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윤 목사님이 지으신 정말 좋은 책인 '장애인 선교의 이론과 실제'에서 조금 발췌했습니다. 장애인 선교에 비전이 있는 학생들에겐 필독서
입니다. 꼭 사서 보세요^^)
장애인에 대한 정의
장애(disabilities)란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할 능력의 결함을 가져오는 신체 구조상의 결함을 가리킨다.
성경에 나타난 장애인관
성경에 나타난 장애인에 관한 말씀들
신.구약 전체를 살펴보면 장애인에 관한 기록이 구약에 89회, 신약에 74회, 총 163회가 등장한다. 이 중 구약을 살펴보면, 시각장애가 47회, 지체장애가 27회 청각장애가 15회, 신약에서는 시각장애가 33회, 지체장애가 32회, 청각장애가 9회 등장한다.
장애인에 대한 성경적 관점
A. 역사적 사실로서의 장애인
1.불평등 조건으로서의 장애인
장애는 일반인에 비하여 불평등을 당하게 하는 조건이 된다. 이는 성경에 나타난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창 29:17-18에서 레아는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기에 야곱의 선택에서 밀려나고 만다. 게다가 이로 인하여 레아는 동생 라헬 대신에 강제적으로 먼저 야곱과 결혼하게 되고, 많은 아들을 낳았지만 야곱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아내로서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누리게 된다. 삼하 5:6,8에서는 이스라엘의 유명한 왕 다윗이 지체장애인, 시각장애인을 마음에 미워하여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다.
2.징벌로서의 장애
장애는 고통스러운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죄에 대한 징벌로서만 주어진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서는 징벌로서 장애가 주어지고 있다. 그렇게 장애인이 되는 경우가 있다. 레 26:16에서는 재앙을 받은 결과로 시각장애를 입게 되고, 삼손은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힘의 비결을 노출시켜 눈을 빼앗기고 시각장애인이 되고 만다. 신 28:28에서 하나님을 거역하는 이스라엘에게 징벌로서 정신질환과 시각장애를 명한다. 삿 1:6-7에서 아도니 베섹이 자신이 다른 왕들의 수족의 엄지가락을 찍은 것과 똑같이 수족의 엄지가락을 끊겨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징벌했다고 고백한다. 삼하 3:29에서는 요압의 집에 죄에 대한 징벌이 임하여 문둥병자와 지체장애인들이 계속해서 나타날 것임을 예언하고 있다. 렘 52:11에서는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가 두 눈을 빼앗기고 결박당하여 포로로 잡혀 간다. 이는 하나님의 경고와 말씀을 듣지 않은 왕의 비극적인 최후로서 결과되어진 것이다. 시 31:18에서는 교만하고 완악한 말을 하는 자에게 언어장애의 징벌을 내리라고 한다.
3.죄인 혹은 불결한 존재의 상징으로서의 장애인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셨고, 증명할 뿐 아니라 확인까지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부인하며 불순종한 자들을 가리킬 때, 종종 장애인을 비유로 말씀하시곤 한다. 즉 지체장애인의 균형잡히지 않는 자세, 시각장애인의 더듬거나 갈팡질팡하는 모습, 청각장애인의 말을 듣지 못하여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죄인의 특성으로 비유하곤 한다. “미련한 자 편에 기별하는 것은 자기의 발을 베어 버림이라 해를 받느니라 저는 자의 다리는 힘없이 달렸나니(잠 26:6)”,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사 6:10)”, “눈이 있어도 시각장애인이요 귀가 있어도 청각장애인인 백성을 이끌어 내라(사 43:8)”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리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마 18:8-9, 막 9:43-45)”,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시각장애인이 시각장애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다 구덩이에 빠지지 않겠느냐(눅 6:39)”,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이런 것이 없는 자가 시각장애인이라(벧후 1:8-9)”,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요일 2:11)”,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은 알지 못하노라(계 3:17)”
B. 사실을 넘어서는 중요한 존재로서의 장애인
(가) 장애
1.생명 전체로서의 장애
마 12:9-21에 ‘손 마른 장애인’을 치유하시는 사건이 등장한다. 이 사람은 양손도 아니고 한쪽 손이 말라서 기능을 상실하였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그를 만났다. 거기에는 바리새인 등의 사람들이 예수님의 사역을 주목하고 있었다. 그들은 안식일에 일을 하시는 예수님을 송사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에 예수님은 다음의 말씀을 하신다.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즉 양의 생명을 구하는 것과 손 마른 사람의 손을 고치는 것과 연결시켜 말씀하고 계신다. 한쪽 손의 의미가 아니라 생명 전부로서 손 마름을 보고 계신 것이다. 어느 주석가에 의하면 손 마른 사람은 직업이 조각가였다고 한다. 그렇기에 손을 사용하지 못하면 생계유지가 불가능했다. 손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손의 장애는 생명 자체와 연결되는 것이다.
