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뗏목 배 매화 그림자 너무 사랑스러워
수많은 나무들 중에 매화(梅畵)는 지조와 절개를 상징한다. 한겨울 눈 속에서 고아한 자태로 피어나는 매화의 결기는 세상사에 휘둘리지 않고 홀로 은은한 향기를 품어내는 올곧은 선비정신이 배어있다.
그래서 선인들은 “오동은 천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고, 매화는 일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고 하였다. 추워 얼어 죽을망정 곁불은 쬐지 않겠다는 대쪽 같은 선비정신에 다름이 아니다. 이처럼 매화는 모진 한파와 고난을 견디고 이겨내는 삶의 상징으로 송·죽·매의 세한삼우(歲寒三友)요, 매·난·국·죽의 사군자(四君子)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매화 가운데에서도 동지섣달에 피는 동매(冬梅)는 조매, 한매, 설중매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최고로 친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래전부터 백마강변 부산서원 앞뜰에 있는 부여 동매가 유명하다.
1940년경 중국에 사신으로 간 백강 이경여(李敬輿) 선생이 심양부근에서 한 겨울에 핀 동매를 보고 놀라서 가져와서 심었다는 부여 동매는 그가 얼마나 매화를 사랑한 선비였는지를 잘 말해준다.
이후 그가 우의정시절 인조임금이 소현세자빈(민회빈 강씨)를 사사(賜死)하려는 데에 극력 반대하다가 진도로 귀양을 가게 되었는데, 이때에 서호(西湖)에 있는 옛 벗인 백거 신천익의 집을 지나면서 지은 시에서는 매화의 그림자조차 사랑하고 있음을 그리고 있다.
귀양길에 신백거의 집을 지나며[謫路過愼伯擧(적로과신백거)]
····································································· 백강 이경여 선생
千里江南處處花(천리강남처처화) : 천리 길 강남은 곳곳마다 꽃이라
獨憐梅影照孤槎(독연매영조고사) : 외로운 뗏목 배 매화 그림자 너무 사랑스러워
今來月出山前路(금내월출산전로) : 눈앞에 보이는 산길로 달 떠오르는데
羞過西湖處士家(수과서호처사가) : 서호(西湖)에 은거하는 처사의 집 지나기 부끄럽구나.
주(註) : 서호처사(西湖處士) ~ 서호에 숨어살던 임포(林逋)를 가리키는 말인데 여기서는 서호(西湖)에은거중인 백거 신천익을 말한다.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매화를 이처럼 사랑하던 옛 선조님들처럼 지조(志操) 있는 인물을 찾아보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이 나라에도 자연히 건국의 건전한 정신이 흐려지고 사사로운 탐욕이 난무하여 장래가 위태로운 것 아니겠는가! 가정이든 회사든 나라이든 정신이 타락하면 결국은 견뎌낼 방도가 없는 것이다.
추석이 4일 앞으로 다가왔다. 조상님들의 올곧은 기개(氣槪)와 의로운 절개(節槪)를 새롭게 되새기는 추석이 되었으면 좋겠다.
2024. 9.13. 素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