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회
나라사랑 물망초예술제
(2012.6.6. 현충일)
문화일보 오피니언 황성규 논설위원에 의하면 물망오계(勿忘五戒)는
‘마음은 비가 되어 마음은 강물이 되어 / 고향바다 그 얼굴 찾아 가누나’
이희우 작사 ‘물망초(勿忘草)’의 한 소절이다.
조용필의 절창을 들을 때마다 콧등이 시큰둥해짐을 느끼는 노래다.
지난 5월 22일 박선영 국회의원과 탈북자를 걱정하는 변호사등 70여명이 모여 ‘(사)물망초“의 발기인 총회가 열렸다.
이 단체의 이름과 같은 ‘물망초’라는 식물은 지치과의 여러해 살이로 영어이름 ‘forget-me-not' '나를 잊지 말라’는 애절한 전설이 있다.
옛날 독일의 도나우 강변에 뜨거운 사랑을 피워가는 한 쌍의 남녀가 있었다.
어느날 아가씨가 속삭였다. 저 강의 섬에 피어 있는 아름다운 꽃을 선물 받고 싶노라고...청년은 적시 강물에 뛰어 들었다.
마침내, 거친 물살을 헤치고 섬에서 꽃을 꺽어 헤엄쳐 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나운 급류는 그들의 사랑을 그냥 두지는 않았다.
육지를 눈 앞에 둔 청년을 휘감아 달아나기 시작한 것.
운명을 감지한 그는 사랑하는 그녀에게 꽃을 던져주곤 격랑 속으로 살아졌다.
그의 마지막 말은 “페어기스마인니히트(Vergissmeinnicht"! 나를 잊지 마시오..!
못다 이룬 애절한 사랑의 밀어(密語) 물망초는 꽃말이기도 하다.
강물은 지금도 말없이 흐르지만 두 청춘 남녀의 못다 이룬 사랑은 꽃 이름으로 남아 오늘까지 전해오니 그들의 애절한 그리움은 잊으려야 잊을 수 없다.
‘비목마을 사람들’과 강원도 양주군청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제1회 나라사랑 물망초예술제’가 6월 6일 현충일 오후 3시 양구군 해안면 을지전망대에서 ‘6.25의 참극을 잊지 말자’는 취지로 ‘다섯가지 정신만은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물망오계(勿忘五戒)를 슬로건으로 내건 ‘비목’의 작사자 이미시서원의 좌장 한명희 전 국립국악원장이 이 행사의 중심에 있다고 전한다.
비목마을사람들 공동대표 최영하 전 우즈베키스탄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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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군 헌병 시인 조지훈의 장자 曉泉 조광렬
양구 예림회 회원들이 붉은 오미자차와 노란 삼뿌리차를 대접하고 있다.
헌병의 전방 설명을 열심히 듣고
46년 만에 찾아본 비목의 고향
한 명 희
어느 시인은 ‘내 놀던 옛 동산에 오늘 와 다시 서니, 산천 의구란 말 옛 시인의 허사로고’라며,
산천이 의구(依舊)하다는 표현은 옛 문사들이 공연한 허사(虛飼)라고 했다.
하지만 며칠 전 국방부 유해발굴팀과 함께 찾아간 DMZ 비목의 고향 ‘옛 동산’ 은 반세기 가까운 세월의
풍화에도 불구하고 청청하게 의구키만 했다.
백암산 우 전방으로 용트림해 내리는 능선의 물결도 여일하고, 저 마큼 목전에 펼쳐지는 김일성 고지며
수도고지 등의 북녘 땅 산하들도 한가로운 구름 밑에서 옛 같기가 마찬가지였다.
멀리 금강산에서 발원하는 북한강 줄기의 그리움 같은 곡선미도 여전했고, 전쟁의 피멍 싣고 동류(東流)
하여 북한강으로 합수하는 굽이굽이 금성천의 지형들도 예스럽기는 매한가지였다.
산천의 풍광만이 불변한게 아니었다.
옛 전장(戰場)에 켜켜이 묻혀있는 기막힌 사연들도 내게는 그대로였다. 다만 싱그러운 6월의 청포장이
이불처럼 두터이 싸고 있어 육안으로만 보이지 않을 뿐 가슴으로는 여전했다.
내가 ROTC 육군소위로 임관하여 GP장으로 부임 한 때는 종전 후 11년 째로, 인근 산하에는 온통
전쟁의 잔해들이 도처에 즐비했다.
