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셤 준비와 함께 김인규 사장의 힘겨운 출근을 지켜봐야 하는 버라이어티한 11월 끝자락이네요..
다들 잘들 보내고 계신지요..
요즘 공부하는 것 빼면 영화보는 게 낙인지라 그냥 아랑에 와서 끄적여봅니다.
얼마 전 <바스터즈>를 봤는데 전 보구나서 기분이 뭔가 찝찝했지요.
같이 보러 간 친구는 그런 저를 보며 재밌는 기분 다 망쳤다며 찝찝해했구요..-_-
제가 "이 영화는 재밌게 볼 만한 영화가 아니다!"라고 주장을 해버렸기 때문이죠..
저만 그랬나.. 궁금해집니다.
극장을 나서면서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 영화는 패러디가 아니라 정말 웃자고 만든 영화 같았기 때문이죠.
좀 더 솔직히 말하면 그 사실을 극장을 나서면서 깨달았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전 도니가 동굴에서 나와 야구방망이로 독일군 장교의 머리를 으깨는 장면을 보면서 웃었습니다.
극장 안을 가득 메웠던 다수의 관객들도 함께 웃었죠.
영화는 풀샷이지만 장교의 머리가 너덜너덜 해질 때까지 배트로 머리를 두드립니다. 굉장히 잔인합니다.
하지만 극장을 나서면서 찝찝해질 수밖에 없었던 건 그런 장면에서 내가 웃을 수 있었던 이유가 결국 2차 대전, 혹은 유태인과 미국-독일의 관련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 제3자일 수밖에 없는 한계 때문 이상도 이하도 아니란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홀로코스트와 시오니즘이 팔레스타인에서 같게 되는 역사적인 아이러니에 대해 핏대 세우며 토론해댔던 일들도 지나가면서..
패러디의 핵심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라고 생각합니다. 할 수 없는 얘길 웃음이라는 형식을 빌려 뱉어내는 것이 패러디 아닌가요..
그런 점에서 패러디는 ‘웃음으로 가지 못한 웃음’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패러디에서 다루는 대개의 소재는 사실 개인이든 사회든 ‘상처’와 관련돼 있으며, 무엇보다 ‘현존하는 상처’이기 때문이죠. 여기서 말하는 현실이란 그 사실 자체가 존재하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하는 자가 사실이라고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끼리 박재범 이야기로 농을 할 순 있지만, 박진영에게 박재범 이야기로 농을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거랄까.
결국은 쿠엔틴 타란티노가 웃자고 만든 영화를 애써 패러디로 느끼고 있는 절 발견하게 된 거죠.
그리고 그 이유를 생각해봤습니다. 그 이유의 끝에는 이런 생각들이 이어집니다..
만약 그 영화가 식민지나 6.25 다루고 있었다고 해도 과연 웃을 수 있었을까?
만약, 항일독립군이 부엌칼로 일본군의 이마에 일장기를 그려 넣는 영화가 나온다면?
그 영화에서 일본군이라면 무조건 쌀자루에 넣어 온 몸을 맷돌로 으깨버리는 ‘쌀자루 김’이란 캐릭터가 등장한다면 과연 난 웃을 수 있을 것인가?
그 영화가 독립군을 아무리 가해자의 입장으로 그리고 있다고 해도, 전 그 영화를 보고 웃기지 않을 것 같습니다..
통쾌하지도 기쁘지도 전혀 재미있을 것 같지도 않구요.
그 얌전하고 젠틀하기로 소문난 총리가 731부대를 모르고 있었다는 (혹자는 이를 ‘나치더러 레지스탕스라고 하는 격’이라고 하기도..) 지적 이후로 대정부 질문에서 ‘폭주’했던 사실은 식민지 콤플렉스가 '현존하는 사실'임을 어느 정도 유추케 해준다는 생각도..
변질돼가곤 있지만 친일인명사전과 관련한 논란도 그렇고,
말할 것도 없이 625나 레드 콤플렉스는 우리나라에서 유머의 소재가 될 수 없는 생각.
