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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장성(萬里長城)
길이가 만리(萬里)나 되는 장성(長城)이라는 뜻으로, 서로 넘나들지 못하게 가로막는 크고 긴 장벽을 또는 창창한 앞날을 또는 남녀가 서로 교합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萬 : 일만 만(艹/9)
里 : 거리 리(里/0)
長 : 길 장(長/0)
城 : 성 성(土/6)
출전 : 사기(史記) 몽염(蒙恬)열전
이 성어는 중국의 북쪽에 있는 성으로, 서쪽 간쑤 성(甘肅省)의 자위 관(嘉峪關)에서 시작하여 동쪽 허베이 성(河北省)의 산하이 관(山海關)에 이른다.
춘추전국시대의 조(趙)와 연(燕)나라 등이 변경 방위를 위하여 축조한 것을 진(秦)의 시황제가 크게 증축하여 완성하였다.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명나라가 몽골의 침입에 대비하여 쌓은 것이다. 길이는 2,700km이다.
만리장성(萬里長城)이란, 서로 넘나들지 못하게 가로막는 크고 긴 장벽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또는 창창한 앞날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또한 남녀가 서로 교합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사기(史記) 몽염열전(蒙恬列傳)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秦已並天下, 乃使蒙恬將三十萬眾北逐戎狄, 收河南。
진나라는 천하를 통일한 뒤(시황제) 몽염(蒙恬)에게 명하여 30만 병력을 이끌고 북쪽으로 가서 융적(오랑캐)을 쫓아 버리고 하남(河南)을 차지하여 장성을 쌓도록 했다.
築長城, 因地形, 用制險塞, 起臨洮, 至遼東, 延袤萬餘里。
그는 장성을 쌓으면서 지형과 산세의 기복에 따라 요새를 만들었는데, 임조(臨洮)에서 요동(遼東)까지 1만여리가 되었다.
만리장성(萬里長城)이라는 말은 바로 이 사기 몽염열전에 기록된 몽염이 쌓은 1만여리(延袤萬餘里)에서 탄생했다.
기원전 213년 시황제의 명에 따라 만리장성을 축조한 몽염은 시황제가 급서한 뒤(기원전 210년) 진2세 황제 호해(胡亥)와 환관 조고(趙高)의 계략에 말려 자결을 명받았다.
몽염(蒙恬)은 자결하기 전에 죄가 없다고 하다가 소용이 없자 이렇게 말했다. “내 죄는 죽어 마땅하다. 임조에서 요동까지 장성을 만 여리나 쌓았으니, 이 공사 도중에 어찌 지맥(地脈)을 끊어 놓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내 죄로구나(此其中不能無絕地脈哉? 此乃恬之罪也).”
역사가 사마천의 평가는 가차 없다. 내가 몽염이 건설한 만리장성을 둘러보고 왔다면서 이렇게 장탄식한다.
산악을 깎고 계곡을 메워 지름길을 통하게 했으니, 진실로 백성의 힘을 가벼이 여긴 것이 분명하다(塹山堙谷, 通直道, 固輕百姓力矣).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후 민심은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전쟁의 상처도 채 가라앉지 않았는데, 몽염은 이름 있는 장수로서 백성을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간언하지 않고 도리어 시황제의 야심에 영합하여 공사를 일으켰으니 그들 형제(몽염과 몽의)가 죽음을 당한 것은 마땅하지 않겠는가! 어찌 지맥을 끊은 탓으로 돌리랴(而阿意興功, 此其兄弟遇誅, 不亦宜乎. 何乃罪地脈哉?).
사마천은 "백성을 고달프게 만든 만리장성 공사에 앞장 선 몽염은 죽어도 싸다"고까지 극언한 것이다.
전국시대의 혼란기에서 겨우 안정을 찾은 진나라 백성들이 느껴야 했던 고초는 상상 이상이었다. 어림잡아 100만명에 이르는 진나라 사람들이 만리장성 수축에 동원됐다.
