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사랑하는 사람 혹은 사랑하는 것들을 떠나보내는 심정은 누구나 다 똑같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무언가 떠나보내기가 힘들어 옆에 두고 싶고 함께 있는 듯이 지내고 싶은 마음! 그 마음 때문에 세상에는 소중한 것들이 많은 만큼 소중한 것을 진심, 소중하게 생각하는 착한 마음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세상은 참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며칠 전에 자매님 한 분이 면담을 요청하셨습니다. 그런데 두 분이 오실 모양이었습니다. 자매님 두 분은 평소에 서로 잘 아는 분이었고, 내가 있는 연구소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약속 시간이 다되어 연구소 앞에 나가보았더니, 면담을 신청한 자매님이 계셨습니다. 그래서 왜 안 들어오시냐고 물었더니, 실은 친구랑 같이 면담을 하고 싶다며, 그 친구가 오면 같이 들어오겠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연구소 안에 들어와 약속된 두 분을 기다리며 책을 보고 있었습니다. 이윽고 약속 시간이 10분 정도 지난 후에 노크 소리가 들렸고, 두 분이 연구소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늦게 오신 분이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신부님, 우리 애가 하반신 마비로 몸을 잘 가누질 못해요. 그런데 어제저녁부터 고개가 한 쪽으로 돌아가서, 급히 병원에 가서 MRI를 찍었는데, 병명을 찾을 수가 없대요.”
순간, 약속에 늦은 자매님이 병원에서 오는 중이라 좀 늦었고, 그분의 자녀 중에 누군가가 중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자매님이 말하는 중에도 그 큰 눈가에는 눈물이 글썽글썽했습니다. 나는 속으로, ‘마음이 참으로 아프겠다!’ 싶었습니다.
“자매님, 힘내셔요. 그리고 제가 무슨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다면 함께 할게요.”
같이 온 동료 한 분이 어깨를 토닥이고 있었고, 그 자매님은 눈물만 글썽이고 있었습니다.
“신부님, 혹시 이다음에 제가 성지에 커다란 화분 하나 봉헌해도 될까요?”
“혹시 무슨 화분을 말씀하시나요?”
“신부님, 만약에 우리 애가 죽으면 수목장을 하고 싶어요. 저의 집이랑 여기가 가깝고, 성지에 3시 미사를 자주 오거든요. 그런데 여기 성지는 나무를 심을 공간이 없어서 며칠을 혼자 성지를 살펴보다가 문득 화분이 생각났어요. 그래서 제가 크고 좋은 나무 하나를 화분에 담아 성지에 봉헌할게요. 그리고 그 화분의 흙이랑 화장한 우리 애를 함께… 흑흑흑.”
그분의 사연은 정말 딱하지만, 그렇다고 화분에 수목장을 한다는 것도 그렇고, 장묘법이니, 그 밖의 여러 가지 복잡한 것들이 생각나서 혼자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었습니다.
“자매님, 화장한 후 유해를 수목장 하는 곳은 따로 있다고 들었어요. 그러니 거기가 좀 멀더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데 자매님 자녀분이 많이 아프신가요?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나요?”
“예, 많이 아파요. 작년에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왔어요. 그 후로 우리 애가 소변을 혼자서 볼 수 없어서 제가 늘 옆에서 대소변을 받아 줍니다. 또 자주 여기저기가 아파서 걱정이에요. 병원비에 약 값에 보험은 안 되고. 하지만 우리 애가 나을 수만 있다면…. 우리 서로는 말은 할 수 없지만, 눈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우리 애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리고 우리 애 나이는 지금 14살이에요.”
순간, ‘엥 자녀 나이가 14살! 보험이 안 된다…’
(다음 호에 계속)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가톨릭신문
2016.1.31.
그 날, 상담을 요청한 자매님 나이가 3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이는데, 14살 된 아픈 자녀가 있다는 말을 듣자 혼자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분, 결혼을 참 일찍도 했네! 그러면 설마…. 고등학생 때, 아니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에고!’