얼마 전 서해교전과 관련해 토론한 글도 봤는데,
NLL에 관해 토론을 하다가 리영희 교수의 주장을 옹호하기라도 하면 대뜸 ‘너 주사파냐?’고 묻는 분이 있더군요.(그 분은 뭔가 논리적이지 않은 주장을 하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아니지만 전 학창시절 주사파였죠. 부지런한 내 친구들은 ‘화수목’으로 수업을 몰아 주삼파로 지냈지만, 클릭클릭에 약했던 전 '월수목금'이라는 최악의 시간표를 유지하면서 줄곧 '주사파'였습니다. 하지만 “주사파냐?”고 묻는 질문에 이런 식의 농담을 늘어놓는 것 자체가 별로 재미가 없네요. 하는 사람부터가 농담이 농담처럼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겠죠.
말이 길어졌는데, 결국 궁금한 건, 이 영화를 본 다른 분들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는지.. 하는 거지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오버하고 앉았네"라고 해주시길..
식민지-레드 콤플렉스에 대해 토론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딱 "<바스터즈>를 보고 우린 웃고 즐겼어야 했는가?" 하는 지극히 제한적인 질문을 드리고 싶은 거지요..
-KBS 셤 준비로 극장 출입만 잦아지는 1人-
첫댓글 글쎄 쓰신 분의 글 요지는 "즐길 수 없다. 불편하다"인 거 맞는지요? 전 좀 다른데요. 쿠엔틴 타란티노 광팬으로서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타란티노와 동시대에 같이 살아서 정말 다행이다"고 했습니다. 전 일단 그의 영화에 깔린 정치적 함의 사회적 함의보다 타란티노의 잔인함 또는 폭력 자체를 좋아합니다. 좀 이해하기 힘드시죠?ㅋ 평소 억눌린 아드레날린이 타란티노 영화를 보며 마구 분출되고 충족이 되거든요. 용납 불가능한 '악'을 설정해 두고 철저하게 파괴하고 박살내는 것에 대한 쾌감이 있죠. 물론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시비가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에서 마저 그렇게 일일이 시비를 걸면, 제 몸속에서 묶인 아드레날린은 어떻게
해요.ㅋ 타란티노 영화는 그런 억눌린 욕구를 풀게 해주는 창구입니다.(저 하드코어 즐기는 사람은 아니예요ㅠ) 비단 저만이 아닙니다. 타란티노가 인기있는 것은 저같은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이겠죠. 타란티노도 그런 이유에서 엄청 박살내도 상관없는 악을 설정합니다. 좀비, 살인마, 무자비한 킬러, 나치 등이 그렇죠. 물론 바스터즈에서 나치를 그렇게 두들기는 데에는 타란티노의 악감정도 있습니다. 훌륭한 영화 자산이 있고, 영화적 소양이 깊은 젊은이를 악의 구렁텅이에 빠뜨린 나치와 그 추종자들을 영화광팬인 타란티노가 곱게 보겠습니까. 어쨌든 제 글 요지는 타란티노식 폭력을 좀 인정해주자입니다. 또는 즐기자입니다.
그러게요.. 전 고어물을 좋아하는데도 그렇네요..-_- 사실 <데스 프루프>는 정말 신나게 봤거든요. 저도 "즐기자는 영화에서까지 시비 걸 건 뭐냐?"는 주장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난 주 무도를 보고 타블로의 형이 했던 발언도 비슷한 맥락이죠. 그걸 '웃자는데 뭘 따지냐'는 부류와 '그게 어떻게 웃음이 되냐?'는 부류. 뭔가 민감한 걸 건드렸을 때 전 항상 후자가 된다는..
타란티노식 코드를 굉장히 좋아하지만 솔까말 바스터즈는 재미있다고 말하기 힘든 작품이었어요. 아무래도 타란티노 자신도 재미보단 고전에 대한 오마주 위주로 제작한듯해요.
저도 요즘 극장 방문이 늘었어요. 바스터즈는 뭐랄까 좀 색다른 영화였어요. 이 영화에 대해서 영화잡지 등에서는 '타란티노'라는 감독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네요. 전 영화는 좋아하지만 영화사나 감독을 줄줄 꿰고 있는 정도는 아니라서 영화 자체만을 보고 왔습니다. 나치에 대한 복수,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사랑 등을 거리낌없이 담아 낸 것 같아요. 저는 내용보다 장면, 대사, 브래드피트 억양 등 부분적인 잔상이 남아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