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시다
<부활 팔일 축제 수요일 강론>
(2024. 4. 3. 수)(루카 24,13-35)
“바로 그날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순 스타디온 떨어진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
그들은 그동안 일어난 모든 일에 관하여 서로 이야기하였다.
그렇게 이야기하고 토론하는데, 바로 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 그들은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루카 24,13-16).”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그들이 곧바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와 동료들이 모여, ‘정녕 주님께서
되살아나시어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고 말하고 있었다.
그들도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루카 24,30-35).”
1) 여기서 ‘그날’은, 여자들이 예수님의 무덤으로 갔다가
천사들을 만난 날, 즉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입니다.
두 제자는 여자들이 전하는 ‘예수님 부활 소식’을
이미 들었는데(23절), 그 소식을 믿지 않고,
엠마오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눈’이 가리어져 있었던 것처럼(16절) ‘귀’도 가리어져 있어서
부활 소식을 믿지 않은 것입니다.
그들의 귀가 열린 때는, 성경을 풀이해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했을 때이고, 눈이 열린 때는, 예수님께서
“빵을 떼어 나누어 주시는” 것을 보았을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눈과 귀를 열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예수님은 ‘말씀과 빵’을 통해서
당신을 드러내시는 분”이라는 가르침으로 해석됩니다.
<흔히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로 표현하는데,
‘전례’가 아니라 ‘말씀과 빵’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2) ‘말씀’과 ‘빵’에는 ‘나눔의 실천’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지금 여기서 말하고 있는 ‘빵’은,
함께 나누어 먹는(함께 나누어 먹어야 하는) ‘생명의 빵’입니다.
옆에 있는 사람을 외면하고 혼자서만 먹는 빵은
‘썩어 없어질 양식’(요한 6,27)일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말씀’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일방적으로 혼자서만 말하고, 듣지 않고 나누지 않는 것은,
‘혼잣말’(루카 18,11)을 중얼거리는 것일 뿐입니다.
‘나눔의 실천’은 곧 ‘사랑’입니다.
말씀을 나누고 빵을 나누는 것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말씀과 빵’을 통해서 당신을
드러내신다는 말은, “예수님은 ‘사랑을 통해서’,
또 ‘사랑 안에서’ 현존하시는 분”이라는 가르침이 됩니다.
<원래 ‘사랑’은 혼자서는 못하는 일이고,
함께 해야 하는 일입니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상태에서는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예수님을 만나지도 못합니다.
우리 교회의 신앙생활은 주변 사람들을 모두 물리치고
혼자서 도를 닦는 생활이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사랑을 나누는 생활입니다.
만일에 사랑이 없으면,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3) 두 제자가 낯선 나그네를 환대하는 모습을 보면,
사랑이 부족했던 사람들은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두 제자가 자기들과 함께 묵으라고,
아직은 낯선 나그네였던 예수님을 붙든 일은,
다음 말씀을 실천한 모범이 됩니다.
“형제애를 계속 실천하십시오. 손님 접대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손님 접대를 하다가 어떤 이들은 모르는 사이에
천사들을 접대하기도 하였습니다(히브 13,1-2).”
<이 말에서, ‘손님’은 ‘낯선 나그네’를 뜻하는 말입니다.
‘천사들’은, 뜻으로는 ‘하느님’입니다.>
두 제자는 낯선 나그네에게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주님을 접대하게 되었습니다.
4) 두 제자에게 부족했던 것은 믿음, 즉 ‘부활 신앙’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으로
그들의 부족한 믿음을 채워 주셨습니다.
성경을 풀이해 주신 일과 빵을 떼어 나누어 주신 일은 모두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두 제자는 예수님의 사랑을 통해서 부족했던 믿음을 채웠고,
눈과 귀가 열려서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위해서 성경을 풀이해 주신 일을,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 연결할 수도 있습니다.
두 제자는 분명히 ‘좋은 땅’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많은 열매를 맺었을 것입니다(루카 8,15).>
5) 두 제자의 ‘눈’이 가리어졌다는 말과(16절)
‘눈’이 열렸다는 말에서(31절) 다음 말씀이 연상됩니다.
“네 눈은 네 몸의 등불이다. 네 눈이 맑을 때에는 온몸도
환하고, 성하지 못할 때에는 몸도 어둡다. 그러니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 아닌지 살펴보아라. 너의 온몸이 환하여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이 그 밝은 빛으로 너를 비출 때처럼,
네 몸이 온통 환할 것이다(루카 11,34-36).”
부활 신앙이 없는 사람은,
인생 전체가 어둠에 잠겨 있는 사람입니다.
어둠 속에 있으니 아무것도 볼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자신도 예수님처럼 부활할 수 있음도
믿고, 또 그렇게 되기를 희망하는 것은, 인생 전체가 환하게
빛나게 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안 믿는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것들을 모두 볼 수 있게 됩니다.
- 송영진 신부님 -
첫댓글 그들의 귀가 열린 때는,
성경을 풀이해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했을 때이고,
눈이 열린 때는, 예수님께서 “빵을 떼어 나누어 주시는”
것을 보았을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