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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삼신봉 남쪽 묵계골에 위치
'어 머니 산' 지리산 삼신봉(三神峰) 남쪽 묵계골 최상류부--골의 높드리여서 하류부에 비해 좀 가파르기는 할 망정 깊고 그윽한 느낌이 드는 곳이다. 삼신봉 줄기가 품어안듯 한 형국인 이곳에서는 매일 새벽 흰 도복 차림의 젊은이 10여 명이 떠오르는 해를 마주하고 신비의 춤사위를 시작한다. 춤인 것도, 혹은 무예인 것같기도 한 이 동작은 이름하여 청학신공(靑鶴神功). 이들은 이 기공춤을 통해 밝은 아침 해의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하루를 연다.
정동쪽으로 열린 10만 평 땅
신 선도를 추구하는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모여 일군 이곳은 삼성궁(三聖宮)이라고 부른다. 그동안 세간에 가장 크게 알려진 지리산의 이색지대인 청학동 도인촌과 능선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경남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의 도인촌이 위치한 골짜기 서쪽 능선 너머의, 정동쪽으로 열린 골짜기 가운데 약 10만 평 땅이 삼성궁 자리다.
도인촌 바로 옆 계곡
조 선시대 복색을 고수하는 유불선합일갱정유도(儒佛仙合一更正儒道) 신자 180여 명 25가구로 이루어진 도인촌(道人村)은 그간 지나치게 관광지화되어 어딘가 신비스럽던 예전의 분위기가 크게 퇴색하였다는 세간의 평이다. 이에 반해 삼성궁은 한풀선사(仙師)를 구심점으로 삼아 엄격한 수행의 나날을 보내는 한편 탐방객의 출입도 제한하는 등, 지리산의 새로운 신비처로 떠오르고 있다.
석문에 이르러 징 쳐야
삼 성궁이란 환인, 환웅, 단군왕검 세 분을 모신 궁이라는 뜻. 이 삼성궁을 구경하려면 우선 입구인 석문(石門)에 이르러 징을 세 번 쳐서 손님이 왔음을 알려야 한다. 그러면 칼을 찬 삼성궁의 수행자가 한 사람 나와 정중하게 손님을 맞는데, 일행중 한 사람은 고구려식의 삼성궁 도복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그 후에야 비로소 손님들은 석문을 지나 삼성궁 안으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석문 입구에는 무단 침입자는 3,300배를 시키겠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으며, 궁 내에서 음주, 흡연은 엄금이다.
돌탑 3만 개까지 쌓을 예정
배치와 조형미의 극치 이룬 돌탑
배 치와 조형미 등이 극치를 이루었다고 설치미술가들이 찬탄하곤 한다는 이들 돌탑이지만, 물론 외지인들의 눈요기를 위해 쌓은 것이 아니다. 삼성궁 수행자들은 "이 탑들은 실은 탑이 아니라 이곳이 소도(蘇塗), 즉 신성지역임을 알리는 솟대"라고 설명한다. 소도란 삼한시대에 천신을 제사지내던 지역을 말하는데, 각 고을마다 이 소도에 신단(神壇)을 마련하고 그 앞에 방울과 북을 단 큰 나무를 세워 제사를 올렸다. 그리고 민속상의 솟대는 이것으로부터 유래했다고 한다.
돌탑 쌓기는 선수행의 일종
삼 성궁 사람들의 돌탑 쌓기는 이렇듯 민족 고유의 성지 소도의 재현 이외에 움직이며 하는 참선인 이른바 '행선(行禪)'의 의미도 있다. 여러 제자들이 탑을 쌓을 재료인 돌, 맷돌 등을 모아오면 위치를 정하고 쌓아 올리는 일은 오로지 스승인 한풀선사(36)의 몫이다. 이러한 탑, 즉 솟대 쌓기는 거의 매일 끊이지 않는다. 이들이 수행을 멈추지 않는 한 탑 쌓기 또한 계속될 것이므로 삼성궁의 탑 수가 얼마까지 늘어날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안정되고 바르게 섬'을 의미하는 숫자인 3과 포괄적으로 많음을 의미하는 만(萬)이라는 단위가 합쳐진 수인 3만 개까지는 행선으로서의 탑 쌓기가 끊이지 않을 것이라는 삼성궁 수행자들의 말이다.
"전통 도맥 신선도 부활해야"
안 내자의 설명이 여기에 이르면 탐방객에게는 자연스레 그 수행의 목적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떠오른다. 이에 대해 한풀선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호 랑이처럼 강인했던 우리 민족은 그간 너무 나약해져 있어요. 그러므로 가깝게는 우리의 전통 도맥인 신선도를 이루어 민족 정기를 되살리는 일이고, 멀게는 이화세계(理化世界), 즉 세계를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교화하는 것입니다."
