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의 여러 능선 중 서쪽으로 흘러내린 부처바위골 비마라사에 모셔진 석불이다. <삼국유사>에는 화엄십찰 중의 하나로도 기록되는
비마라사의 정확한 창건과 위치, 역사 등은 오리무중이다.
충북 단양 영춘을 비롯하여 전국에 대 여섯 곳의 ‘비마라사’ 터가 전해져 온다.
어펑바위 위에 웃음빛 가득한 불상은 통일신라시대의 조성 방식이 묻어난다. 나발이 없는 밋밋한 모양의 두상 그리고 목과 팔뚝에는 이중으로
영락을 두르고 두상에는 희미하게 화불이 모셔져 있어 불상의 격을 높인다. 부러진 목을 다시 얹으며 생긴 자국인지 목에는 살점이 붙어 있어 두상과
몸체에 쓰인 돌이 다른 게 아닌가 하기도 하는데 왼쪽 눈에서 어깨로 내려오는 선을 맞춰보면 제 돌인 게 분명하다. 대의 밖으로는 세 개의 주름이
있는 띠 모양의 천이 온몸을 둘러싸고 있어 신비롭다. 복부에는 X자형으로 매듭을 주고 옷고름은 무릎까지 내려오게 하였다. 양발은 몸체 돌에 같이
새겨 편안하나 앙련의 지대석은 불안할 정도로 작다. 광배도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없다.
오른손은 늘어진 천의(天衣) 자락을 잡고 왼손은 가슴께에서 법의를 수습하는 모양새다. 뒷면에도 몇 가닥의 선조(線條)로 새김질하여 마감한
인상적인 불상이다. 양 어깨를 휘감는 세 가닥의 옷 주름과 허리 아래로 가지런히 가운데로 모아지는 옷자락은 짜장 선녀상을 방불케 한다. 영락을
두른 모습이나 천의 자락 그리고 신체의 대비 등이 나말여초의 불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도 남을 만 하다.
예전 어느 날 마을 청년들이 훔쳐 달아나다 목과 몸통이 부러진 게 흠이라면 흠이다. 그 후손들의 삶은 또 어떠할까 하는 궁금함은 다음에
마을사람들에게 물어볼 양으로 미뤄두고 이렇게라도 갈무리하는 정성이 갸륵할 뿐이다.
첫댓글 희양산 월봉토굴 분위기와 비슷하네요. _()_
암반밑으로 황토흙벽에 창호문이었다면 수행자의 기운이 더 성성하겠습니다
상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