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육 배달 관행 점검 필요... 전문가들 "풀 콜드 체인 필수적"
이번 육회 사태는 육회라는 식품의 한계와 유통 과정에서의 문제점 모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지난 5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엔 육회를 먹은 뒤 설사, 구토, 복통 등에 시달렸다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해당 글에는 같은 육회를 먹은 것으로 보이는 소비자들의 댓글이 달리기도 했는데 대부분 비슷한 증상을 겪었다는 내용이었다. 육회라는 식품의 한계인걸까, 아니면 유통과정에서의 문제였을까.
◇육회 먹고 응급실까지… 식약처 조사 나섰다
문제의 육회는 온라인 커뮤니티 에펨코리아 등에서 특가 상품을 소개하는 ‘핫딜’ 게시판에 지난달 초부터 등장했다. 소스와 고기 200g으로 구성됐으며 정상가 1만1500원, 할인가 1만810원에 총 2550건이 판매됐다. 육회는 진공 팩에 밀봉돼 있었으며 아이스팩과 함께 스티로폼 상자에 담겨 배송됐다. 배송에는 1~2일이 걸렸다고 한다.
지난 4일 새벽부터 해당 육회를 먹은 뒤 식중독 증세를 호소하는 글들이 올라왔다. “육회를 먹은 다음 날부터 온 가족이 사흘간 설사에 시달렸다”거나 “설사와 오한이 심해 응급실에 다녀왔다” 등의 내용이었다. 모두 75건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조업체 측은 5일 새벽, 제품 판매를 중단하고 성분검사 의뢰에 나섰다.
6일 오전엔 식약처도 현장 점검을 실시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헬스조선과의 통화에서 “아직 조사 단계라 단정할 순 없겠지만 세균이 증식하기 쉬운 원료의 특성과 온라인 수령했을 때의 포장 상태 등 여러 요인이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식중독균에 취약한 육회, “저온 환경 보장해야…”
성분검사 결과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전문가들은 육회 자체가 식중독균에 취약한 음식이라고 말한다. 미생물이 살아있는 생고기인데다가 세균들의 에너지원인 단백질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중앙대 식품공학부 하상도 교수는 “육회 같은 생식용 육류엔 가축의 장에서 서식하던 살모넬라균이나 사람 손의 황색포도상구균이 도축 및 유통 과정에서 옮겨갔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식중독균에 노출됐다고 모두가 식중독에 걸리는 건 아니다. 통상 식중독균의 개체수가 102개를 넘어가면 감염을 일으킨다고 알려져 있다. 감염 시 증상도 사람마다 다르다. 건강한 사람은 단순한 설사로 끝날 수 있지만 면역력이 약한 노인이나 소아는 식중독은 물론 패혈증까지 겪을 수 있다. 육회와 같은 생식용 육류는 유통 과정을 철저하게 담보해야 하는 까닭이다.
유통 과정에서 세균 증식을 막으려면 온도를 낮게 유지해야 한다. 하상도 교수는 “세균이 싫어하는 조건 중 가장 중요한 건 저온인데 4도 아래의 환경에서 증식 속도를 현저하게 느려지기 때문”이라며 “만약 콜드체인 등으로 저온 유통을 담보할 수 없다면 가급적 빨리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택배로 냉장 축산물 유통, 식중독균 입장에선 증식 시간 ↑
문제는 유통 과정에서의 빈틈이다. 육회와 같은 냉장 축산물은 산지에서 도매점이나 음식점으로 이동할 때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냉동(냉장)탑차 등이 활용된다. 그런데 택배, 배달 등 비교적 최근 냉장육에 적용되기 시작한 소비 행태는 유통 과정을 늘릴 뿐만 아니라 축산물이 상온에 놓일 가능성도 높인다. 결국, 식중독균 입장에선 증식할 시간을 번 셈이다. 진공 포장, 아이스팩, 스티로품박스 등은 저온 유지 효과로 봤을 때 어디까지나 차선책이다.
강릉원주대 식품가공유통학과 이동민 교수는 “전과정 저온 유통 시스템인 풀콜드체인(full-cold) 등이 담보되지 않는 일반택배로 육회를 익일 배송한다고 쳐도 상하차나 문 앞 배송 과정에서 상온에 노출될 수 있다”며 “육회와 같은 생식용 육류에 한해서는 풀콜드체인을 담보하도록 하거나 아예 택배 배송은 제한하는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식약처는 ‘배달 및 택배 유통 냉장 축산물 가이드라인’으로 육회 등을 취급하는 방식에 대해 알리고 있지만 유통 업체엔 ‘축산물 우선 집하’를, 소비자에겐 ‘신속한 수취’ 등을 강조하는 수준에 그친다. 가이드라인이라 법적 효력이나 강제성도 없어서 업체의 역량에 기대는 측면도 있다.
◇식중독균 육안 감별 불가, “온라인 육회 구매는 자제해야…”
식중독균 오염 여부는 육안으로 알기 어렵다. 대개 우리는 음식의 색이 변하거나 냄새가 나면 식중독균이 증식했다고 여기지만 이는 혐기성 세균 등 부패균이 증식한 결과다. 부패균은 식중독균보다 늦게 증식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음식의 색이 변하거나 냄새가 났다면 이미 식중독균이 창궐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상도 교수는 “식중독균이 검출되면 색이 변하는 스티커 등을 고려해볼 수 있지만 이러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져버린다”며 “애초에 육회와 같은 생식용 육류는 택배를 이용한 유통과정엔 적합하지 않으며 산지나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업체가 아니라면 구매를 자제하는 게 좋아 보인다“고 말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향후 제조, 유통, 판매 단계에서 육회 등 생식용 육류를 어떻게 취급해야 하는지 정확한 자료를 배포할 예정”이라며 “더불어 여러 업체들에 대한 위생 점검을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상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