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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2. 13. 큐티
예레미야 47:1 ~ 7
블레셋 사람을 유린하시는 날
관찰 :
1) 일방적으로 통보하시는 블레셋 멸망 예언
- 1절. “바로가 가사를 치기 전에 블레셋 사람에 대하여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a. 블레셋은 본래 지중해에 이는 크레테 섬, 즉 갑돌에서 팔레스타인 서남쪽 지중해 연안으로 이주해 온 민족입니다. 블레셋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멸절시키라는 명령을 내리신 7족속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그들을 남겨두었고, 그로 인해 결국 이스라엘 민족을 괴롭히는 가시와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b. 블레셋의 멸망 예언은 본서 이외에도 여러 선지자들에 의해 거듭 예언되었습니다(사 14:29-31; 겔 35:15-17; 암 1:6-8; 습 2:4-7; 슥 9:5-7). 본 장에서 예레미야는 이런 블레셋이 북방의 바벨론에 의해 완전히 멸망당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블레셋은 B.C. 604년경 느부갓네살에 의해 멸망당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본장에 예언된 대로 두로와 시돈 등의 동맹국들까지 B.C. 594년과 B.C. 587년에 느부갓네살에 의해 점령당했습니다. 두로와 시돈이 멸망한 것은 정치적 측면에서 본다면 팔레스타인에서 지배력을 확립하려는 바벨론의 침공에 의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레미야 선지자는 본장에서 블레셋의 멸망 원인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에 의한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c. 이 예언이 주어질 당시는 북방의 바벨론에 의해서 불레셋과 두로와 시돈이 멸망할 것이라고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에 사람들은 블레셋 족속이 애굽에 의해서 멸망당하면 멸망당하지 바벨론에 의해서 망하게 될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하던 때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상황에서 바벨론에 의해 블레셋과 두로와 시돈이 멸망한다는 사실을 예언하시고 역사 과정을 통해 하나님이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분명하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 2절.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물이 북쪽에서 일어나 물결치는 시내를 이루어 그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것과 그 성읍과 거기에 사는 자들을 휩쓸리니 사람들이 부르짖으며 그 땅 모든 주민이 울부짖으리라”
a. 본 절은 블레셋의 멸망을 예언함에 있어서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홍수와 같은 물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선포되었습니다. 홍수가 나서 강이 범람하여 주변의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가는 것처럼, 바벨론 군대가 블레셋을 향하여 제어할 수 없는 기세로 쳐들어온다는 사실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b. 근동 지역에는 우기와 건기가 뚜렷이 구분됩니다. 건기에 메말랐던 시내가 우기가 되면 급작스레 물이 불어 큰 하천을 삽시간에 이루게 됩니다. 그 물살의 힘은 대단하여 때로는 많은 재산과 인명을 앗아가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근동의 특수한 기후를 반영하는 비유적 표현인 본절은 북방에 위치한 바벨론이 얼마나 위협적으로 공격할 것인지, 그리고 그 공격이 얼마나 전면적인 것이 될 것인지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c. "그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것과 그 성읍과 거기에 사는 자들을 휩쓸리니"라는 표현은 신흥 세력인 바벨론의 공격으로 야기되는 블레셋의 멸망은 총체적인 것이며, 거기서 제외 되는 것은 어떤 것도 없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땅과 성읍과 그곳 거주민들 및 블레셋 영토에 있는 모든 것이 심판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d. 본문은 엄청난 시련과 재난 앞에서 블레셋 백성들이 울부짖으며 아우성을 치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 땅의 모든 거민이 고통스럽게 부르짖고 애곡해도 하나님의 진노를 멈추게 할 수는 없습니다. 죄에 대하여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며 회개하기를 기다리시지만 그 인내가 다할 때에 그 진노는 어느 누구도 그칠 수 없이 맹렬하게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3절. “군마의 발굽 소리와 달리는 병거 바퀴가 진동하는 소리 때문에 아버지의 손맥이 풀려서 자기의 자녀를 돌보지 못하리니”
a. 군사 행동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청각적 이미지를 사용하여 바벨론 군사들의 기세가 얼마나 강하고 무서운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블레셋의 처절한 패배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b. 고대의 전쟁에 있어서 강력한 기병과 말이 이끄는 전차 부대는 큰 위력을 발휘하는 최강 병기였습니다. 특히 바벨론은 막강한 기병과 전차 부대를 보유했고, 이들은 정복 전쟁시 선두에서 큰 활약을 했습니다.