일꾼들의 고초는 차치하고 물자와 식량을 실어나르느라 노약자와 여성들까지 총동원됐다. 게다가 세금까지 무겁게 거뒀다. 지금처럼 크레인 같은 건설 장비도 없었다.
높은 산과 험준한 계곡과 골짜기 등에서 힘없는 백성들은 속절없이 죽어 나갔다. 진나라의 가혹한 형법은 조금이라도 꾀를 부리는 백성들을 가차 없이 처벌했다.
망하지 않으려 장성을 쌓았지만 거꾸로 성을 쌓음으로써 나라가 망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하면서 회남자(淮南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몽염을 파견해서 장성을 쌓아 동서 수 천리에 이르렀다. 비바람과 눈보라에 몸을 맡긴 병사와 장수는 언제나 수십만이었다. 죽은 자도 헤아릴 수 없으며 시체가 천리이고, 피가 흘러 전답을 이루었다. 반란에 가담하려는 백성이 10가구에 5가구나 되었다.”
즉 장성 수축에 따른 가혹한 노역에 이기지 못한 백성들이 ‘진승과 오광의 난’(기원전 209년)에 속속 가담했음을 고발하고 있다.
이 밖에도 장성수축을 둘러싼 참상이 이런저런 문헌에 기록돼 있다.
○ 한서 가연지전, 무오자전
지금도 장성의 노래가 끊이지 않는다. 죽은 자의 뼈가 장성 아래서 비바람을 맞고 있고 해골들이 길가에 널려있다.
ㅇ 논형 난시편
몽염이 장성을 쌓으면 천하의 반이 궁핍하게 되니… 진나라 백성의 반이 죽을 것입니다.
뭐니 뭐니해도 북위의 지리학자 역도원이 쓴 수경주 하수의 기록은 심금을 울린다. 역도원은 밤낮으로 일하고 경계까지 서야 하는 백성들은 나라를 원망하고 고통스러워 한다면서 서진 시대 철학자인 양천의 물리론을 인용해서 이렇게 고발한다.
만리장성 수축 때문에 죽은 자가 줄지어 늘어섰다. 민간에서 이런 노래가 퍼졌다. "사내아이를 낳으면 절대 키우지 마라. 딸을 낳으면 산해진미를 먹여 키워라. 그대는 아는가 모르는가. 장성 아래 산더미처럼 쌓인 시체들을…"
남아 선호 사상이 뿌리 깊은 중국 역사에서 이런 노래가 퍼졌다? 남자로 태어나면 만리장성 수축에 끌려가 속절없이 죽어간 당대의 슬픈 현실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노래다.
맹강녀(孟姜女)의 전설
만리장성과 관련해서 중국인들이라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바로 맹강녀의 전설이다. 이 맹강녀의 전설은 견우와 직녀, 백사전(白蛇傳), 양축(梁祝; 양산백과 축영대의 사랑이야기) 등과 함께 중국의 4대 전설로 꼽힌다.
이 전설은 진나라의 폭정이 얼마나 엄청났는지, 그리고 이 가혹한 제국을 엎어야 한다는 민중의 열망이 얼마나 강한 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로 알려져 있다. 민간에서 다양한 형태로 윤색된 맹강녀(孟姜女)의 전설은 다음과 같다.
진시황 때의 일이다. 맹강녀는 남편 범기량(范杞梁)이 만리장성 축성 현장에 끌려가자 눈물로 세월을 보낸다. 3년이 지난 후에도 소식이 없고, 또 마침 엄동설한에 닥쳐오자 맹강녀는 큰 결심을 하게 된다. 남편을 만나러 간 것이다.
맹강녀는 두툼한 솜옷(寒衣)을 지어 보따리를 안고 몇 달에 거쳐 만리장성에 도착한다. 하지만 남편이 이미 죽었다는 소식만 듣는다. 맹강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통곡을 했다.
갑자기 하늘에서 천둥이 치고 폭우가 쏟아져 800리나 되는 성벽이 무너졌다. 그 틈에 수많은 백골이 쏟아진다. 남편의 시신을 찾았지만 백골만 남은 시신을 구별할 수 없었다.