벌거숭이 비탈에는 수통과 탄피며 철모 등이 나뒹굴었고, 화목용 땔감에는 파편 투성이였다.
어느 골짜기 쯤에는 노란 MI 실탄들이 무더기로 묻혀 있고, 강변 둔덕에는 105미리 포탄피가
패총(貝塚)처럼 쌓여 있었다.
순찰을 돌다보면 간이무덤 같은 돌무지들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고, 채소를 심으려고 삽질을 하면
유골이 나오기 일쑤 였다. 남방 한계선은 고작 푯말 하나 덩그러니 서 있었고, 군사분계선이라곤
녹슨 철모망 한 두가락이 풀섶에 깔려 있었다.
그 같은 여건이니 그제나 이제나 저들이 툭하면 아군 GP를 습격해 오기 일쑤였다.
당시 GP는 저들의 수류탄 투척을 맊기 위해 지붕까지 철망으로 망을 쳤고, 밤에는 군화를 신은채로 잠을 잤다.
이 같은 삼엄한 GP의 분위기와는 달리 DMZ의 대자연은 경이로움 그대로였다.
봄이면 선명한 등고선을 그으며 성큼성큼 오르는 신록의 조화도 신기했고 가을이면 단풍의 물결이
반대로 하강하는 자연의 변모도 진기했다.
높은 산만 섬처럼 띄어놓고 하얀 구름바다를 이룬 새벽녘의 운해(雲海)도 장관이었고, 궁노루 울어 예는
교교한 달밤의 정경도 감탄과 신이(神異), 그 자체였다.
예의 궁노루 우는 달밤이었다. 순찰길에 은은한 향기 따라 주변을 살펴보니 하얀 산목련이 달빛 속에
우뚝했다. 예사롭지 않은 사연임을 직감했다.
그것은 틀림없이 산화한 연인의 무덤가를 지켜주는 가련한 여인의 소복한 화신이었다.
긴 세월을 기다리다 지친 순애보의 아낙이 돌아오지 않는 낭군의 차디찬 무덤가를 지켜주는
물망초(勿忘草)요 망부석(望夫石)이었다.
나는 그날의 감흥을 훗날 ‘비목’과 ‘산목련’이라는 가사로 각각 엮어 보았다.
아무튼 46년만에 내 마음의 고향동산에 서고 보니 만감이 교차했다.
더욱이 동행한 발굴팀장이 ‘틀림없는 매장지’ 같다는 그 비목의 주인공들 앞에 서고 보니,
왠지 도둑이 제 발 저리듯 저 만큼 우리네 세간의 작태들에 대한 부끄러운 마음부터 앞섰디.
옛 격전지의 현장에 서서 멀리 서울 하늘밑의 역겨운 추태들을 연상해보니 정말 하루살이 불나비들이
목전의 생사도 모른 채 ‘댄스 마카브르(죽음의 춤)를 추고 있는 형국만 같았다.
짧은 해후 끝에 하산하는 내 의식의 망막 속에는, 조금 전에 만났던 GP 후배 장병들의 늠름하고
싱그러운 모습들이 자꾸 어른거렸다.
과연 저 인생의 꽃망울같은 아름다운 젊음을 ‘묵비속의 앙상한 몰골들’과는 달리 누가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을까? 이의 해답으로 떠 오른 대상이 날구장천 지겨운 정쟁으로 지새는 우리네 한 지붕속
‘정치 기능공들’일 수 밖에 없음을 상기하자니, 마음은 더욱 무겁고 착잡했다.
아, 저 만큼 산 넘어 장안의 똑똑하고 잘난 자들이여, 그대들의 철없는 저주의 악다구니 속에 우리는
속절없이 또 한번 한맺힌 비극의 노래를 불러야 하나요.
귀경길 내내 내 귓가에는 조금 전 비목의 현장에 묻혀있는 호국영령들의 애절한 가락들이 역사의
준엄한 계시처럼 허밍으로 울려왔다.
금성천 갈대밭에 노을이 타면
강물도 그리움에 목이 메인듯
휴전선 아픈 사연 피멍이 되어
천리길 구비마다 흐느껴 예누나
백암산 별빛 속에 풀벌레 울면
산화한 님과 엮던 덧없는 세월
소복한 산목련은 차마 못잊어
은하수 쪽배 타고 노저어 예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