다. 대조적으로 이론상 내각을 이끄는 총리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Ask any Korean at any time who the prime minister is, and more than half of them won’t know.
언제든지 총리가 누구냐고 한국인 아무에게나 붙잡고 물어보면 그 중 절반은 모른다.
The National Assembly — Korea’s parliament — has a role to check the workings of the government and pass laws but is mainly seen, in this picture of the Korean power structure, as a forum in which future presidents jostle and posture.
국회, 즉 한국의 의회는 국정업무를 견제하고 법을 통과시키는 역할을 수행하나 주로 눈에 비춰지는 것이 있다. 한국의 권력구조라는 그림에서 미래대통령을 밀고 포즈를 취하는 모임으로서 말이다.
It is the president who rules, and she does so because the people have put her there. The reason the beast has been awoken to fury now is because Park strayed onto the path of heresy.
그게 바로 통치하는 대통령인 거고 대통령은 인민에 의해 그가 그 자리에 앉혀있기에 그러는 것이다. 야수가 깨어나서 분노하는 까닭은 지금 대통령 박근혜가 이단 종교에 빠져 타락했기 때문이다.
She put her friend Choi Soon-sil up on the altar and bowed down before her, not the people – and in doing so, she broke the first commandment: “Thou shalt have no other gods before me.”
박근혜는 친구 최순실을 제단 위에 놓고 인민이 아닌 그녀 앞에 맹세했다. 그리고 그랬기 때문에, 박근혜는 첫 번째 약속을 어긴 것이다. “당신은 나 앞에 다른 어떤 신을 믿어선 아니된다”
This theology makes for powerful feelings, which is why, a few days after the reports about Choi’s influence broke and when foreign observers were still bewildered, those with Korean spouses or friends — who were liable to be screaming at the TV — knew that Park was done for.
이런 심리는 최순실의 영향력을 보도한 기사가 나가고 며칠 후 외국인들이 여전히 이 기사에 당혹해 했을 무렵 티비를 보며 쉽사리 비명을 질렀던 한국인 배우자 내지 친구들이 있는 이들이 왜 박근혜가 최순실 때문에 그랬는지에 대한 그들이 갖는 강한 심리적 정서를 뒷받침 한다.
And when the beast is in charge, the authorities follow. Decision-making, whether it is moved by lawmakers, investigations by prosecutors, or probes by tax officials, comes in response to the perceived orders of the people, as expressed in a mixture of street protest, online commentary, and newspaper stories on a certain scale.
그리고 야수가 칼자루를 쥐는 순간, 권한은 뒤따라온다. 이것이 국회의원, 검찰조사, 세무조사 등 어느 기관을 통해 이루어지든 간에 정책결정은 인민의 감지된 명령에 따라 거리시위, 온라인 댓글, 그리고 일정비중의 신문스토리 등의 혼합체로 표현되는 바와 같이 나타난다.
In 2007, after Seung-hui Cho, a Korean-born American resident and student in the United States, shot and killed 32 people and wounded 17 more in a shooting spree on the campus of Virginia Tech, the assumption in Korea was that public sentiment in America would rise up, make George W. Bush’s administration drop its consideration of a visa waiver program for Koreans, and force Congress to vote down the free trade agreement that had just been negotiated between the two countries.
2007년, 한국태생의 미국거주자이자 학생인 조승희가 버지니아 공대캠퍼스에서 총격사고로 32명을 사살하고 17명 이상에 부상을 입힌 뒤, 한국 내 예측은 미국 내 반한감정이 고조되면서 조시 부시 행정부의 한국인 대상 비자면제 프로그램 도입고려를 철회토록 하고, 의회로 하여금 두 나라 간 협상 중이었던 자유무역협정에 반대표를 행사토록 강요할 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That’s because that is the kind of reaction seen in Korea when the story is the other way around. In 2002, for example, after a horrible traffic accident in which two schoolgirls were run over and killed by an American military vehicle, tens of thousands of protestors came out day after day, demanding that the drivers be jailed for murder. The crowds believed the killing had been deliberate.
