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명상을 통해서 일깨워지는 깊고 초월적인 자아와
피상적이고 외적인 자아 사이에는 절대적인 차이가 있다.
이 피상적인 ‘나’는 결코 진정한 자아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개성’이고 우리의 ‘경험에 입각한 자아’일 뿐,
신만 아는 그 신비하고 은밀한 인격은 절대 아니다.
이 세상에서 활동하고,
이 세상에 대해 생각하고,
이 세상의 반응을 관찰하고,
이 세상에 대해 말하는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신과 결합되어 있는
진정한 ‘나’는 아니다.
그것은 기껏해야
우리 대부분이 죽을 때까지 결코 발견하지 못하는
그 신비스럽고 불가해한
‘자아’의 옷이요, 가면이요, 변장일 뿐이다.
한 그루의 나무는 그 자신의 모습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더 많이 신을 닮는다.
완벽하게 똑같은 존재는 이 세상에 없다.
그리고 그것들의 개성은 절대로 결점이 아니다.
그와 반대로, 모든 창조물은 하나의 관념적인 형태와
일치할 때가 아니라
각각 타고난 본래의 모습으로 남을 때 완전해진다.
이 특별한 나무는 어떤 나무도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독특한 방식으로
그만의 뿌리를 내리고 공기와 빛을 향하여
가지를 뻗어나감으로써
신에게 영광을 드릴 것이다.
사람에겐 더욱 힘든 일이다.
우리에겐 선택이 주어진다.
우리 인간은 마음먹기에 따라
본연의 모습으로 남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신만이 본질의 비밀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만이 나를 나 자신의 모습으로 남게 하거나
장래 나의 모습을 결정할 수 있다.
타락한 세상은
우리 자신이 진정으로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모든 죄악은 바로 나의 거짓된 자아,
나 자신의 이기주의적 욕망에만 존재하는 거짓된 자아가
우주의 존재가 얽혀 사는 삶의 본체라고
가정하는 데서 비롯된다.
그리하여 나는 이 거짓된 자아의 무가치함을 포장하기 위해
쾌락과 경험, 권력, 명예, 지식, 사랑을 축적하느라
삶을 소진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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