그래서 나는 자매님에게 말했습니다.
“자매님, 지금 마음이 많이 힘드시지만, 용기 잃지 마시고요! 하느님께서 자매님 가정에 반드시 축복을 주실 거예요. 그리고 앞으로 위급한 때가 오면 저에게도 연락 주시고요. 그리고 자매님, 기도 중에 기억할게요. 그런데 자매님, 혹시 자녀분 세례명이 어떻게 되나요?”
그러자 그 자매님은 슬픈 눈으로 나를 보더니,
“저기…. 세례는 안 받았어요.”
순간 아주 고요한 정적이 흘렀습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자매님 두 분은 나를 미안한 눈으로 쳐다보다가, 그 친구분 서로가 대화를 합니다.
“마리아, 신부님께 상담 신청하면서 우리 애에 대해서 자세히 말씀 안 드렸어?”
“응, 그냥 네가 너무 힘들어하기에 상담 신청만 했지. 자세한 이야기는 안 했어. 그리고 신부님이 바쁘신 것 같아서 다 말씀드리면 그게….”
상황이 급반전 되었습니다. 처음 나에게 상담을 신청한 자매님이 결심을 한 듯,
“신부님, 상담 신청을 하면서 자세히 말씀드리지 않아서 정말 죄송합니다. 이 친구가 말하는 자녀는 지금까지 14년 키우는 강아지예요. 이 친구가 사회 초년생일 때부터 키우던 강아지인데 지금은 이 친구와 떨어질 수 없는 가족이 되었어요. 그런데 그 강아지가 작년에 높은 데서 떨어져 척추 대수술을 받았어요. 그래서 이 친구는 강아지 수술비, 즉 목돈을 마련하느라 다니던 직장도 퇴직했고, 그 퇴직금으로 수술을 시켜 주었어요. 그리고 1년 정도 아르바이트 하면서 강아지 병간호를 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 강아지가 요즘 너무 아프고 힘들어하고, 그리고 그 강아지를 돌보는 이 친구 마음도 너무 지쳐있어서…. 그래서 그 강아지를 어떻게 하나, 그 강아지 죽으면 어떻게 하나, 이 친구가 너무 힘들어할까…. 너무너무 걱정이 되어서 죽어서도 늘 함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화분 수목장을 생각해 냈어요. 죄송해요, 신부님.”
세상에! 키우던 강아지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잘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그 돈으로 수술비로 쓰고, 지금은 그 강아지를 돌보느라 아르바이트를 하고! 아,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구나!
그러자 강아지 엄마로 드러난 분이 말했습니다.
“신부님, 우리 애는 지금까지 저에게 큰 희망이었고 기쁨이었습니다. 제가 예전에 세상 적응을 잘 못할 때, 아니 때로는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던 때, 오로지 우리 애만 내 옆에서 나를 위로해 주고, 기쁨을 주었고, 희망이 되어 주었어요. 내가 외로울 때, 슬플 때 우리 애는 내 옆에서 내 곁에서 언제나 나를 지켜 주었어요. 늘 내 품에 안겨서 나에게 따스한 온기를 나누어주던 아이라…. 결코 이 아이랑 지금은 헤어질 수 없어요. 그 많은 병원비, 하나 아깝지 않았어요. 그 아이가 나에게 준 행복에 비하면…. 지금도 아무것도 아까울 것이 없어요. 그런데 우리 애가 너무 자주 아프니까 이제…. 이제…. 이제는 떠나보내야 하는 것일까 생각이 들면서…. 신부님, 죄송해요, 흑흑흑.”
살면서 내가 강아지 때문에 눈물을 흘리게 될 줄이야! 사람이 사람 때문에 힘들 때 반려동물이 정말이지 큰 힘이 되나 봅니다. 그래서 반려동물을 키우나 봅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소중해야 할 세상인데…. 우리는 그 날, 아무런 결론 없이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