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수도기념관(부산시 서구 부민동 소재) 소개>
여러분 반갑습니다. 부산문화관광해설사 하광범입니다. 임시수도기념관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곳 임시수도기념관은 1925년 진주에 있던 경상남도청을 부산으로 옮겨을 때 "도지사 관사"로 지어 다음 해인 1926년부터 사용하던 건물로 경남도청(현 동아대 부민켐퍼스 석당박물관)이 1983년 창원으로 이전한 후 1984년 6월 25일 개관하였습니다.
이 도지사관사를 6.25 한국전쟁 때 이승만 대통령이 부산 피란 시절 3년(1023일)간의 임시수도의 대통령관저인 부산경무대로 사용하였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서 계시는 임시수도기념관 대통령관저의 응접실에는 사진 두 장이 크게 걸려있습니다.
왼쪽의 사진(1952.05.09)은 제2대 유엔군 사령관인 릿지웨이 장군이 이임인사차 이승만대통령을 예방한 1952년 5월달에 촬영한 사진이고 오른쪽 사진(1952.09.15)은 이승만 대통령이 제2대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각부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1952년 9월달에 촬영한 사진입니다.
왼쪽 사진의 제2대 유엔군사령관 릿치웨이 장군의 전임은 초대 사령관인 맥아드 원수이고 후임의 제3대 사령관은 크라크 장군입니다.
오른쪽 사진에서 임명장을 받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 박정희 대통령을 닮아 보입니다만 이 분은 1952년 9월 25일 장관으로 임명장을 받는 분으로 사진이 촬영된 시기인 1952년은 1961년 5·16이 나기 9년 전이니 당시의 고 박정희 대통령은 영관급 장교의 군인으로 이 자리에 있을 신분이 아닙니다.
사진설명문을 보면 두 사진 모두 1952년 같은 해의 사진이나 5월 9일의 왼쪽 사진은 초대 대통령 때이고 9월 15일의 오른쪽 사진에는 제2대 대통령이라 되어있습니다. 이는 그사이에 대통령 선거(1952 08 05)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승만 대통령이 초대와 2대 대통령이 되는 과정을 좀 더 자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고 약 3년간의 미군정을 거친 후인 1948년 5월 10일에 제헌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가 있었습니다.
이 선거에서 200명 정원의 국회의원 중 제주4·3사건 여파로 선거를 시헹치 못한 제주지역 2명을 제외한 198명의 제헌의원을 뽑았습니다.
지금의 국회의원 임기는 4년이지만 제헌국회의원의 임기는 2년이었습니다. 1948년 7월 17일 제헌국회가 개원하여 국회의장으로 선출된 이승만의장이 국회 개원 3일 후인 7월 20일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그 4일 후에 초대대통령으로 취임했습니다.
그 2년 후 1950년 5월 30일 제2대 국회의원 선거로 210명이 당선되었는데 이중 절반이 넘는 126명이 무소속 당선자였습니다. 이는 이후 정치파동의 원인이 됩니다.
제2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은 지 채 한 달도 되기 전인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와 국회도 모두 부산에서 피란생활을 하게 됩니다.
또 2년이 흘러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제2대 대통령을 뽑게 됩니다. 그런데 국회의원 과반이 무소속인 국회에서 간선제로는 이승만대통령이 다시 뽑히기는 어려운 형편이었습니다.
간선제를 직선제로 바꾸는 정치파동(발췌개헌)을 거쳐 우여곡절 끝에 직선제 선거로 이승만대통령이 제2대 대통령으로 취임하고 부산 경무대인 경남도지사관사에서 각부 장관들에게 사진 속의 모습과 같이 임명장을 수여하게 된 것입니다.
이 경남도지사 관사를 3년 간 사용한 이승만 대통령 부부에 대해서 잠시 설명드리겠습니다.
우남(雩南)이 호인 대통령은 황해도 평산에서 1875년 출생하여 1965년 망명지 하와이에서 90세에 운명하였고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는 1900년 오스트리아에서 출생하여 1992년 서울에서 92세로 운명하였으며 두 분다 국립묘지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33세 때인 1933년 어머니와 프랑스여행 후 오스트리아로 귀국 도중 들린 스위스 제네바의 식당에서 회의참석 차 체재 중이던 당시 58세의 이승만과 합석을 계기로 만나게 되어 이듬해 뉴욕에서 이승만과 결혼하였으며 1965년 하와이에서의 남편 사후 5년 간 고향 오스트리아 빈에 거주하다 1970년 한국으로 돌아와 양자 이인수(조혜자) 부부와 함께 이화장에서 거주하다 돌아가셨습니다.
참고로 기념관 입구에 전시되어 있는 배모형은 1950년 12월 23일 홍남철수작전에 동원된 메르디스빅토리호인데 이 배에 1만4천 명의 피란민이 타고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날에 거제도 장승포항에 도착하였습니다. 항해 중 5명의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이 아기들의 이름을 김치1부터 김치5라 불렀습니다.
당시 배에서 마지막으로 태어난 김치5 이경필씨는 수의사가 되어 지금도
거제도 장승포에서 "평화"란 이름을 붙인 가축병원을 운영하며 살고 있습니다.
병원 이름에 "평화"가 붙은 것은 부모님의 나라 사랑의 뜻을 따른 것입니다. 전쟁의 참상을 겪으며 전쟁이 없는 평화스런 나라가 소망인 부모님은피란지 장승포에서 아버지는 평화사진관을 어머니는 평화상회를 운영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의 부모와 어린 나이의 누나도 이 배를 타고와 거제도에 내렸으며(1950 12 25) 2년1개월 후인 1953년 1월 24일에 문재인 대통령이 태어나서 문재인대통령의 고향이 거제도가 되었습니다. 끝으로 임시수도대통령관저는 등록문화재(2018년 11월 6일 사적 제546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