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명이 떠나고 1명이 남았다. 떠난 건 코치고, 남은 건 감독이다.
10월 4일 KIA는 광주 넥센전을 마지막으로 정규 시즌을 마감했다. 시즌 초 우승 후보로 꼽혔지만, 주전 선수들의 연쇄부상과 부진이 겹치며 KIA는 결국 8위로 시즌을 끝냈다. 예상과 정반대로 나온 결과 때문일까. 야구계엔 ‘성적 부진의 후폭풍이 KIA에 몰아칠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아니나 다를까. KIA는 9월 들어 프런트 핵심 인사가 팀을 떠난 이후, 정규 시즌이 끝나자마자 현장 코칭스태프에도 변화를 줬다. 바로 4명의 코치에게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통보한 것이다. 대상은 이순철 수석코치를 비롯해 박철우, 조규제, 김평호 코치다.
이순철 수석코치 "팀 재건을 위해서라면 내가 책임을 떠안겠다."
올 시즌 종료 후 홈팬에게 인사하는 KIA 선수단
KIA는 4일 경기에 앞서 4명의 코치에게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팀 성적은 부진했지만, 마지막까지 유종의 미를 거두려던 4명의 코치는 구단의 통보를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방식은 구단의 재계약 포기 통보였다. 그러나 이 수석코치는 이미 팀 성적 부진 책임을 자신이 떠안겠다고 생각해온 터였다. 한창 팀이 부진하던 8월에 “팀 분위기 쇄신과 성적 부진의 책임을 내가 떠안고 2군에 내려가겠다”며 2군행을 자청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선동열 KIA 감독과 구단은 다른 코치들을 2군으로 내리고, 2군 코치들을 1군으로 올렸다. 시즌 종료를 앞두고도 이 수석은 “팀 성적 책임을 져야 한다면 수석코치인 내가 지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의사를 밝혔다.
사실 팀 성적 부진은 수석코치가 책임질 사안이 아니었다. 수석코치의 역할이란 게 감독의 의중을 선수단에 전달하고, 선수단의 목소릴 감독에게 전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수석은 감독과 선수들 사이에서 가교역할을 무리 없이 수행해왔다. 여기다 혹여라도 월권의 인상을 줄까 봐 말 한마디도 조심하고, 최대한 자세를 낮췄다.
그럼에도 이 수석코치가 ‘책임’을 떠안으려고 한 건 두 가지 이유였다. 먼저 타이거즈에 대한 애정이다. 이 수석코치는 2011년까지 MBC SPORTS+ 해설위원으로 맹활약했다. ‘야구해설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들을 만큼 해박한 야구 지식과 감독 출신다운 넓은 시선으로 수준 높은 해설을 했다. ‘허구연 - 양상문 - 이순철’ 감독 출신 3인의 해설로 해당 방송사도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 수석코치는 “고향팀 타이거즈의 재건을 이끌어달라”는 KIA의 요청을 받고는 안락한 해설 자리를 박차고서 다시 현장으로 복귀했다. KIA 수석코치 제안을 받아들였을 즈음 이 수석코치는 “타이거즈 덕분에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 이젠 내가 받은 사랑과 은혜를 다시 타이거즈로 돌려줄 시점”이라며 “타이거즈 후배들과 함께 명문구단 재건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2년 동안 팀이 부진할 때도 이 수석코치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면서도 큰 자극을 준 건 ‘타이거즈’였다. 올 시즌 막바지에 이 수석코치는 “타이거즈 출신으로서 팀의 재건에 성공했어야 했는데 그게 계획대로 되지 않아 무한 책임을 느낀다”며 “어떻게 해서든 ‘타이거즈 출신이 똘똘 뭉쳐 KIA를 되살렸다’는 평을 듣고 싶다”는 바람을 털어놨다. 덧붙여 “만약 올 시즌 성적 부진의 책임을 져야 한다면 타이거즈 출신을 대표해 내가 지겠다”고 말했다.
그가 책임을 지려던 두 번째 이유는 선 감독과의 관계다. 선 감독과 이 수석은 야구를 떠나 인생의 절친한 친구다. 이 수석코치가 KIA 수석코치를 맡은 것도 선 감독의 “도와달라”는 요청이 크게 작용했다.
이 수석코치는 “나도 감독 출신이지만, 감독의 자리는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자리”라며 “그 고독한 자리에 있는 친구의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 내 임무”라는 말을 자주 해왔다. 하지만, KIA가 2년 연속 포스트 시즌 진출에 실패하며 선 감독은 더 고독해졌다. 이 수석코치 올 시즌이 끝나갈 무렵 “선 감독이 계획한 야구가 현실화되지 못했다.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며 “계약 기간인 내년 시즌까지 팀을 이끌 기회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수석코치는 “선 감독이 계약 기간까지 채울 수만 있다면 내가 2군 코칭스태프로 내려가도 상관없다”며 “만약 그보다 더 좋지 않은 상황이 연출된다면 감독 대신 내가 책임을 질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이 수석코치는 자신이 말한 대로 ‘팀 성적 부진 책임’을 짊어지며 2시즌 만에 KIA 유니폼을 벗게 됐다.
선 감독은 계약 기간 보장으로 굳혀진 듯
KIA 선동열 감독
다른 3명의 코치도 떠나는 발걸음은 무겁지만, 한결같이 KIA와 선 감독의 성공을 진심으로 바랐다. 이들은 “내년 시즌엔 KIA와 선 감독님 모두 포스트 시즌에 진출해 KIA 팬들에게 큰 기쁨을 줬으면 좋겠다”며 “밖에서도 KIA를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4명의 코치가 떠난 대신 선 감독은 계약 기간인 내년 시즌까지 지휘봉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KIA는 "이번만은 감독의 계약 기간을 보장해주자"는 쪽으로 결론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