넋을 잃고 통곡하던 맹강녀의 뇌리에 스친 것이 있었다. 그리워하는 사람의 백골은 연인의 피를 빨아 들인다는 속설이 떠올랐다. 맹강녀는 손가락을 깨물어 핏방울을 일일이 백골 위에 떨어뜨렸다. 마침 어떤 백골이 피를 빨아들였다.
이때 진시황이 맹강녀의 미모를 보고 반해 첩으로 삼고자 했다. 맹강녀는 남편을 위해 상복을 입고 제사를 지내줄 요구했다. 진시황이 갸륵하다고 여겨 제사를 지내주었다. 맹강녀는 제사가 끝나자마자 남편의 시신을 받쳐 들고 바다로 몸을 던졌다.
지금도 중국 허베이성(하북성) 산해관 동쪽 7㎞ 지점에 맹강녀의 묘가 있고, 그 곁에는 원망 가득한 눈초리로 만리장성을 바라보는 맹강녀의 동상이 서있다.
물론 맹강녀 전설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윤색되고 첨삭되어 다양한 갈래의 전설로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민간에 전해지는 설화는 민간 백성들의 여론을 그대로 반영한다. 정식으로 기록하지 않아도, 수백, 수천년 동안 생명력을 발하며 전승된다.
만리장성 설화는 결국 희대의 폭군인 진시황과, 폭정의 상징인 만리장성 수축, 그리고 폭군의 폭정에 시달렸던 백성들의 저항심리가 투영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만리장성(萬里長城)
중국 북쪽 변경의 성으로, 넘지 못할 장벽이나, 남녀 간의 정분을 비유하는 말이다.
아주 긴 사물의 대명사 만리장성(萬里長城)은 달나라에서도 보인다는 중국 북쪽 지역의 성을 먼저 떠올린다. 진시황(秦始皇)때 변경을 방위하기 위해 완성했다는 이 성이 2700km에 달한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하다.
여기에서 나와 우리 일상에서 여러 의미로 다양하게 응용된다. 서로 넘나들지 못하게 막는 긴 장벽이나 또는 창창한 앞날을 비유적으로 이르고, '하룻밤을 자도 만리성을 쌓는다'는 속담은 남녀가 잠깐 사귀더라도 깊은 정을 쌓을 수 있다는 뜻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정인(情人) 끼리의 사랑에까지 쓰이게 됐더라도 유래는 물론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서 비롯됐다. 진(秦)나라 때 변경을 경비하는 총사령관이었던 몽염(蒙恬)이 시황제의 명으로 30만 병력으로 성을 쌓았다. 길이를 표현한 부분을 보자.
築長城, 因地形, 用制險塞, 起臨洮, 至遼東, 延袤萬餘里.
장성을 쌓으면서 지형과 산세의 기복에 따라 요새를 만들었는데 임조에서 요동까지 1만여 리가 됐다.
간신 조고(趙高)의 음모에 의해 죽게 되는 몽염은 장성의 수축에 진시황의 명만 받들어 백성들을 죽도록 내몰았다고 사마천에게도 좋은 평을 듣지 못했다.
하룻밤의 만리성 이야기는 우리 속담을 한역한 정약용(丁若鏞)의 이담속찬(耳談續纂)에서 일야지숙 장성혹축(一夜之宿 長城或築)이라 표현하며 '잠시라도 마땅히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雖暫時之須 不宜無備)'고 풀이했다.
조선 후기 학자 조재삼(趙在三)의 송남잡지(松南雜識)에는 일야만리성(一夜萬里城)이라 하여 왜구들이 우리나라에 쳐들어왔을 때 하루를 머물더라도 성을 쌓았다는 데서 왔다고 설명했다.
이런 이야기보다 젊은 색시가 국경의 장성 공사에 끌려간 남편을 빼내기 위해 머슴과 하룻밤을 같이 했다는 구전설화가 더 흥미를 끈다.