한풀선사 "저는 뭐, 그냥 놀러온 사람"
삼 성궁에서 무수한 돌탑 이상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대상이 바로 한풀선사다. 가슴까지 내려오는 수염과 긴 머리칼, 형형한 눈빛 등으로 보는 이를 압도하는 그는 삼성궁을 일으킨 장본인이자 이곳 수행자들의 스승이다. 하지만 "한풀선사십니까?" 하고 물으면 그냥 무심히 "저는 뭐, 그냥 놀러온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여 질문한 사람을 당황케 하곤 한다. 하지만 한풀선사 없는 삼성궁은 삽시간에 단순한 돌탑들의 집합처로 전락하기 쉽다는 점에서 한풀선사 없는 삼성궁은 생각할 수 없다.
한 풀선사는 본명이 강민주로서 바로 이곳 지리산 묵계골에서 태어났다. 태생은 이렇듯 평범한 산골 아이였지만 6세때 증산도 신도였던 부모에 의해 낙천선사(樂天仙師)라는 도인에게 의탁되며 그는 범상치 않은 인생을 살게 되었다. '만덕진인(萬德眞人:1743-1840), 공공진인(空空眞人:1807-1910), 한빛선사(1860-1945)에 뒤이어 우리 고유의 선도(仙道) 명맥을 전수받았다'는 낙천선사와 지리산 세석고원 근처에서 기거하며 그는 선가무예인 선무(仙武)를 비롯, 선도를 배웠다고 한다. 그러다가 스승으로부터 "민족혼을 샘솟게 하는 우물을 파라"는 명을 받고 21세 때인 1984년부터 화전민마저 떠나고 없던 이 묵계골 상류부에서, 처음에는 초근목피로 연명하며 삼성궁 터를 닦기 시작했다고 한다.
함께 생활하는 수자 100여 명
그 의 제자들은 그를 불가에서 말하는 바의 '한소식'을 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87년에 햇빛 한 점 들지 않는 토굴 속에서 3*7일 단식 고행을 세 번 거듭한 연후인 섣달 그믐날 선악(善惡)도, 후박(厚薄)도, 청탁(淸濁)도 없는 경계로 들었다는 것이다.
아 무튼 그후 한풀선사에게로는 수많은 제자들이 모여들어, 직계수자(直系修子)--3년간 함께 생활하며 계를 받은 수자만 100명 가까이 있으며 3주에서 몇 개월간 수련을 받은 일반 방계(傍系)수자는 수천 명을 넘는다고 한다. 늘 함께 생활하는 수자는 평균 10명 정도로 그중 여성 수자는 2명 안팎이다.
"한풀선사 무예는 30-40단"
한 풀선사는 검술을 비롯한 무술 수준도 대단하다고 한다. 굳이 단 수로 따지면 30--40단은 될 것이라고 수자들은 말한다.
한 풀선사는 일반인 앞에서 무술 시범을 보이지는 않는다. 다만 삼성궁 최대의 행사인 개천대제날 제례를 올릴 때 한풀이춤을 보여준다. 뛰어난 무예란 곧 춤과 같다는 말이 있으니, 무술 수련자들이라면 그가 일년에 단 한 번 추는 춤이라는 이 한풀이춤을 통해 그가 지닌 무공이 어느 정도인지 간파할 수 있으리라.
2000년으로 개천대제 17회째
2 000년으로 삼성궁 개천대제는 17회째. 천제로서는 5,897회째라고 삼성궁 사람들은 말한다. 어쨌거나 개천대제를 여는 날은 징을 통한 방문 의례도 생략하고 삼성궁에서 직접 빚은 동동주도 파는 등, 일반에게 삼성궁을 활짝 개방하는 날이다.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어울릴 수 있도록 단풍이 절정인 10월 20일 전후한 주말에 열거나, 아니면 개천절인 10월3일에 때를 맞춘다.
개 막 전날 밤은 한풀선사도 함께 어울려 모닥불 주위에서의 흥겨운 춤놀이를 한다. 천제날은 삼성궁 오름길이 시작되는 동이주막 근처 주차장과 찻길은 차량이 빈틈없이 늘어서고, 사람들이 줄지어 오를 만큼 늘 성황이다. 이날 삼성궁 수자들은 길목마다 지키고 서서 방문객들을 안내한다.
토굴 속 수련은 일정 단계 오른 자만
석 문을 지나면 처음 지나게 되는 것은 한반도와 만주벌판의 상징으로 삼아 조성한 연못. 언젠가는 옛땅을 회복해야 한다는 뜻을 담았다고 한다. 연못을 지나면 작은 토굴 입구에 이른다. 삼성궁 수자들이 들어가 수행하는 토굴로서, 한낮에도 깊은 어둠이 머무는 곳이다. 이 굴속에서의 수련은 일정 기간 수련이 끝난 뒤 한풀선사의 허락을 받은 이들만이 할 수 있다고 한다.
삼 성궁 내의 전시관, 전통찻집 아사달, 천궁, 숙소 등은 모두 전통 토담집 아니면 목조 건물이다. 몇 채 되지 않는 데다 넓은 골짜기 여기저기 숲이나 돌탑들 사이에 보일듯 말듯 흩어져 있다. 이 집들을 지나면 돌탑들 저편으로 활찐 넓은 공터가 펼쳐진다. 평소에는 삼성궁 수자들의 수련을 하는 곳으로, 개천대제가 열리는 장소다.
