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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여성시대 말안하면뻘짓,말하면노답
중앙아메리카에 위치한 나라. 수도는 마나과(Managua). 스페인어를 사용한다. 국토면적 13만㎢
로 중미에서 가장 크며, 인구는 약 662만 명.
스페인의 식민지화 이전 지금의 니카라과 지역에는 니카라오 족, 초로테가 족, 미스키토 족 등
의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스페인의 침략으로 식민지가 되었으며 여러 중남
미의 나라들처럼 대농장주들이 원주민을 노예나 소작농으로 부려먹어 그 생산물을 수출하는 형
태가 되었다.
유럽인들의 이주로 천연두와 황열병 같은 감염병이 퍼지자 가뜩이나 강제노동으로 면역력이 약
해진 원주민들은 속절없이 죽어나갔고, 노동력이 부족해진 백인 농장주들은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들을 대거 수입하였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다가 스페인이 니카라과와 제3국의 무역을 금
지하자 농장주들은 이에 반발해 독립 운동을 일으켰다.
1821년 니카라과는 타 중미 국가처럼 보수주의자들의 멕시코 제국의 한 부분으로 스페인에서
독립했다. 그러다 1823년 멕시코에서 떨어져나와 과테말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코스타리카
등과 함께 중앙아메리카 연방 공화국을 구성하다 혼란 끝에 1838년 니카라과는 다시 중미 연방
에서 독립한다. 영국은 이 무렵 니카라과 동해안을 장악했으며, 북부 레온 중심의 자유주의자
와 남부 그라나다 중심의 보수주의자의 대립이 계속되었다.
20세기 들어서는 미국의 지원을 요청해 미군이 파견되어 니카라과는 19년간 미국의 간섭을 받
았다.
한편으로 미국의 지원이 끊어지면서 소련과 쿠바, 불가리아의 지원이 이어져왔다. 그러나 소련
은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도 군사비 부담이 커져서 추가로 전선이 늘어나는걸 부담스러워
해서 소극적으로 지원하는데 그쳤고, 쿠바와 불가리아도 지원을 했지만 두 나라 모두 당시 공
산주의권에서 국력 규모가 큰 나라는 아니었기에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큰 보탬은 못 되
었다.
거기에다가 정권초에 베네수엘라나 멕시코도 니카라과에 대한 지원에 나섰지만 80년대 중반 이
후에 이들 국가가 석유값이 하락하여 경제위기가 일어나자 지원이 축소되었다. 이런판이니 니
카라과의 경제는 막장이 되어 1989년 1인당 GDP는 1960년 수준까지 추락했고 초인플레이션이
일어나 환율이 1달러당 25,000,000 코르도바까지 갔다.
빈민층에 대한 보조금 지급 정책이나 빈민촌 지역에 상하수도나 전기 등을 대대적으로 보급하
는 정책을 펼치고 교육예산도 크게 늘리고 그렇다고 해서 대기업에 대해 뚜렷하게 압박하는 정
책을 펼친 것도 아니기 때문에(오히려 주요 기업과 관계가 좋은 편이다) 야권의 지지기반 자체
를 박살낸 것도 영향을 크게 미쳤다. 부통령은 오르테가의 부인 로사리오 무리요가 당선됨에
따라 세계 첫 부부 정·부통령이 되었다.
그렇지만 2018년 4월에 연금개혁안을 시행하겠다고 했다가 반발이 거세졌고, 거기에다가 친정
부 시위대의 멍청한 대응까지 겹쳐서 시위가 크게 번져서 현재까지도 반정부 시위대간와 친정
부 시위대간의 충돌이 이어지면서 사망자와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는데다가, 간헐적으로 경찰의
과격한 시위진압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사망자가 100명을 넘어서고 있다.
니카라과 정부는 비판언론을 폐간시키고 있고 결국 39년된 일간지가 폐간되는 상황이 발생되었
다. 게다가 2018년 12월에 몰수한 민영방송국TV를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지 않겠다고 밝혔다.
유엔난민기구는 2018년 이후 니카라과에서 정권의 박해와 인권 탄압을 피해 10만3,600명이 외
국으로 탈출했다고 밝혔다.
국기는 다른 중앙아메리카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중앙아메리카 연방 공화국를 기초로 하며 가운
데에 국장이 들어가 있다.
