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0일
영국에서는 500년 전부터 농사를 짓지 않았다고 한다. 농사일 보다는 오히려 양치는게 훨씬 이익이었고 산업혁명의 주도 국가 답게 공장과 장사로 부를 이루었다고 한다. 특히 직조기술 발달로 질 좋은 캐시미어나 울을 많이 생산하였고 금융, 교육 의료산업도 발달되었다.
터가 센 지역으로 사람들이 나긋나긋 하지 않아도 진솔한 면이 있다고 한다. 세계 최고 번영을 주리던 영국도 석탄 산업 쇠퇴와 석유산업 등장으로 점차 쇠락했지만 다시 스포츠나 예술 문화 등으로 다시 기지개를 켜는 중이라고 한다.
또 스코틀랜드는 골프의 원조마을이다. 이 곳에서 골프가 처음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에딘버러 성은 견고하기가 세계 최고 였다. 영국의 가장 강력한 왕조인 큐터 왕조는 로마 캐돌릭을 영국 성공회로 국교를 바꾸어 버린다. 당시 국왕들은 영토 확장에서 전쟁 아니면 정략 결혼을 이용하였다고 한다. 언젠가 TV에서 방영한 영국 BBC 방송 드라마에서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 이야기가 나왔었다. 그녀는 어린 시절 부터 고향 스코트랜드를 떠나 프랑스에서 살았다. 왕세자 프랑수아와 약혼하여 왕비가 되지만 프랑수아가 죽고 나서 18세에 청상과부가 되어 다시 스코틀랜드로 돌아간다. 스코틀랜드 왕인 제임스 1세와 재혼했지만 결혼생활이 순탄치는 아니했다고 한다. 당시 스코틀란드는 개신교가 주축이었고 댄스로 화려함도 시도 없는 척박한 곳이었다. 화려한 파리생활에 익숙한 여왕은 이 곳이 몹시 답답하고 불편했을 것이다. 당시 잉글랜드 여왕은 배다른 동생 엘리자벳1세 였는데 자기보다 서열이 높은 메리 여왕을 감옥에 가두었다고 한다. 헨리 8세의 두 번째 왕비 천일의 앤의 딸이었던 엘리자벳은 정실 딸이 아니었다. 영국에서는 정실계보 우선, 아들 우선 이란 규칙이 있었다. 메리는 당시 임신 중이었고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6세가 된다. 정실 계보 메리의 아들이었던 제임스 6세는 자기가 왕이 될 것을 믿고 있었으며 자기 어머니를 죽인 엘리자벳을 거역하지 않고 고분고분 기다리다가 여왕이 죽자 47세의 나이에 영국 왕이 되었다. 엘리자벳 여왕이 처녀로 평생 살았기에 스코틀랜드 왕이었던 제임스 6세가 결국 영국왕이 되어 두 나라가 통합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영국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북아일랜드, 남 아일랜드로 구성되었는데 남 아일랜드만 제외하고 통합되었다. 800년간이나 영국령으로 되어있던 아일랜드는 끝까지 저항한 남아일랜드는 “아일랜드”로 독립국가를 유지하고 있다. 스코틀랜드에서도 가끔 독립을 주장하지만 주민들의 60%가 영국령으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자갈 도로인 로얄 마일을 걸어 에딘버러 성으로 들어갔다. 개인적으로 스코틀랜드가 아주 좋았다. 첫째 자연환경이 훌륭했다. 거리마다 800년 1000년 된 오래된 건물들이 있어서 역사가 깊은 곳임을 알 수 있다. 1120년에 건립된 고딕양식의 세인트 자일 성당은 역사가 깊은 만큼 스토리와 문화재도 풍부하다. 그 당시 사용했던 대포와 교회 감옥등을 모두 둘러 본다. 해발 140m 천연요새 에딘버러는 에드워드 1세때부터 의회가 시작되어 왕권과 같이 성장했다고 한다. 왕족이나 귀족들이 평민들에게 나눔의 시범을 잘 보여 준 편이라고 한다. 그래서 영국은 프랑스 대혁명 같은 유혈혁명이 없었다고 전해진다.