2.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장애
요 9:1-12에 ‘나면서부터 시각장애인’ 된 사람과 예수님, 제자들이 등장한다. 제자들은 이 시각장애인의 장애 원인에 대하여 ‘죄의 소재’를 묻는다. 이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3절)”이라고 일축하신다. 장애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귀한 수단이기도 하다는 적극적 의미를 강조함으로써 당시의 부정적 시각을 일시에 무너뜨리셨다.
3.변화된 증거로서의 장애
장애란 대부분이 죄의 결과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무능력으로 인한 장애, 의사의 오진(誤診)으로 인한 장애입음, 교통사고나 산재 등으로 인한 장애, 임신부의 약물 오용과 성적 타락으로 인한 장애인의 출생 등은 모두 개인과 사회의 범죄로 인한 장애의 결과를 말하여 주고 있다. 이는 시대가 더하여 가면 갈수록 증가추세에 있다.
성경에서도 그렇다. 중도 실명자 삼손(삿 13:1-16:31)과 중도 지체장애인 야곱(창 32:13-32)을 보라. 삼손은 여인에게 유혹당한 범죄로 인하여 시력을 잃었고, 야곱은 아버지와 형을 속인 범죄로 인하여 도망갔다가 돌아오는 중에 하나님의 천사로부터 환도뼈를 맞아 다리를 절게 되었다. 분명히 그들의 범죄의 결과이다. 그러나 성경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범죄의 결과인 장애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수단이 된다고 말씀하신다. 삼곤과 야곱, 이 두 사람은 모두 장애인이 되고서야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자기 모습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면서 변화된 인생으로 인생을 살다가 마치게 된다. 삼손은 하나님의 능력을 세상에 알리면서 하나님의 품으로 갔고,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의 징표로서 장애를 안고 ‘이스라엘’로서 남은 여생을 절룩거리면서 살게 된다.
삼손과 야곱은 중도에 입은 장애이지만, 하나님을 새롭게 발견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게 된 증거로서 장애를 입고 있다. 후에 바울이 된 사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 일시적으로 시각장애를 겪고(행 9:8,18), 고후 12:7에서는 육체의 가시 라 일컫는 시력장애를 입어 고생을 하였지만, 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교만하지 말라-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동시에 예수님을 만나 회복된 장애인들은 건강한 누구보다 더 분명하게 예수님을 만난 증거를 몸에 가지게 되는 은혜를 누렸다. 심히 불편하였음을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의 변화로 인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고, 자신에게는 가장 분명한 변화의 계기가 되었다.
(나)장애인
1.하나님 나라의 구성원으로서의 장애인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이 땅에 오셨을 때, 가장 먼저 강조하였던 것이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마 4:17, 막 1:15)고 선언하셨고, 하나님의 나라를 비유로 직접 말씀하셨다. 이는 신학에 있어서도 핵심적인 부분이다. 그러면 이 하나님 나라는 장애인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몰트만은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에서 예수님과 더불어 가난한 자, 장애인에게서 시작된다. 고 말한다. 또한 장애인은 복지사업이나 자선행위 혹은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성원’이며, 세계를 심판하는 인자의 ‘형제’요, 장애인을 하나님 나라의 성원으로 인정하고 그들에 의해서 우리가 형제로서 받아들여질 때 우리들은 예수와 함께 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즉 일반인에 의하여 주도된 장애인을 형제로 삼자는 운동이 아니라 장애인에 의하여 일반인이 형제로 인정될 때, 하나님 나라가 거기에서 발견되어진다고 강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성경은 장애인과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눅 14:12-24에서는 하나님 나라를 잔치에 비유하여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이 본문에서는 하나님 나라에 제일 먼저 들어가게 된 사람이 바로 장애인 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여호와께서 저는 자를 모아 남은 백성이 되게 하리라(미 4:6-7)”
“그 때에 내가…저는 자를 구원하며…(습 3:19)”
이 말씀들은 장차 올 하나님 나라에서 장애인은 주변인이거나 소외된 자가 아니라 오히려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게 될 주역이요, 당당한 천국시민으로서 들어가게 될 당당한 참여자요, 더 나아가 일반인보다 앞서서 들어가는 선구자가 될 것임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장애인은 하나님 나라의 구성원 중의 하나이다. 이는 교회의 올바른 상을 제시해 주고 있다.
교회란 하나님 나라의 그림자요 작은 예표이다. 따라서 교회란 하나님 나라의 구성요소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참된 교회의 구성요건 중 하나는 장애인과 일반인이 예수님을 믿는 고백 위에 함께 세워질 때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장애인만의 교회나 일반인만의 교회, 혹은 물리적인 구조든 정신적인 구조든 간에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을 포용하지 못하는 교회는 올바른 교회가 될 수 없다. 올바른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통합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교회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