대다수 북중미 나라가 그러듯이 가난과 내전에 시달리고 있었고. 1988 서울 올림픽 때도 이런
사정으로 불참한 6개국 중 하나이다. 또한, 주변의 남아메리카 국가들에 비해 커피산업이 매우
영세한 편이다. 그래서 정부에서 지원하는 프로젝트로 커피 농가들을 지원하여 커피를 생산하
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니카라과 커피는 수세식 커피로서 다른 나라 것보다 커피콩의 크기
가 크고 독특한 맛과 신맛이 어우러져 고유의 풍미를 지니고 있다.
2014년 말에는 중국 기업과 합작한 운하 건설로 중국 자본의 대규모 투자에 의한 경제 발전을
기대했다. 그러나 운하 건설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채로 막을 내렸다.
주요 수출품은 면화(25%), 쇠고기(7%), 커피(13%) 등 1차 산업이 주류를 이룬며, 해외송금도
니카라과 경제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2000년대 중반 이후로 매년 경제가 꾸준히 성장함에도 빈부격차가 여전히 큰 나라이다.
본래 중미 지역에서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운하 건설지로 주목받았던 나라는 파나마가 아니
라 니카라과여다. 그러나 몽펠레 화산폭발이 터지자 화산폭발의 여파가 미칠 수 있는 니카라과
는 후보지에서 탈락되었고 미국은 대신 파나마로 눈을 돌려 파나마 운하를 뚫었다.
그러다 2013년 6월 13일 니카라과 의회가 중국 회사에 의한 운하 건설 프로젝트를 승인하였고,
2014년 1월 11월,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과 대통령이 중국 기업인 홍콩니카라과운하개발투자
공사(HKND)과 12월 니카라과 운하를 착공하기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계획상으로는 총 길이 약 280㎞. 컨테이너 25,000개를 실은 대형 화물선 한 척이 통과할 수 있
을 정도로 만들 예정이었고, 2019년 말 완공, 2020년 개통을 목표로 삼았다. 그리고 완공됐을
시 HKND가 니카라과 정부에 매년 1,000만 달러(약 110억 원)를 내는 조건으로 100년 동안 운하
건설·관리·개발 권리를 갖기로 협의했다.
그러나 착공식만 했을 뿐 실제 준공은 이뤄지지 않았다. 2015년 중국을 덮친 중국 증시 폭락으
로 HKND가 큰 타격을 입었고 니카라과 운하의 경제적 효용에 대한 의문 또한 이전부터 끊임없
이 제기되어 왔으며 환경 단체들의 반대 또한 많았던 것이 그 이유로 보인다. HKND는 홍콩에
위치한 본사를 2018년에 폐쇄하고 그 이후 주소지도 확인되지 않는 유령 회사가 되어버렸다.
즉 또다시 잊혀진 사업이 되고 만 것.
중미에서는 임금 수준이 낮기는 해도 코스타리카, 파나마와 함께 치안이 양호한 국가로 손꼽히
고 중미 대륙에서 치안이 좋은 나라 2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밤에 길을 돌아다닌다고 사
람이 죽는다거나 다치는 일은 덜 벌어진다. 그렇다고 마냥 안심하고 돌아다녀도 된다는 얘기는
아니며 수도인 마나과에서도 강도, 절도, 소매치기 등의 범죄들이 자주 발생한다고 한다. 시내
버스 승차시에는 소매치기를 조심하고 차량으로 이동 시에는 차 문을 잠가야 하며, 또한 야간
외출은 가급적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도 근처의 온두라스나 엘살바도르 같이 깡패와
마약 카르텔, 경찰들이 서로 총을 쏘고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나라들과는 비교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치안이 좋은 편이다.
낙태가 엄격히 금지되어있기도 한데, 그래서 성범죄로 임신했을때나 산모의 생명이 위험했을
때에도 낙태가 금지되어있으며, 아무리 생명에 지장이 있다한들 낙태수술을 하면 의사들도 처
벌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낙태문제와 관련해서 말이 많다.
보수 가톨릭계의 눈치를 많이 보다보니까 법을 수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것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여타 중남미 국가들이 그렇듯이 부패가 상당한 문제인데, 대기업들과 제휴하
고 여러가지 사업을 추진하면서 이권을 나눠 먹거나 오르테가의 자녀들이 기업들로부터 상납받
은 돈으로 같이 사업을 벌이곤 했다.
국토면적이 13만 688㎢로 한반도의 3/5 크기에 해당된다. 해안 및 남서부의 마나과호와 니카라
과 호수 주변의 평야 지대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산지가 많다.
기후는 열대 사바나성 기후를 띄고 있으며 환태평양 지진대에 위치하여 지진이 자주 발생한다.