장성이 서로간의 넘나들 수 없는 장벽의 대명사이기도 하지만 하룻밤에 쌓는 만리성은 아무리 일시적인 일이라도 성을 쌓아 적에 대비하듯이 확실하게 해야 한다는 교훈으로 받아들이면 좋다.
국제사회에서 빈번히 일어나듯 어제의 우방이 영원히 계속되지 않고 오늘의 적이 될 수도 있다.
사회에서의 대인관계에서도 조그만 이해관계에서 틀어지는 우의를 자주 본다. 오래 계속되지 않을 관계로 여겨져 함부로 대했다간 언제 화가 닥칠지 모르니 평시에 튼튼히 하라는 것이 만리성의 가르침이다.
▶️ 萬(일만 만)은 ❶상형문자로 万(만)의 본자(本字)이다. 가위나 꼬리를 번쩍 든 전갈의 모양을 본뜬 글자로 전갈이 알을 많이 낳는다고 하여 일 만을 뜻한다. ❷상형문자로 萬자는 ‘일만(一萬)’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萬자는 艹(풀 초)자와 禺(긴꼬리원숭이 우)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萬자의 갑골문을 보면 앞발을 든 전갈이 그려져 있었다. 萬자는 본래 ‘전갈’을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였다. 그러나 후에 숫자 ‘일만’으로 가차(假借)되면서 본래의 의미는 더 이상 쓰이지 않고 있다. 萬자는 간혹 万(일만 만)자로 쓰일 때가 있는데, 이것은 중국 한나라 때 萬자를 생략해 사용했었기 때문이다. 간체자를 사용하는 중국에서는 万자를 ‘일만’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萬(만)은 (1)천(千)의 열 곱절. 9천999보다 1이 더 많은 수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일 만(一萬) ②성(姓)의 하나 ③사천성에 있는 현(縣)의 이름 ④만무(萬無: 절대로 없음) ⑤대단히 ⑥매우 ⑦매우 많은 ⑧여럿 ⑨절대로 ⑩전혀 ⑪많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아주 멀고 오랜 세대를 만대(萬代), 온갖 일을 만사(萬事), 있을지도 모르는 뜻밖의 경우를 만일(萬一), 만일이나 혹시를 만약(萬若),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나 갖가지 수많은 물건을 만물(萬物), 온갖 물건의 형상을 만상(萬象), 썩 많은 돈을 만금(萬金), 매우 오래 삶을 만수(萬壽), 많은 복을 만복(萬福), 갖출 수 있는 모든 것을 만반(萬般), 온갖 것에 다 능통함을 만능(萬能), 경축하거나 환호하여 외치는 말을 만세(萬歲), 완전하여 조금도 빠진 것이 없는 것 또는 아주 안전한 것을 만전(萬全), 온갖 어려움을 만난(萬難), 썩 많은 돈을 만냥(萬兩), 썩 많은 햇수나 늘 한결같은 상태를 만년(萬年), 세계 각 나라의 국기를 만국기(萬國旗), 모든 일이 뜻하는 대로 잘 됨을 만사여의(萬事如意), 모든 일이 잘 되어서 험난함이 없음을 만사태평(萬事太平), 모든 일이 뜻한 바대로 잘 이루어짐을 만사형통(萬事亨通), 영원히 변하지 아니함을 만세불변(萬世不變), 아주 안전하거나 완전한 계책을 만전지책(萬全之策), 장수하기를 비는 말 만수무강(萬壽無疆) 등에 쓰인다.
