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3·1절 기념식에서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했다”고 연설한 것을 놓고 후폭풍이 일고 있다. 일제의 침탈에 저항한 3·1운동의 정신을 기리는 자리에서 되레 ‘식민사관’에 입각한 역사인식을 드러냈다는 비판이 야당과 시민사회는 물론 여당에서도 터져나오는 모양새다.
윤 대통령이 기념사에서 “일본은 과거의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로 변했다”고 밝힌 것을 놓고도 비판을 이어갔다. 청산되지 않은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반성과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등 현안에 대한 해결 의지 없이 “굴종적 인식만 드러냈다”는 것이다.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은 “대한민국 대통령이 어떻게 그런 표현을 할 수 있느냐”며 “일본 총리가 3·1절 기념사를 하는 것 같았다”고 꼬집었다. 시민사회도 윤 대통령의 발언을 “역사에 길이 남을 치욕적인 망언”으로 규정하며 사과를 촉구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이날 성명을 내어 “극우 인사들이 정치적 목적에서 역사를 왜곡하고 피해자들을 상처 줬던 일은 잊을 만하면 반복돼왔지만, 이번엔 대통령이 우리 역사를 비하하며 왜곡된 역사관을 드러낸 것”이라며 “윤 대통령은 망언에 대해 직접 사과하라고 했다.
이어 정부는 강제동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비롯한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의 권리 보호에 책임 있는 자세로 나서라”고 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도 성명에서 윤 대통령의 기념사에 대해 “과거사 문제가 해소된 것처럼 해석될 수 있어 매우 위험한 발언”이라며 “식민사관에 경도된 대통령은 사과하고, 외교안보 라인을 즉각 경질하라”고 요구했다.
여당 안에서도 친일 논란을 일으킬 수 있는 낡은 역사인식을 전환하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는 페이스북 글에서 “삼일절에는 식근론(식민지근대화론)도 자제하고 조선 셀프 폭망론 좀 그만해야 한다”며 “삼일절에 자제는커녕 삼일절이라서 꼭 그런 주장을 해야 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문제”라며 윤 대통령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