공용어는 다른 중남미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스페인 식민지배 시절의 영향으로 스페인어가 공용
어이다. 하지만 미스키토족 등 일부 원주민들을 중심으로 미스키토어 등의 원주민언어들이 사
용되는 경우도 있다. 가리푸나인들도 일부 거주하고 있어서 가리푸나어도 일부 사용된다. 그리
고 니카라과의 동해안지역은 예전에 잠시 영국의 지배(!)를 받은 적이 있어서 영어 크레올이
사용되기도 한다.
야구 인기가 많은 나라로 1891년에 Managua Base-Ball Club이란 야구팀이 창단될 정도이다.인
구 600만이 안되는 나라에 야구팀이 4500개, 야구선수로는 7만 명 가까운 이들이 등록되어 있
다.
빼놓을 수 없는 선수가 로베르토 클레멘테다. 클레멘테는 푸에르토리코 태생으로 니카라과와
무관하지만 72년 11월 니카라과 대지진으로 수천 명이 사망하고 이재민이 되는 사태가 발생하
자 자신의 돈으로 각종 구호물품을 싣고 가다가 비행기 사고로 인생을 마무리하였다. 이로 인
해 클레멘테는 니카라과에서도 영웅이 되어 그의 이름을 딴 야구장도 생겼다.
2017년 현존 최고의 프로복서중 한명인 로만 곤잘레즈가 니카라과 출신이고, 플로이드 메이웨
더가 토크쇼에서 자신이 꼭 붙어보고 싶다고 한 드림매치 상대가 바로 니카라과 출신의 알렉시
스 아르게요였다.
한 시대를 풍미했고 악동 복서로 유명했던 리카르도 마요르가도 니카라과 출신.
니카라과 요리의 주재료는 옥수수와 콩이며 마늘과 양파를 대부분의 요리에 사용한다.
대한민국과는 1962년부터 외교관계를 맺었으며 1979년에 집권한 산디니스타가 사회주의 성향이
라는 이유때문에 외교관계가 단절되었고 1988년 서울에서 열렸던 하계올림픽에서는 한국과의
수교국 및 IOC 회원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창 콘트라 내전으로 몸살을 앓았기 때문에 신경쓸
틈이 없어 불참했다.
그리고 내전이 끝난 1993년 대전에서 열렸던 세계박람회에서는 중남미공동관 국가로 참가했다.
2016년에 한국 운전면허증으로 니카라과에서 허용이 가능해진다.
니카라과는 대만의 수교국 15개중 하나이기 때문에 대만측은 니카라과를 지원하고 있다. 니카
라과도 중국과의 관계보다는 대만과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대만과 니카라과의 경우 참으로 기묘한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만은
친미 친서방 국가이고 니카라과는 반미 반서방 친러 친중국가로 두 나라는 완전히 다른 성격의
국가이며 니카라과에 다니엘 오르테가 같은 좌익정권이 들어섰음에도 양국은 관계를 이어나가
고 있기 때문이다.
대만이 니카라과에 제공하는 경제원조가 만만치 않고 니카라과가 대만을 방패삼아 미국의 제재
를 막을 수 있다는 사실도 양국 관계 유지에 큰 힘이 되고 있다.
이웃 코스타리카완 애증의 관계가 크다. 국민소득이 6배가 넘게 차이가 크다보니 코스타리카로
가서 니카라과인들이 많이 일하지만 코스타리카에선 니카라고 부르면서 경멸하는 사람들이 있
다. 니카라과인들을 저임금으로 부려먹는 등 인권 침해문제도 심각하다.
포르티요 섬을 두고 니카라과와 코스타리카는 19세기부터 영토갈등이 있다.
일단 반미 국가하면 떠오르는 나라중 하나가 니카라과다 물론 이란이나 북한에 비하면 약과지
만.
대형매장은 그리 흔하지 않지만 그래도 중소규모의 월마트 가맹점을 주로 볼수있고, 미국제 자
동차도 적지 않게 볼수있다. 물론 일본차도 만만치 않게 많으며 한국차도 드문드문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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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와..
좋아보여..
우와 네스프레소 캡슐로 나라 이름은 알았었는데!!!! 남미였구나
와 인구 생각보다 많네
니카라과 시네마운틴 보고 궁금했었어 ㅋㅋㅋ
여기 코로나 전에 반정부 시위 엄청 일어나고 부통령이 대통령 부인이고 대통령 아들도 돈세탁 이런데 연루돼서 부통령이랑 대통령 아들이 미국 입국도 못하고 엄청 개판... 코로나 터지고도 확진자 데이터 조작의혹 있고 나라 못믿어서 옆나라로 국경넘는다고 난리야...
니카과라 하와이 드립인둘..ㅎ 이런나라도 있구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