c. 바벨론의 맹렬한 공격 앞에서 자녀를 돌볼 여유조차 상실해버린 블레셋 백성들의 처참한 광경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즉 바벨론 군대의 기세가 아버지의 본능적인 부성애마저 중단시킬 만큼 위협적이 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 4절. “이는 불레셋 사람을 유린하시며 두로와 시돈에 남아 있는 바 도와 줄 자를 다 끊어 버리시는 날이 올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갑돌 섬에 남아 있는 블레셋 사람을 유린하시리라”
a. 본 절에서는 두로와 시돈 역시 블레셋과 함께 멸망할 것이 예언되고 있습니다. “두로와 시돈”은 강하고 부요한 베니게의 도시 국가로서 블레셋이 어려움에 처할 때 종종 원정군을 파병시켜 주었습니다. 본 절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당시 블레셋과 베니게는 동맹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게 됩니다. 그런데 심판의 당사자인 블레셋뿐만 아니라 블레셋의 우방인 베니게까지도 멸하실 것이 예언되고 있는 것입니다.
b. 예레미야 선지자가 두로와 시돈의 멸망을 언급하는 이유는 블레셋의 멸망이 틀림없이 이루어지며 그들이 여호와의 심판을 결코 피할 수 없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c. 예레미야는 블레셋의 고향인 갑돌 섬에 남아 있는 자들까지도 멸망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적대하던 블레셋에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엄정하고 철저한 것이 될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2) 문답 형식으로 당시의 블레셋 사람들에게 멸망을 예언하다
- 5절. “가사는 대머리가 되었고 아스글론과 그들에게 남아 있는 평지가 잠잠하게 되었나니 네가 네 몸 베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a. 본절에서는 블레셋의 몰락한 모습이 언급되고 있고 이어 예레미야가 대언하는 하나님의 수사적 질문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b. 블레셋의 5대 도시에 속한 가사와 아스글론은 분문에서 블레셋 전체를 나타내는 제유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들이 대머리가 되었다는 의인법을 구사하여 장차 임할 블레셋의 황량한 모습을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c. 고대 근종에서는 슬플 때 머리를 깎는 풍습이 있었고 성경에서 삭발하는 것은 극히 미천해짐과 부끄러움을 당했다는 애통의 표시였습니다. 따라서 가사가 대머리가 된다는 것은 가사로 대표되는 블레셋이 머리카락이 없는 대머리처럼 황폐해진다는 의미와 더불어 극도의 수치를 당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d. 당시 블레셋인들은 대적들의 접근이 용이하지 않은 동굴과 계곡과 같은 안전한 곳에 숨어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도 어떠한 위험으로부터도 자신들은 안전하다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러한 곳에 도피한 남은 자들조차 아스글론과 더불어 멸절한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즉 블레셋이 어디 안전하다 생각하는 곳으로 피한다할지라도 철저하게 망하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e. 고대 근동 사람들에게는 슬프고 절망스러울 때 몸을 베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극단적인 슬픔과 애통을 나타내는 이방인들의 풍습이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몸을 베는 것은 신의 동정을 얻기 위한 미신적인 행동이기도 했습니다. 바벨론의 공격으로 곤경에 처한 블레셋 백성들이 우상 신을 숭배하여 그의 도움을 구하게 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f.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첫째, 블레셋 사람들이 당할 심판과 관련하여 그 슬픔을 나타내는 행위를 멈추지 못할 정도로 큰 재앙이 임할 것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들의 슬픔과 절망이 극도로 클 것이고, 너무나 절박하게 된 그들은 자신들의 몸을 베어 가면서 이방 신들의 도움을 구하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둘째, 이제 더 이상 자신들의 몸을 베는 무모한 행동을 할 필요가 없음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자학하는 행위는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아무런 효력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영원히 애곡할 것이며 그 재앙은 끝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 6절. “오호라 여호와의 칼이여 네가 언제까지 쉬지 않겠느냐 네 칼집에 들어가서 가만히 쉴지어다”
a. 바벨론의 침공으로 인한 블레셋의 고통의 절규와 탄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블레셋인들이 하는 탄식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참혹한 날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b. 블레셋의 땅에 큰 고통이 임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힌 블레셋을 완전히 멸하려는 하나님의 작정 때문입니다. 그러나 블레셋이 민족 국가로서는 아주 망했지만 그 민족만큼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 하나님께 돌아오리라는 예언이 있습니다. “아스글론이 보고 무서워하며 가사도 심히 아파할 것이며 에그론은 그 소망이 수치가 되므로 역시 그러하리라 가사에는 임금이 끊어질 것이며 아스글론에는 주민이 없을 것이며 아스돗에는 잡족이 거주하리라 내가 블레셋 사람의 교만을 끊고 그의 입에서 그의 피를, 그의 잇사이에서 그 가증한 것을 제거하리니 그들도 남아서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유다의 한 지도자 같이 되겠고 에그론은 여부스 사람 같이 되리라”(슥 9:5-7)
- 7절. “여호와께서 이를 명령하셨은즉 어떻게 잠잠하며 쉬겠느냐 아스글론과 해변을 치려 하여 그가 정하셨느니라 하니라”