왜냐면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그 스토리를 바라볼 때 이는 한국에서 나타나는 일종의 상호작용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2002년 두 여학생이 미군장갑차에 치여 사망한 끔찍한 교통사고가 발생한 후 운전병을 살인죄로 감옥에 보낼 것을 요구하며 수만명의 군중이 날마다 거리에 나왔다는 것이 그것이다. 군중들은 살인사건이 의도된 것이었다고 믿었다.
In 2008, similar numbers protested when the government lifted restrictions on U.S. beef imports, some years after an outbreak of mad cow disease. Schoolchildren joined the protests in the thousands, believing that America was sending beef to Korean school canteens that was unfit for consumption in America itself.
2008년, 비슷한 인원의 시위대들이 정부가 미국쇠고기 수입규제를 풀자 광우병 발생 몇 년 후 항의농성을 벌였다. 미국이 자국 내 소비에 부적합한 쇠고기를 한국 내 학생급식식당에 보내고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학생들이 수천여명에 달하는 시위에 합류했다.
The United States, of course, is too close an ally for the government to feel pushed to do anything drastic like close down U.S. military bases. And anyway, that is not what public sentiment wants.
물론, 미국은 정부 측에서 미군기지 폐쇄 같은 과감한 조치를 강행하기엔 너무나 가까운 혈맹이었다. 그래서 어찌됐든 이는 국민정서가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I learned this during the 2002 protests when U.S. newspapers suggested that perhaps if we’re not wanted, we should leave. That led to renewed anti-American protests — this time America’s offense was failure to understand anti-Americanism.
나는 미국 신문들이 한국민이 우리를 원치 않는다면, 한국을 떠나야 한다는 제안을 2002년 반미시위 기간 중 들었다. 이는 되살아난 반미시위로 이어졌는데 이때 미국의 불쾌감은 반미정서에 대한 이해부재였던 것이다.
Korean protestors wanted the United States to stay, but they wanted American troops to act with more respect toward them.
한국민들은 미국이 한국에 머무르기를 바라지만 그들은 미군이 그들을 더욱 존중해주면서 행동하길 바란다.
Such protests did not lead to U.S. base closures, because that is not want the protestors wanted, but they did lead to an increased willingness by the U.S. military in Korea to hand over soldiers who commit crimes to Korean courts rather than handling them in U.S. military tribunals.
그런 시위는 미군기지 폐쇄로 이어지지 않았는데 이는 시위대들이 원했던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시위는 미군범죄자들을 미군재판소에 넘기는 것이 아닌 한국법정에 그들을 기꺼이 넘기겠다는 미군 측의 태도변화로 이어졌다.
It also led to a number of outreach programs that have resulted in vastly improved relations.
이는 또한 크게 개선된 관계를 가져다준 갖가지 원조 프로그램으로 이어졌다.
In Korea, there is an enormous level of public pressure on legal judgments. We can say with some certainty, for example, that regardless of what Park has or hasn’t done, she will end up in jail.
한국에선 법적판단에 임박해서 상당한 수준의 대중적 압력이 뒤따른다. 예컨대 박근혜가 비리를 저지르건 아니건 간에 그녀가 감옥에 갈 거라고 단언할 수 있다.
The law is sufficiently open to interpretation for prosecutors to make a case when public sentiment is driving an issue. Where it’s not, they can resort to other means — like leniency deals with peripheral presidential aides if they agree to the prosecutor’s scenario.
법은 대중이 한 가지 이슈를 끄집어내는 사이에 검찰이 사건을 기획하는 작업에 다분히 노출돼 있다. 이게 아니더라도 검찰은 다른 수단을 강구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일단 대통령측근들이 검찰의 시나리오에 동의만 해준다면 양형을 감해주는 거래 등을 통해서 말이다.
And when that doesn’t work, prosecutors drag out the process so that by the time of the final appeal, public sentiment has moved on and a not-guilty verdict or a light punishment does not upset anyone too much.
그리고 이것이 별 효과를 못 볼 때 검찰은 최종적으로 항소할 시기에 국민감정을 자극하면서 어느 누구로 하여금 무죄 판결 내지 가벼운 양형에 크게 당황케 하지 않도록 그 같은 절차를 끌어들인다.
