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흙 같은 어둠을 뚫고 운전만큼은 젊잖기로 소문 난  베테랑 수준인 남편과 그리움의 발원지를 찾아 나섰다

매사에 서두룸이 없어 답답하긴 해도  운전 할 때 만큼은 그래서 더 믿음이 가는 남편 옆 조수석에 앉았다
긴 장거리 여행을 위해 한 움큼 잠을 끌어다 보충한 남편은 걱정말고 졸리면 자라"고는 하지만 조수석에서  병든 약병아리처럼

꾸벅꾸벅 조는 모습 운전에 방해 될 것은 자명한 일인데 어떻게 그럴 수 있나 나름 정신 똑바로 챙겨 보려고 무진 애를 썼다
새벽 1시 출발 도로 막힌다고는 하지만 꼭 이렇게  깊은 한밤중에 떠나야 하는지 그 고집 누가 말릴까 만은

이번 휴가는 전적으로 아내인 나를 위한 배려라 하니 남편의 눈치 안 볼 수는 없었다
시간이 얼마쯤  지났을까 자리에 앉자마자 눈치없는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밤에 졸음 쫓자고 오물조물 음식을 입에 갔다 대기다 그렇고 노래를 불러 줄수도 없고 몇마디 말 시키고는 조용하다 싶으면
꼼짝없이  잠 귀신이  딱풀처럼 붙어 버려 아무렇지 않은 듯  슬쩍 시계 쳐다보면 몇십분이 훌쩍 지나곤 했다


나는 아직 운전을 하지 못한다
십년도 훨씬 넘었을게다 형님이 면허 시험보러 간다고 한번 동행해 준 적이 있었는데 나도 재미 삼아 필기를 한번 본 적 있다
형님은 필기에서 떨어지고 첫번째 시험에서 75점으로 간신히 1종 면허 필기에 붙었지만

남편이 완강히 반대하는 이유로 실기를 끝내 보지 못해 아직 면허증이 없다
왜 면허를 따지 못하게 하느냐 이유를 따지자
필요하면 자기가 언제든 운전기사 노릇 해 줄수 있으니 면허증 없어도 사는데 아무 지장없다고 지금까지도 말린다

"당신 운전하면 내 마음대로 가고 싶은데로 가 버릴 사람이라 운전만큼은 안된다는 이유같지 않는 이유를 들어주고

사는 걸 보면 나도 참 착한 아내인건지 바보인지는...

그때는 그랬었다. 남편이 개인택시를 14년간 했으니 언제 어디든 필요하면 운전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거절하질 않는다


깊은 한 밤중에 달리는 고속도로는 한산했다
간간히 졸음을 쫓아 내려고 창문을 내렸다 올렸다 하는 걸 보면 남편도 지금 무진장 졸음과 사투를 벌리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밤새 칙칙한 새벽 공기를 가르며 여수에 도착해 화양면을 통해 백야도에서 대형 카훼리호에 탑승했다

남편은 자기 차와 한 몸이 되어 배 안으로 빨려 들어 갔다
궂은 날씨 탓에 희뿌연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푸르다 못해 검푸른 바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초록 물감으로

물들어진 바다는 그때나 지금이나 보는 순간  하나된 내 푸른 심장으로 빨려 들어온다


뱃머리에 앉아 멀리 고향쪽으로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시간을 훌쩍 뛰어 넘어 인생을 흥건히 알아 버린

 마흔의 끄터머리 중년의 아낙도 마음은 이미 철부지 소녀로 돌아가 입가엔 작은 미소를 쪼개어 바다 위에 날리고 있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널 뛰 듯 푸른 파도의 춤사위를 물끄러미 바라 보노라니 뱃머리는 이미 동네 선착장에 닿아 있었다
남편이 맨 먼저 옛 집터를 가보자고한다 집터라고 해봤자 백평도 안되는 땅이지만 아직까지 개발되지 않아 

세인들의 발길이 잦은 동네다
구석구석 다 둘러봐도 유년의 흔적은 찾아볼 길 없고 누군가에 손길에 잘 가꾸어진 고추대만이 옛 주인을 기다리 듯

덩그러니 따가운 햇살에 축 늘어져 있었다
쫓기 듯 허둥대며 현실에 안주하다 문득문득 명치끝에 걸리는 생채기 그 소용돌이에 실체인 그림자만이 따라 붙고 있었다
 남편이 "어디 까지가 당신 집이었어?" 같은 자리 같은 땅을 모둠발로  밟고 서 있어도 생각은 서로 다른 두 사람 