a. 본절은 블레셋 백성들의 탄원을 담은 6절에 대한 예레미야 선지자의 응답입니다. 여기서는 블레셋을 완전히 멸망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기 때문에 이것이 성취될 때까지는 바벨론 군대의 약탈과 살육이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예언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b. 여호와의 칼이 쉬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의도하시는 목적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블레셋의 멸망을 명하신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과 같이 블레셋은 B.C. 604년 경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면서 역사의 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됩니다.
c.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는 반드시 이행된다는 사실이 “여호와께서 이를 명령하셨은즉 어떻게 잠잠하며 쉬겠느냐”란 수사 의문문의 표현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칼이 쉬지 않고 블레셋을 향해 철저한 심판을 감행할 것을 엄숙히 선언하는 것입니다.
d. 블레셋의 주요 도시 중의 하나인 아스글론과 해변에 대한 바벨론의 침공이 이미 하나님의 정하신 계획 가운데 있음을 명시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명령은 철회될 수 없는 불변의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해변”은 블레셋 영토였던 팔레스타인 남서부 해안 지역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는 블레셋 전역에 하나님의 복수의 심판이 시행되는 것을 방해할 수 있는 것은 아무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가르침 :
1)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괴롭힌 대표적 이방 민족인 블레셋의 멸망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블레셋의 멸망을 즐거이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안타까움으로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들 역시 하나님의 구원의 대상인 족속이기 때문입니다. 두로와 시돈은 블레셋의 위기 때마다 돕는 이들이었는데 블레셋이 멸망당하며 두로와 시돈 역시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스가랴서에서는 이들 역시 회복의 대상이 되는 세상 민족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말씀해 주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도 구원의 은혜를 베푸실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2) 블레셋, 두로, 시돈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혔기 때문에 완전히 멸절되는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를 건드리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집요하며 반드시 이루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악인들에게는 평화가 없는 것이고,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될 것입니다.
3) 블레셋과 두로와 시돈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역사가운데 자취를 감추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어쩌다 그리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 의하여 그렇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국제 정세가 너무나 무섭게 휘몰아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안정과 평화가 보장되었다고 누가 함부로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나라 역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주님의 참된 교회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는 것을 통하여 살 길이 주어질 것입니다.
적용 :
1) 유다는 망하지 않을 것이다. 예루살렘은 함락되지 않을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은 훼파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유다가 망할 때 거짓 선지자들이 주로 했던 예언들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망하지 않을 것이다. 교회를 다니는 성도들은 안전과 평화가 보장되어 있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면 복받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도 모두 성경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아닙니다. 어떠한 변화와 무서운 심판이 임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아가는 존재가 복된 것입니다. 예수님만 바라본다는 것이 정말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바르게 증거하고 내가 적용해 낼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2) 예수님을 생각할수록 감사한 것은 2026년의 혼란한 상황에서 앞으로 어찌될지 모르는 가운데 절망적인 이야기들이 이리저리 들리지만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예수님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상황이 어찌되든지 예수님을 붙잡습니다. 그것이 복음이고 그것이 은혜인줄 믿습니다.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충만하기를 바라고 또 소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