Koreans have an expression that covers this — “beat a coat and the dust will fall out” — meaning that an investigation will produce something to get the victim on, however unrelated to the original impetus behind the investigation.
한국인들에게 이것을 지칭하는 표현이 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 즉 어떤 조사든 한 명의 희생양을 낳을 것이라는 의미인데 이는 조사 이면의 본질과는 아무 연관성이 없다.
That, of course, is not to say Park is not guilty of anything. The point is that at this stage, even though she has been impeached, the evidence is still opaque and she’s had little chance to offer a serious defense. But that hasn’t stopped the public from declaring her guilty.
물론 박근혜에게 죄가 없다고 말하는 바가 아니다. 요지는 이 시점에서 그녀가 탄핵 당했다 해도 증거가 여전히 불충분한데다 그녀에게 변론의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대중으로 하여금 그녀의 유죄선언을 막지 않는다는 것이다.
The beast of public sentiment doesn’t pause to think. When the story broke in late October, the image that led Koreans to think that their president had broken trust with them and belonged in a psychiatric ward was of an elderly single woman, estranged from her siblings, who had been passively taking orders from a manipulative best friend.
국민정서라는 이름의 야수는 이 같은 사고를 막지 못한다. 이 기사가 10월말에 터졌을 때 한국민과의 신뢰를 깼고 정신착란적 단어를 남발한데다 가장 친한 친구로부터 수동적으로 조종을 받아왔던 대통령의 이미지는 형제자매와 관계가 소원한 연로한 싱글여성이었다는 사실이다.
The public immediately exploded in fury and demanded that she step down to make way for a proper leader.
대중은 즉시 분노하며 지금 당장 대통령직에 적합한 지도자에게 길을 터줄 것을 요구하며 사퇴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But then something interesting happened. As the story unfolded, the growing evidence — mostly in the form of information coming out of the prosecutor’s office but also some investigative work by newspapers — quickly altered that original picture of a docile Park.
그러나 이때 흥미진진한 일이 발생했다. 이야기가 공개되자 불거져 나오는 증거, 이를 테면 검찰뿐 아니라 언론의 조사업무에서도 밝혀진 고분고분했던 박근혜의 본 모습을 빠르게 바꿔놨다는 것이다.
Now, the focus is on whether Park directed Choi and benefitted herself from Choi’s leveraging of her relationship with the center of power. And that turns the story into something far more routine for Korean presidents: good old-fashioned corruption.
지금 초점은 박근혜가 최순실에게 지시하여 권력의 중심부와 연결된 최순실의 지렛대로부터 본인이 이득을 취했는지 여부이다. 그리고 이전 한국 대통령들에게 한층 더 흔한 스토리로 화제를 전환함으로써 구태의연한 부패사건의 좋은 예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Of the six previous presidents, two have been jailed for corruption, among other charges; one committed suicide thereby ending the investigation; and two saw family members jailed for exerting undue influence.
여섯 명의 전직 대통령 중 두 명이 부패혐의로 감방에 갔고 그 밖에 부패혐의가 있던 이들 중 한 사람은 자살하면서 수사가 종결됐다. 그리고 두 명은 가족이 부적법한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로 감옥에 가는 걸 지켜봤다.
(The difference in these cases from Park’s was that despite rumors and suspicions, the cases were not fully revealed until after the president had stepped down)
박근혜 사건과 이들 사건의 차이는 루머와 의혹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물러나지 않은 이상 이 사건의 실체가 전적으로 드러난 바가 없다는 것이다.
But public sentiment, once inflamed, does not concern itself with such details. Once the story is out, it is up to the authorities to do their part, find the president guilty, and get rid of her. The beast will not be denied.
그러나 국민정서가 일단 불꽃을 점화하면 세부적인 사실을 제시해도 그 자체는 안중에 없다. 일단 스토리가 퍼져나가면 대통령의 유죄를 찾아내서 그녀를 끌어내리려는 행정당국의 의지에 달려 있다. 야수는 이를 마다하지 아니할 것이다.
첫댓글 어려운글을 일목요연하게 쉽게 번역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대단합니다!!! 놀랍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