우리는 가끔 세상살이에 염증을 느낄 때면 고향 하늘 떠 올린다


남편은 스마트폰으로 영상촬영을 하고 주변을 한번 둘러보고는 내 손을 잡아 당긴다

 윗 집도 한번 가 봐야하지 않겠냐며
차를 돌려 나오는데 그때는 멀기만 느껴졌던 정자가 불과 몇 발자욱도 안되는 가까운 거리라니

여름이면 동네 어르신들 다 나와 시원한 그늘이 되어주던  그 수명이 350년 된 느티나무

그 둘레만으로도 300센치가 넘는 몸통둘레만큼이나 우렁찬  동네의 유고한 역사를 말해주고 있었다
그 시간속에는 어머니가 밭에 나갔다 대바구니에 가득 채웠던 꿩알과 단수수깡  아직 덜 여문 옥수수와 고구마

헤아릴수 없는 사랑이 있었다

70가구가 넘어 바글대는 웃음소리는 다 어디로 갔을까...


 그때 갑자기 소낙비가 쏟아졌다 소낙비를 피 할 수 없어 마구 달리는데 무심코 마추 친 어르신이 비에 젖어

파리한 눈동자가 내 동공안으로 빨려 들어왔다

고향을 등지고 육지로 떠난 너와 나 대신 고향을 지키는 파리한  노인의 생기잃은  축축한 눈

그 눈과 맞딱들이는 순간 다시 차를 돌려 우산을 받치고 우리 부부는 그 집 안으로 들어섰다

마당에 곱게 말리다 만 붉은 고추가 손 써 볼 겨룰도 없이  빗물에 나체로 뒹굴로 있었다
"저걸 어째?"저걸 어째?" 발만 동동 구르는 나를  힘없는 미소로 웃어 보이시던  늙은 웅심
그랬다. 나도 고향을 등진 인정없는  잿빛 도시인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남편이 어르신 혼자 사십니까? 하니 대답대신 힘없는 미소 뿐이다

여기도 석달동안 비가 안 왔는데 오늘 느닺없이 소나기가 내렸단다
긴 가뭄에 손 쓸 겨룰도 없이 비를 흠뻑 맞았으니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선 채로 물기 젖은 고추만 내려다보고 있다
비 그치면 어떻게 해 보시겠다고 손사래를 치시며 어여 가라고 등을 떠 미시는 축축한 눈가를 뒤로하고 나오는데

마음이 게운치 않은지 남편이 계속 뒤를 돌아본다
에이..참  에이...참."

차창에 가득  고인 빗물 만큼이나 입안에 흥건히 고인 말들을 삼킨다 


30년전 그 좁았던 인도가 지금은 동네 곳곳마다 차도가 생겨 한 시간도 넘겨  걸려던 등하교길이

차로 10분도 채 안 걸리니 문명의 이기가 가져다 준 특혜다

개도섬" 전체를 돌아보는데 약 2시간이면 충분했다

타 동네를 지나칠 때마다 남편에게 옛 이야기를 들려주며 예전에는 이 동네는 어떻고 저 동네는 어떻고

나 어렸을 적에는 그래도 우리 동네가 잘 나갔는데 지금은 오히려 타 동네에 비해 많이 낙후되어 있어서

마음이 아팠다

아마도 젊은 사람들이 육지로 다 떠나고 없다는 증거일게다

 

때가 되면 누구나 떠나는것은  마찬가지 일게다 자식이 부모 품을 떠나고 평생을 고향의 흙을 밟고

살아도 이승과 이별을 해야 하는 잠깐 왔다가는 세상

초등학교 학생수 600명이 넘었고 중학생이 300명이 넘었던 지금은 학생수가 그 십분의 일도 채 안된 

정든 모교는 방학이라 조용했다

다시 여수로 나갈 뱃 시간에 맞춰 아침겸 점심을 먹고 나서야 다시 뱃 머리에 올라섰다

배가 멀어질수록 점점 작아지는 내고향 개도섬 수평선 너머 이곳 저곳에서 탕자처럼 살다 울컥 생채기가 생길때면

어머니의 양수처럼 편안한 고향을 향해 머리를 두고 그리워하는 건  당연하지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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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츨한 삶의덧정 푸른 심장이 뛰는 곳
김경숙 추천 0 조회 45 13.08.09 07:39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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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3.08.09 20:53

    첫댓글 에이..참 에이...참." 에서 고운 심성을 보고갑니다./글씨가 작으니 크기는 11이나 12로 키워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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