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선회 한 접시
가을 한복판이고 시월 중순 셋째 화요일이다. 일과 후 와실로 들어 옷차림을 바꾸어 연사 정류소로 나갔다. 고현으로 가는 11번 버스를 타고 수월삼거리와 중곡지구 아파트단지를 지났다. 터미널을 앞둔 고현 수협 앞에서 내렸다. 거제는 바다를 낀 섬답게 수협이 농협만큼이나 규모가 컸다. 사등면 가조도는 우리나라에서 수협이 최초 생겨난 곳을 기념한 빗돌과 공원이 있기도 했다.
내가 고현 시내로 나가면 터미널에서 가까운 수협을 몇 차례 들렀다. 생활에 필요한 이런저런 것들을 사기 위함이다. 수협 매장 지하는 세제를 비롯한 공산품이 진열되어 있고, 1층은 어패류와 젓갈은 물론 신선한 농산물도 가득했다. 지난번 들렸을 때 그간 보지 못한 구역이 눈길을 끌었다. 생선 코너 뒤에 활어 수족관이 있고 생선회도 썰어 팔았다. 일회용 도시락에 초장도 보였다.
그날 당장 생선회를 사 와실에서 자작으로 소주를 한 잔 들고 싶었다만 자제했다. 한글날에 해금강 연안 트레킹을 나서 지역 특산 저구 막걸리를 몇 잔 든 상태였다. 치아가 부실해 치과수술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금주령이 내려져 있었다. 그럼에도 지난 주말은 창원으로 복귀해 친구와 맑을 술잔을 제법 비우기도 했다. 치과 수술 후 금주령을 두 차례 어겼는지라 마음에 걸린다.
주중 연사와실에 머물면서 퇴근 후 산행이나 산책으로 소일한다. 어떤 날은 산행을 하고 와실로 복귀하면 여덟 시가 넘기 예사다. 그럴 때는 저녁식사 너무 늦어 배가 고픈 줄도 모를 경우도 있었다. 서둘러 저녁밥을 지어 식사했다. 페트병에서 왕종근이 생긋 웃는 부산 생탁을 반주로 들기도 한다. 곡차에는 안주가 중요하지 않아 집에서 마련해 온 두부조림이나 가지나물로도 족했다.
한동안 금주를 해야 하는데 인내에 한계가 왔다. 자작으로라도 술을 한 잔 들고 싶었다. 치아엔 막걸리가 더 좋지 않다기에 맑은 술을 한 잔 들 생각으로 길을 나섰다. 소주에는 안주가 있어야 하기에 고현 수협으로 나갔더랬다. 전번에 봐둔 생선회 코너 앞으로 갔다. 생선회 담당은 몇 종 활어를 회로 떠 스티로폼 포장에 담아놓았다. 활어는 어느 횟집 수족관에서나 싱싱해 보였다.
이번도 그 코너로 갔더니 생선회를 썰어 스티로폼 접시에 담아 진열해 놓았더랬다. 그런데 전어나 광어는 다 팔렸는지 보이질 않았다. 밀치라고도 하는 숭어회와 방어회가 차려져 있었다. 그 곁에는 돔회도 있긴 했다. 내 마음을 얻은 녀석은 돔도 밀치도 아닌 방어였다. 방어는 참치처럼 살점이 도톰한 활어다. 방어회를 집어 참이슬을 한 병과 해장국거리로 콩나물을 한 봉지 챙겼다.
연초 연사로 나가는 버스정류소로 갔다. 옥포로 가는 버스를 타면 반드시 거치는 곳이 연사다. 지세포로 가는 버스를 타도 마찬가지다. 가끔 장목 외포나 구영으로 가는 버스를 타도 거길 지난다. 하청을 지나 칠천도 연도교를 건너는 버스도 있었다. 그런데 하루 두세 차례 다니는 천곡 가는 버스가 먼저 와 탔다. 터미널 출발지에서 종점 천곡까지는 승객이 많지 않은 코스였다.
십여 분 후 연초교를 지나 연사마을에서 내렸다, 하루해가 설핏 가우는 즈음이었다. 어둠이 내리는 골목을 지나 금방 와실에 닿았다. 퇴근 후 산행이나 산책을 두세 시간 다녀온 다른 날보다 이른 시각이었다. 저녁밥을 지을 일 없이 바로 밥상을 겸하는 서안 위 노트북을 치우고 생선회 접시를 풀었다. 초장도 곁들여져 있었다. 수협 마트에서 시장을 봐온 참이슬의 병뚜껑을 열었다.
잇몸에 철심을 박아두고 한글날 해금강으로 나가 해안 비경을 바라보며 저구 막걸리를 들었다. 주말을 앞두고 창원으로 복귀해 집으로 가던 길 마음을 터놓는 친구를 만나 맑은 술잔을 기울였다. 한동안 지켜야할 금주 계율을 어기고 퇴근 후 고현 수협으로 나가 생선회를 한 접시 샀다. 평소 쓰디 쓴 소주가 자작인데도 왜 이다지도 달디 달게 느껴지는가. 정신은 더 맑아오고 있는가. 19.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