한바탕 신명나는 사물놀이
개 천대제는 오전 10시40분 경부터 시작되었다. 새벽부터 찬 비가 내렸지만 어느새 푸른 하늘과 함께 황금빛 햇살이 삼성궁을 비추고 있다.
울 산의 사물놀이패인 신울림땅울림의 한바탕 신명나는 길놀이가 벌어지더니 참가자 일행은 사물놀이패에 의해 삼성궁 제일 위쪽에 있는 천제단으로 인도된다. 커다란 봉분 형상으로 흙을 쌓아올린 천제단 앞에 일행이 주욱 늘어선 뒤 징을 일곱 번 울리는 것으로 천제를 시작한다.
한풀선사와 여성 수자의 발원문 낭독에 이어 열림소리와 남녀의 춤사위, 동서남북 사방을 향한 세 번씩의 읍(揖), 천수(薦水), 천향(薦香),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의 독경 등의 의식을 거친 뒤 한풀선사의 '배달 겨레 개개인의 한을 풀어주는 의식'인 한풀이춤--천단춤이 이어졌다.
한풀선사의 한풀이춤이 절정
주 황색 제복을 차려입고 삿갓을 쓴 한풀선사는 천제단 위에 올라 국악 가락에 맞추어 춤을 시작했다. 그는 우선 한껏 몸을 낮추어 삿갓으로 제단 위를 여기저기 누르는 동작을 여러 번 거듭하더니 이윽고 몸을 일으켜 한발로 우뚝 선다. 흡사 한 마리 학과 같이, 한쪽 발을 다른쪽 다리 무릎 근처까지 꺾어 올리고 양팔을 치켜든다. 미동도 없는 그의 완벽한 자세를 담느라 여기저기에서 카메라 셔터 소리가 일시에 쏟아진다. 한풀선사는 그 자세로 한 동안 멈추더니 갑자기 날아내리듯 제단 아래로 뛰어 내려가 부드러운 타원형의 동작이 몇 차례 반복한 뒤 음악이 끝나자 합장으로 춤을 끝낸다.
택견, 학춤 등 각종 무술시범도
오 전 행사가 끝나고 오후에는 둘레를 여러 형상의 돌탑으로 장식한 지름 약 20m쯤의 공터에서 삼성궁 수자들의 택견, 검술, 학춤 등의 시범과 시연으로 이어졌다. 관중들은 공터 주변 완경사의 풀밭에 편안히 앉아 이들의 시범을 지켜보았다. 삼성궁 사람들의 이웃인, 머리를 길게 땋은 청학동 도인촌 사람도 두엇 모습이 보인다.
행 사는 오후 4시경 모두 끝났다. 공터 아래쪽 연못가의 매점에서 삼성궁 수자들이 정성들여 만든 각종 차 종류를 사느라 한 동안 시간을 끌던 손님들도 거의 빠져나가고 수자들이 천막이며 깃대 등속의 철거도 마치자 삼성궁은 다시 지리산 특유의 고요함으로 빠져든다.
시멘트 6포대 진다는 한풀선사
끝 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풀선사 바로 옆에 다가서 보니 신장이 약 160cm 정도밖에 안돼 보인다. 그런 그가 묵계리에서 삼성궁까지, 합하면 무려 240kg이나 되는 시멘트 여섯 포대를 지고 오르곤 했다니, 쉽사리 믿어지지 않는다. 기력이 충천하는 때면 100근 가까운 돌덩이도 들어올린다는 제자들의 말이다. 진정 그렇듯 걸출한 힘과 기를 지닌 한풀선사라면 그의 생전에 3만 개의 돌탑을 조성하는 일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터이지만, 과연 이화세계의 실현도 그 3만 돌탑의 조성과 함께 이루어질 수 있을지--.
첫댓글 청학동의 주류들과 이틀간 꿈같은 나날을 보내다가 한풀도사와 마지막날 접견을 했답니다.윗글은 이미 기사화한 글로 제글을 대신합니다.
너무 좋은 곳에 다녀오셨네요,,, 부럽습니다.
ㅋㅋㅋ 앋타이온님 ! 이러다 사고내겠네..넘 부럽습니다요..
이런곳이 있었군요. 요즘 고구려사 왜곡으로 전민족의 심기가 불편한데 단군을 숭상하며 민족정기를 세우자는 의도가 마음에 와닿는군요.신혼재미는 어떠신지요???좋은글 잘읽었습니다.
신혼재미요? 해탈의 경지입니다요...^^*
몰랐네 그곳에 묵계님이 사시는줄....무단침입에 3,300배는 사람죽이는 것이로다..청학동 묵계골 사람들...어! 신혼재미??..측천니~~~~임~~아...ㅎㅎ..
찐자 청학동에 묵계리가 있었네..?? 측천님은 소리도 없이 좋은곳만 찾어 다니시네요? 저도 한번 델꾸가세요?
진짜 보따리 오프라인에서 풀어보지요.
신문에서 보고 마음만 있었는데 다녀오셨군요. 한풀선사님에 대한 기사를 보고 좀 더 알고팠는데 세세한 내용까지 올려 주셔서 잘 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