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순수 우리말로는 동무 친구를 한자로 쓴다면 親舊 친할 친 옛구이다. 한자 친을 잘보면 나무위에 서서 바라보며 기다린다는 의미 이다. 구는 옛구로 새로 사귀는 친구보다 오래된 친구가 더 좋은 친구가 된다는 소리이다.
친구 명언을 찾아보면 ‘친구를 갖는다는 것은 또 하나의 인생을 갖는 것이다’.(발타자르 그라시안) ‘오래 찾아야 하고 잘 발견되지 않으며 유지하기도 힘든 것이 친구이다’. (제롬) 등 많은 명언이 있다. 또한 친구 관련된 고사성어도 많다. 지란지교 수어지교 간담상조 교우이신 죽마고우 막역지우 등등. 사람들은 가족 품을 떠나 친구를 사귀어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으며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어린시절 부터 동네친구, 학교에 들어가면 학교친구, 사회에선 사회친구 등등 다양하게 사귄다. 친구 주제로 많은 음악이 나왔으며, 많은 시인들은 친구 주제로 시를 쓰니 그만큼 친구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도 학교 시절 시귄 친구와 기타 여러 사람들과 계속 교류한다. 대학시절 같은 동아리 활동 했던 동기 선후배 사람과 비록 퇴직 했지만 직장서 사귄 친한 지인들과도 나이를 떠나서 서로 주고 받는다. 그리고 성당에서 만난 교우들과도 친구처럼 지낸다 그러나 친했던 동네친구들 중에는 부모따라 미국으로, 서울로, 불의의 병에 걸려 떠나갔으며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학생들 사귀는 친구를 보면 유유상종이라고 우등생은 우등생끼리 열등생은 열등생끼리 갈라진다. 자연적인 현상이다. 학생 시절 겼었던 친구관계를 적어본다. 중학교때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이 있었다. 계속 이어질줄 알았지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땐 고등학교를 들어가려면 입학시험을 치루어야 했다. 방식은 선지원 후시험이었고 전기 후기로 나뉘었다. 중학생과 부모들이 가장 선호하는 고등학교는 대전 최고 명문 00고등학교 였다. 거길 들어가려면 완전 수재로 당시 모의고사 기준 200점 만점 190점 이상 맞으야 한다. 조금 미달된 학생은 바로 아래 고등학교를 들어간다. 물론 경쟁을 하여야 하며 떨어지면 후기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다시 치루어야 한다. 거기서도 차선책으로 명문 고등학교를 들어가야한다.
그것마저 떨어지면 1년 재수를 하던가 아니면 대전 아닌 다른 지역 고등학교를 들어 가야했다. 남자고등학교 경우 전기 2개교 후기 2개교가 알아주는 고등학교였고 나머지는 들러리로 2류 3류 고등학교로 취급 받았다. 여자고등학교도 마찬가지 였다. 그땐 교복입고 학생모자를 쓰고 다녔던 시절인지라 딱 보면 어느 고등학교 학생임을 눈치가 챈다. 최고 명문고교생들은 시민들로부터 찬사를 받았고 다른 고등학교 학생들은 대충 취급 받았다. 12월 고입 원서 쓸 때 교사와 학부모간 실랑이가 벌인다.
나도 열심히 공부한다 했지만 성적이 않좋아 2류고등학교로 가야했다. 집에선 7살에 학교 들어 갔으니 재수를 시켜서라도 1류에 준하는 고등학교에 보내겠다고 작정했다. 그러나 담임 의향대로 2류 고등학교에 원서 냈고 합격하였다. 그런데 들어간 고등학교는 다녔던 중학교와 같은 재단 학교로 한 울타리 안에 있는 학교였으며 중학교 입학해 보니 2학년까지 있었다. 어머니는 미련이 남았는지 졸업식날 담임에게 후기 명문고에다 원서써도 되느냐고 물었지만 거절 당했다.
고1 3월 어느날 오후 하교길 다른 학교 학생들이 교문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바라보니 중학교 동창들이었고 1등 명문고등학교 들어간 학생들이었다. 짐작건데 중학교 생활기록부를 발급받을겸 인사차로 온것이었다. 그리고 중3학년 학생들에게 공부방법 알려주려는 것이다. 물론 나도 그시절 그 학교 선배들이 교실로 와서 공부방법 들었다. 친했던 학생과 서로 눈이 마주쳤다. 그러나 인사도 말도 없었다. 이제는 그들 머릿속에는 학교가 다르니 더 이상 친구가 아니다 그런 느낌을 받았다.
이후 나도 열심히 공부해서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다. 대학에 들어갔더니 중학교 동창들이 있었다. 명문고교 출신들이 가장 많이 있었다. 여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동창들은 내 얼굴을 보고 알아보았다. 다는 아니지만 비동창 포함 그들은 이류 고등학교 출신 학생들과 외지 출신들을 은근히 무시를 하였으며 보이지 않는 우월의식을 가졌다. 동창은 4명 뿐이라 아무런 힘도 없었으며 주로 타지에서 나온 학생들과 어울렸다. 생각해보면 나보다 공부잘해서 들어갔다면 더 좋은 대학에 갔어야 하는게 아닌가 그리고 나보다 학점이 낮은 학생들도 있었다. 지금도 명문 00고등학교 나왔다고 자랑할까? 자랑 해봐야 등신 소리 듣는다. 그런데 당시 입시제도는 1년 후배까지 기존 방식으로 치루었고 2년 후배들부터 연합고사로 바꿔 선발 명문 비명문고가 사라졌다.
다시 생각해본다. 미성숙한 10대 중반 나이 명문고등학교 들어가야 꽃길인생이고, 비명문고 들어간 학생은 가시밭 인생이고 사귀면 질이 떨러지는가. 어쩌면 안타까운 학창시절이었다. 세월이 흘러 바라보니 명문고 들어간 학생들이 잘되는 것도 아니고 비명문고 들어간 학생들이 못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명문고 나왔다고 다 명문 대학 가는것도 아니었다. 고등학교 선후배 포함 동창들 사회에 나와 제법 알아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 많고 인정받으며 잘 살고 있다.
그들과 만나보고 싶지않으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궁금하지 않다 친구도 아니며 공감대가 없기 때문이다. 농촌소재 중학교들은 동창회가 있지만 여기는 없다. 차라리 없는게 더 좋다. 사람은 이기적 유전자가 있는 동물이며 해바라기 성질을 가지고 있다. 친구란 무엇인가. 그 많은 사람들 중 누구를 친구로 사귀는 것 어쩌면 또 하나의 도박일 수 도 있다. 오랜 친구라 할지라도 의가 갈라져 헤어질 수 있다. 나도 믿었던 친구한테 당했다. 참된 친구란 무엇인가 정의를 못내린다. 각자 알아서 판단하여 시귈수 밖에 없다. 지금은 나이 떠나 새롭고 신선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첫댓글
참으로 지면을 달구는
현실의 뉴스 앞에
이렇게 친구라는 소재로
친구란...
정의 앞에 혼탁한 세상아 하는 마음입니다
친구라는 그 이름은 단짝인 것임에요
동무란 그 이름에도
옛날 어린 시절의 흔적도 모르는 오늘이란 시간 앞에
세월을 돌아봅니다
청우우표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