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에 내려앉은 가을
치과 진료를 다니다 보니 즐겨 드는 곡차를 보름째 못 들어 답답하다. 그럼에도 두 차례 금주 계율을 어겼다. 한글날 거제 머물면서 해안선 답사를 나서 멋진 풍광에 도취해 곡차를 몇 잔 들었다. 그 지역 명품 곡차 저구 막걸리였다. 주말을 앞두고 창원으로 돌아온 시월 둘째 금요일 저녁이었다. 이웃 아파트 사는 친구와 반갑게 만나 맑은 술잔을 기울였다. 잇몸이 괜찮아야 할 텐데.
시월 둘째 일요일이었다. 동선을 멀리 잡지 못하고 집 근처 산책을 나섰다. 도심까지 찾아온 가을의 서정과 운치가 어떠한가가 궁금했다. 아직 서리가 내리질 않아도 아파트단지 고목 벚나무는 단풍이 일찍 물들어 나목이 되고 있었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니 우람한 메타스궤이아 가로수는 청청한 잎이 약간 누렇게 변해 가고 있었다. 서리를 맞아야 갈색으로 바뀌어 소신공양할 듯하다.
퇴촌삼거리에서 창원천변 수변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반송공원 북사면 활엽수림은 아직 푸른 잎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산책로 따라 심겨진 벚나무는 낙엽이 지고 있었다. 초가을까지 선홍색 꽃을 피우던 배롱나무는 꽃도 잎도 사위어갔다. 이른 봄 노란 꽃이 피어 눈길을 끌던 산수유나무는 붉은 열매를 맺어 있었다. 요즘은 도심에서도 봄에는 산수유꽃을 볼 수 있고 가을에 열매를 본다.
개울가로 내려가 봤다. 수크령과 물억새가 가을 운치를 더해 주었다. 습지에서 군락으로 자라는 고마리는 좁쌀 같은 꽃이 절정을 지나고 있었다. 서리가 와도 한동안 꽃과 잎이 살아남는 특성이 있다. 징검다리를 놓고 보를 만들어 생긴 웅덩이에는 노랑어리연이 꽃을 피웠는데 태풍 때 불어난 물에 휩쓸려 생채기가 나 새로 기운을 차리고 있었다. 자연은 스스로 치유하고 복원되었다.
비음산에서 발원해 창원대학 앞을 거쳐 온 창원천이다. 봄날은 꽃창포가 노란 꽃을 피웠다가 저물었고 가을엔 물에 동동 뜬 노랑어리연이 꽃을 피웠다. 올해 같이 가을 태풍이 잦아 많은 비가 내려 냇물이 불어나 노랑어리연은 수난을 겪게 되었다. 그래도 냇물 바닥까지 드리웠던 뿌리는 잎줄기를 살려내어 화사한 꽃잎을 펼쳤다. 연꽃의 강인한 생명력에 새삼스레 경이로움을 느꼈다.
창원천에는 철새가 본향으로 돌아가질 않고 텃새로 눌러 사는 녀석들도 있었다. 여름 철새인 쇠백로와 왜가리 친구들은 남녘으로 내려갔었는데 몇은 창원천의 가을과 겨울을 지켰다. 봄이면 북녘으로 귀향했어야 할 흰뺨검둥오리도 무더운 여름을 여기서 나고 날씨가 쌀쌀할 가을을 기다렸고 겨울이 오길 더 기다렸다. 쇠백로와 왜가리는 긴 다리를 물에 담그고 먹이사냥에 여념이 없었다.
반지 대동아파트단지 앞을 지나 봉곡동 지귀상가로 건너는 다리 밑을 지났다. 휴일을 맞아 반려동물과 함께 산책을 나선 사람이 더러 보였다. 내친 김에 명곡광장으로 건너는 다리 밑을 지나 홈 플러스 앞까지 내려갔다. 창원대로와 접속되는 창원천교에서 두대공원으로 올랐다. 람사르생태공원 습지에는 부들이 무성했다. 두대공원은 숲과 잘 어울린 여러 체육시설이 들어서 있었다.
노년층과 여성들은 주로 파크골프를 즐겼다. 건장한 남성들은 축구장을 맘껏 누볐다. 다른 구역엔 테니스를 치는 사람들도 보였다. 족구장에는 젊은이들이 활기차게 몸을 움직였다. 두대공원과 인접한 창원수목원 언덕으로 올라섰다. 화초와 수목들이 잘 관리되고 있었다.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간간이 보였다. 아직 개장되지 않은 선인장 온실을 지나 삼동공원 분수광장으로 내려섰다.
야구장을 지나 올림픽공원으로 건너갔다. 단풍나무를 비롯해 숲이 잘 가꾸어진 공원 한복판은 국화공원이었다. 철이 일러 소국은 자잘한 봉오리만 가득 달려 꽃잎을 펼치지 않았다. 보름쯤 지나면 만개할 듯했다. 손길로 심어 가꾼 구절초는 제철을 만나 화사했다. 극동방송국에서 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을 지나 반송공원을 거쳤다. 두세 시간 산책 내내 파란 하늘을 머리에 이고 다녔다. 19.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