▶️ 里(마을 리/이, 속 리/이)는 ❶회의문자로 裏(리)의 간체자이다. 裡(리)와 동자로 田(전; 밭)과 土(토; 토지)의 합자(合字)이다. 밭이 있고 토지(土地)가 있는 곳으로 사람이 있는 곳을 말한다. 또 거리의 단위로도 쓰인다. ❷회의문자로 里자는 ‘마을’이나 ‘인근’, ‘거리를 재는 단위’로 쓰이는 글자이다. 里자는 田(밭 전)자와 土(흙 토)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밭과 흙이 있다는 것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곳이란 뜻이고 이런 곳에는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되니 里자는 ‘마을’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고대 중국에서는 里자가 마을 단위의 소규모의 행정구역을 뜻했기 때문에 1리(里)는 25가구가 함께 모여 사는 마을을 의미했다. 또 里자는 거리를 재는 단위로 사용되기도 하여 1리는 약 400m의 거리를 말했다. 그래서 里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마을’이나 ‘거리’라는 의미를 함께 전달하기도 한다. 그러나 상용한자에서는 주로 발음이나 모양자 역할만을 하고 있다. 그래서 里(리)는 숫자(數字) 다음에서 이(里)의 뜻으로 ①마을 ②고향(故鄕) ③이웃 ④인근 ⑤리(거리를 재는 단위) ⑥리(행정 구역 단위) ⑦속 ⑧안쪽 ⑨내면(內面) ⑩이미 ⑪벌써 ⑫헤아리다 ⑬근심하다(속을 태우거나 우울해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동네 방(坊), 마을 부(府), 골 동(洞),마을 촌(邨), 마을 촌(村), 마을 서(署), 마을 아(衙), 마을 려/여(閭), 마을 염(閻)이다. 용례로는 마을이나 촌락을 이락(里落), 일정한 곳으로부터 다른 일정한 곳에 이르는 거리를 이정(里程), 행정 구역의 이의 사무를 맡아보는 사람을 이장(里長), 벼슬을 그만두고 시골에서 삶을 이거(里居), 동네의 어귀에 세운 문을 이문(里門), 마을으로 지방 행정 구역인 동과 리의 총칭을 동리(洞里), 고향이나 시골의 마을을 향리(鄕里), 천 리의 열 갑절로 매우 먼 거리를 만리(萬里), 십 리의 백 갑절로 멀리 떨어져 있는 거리를 천리(千里), 상하로 나눈 마을에서 윗마을을 상리(上里), 아랫마을을 하리(下里), 해상의 거리를 나타내는 단위를 해리(海里), 남의 고향에 대한 미칭을 가리(珂里), 자기가 살고 있는 동리를 본리(本里), 북쪽에 있는 마을을 북리(北里), 지방 행정 단위인 면과 리를 면리(面里), 사방으로 일 리가 되는 넓이를 방리(方里), 산 속에 있는 마을을 산리(山里), 풍속이 아름다운 마을을 인리(仁里), 다른 동리나 남의 동리를 타리(他里), 짙은 안개가 5리나 끼어 있는 속에 있다는 뜻으로 무슨 일에 대하여 방향이나 상황을 알 길이 없음을 오리무중(五里霧中), 붕새가 날아갈 길이 만리라는 뜻으로 머나먼 노정 또는 사람의 앞날이 매우 요원하다라는 붕정만리(鵬程萬里), 강물이 쏟아져 단번에 천리를 간다는 뜻으로 조금도 거침없이 빨리 진행됨을 일사천리(一瀉千里), 천 리 길도 멀다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먼길인데도 개의치 않고 열심히 달려감을 불원천리(不遠千里), 말이 천리를 난다는 뜻으로 말이 몹시 빠르고도 멀리 전하여 퍼짐을 언비천리(言飛千里), 바다와 육지를 사이에 두고 멀리 떨어져 있음을 수륙만리(水陸萬里) 등에 쓰인다.