점심으로 이곳의 특색 "피시 앤드 칩스"을 먹었다. 대구를 이용하여 만든 음식인데 담백하여 생선을 싫어하는 사람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영특하고 재주도 많다고 한다. 위스키도 이곳에서 처음 만들어졌고 제임스 왓트의 증기기관차 , 영국 조형물의 상징 빨간색 우체통, 비누 캐시미어 목도리 등 모두 스코틀랜드 생산품이라고 한다. 챨스 매킨토시의 아트, 타이어 발명한 죤, 전화발명가 알렉산더 그레이엄, 자전거 만든 숀 일, 페니실린 만든 알렉산더 플레밍, 총을 만든 사람 패트릭 퍼거슨 대령, 텔레비전 만든 사람도, 미해군 창시자도 스코틀랜드 출신이라고 한다. 스콧사람은 정말 스마트한 사람이 많다. 오후엔 에딘버러를 떠나 스코틀랜드에서 제일 큰 도시 글래스고에 갔다. 이 곳은 런던 다음으로 영국 제2의 도시였으나 산업혁명이후 쇠락했다가 다시 아트도시 의료 도시로 변환되고 있다. 챨스 매킨토시의 베로니아 양식이 유명하다. 베로니아 양식은 직선과 곡선을 매치시켜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 곳의 성형외과 의사들이 특히 유명한데 해마다 이 도시에서 학회를 연다고 한다. 이곳의 성형외과 의사들은 모두 의학 공부 먼저 그림공부를 한다고 한다. 글래스고 시청사에도 들리고 시청사 앞에 있는 광장도 둘러 보았다. 글래스고 뮤지엄에선 뜻밖에도 밀레, 모네, 마티즈의 그림을 접할 수 있었다.
글래스고는 스코틀랜드의 주도이며 영국에서도 두 번째로 큰 도시 였는데 산업혁명이후 쇠락했다고 전해진다.
1238년에 지어진 빅토리아 양식의 글래스고 성당은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때 일시적으로 장로교 교리를 채택해 파괴를 면한 덕분에 13세기 교회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도 볼 수 있게 된 것이고 ... ...
종교란 무엇인지!
글래스고의 수호성인이자 성당을 처음세운 세인트 먼고(St. Mungo)는 두 마리의 들개와 수레를 이끌고 길을 지나가고 있었다. 수레에는 성인 퍼거스의 시신이 실려있었다고 하는데 개들은 어디로 가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이곳으로 왔다고 한다. 그래서 먼고는 바로 이 자리에 성당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내일은 북아일랜드로 이동한다. 배 타기 좋게 전에 세익스피어 생가 마을인 에어 지역으로 다시 이동하여 호텔에 투숙한다
Bye 글래스고! .
에든버러 시가지 전체가 유적지이다
시가지 모습
에든버러 성으로 들어가는 길
성 꼭대기에서 바라본 에든버러 시가지
칼빈파 죤 녹스가 사제로 있었던 세인트 자일스 성당
스코틀랜드 출신 유명한 철학자 :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도 흄의 사상으로 부터 나왔다고 한다
스코틀랜드 출신 경제 학자 아담스미스
자갈로 된 로열 로드이다(1Km)
얼마나 견고한지 모르겠다.
철옹성이 따로 없다
뮤지엄
great hall 에 옛날 전쟁에 사용하던 무기가 전시되어 있다.
윈드미어 호수를 건너 스코틀랜드로 오면서 펼쳐진 아름다운 시골 모습
영국 가수의 노래를 들으며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로 가는 길
스코틀랜드 메리 여왕
글래스고 시청 광장
글래스고 대성당 외관
성당 내부와 사제의 모습
성당의 지하로 내려가는 길
지하는 신자들의 무덤으로 되어 있다
새와 종과 나무 세 가지가 중요한 포인트라고 했는데 무슨 의미인지 더 알아봐야겠다.
글래스고 뮤지엄
그래스고 뮤지엄에서 본 마티즈 작품 정물(그외에 달리 작품, 밀레의 작품, 세잔느, 모네의 그림도 있었다)
딱 1점 있었던 달리의 작품과 작품 설명(아래)
글래스고 시청 외관
시청 내부에 있는 포토죤: 시간이 다 되어 제대로 볼 수는 없어 아쉬웠다.
에든버러 성
에든버러 시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