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작,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파내고 다른 나무를 심어야겠다고 하면서도 이래저래 바쁜 일 때문에 미루다 장마로 또 미루었다. 유난히 긴 2020년의 절망과 침체의 늪이 끝이 없다. 태풍으로 엉망이 된 비닐하우스를 손질하다 하우스 옆 언덕의 배롱나무 가지 끝이 꿈틀거리는 듯했다. 텃밭의 배롱나무가 더디어 움이 텄다.
이월에 옮겨 심었는데 팔월이 되어도 움이 틔지 않아 죽은 줄만 알았다. 코로나19와 경기 침체, 긴 장마와 폭우피해에 지쳐 끝이 보이지 않는 우울의 긴 터널에서 본 한 줄기 서광이었다. 아니 희망이나 기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겠다. 같이 옮겨 심은 나무는 전부 삼사월에 새싹이 돋았다.
언덕바지에 심은 이 배롱나무만 바람을 많이 받아 봄을 느끼지 못하나 싶어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래서 얼어 죽은 줄만 알았다. 가지 끝을 조금씩 전지해보니 죽지는 않은 것 같았다. 오뉴월 다른 나뭇잎들이 청록으로 변할 때는 더 기다릴 수 없어 포기할까 싶었다. 칠월에 들었다. 다른 배롱나무들은 꽃을 피우는 데 이 배롱나무는 움조차 틔우지 않았다.
더 이상 기다린 다는 것은 무모하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가슴은 거저 답답하기만 했다. 파낸 자리에 심을 나무도 정해 두었다. 새로 시작하는 것이 훨씬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도 몇 번이나 더 생사를 확인하고 싶어 전지가위로 가지 끝을 조금씩 잘라보았다. 살아있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죽은 것 같기도 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믿고 기다려 주는 것이 나무를 심은 사람의 예의가 아닐까 싶었다. 그런다고 죽은 나무가 살아 날 것도 아니겠지만, 죽은 줄만 알았던 나무에서 혹 새싹이라도 돋는다면 그 후회는 어찌 감당할까 싶었다. 심은 나무가 움을 틔우기를 믿고 기다리는 것이 취업준비생의 부모가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묵묵히 기다려주는 심정과 다르지 않을 것이리라.
우리 집의 취업준비생, 풀이 죽은 아들은 오늘도 제 방에 박혀 공부만 한다. 어지간해서는 좀처럼 밖에 나오지를 않는다. 벌써 수 년 째다. 삼수 째까지는 격려하고 응원하던 친척이 조심스레 운을 띄운다. 진로를 바꾸어 합격한 사례가 많이 있다며 다른 과목에 응시해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고배를 마시고 풀이 죽어있는 아들에게 말을 거는 것조차도 어려웠다.
일정기간이 흐른 후에 넌지시 진로를 바꾸어 새롭게 출발을 해 보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을 때 한 해만 더 믿고 기다려 주기를 간청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믿지 못한다 해도 부모마저 자식을 믿지 못한다면 어찌하나 싶어 믿기를 여러 번. 매년 반복되는 일, 합격자 발표일이 되어갈수록 친구나 친척들의 전화를 받는 것이 두려웠다. "좋은 소식 있느냐?"는 안부전화에 대고 죄송하다는 대답을 하는 것도 두려웠다. 해가 갈수록 믿고 기다린다는 것이 점점 더 두려웠다.
명절이나 집안 행사가 있을 때마다 피해 다니는 아들은 더욱 초조했겠지만 아들과 지인들 사이에 중개를 해야 하는 나로서도 가슴을 조이며 또 한해를 또 기다린다는 것은 고문이었다. 세상에 믿는 다는 것, 기다린다는 것만큼 큰 고통은 없었다. 제 누나들까지 더는 기다릴 수 없다고 나섰다.
어떻게든 설득해서 진로를 바꾸어보게다는 바람으로 나를 설득했다. 한 우물을 파야한다는 사고는 구시대적 발상이라며 물이나지 않는 우물을 포기하고 다른 곳을 파보는 것이 현명할 수도 있다고 했다.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높이 나는 갈매기가 멀리 본다.`는 생각에서 먼 곳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여행하면서 잘 생각해 보라고 외국 여행을 보내기도 했다. 여행에서 돌아와서도 한 우물을 파겠다는 아들을 한 번 더 믿어주어야만 했다. 세상에 단 한 사람도 믿고 기다려주는 사람 없이 어떻게 이 험한 세상 `취준생`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싶은 심정에서였다. 그 역할이 어렵다고 부모조차 하지 않는다면 누가 하겠는가. 긴 장마는 아직 그 끝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아무리 길다한들 언젠가 끝은 나는 법. 입추가 지난 지도 몇 날이 되었다. 봄에 틔워야할 싹을 이제야 틔우는 배롱나무를 보면서 어쨌거나 믿고 기다려주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천번만번 든다. 아들에게도 꽃피는 날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