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수의 「Baby Boomer」감상 / 채상우
Baby Boomer
김정수
느지막이 일어나
이른 아침에 출근한 아내의 옷을 다리다가
이 나이에
이 시간에 이래도 되나
잠시 멍한 사이
열린 문으로 불쑥, 쳐들어온 가스 검침원에
속살을 들킨 후
내일 입고 나갈 아내의 옷을 다려도
화르락 펴지지 않고
시 한 편 보내 봐야 문학잡지 1년 정기 구독
시집 한 권 내 봐야 시인들의 품앗이
우편 발송비조차 건지지 못하고
시행 1년이 가까워도
'김영란법'에 걸린 사람 아무도 없고
휴가 복귀하던 날
적자에도 연봉 올려 준 건
알아서 나가라는 이야긴데
시 쓰는 사람이 그리 행간을 못 읽느냐는
퇴고조차 안 되는 황망에
흥건히 물 뿌려 다려도
귀에 고인 슬픔 펴지지 않고
학교에 간 아이들은 콩나물처럼 자라고
그래도, 늦은 아침
찬물에 말아 먹고
한 끼 밥도 안 되는 시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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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일이 급해 택시를 탄 적이 있었는데 택시 운전기사가 도대체 시나 쓰는 사람들한테 왜 정부에서 지원금을 주느냐고 분통을 터트려서 괜히 뻘쭘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그분에게 내가 시인이라고 말한 것도 아니었고 라디오에선 그저 트로트가 흘러나오고 있었으니 그 운전기사의 화는 순수한(?) 것이었다. 그래 하루하루 먹고사는 일이 힘든 이들에게 정말이지 시나 예술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 보면 바로 앞의 말은 얼마나 계급적인가. 내가 꿈꾸는 세상은 어쩌면 극히 단순하다. 저녁이면 일터에서 돌아와 음악을 들으며 시집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 그리고, 그러니까 시인도 월급을 받는 세상.
채상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