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대표적 유학자, 문화의 유적 동춘당과 관련이 있는 송준길에 대하여 알아본다.
송준길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성리학자이다. 1606년(선조 39)~1672년(현종 13) 시대의 사람이고, 묘소는 서구 원정동에 자리하고 있다.
그는 문장과 글씨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는데, 현재 ‘충렬사 비문’이 남아있으며, 저서로 『동춘당집』, 『어록해』가 전해지고 있다. 시호는 ‘문정’이고 후에 영의정에 증직되었으며, 공주의 충현서원, 회덕의 숭현서원등 여러 서원에 모셔서 있다.
현재 대전광역시 대덕구 송촌동에서 살았으며 같은 가문의 송시열과 각별한 교분을 맺어 훗날 ‘양송(兩宋)’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1624년 생원 진사 시험에 합격하였고, 이듬해 별시 초시에 합격하였지만 벼슬에 나가지 않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그 후 1649년에 효종이 즉위하면서 북벌운동을 추진하기 위해 지방에 거주하던 선비들을 관직에 기용하는 정책을 펼치자 송시열 등과 함께 효종을 도와 북벌운동에 깊숙이 참여하여 이조판서, 병조판서, 좌찬성에 이르렀다.
그 후 예송논쟁에 연루되기도 하였으나 말년에 고향인 회덕 송촌동으로 돌아와 후학을 기르고 회덕 향약을 만드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67세로 숨을 거두었다.
학문적으로 송준길은 송시열과 함께 이이를 계승한 유학자로서 경(敬)을 강조하였다. 특히 그는 예학에 밝아 그의 문집에는 예설(禮說)에 관한 문답이 많으며, 스승인 김장생으로부터 예학의 대가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고 한다.
문묘에 배향된 해동 18현인 중 한 사람으로 김장생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공부한 조선 예학의 대가이다. 또한 이기론에서는 이이의 이기설을 충실히 계승하여 기발이승일도설을 지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