▶️ 長(길 장/어른 장)은 ❶상형문자로 仧(장),兏(장)은 동자(同字), 长(장)은 약자(略字)이다. 長(장)은 머리털이 긴 노인이 단장을 짚고 서 있는 모양으로, 나중에 노인이 전(轉)하여 나이가 위인 사람으로 관리(官吏)의 長(장), 또한 성장하다, 길게 자라다, 길다 따위의 뜻에 쓰였다. ❷상형문자로 長자는 '길다'나 '어른'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長자는 머리칼이 긴 노인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본래의 의미는 ‘길다’였다. 長자는 백발이 휘날리는 노인을 그린 것이기 때문에 후에 '어른', '우두머리'라는 뜻도 파생되었다. 長자는 부수로 지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상용한자에서는 관련된 글자가 없다. 張(베풀 장)자나 帳(휘장 장)자에 長자가 쓰이기는 했지만, 長자가 부수로 지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長(장)은 (1)어떤 조직체(組織體)나 또는 부서 단위의 우두머리(책임자) (2)긴 기다란의 뜻을 나타내는 말 (3)오랜의 뜻을 나타내는 말 (4)길이 (5)늘 (6)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길다 ②낫다 ③나아가다 ④자라다 ⑤맏 ⑥어른 ⑦길이 ⑧우두머리 ⑨처음 ⑩늘 ⑪항상(恒常),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오랠 구(久),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어릴 유(幼), 짧을 단(短), 늙을 노/로(老)이다. 용례로는 좋은 점을 장점(長點), 긴 것과 짧은 것을 장단(長短), 목숨이 긺을 장수(長壽), 맏 아들을 장남(長男), 한 관청의 으뜸 벼슬을 장관(長官), 오랜 기간을 장기(長期), 장편으로 된 노래를 장가(長歌), 길게 내는 소리를 장음(長音), 어른과 어린이를 장유(長幼), 나이가 많고 덕이 많은 사람의 존칭을 장로(長老), 통나무를 길쭉하게 잘라서 쪼갠 땔나무를 장작(長斫), 오랫동안 깊이 생각함을 장고(長考), 아주 능한 재주를 장기(長技), 생물이 자라서 점점 커짐을 성장(成長), 모임을 대표하는 사람을 회장(會長), 집안의 어른을 가장(家長), 도와서 자라나게 한다는 조장(助長), 시간이나 물건의 길이 따위를 처음에 정한 것보다 늘이어 길게 함을 연장(延長), 위에 서서 집단이나 단체를 지배 통솔하는 사람을 수장(首長), 특별히 뛰어난 장점을 특장(特長), 오륜의 하나로 어른과 어린이 사이에는 순서와 질서가 있음을 이르는 말을 장유유서(長幼有序), 길다란 목에 까마귀 부리 같이 뾰족한 입이라는 뜻으로 관상에서 목이 길고 입이 뾰족한 상을 이르는 말을 장경오훼(長頸烏喙), 오래 서서 분부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권문세가에 빌붙어 이익을 얻고자하는 사람을 조롱해 이르는 말을 장립대명(長立待命), 긴 눈과 날아다니는 귀라는 뜻으로 옛일이나 먼 곳의 일을 앉은 채로 보고들을 수 있는 눈이나 귀 곧 서적을 이름 또는 사물을 날카롭게 관찰하고 널리 정보를 모아 잘 알고 있음을 이르는 말을 장목비이(長目飛耳), 길고 짧음은 상대적 관계에서 비교할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을 장단상교(長短相較), 멀리 불어 가는 대풍을 타고 끝없는 바다 저쪽으로 배를 달린다는 뜻으로 대업을 이룬다는 말을 장풍파랑(長風波浪), 소매가 길면 춤을 잘 출 수 있다는 뜻으로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도 조건이 좋은 사람이 유리함을 일컫는 말을 장수선무(長袖善舞), 날이 새도 창을 가리고 불을 켜놓은 채 며칠이고 계속하는 술자리를 일컫는 말을 장야지음(長夜之飮), 길고도 긴 봄날을 일컫는 말을 장장춘일(長長春日), 사업의 오랜 계속을 도모하는 계획을 일컫는 말을 장구지계(長久之計), 길게 뻗친 숲의 깊은 곳을 일컫는 말을 장림심처(長林深處), 오랫동안 살아 죽지 아니함을 일컫는 말을 장생불사(長生不死), 늘 길거리에 모여 있으면서 뜬 벌이를 하는 막벌이꾼을 일컫는 말을 장석친구(長席親舊), 누운 채 일어나지 못함을 일컥는 말을 장와불기(長臥不起), 먼 장래의 계책이라는 말을 장원지계(長遠之計), 긴 줄로 해를 붙들어 맨다는 뜻으로 시간의 흐름을 매어 멈추게 하려는 것 즉 불가능한 일을 이르는 말을 장승계일(長繩繫日), 장자의 일만 개의 등이라는 뜻으로 불교에서 부자가 신불에게 일만 개의 등을 올리는 반면에 가난한 여인은 단 하나의 등을 바치지만 그 참뜻만 있으면 가난한 여인의 한 등이 장자의 만등에 못지 않다는 말을 장자만등(長者萬燈), 부자는 3대까지 가기 어렵다는 말 곧 아버지가 고생해서 재산을 만들고 그것을 보고 자란 아들인 2대는 그것을 잘 지키지만 3대인 손자는 생활이 사치하여 마침내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이룩한 가산을 탕진하는 예가 많음을 이르는 말을 장자삼대(長者三代), 긴 베개와 큰 이불이라는 뜻으로 긴 베개와 큰 이불은 함께 누워자기에 편하므로 형제 간에 우애가 두터움을 이르는 말을 장침대금(長枕大衾) 등에 쓰인다.
▶️ 城(재 성)은 ❶형성문자이나 회의문자로 보는 견해도 있다. 뜻을 나타내는 흙 토(土; 흙)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成(성)으로 이루어졌다. 成(성; 이루어지다)은 盛(성; 수북하다), 整(정; 일치하다, 정리되다)과 뜻이 통한다. 城(성)은 흙을 높이 쌓아 방벽을 지어 백성을 지키다의 뜻으로, 적군이 쳐들어 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흙이나 돌로 높이 쌓아올린 큰 담, 성곽(城郭)을 말한다. 중국에서는 동네 전체를 성벽으로 에워싸기 때문에 동네를 성시(城市)라 한다. ❷회의문자로 城자는 ‘성’이나 ‘도읍’, ‘나라’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城자는 土(흙 토)자와 成(이룰 성)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성(城)은 적의 침입에 대비해 쌓은 높은 장벽을 말한다. 고대의 도시들은 대부분이 흙을 쌓아 만든 장벽에 둘러싸여 있었다. 城자에 쓰인 土자는 그러한 뜻을 전달한다. 그러니 城자는 성벽을 쌓고 창을 들어 지킨다는 뜻이다. 그래서 城(성)은 (1)적군(敵軍)이 쳐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흙이나 돌로 높이 쌓아올린 큰 담. 성곽(城郭) (2)카프카(Kafka, F.)의 미완성(未完成) 장편소설(長篇小說) 등의 뜻으로 ①재(높은 산의 고개) ②성(城) ③도읍(都邑), 나라, 도시(都市) ④무덤, 묘지(墓地) ⑤구축하다, 성을 쌓다 ⑥지키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성의 주인을 성주(城主), 성의 담벼락을 성벽(城壁), 성을 새로 쌓거나 또는 고쳐 쌓는 일을 성역(城役), 적의 접근을 막기 위하여 성의 둘레에 깊게 파 놓은 연못을 성지(城池), 내성과 외성을 아울러 일컫는 말을 성곽(城郭), 성의 출입구에 있는 문을 성문(城門), 성문을 굳게 닫고 성을 지키는 것을 농성(籠城), 성문을 엶을 개성(開城), 흙으로 쌓아 올린 성루를 토성(土城), 높은 성을 고성(高城), 산 위에 쌓은 성을 산성(山城), 사람이 살지 않는 빈 성이나 도시를 공성(空城), 성 밖에 겹으로 쌓은 성을 외성(外城), 수령과 백성 사이의 신분과 권리 상의 한계를 성화지분(城化之分), 수도의 성 밑까지 적군의 공격을 받아 할 수 없이 강화를 맹세하고 굳게 약속한다는 성하지맹(城下之盟),성곽에 사는 여우와 사단에 사는 쥐라는 뜻으로, 임금 곁에 있는 간신의 무리를 이르는 말 성호사서(城狐社鼠)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