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19일 오후 봉담 집에서 출발 군포 초막골 생태공원에 산보하려고 출발하였다.
입구에 도착하니 코로나19 때문에 주차장을 당분간 폐쇄한단다.
되돌아 나와 군포 수리산 도립공원을 향하였다.
군포 도립공원 임시주차장에 겨우 주차....
코스:수리산임시주차장[1.0km]→도립공원 탐방안내소[1.5km]→납덕골 생태공원→임도오거리[1.5km]→덕고개[1.0km]→숲속놀이터[0.8km]→수리산임시주차장 총 5.8km
시간: 2시간 30분
주차장 모습
수리산 길 따라 불법주차가......
수리산 도립공원 안내소 도착
생태공원따라서...
금낭화
생태공원 뒤로 하고 임도오거리를 향해... 오르막길...
임도오거리 도착
슬기봉 가는 길 전망대
전망대에서 전경
슬기봉을 바라보며...
슬기봉 등산로 입구에서...
되돌아 나와 임도오거리에서 덕고개를 향해....
벚나무 꽃잎이 떨어져 꽃 길이...
덕고개 도착
동네길 안으로....
소래풀꽃
덕고개당 숲
마을길을 나와 도로따라 따라 이동하면 덕고개 당숲에 다다른다.
50여 미터 짧은 숲길 안쪽에는 300년이 넘게 제사를 지내온 당집이 자리 잡고 있다.
50여 그루의 나무는 덕고개마을과 군포시의 안녕을 기원하며 당당히 세월을 지켜냈다.
17세기말 효종 넷째 공주인 숙정공주와 동평위 정재륜의 쌍묘가 이곳에 만들어지면서 숲이 조성됐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는 당숲을 제외한 주변산이 일본인에게 매각됐다.
주변산은 베어지고 낙엽송, 잣나무의 인공조림지가 됐지만 당숲은 수령 300년 정도의 나무 50여 그루가 당당히 세월을 지켜냈다.
회색줄기가 근육처럼 울퉁불퉁 나와 있는 서어나무 다섯 그루는 당집을 중심으로 듬직하게 숲을 받치고 있다.
덕고개마을 당숲은 규모는 작지만 역사적, 민속적 의미 때문에 군포8경 중 하나로 꼽힌다.
군포문화원에 따르면 군웅제라 불리는 제사가 당숲에서 약 300년간 이어져 왔다고 전해진다.
마을 주민이 줄어들면서 군웅제는 한때 마을의 고사로 축소되기도 했었다.
2004년 군포문화원은 군웅제의 역사적, 민속학적 의미를 보존하기 위해 시에서 보조금을 받아 당숲제를 치르고 있다.
수리산 일대를 도립공원으로 지정해 당숲 인근도 테마공원이 된다. 주민은 단풍이 드는 가을이면 당숲이 아름답게 빛난다고 자랑한다. 전통의식을 몇 백 년 간 이어온 숲은 작지만 위대한 힘으로 마을을 지키고 있다.
매쟁이골 숲속 놀이 터를 향해...
산괴불주머니꽃
공원이 잘 조성 되어 있다.
국궁 활터
숲속 놀이터 모습
수백년 된 잣나무가...
숲속놀이터를 뒤로 하고 주차장을 향해...
코로나19 때문에
초막골 생태공원 주차장이 폐쇄 되어
수리산 도립공원을
오랫만에 둘러 보게 되어 감사하다.
중간에 단비가 내려
우산을 쓰고 돌아보니
더욱 분위기가 좋아
감사하다.
오늘 코로나19 사랑의 거리두기를 하며
산보를 하였지만
빠른 시간내에
코로나 19가 우리나라에서
떠나기를 기원하며...
남편의 마지막 선물
남편은 육군 대령으로 재직하다 예편한 충직한 군인이었습니다
정년퇴직하고 시골에서 그렇게 해보고 싶어 했던 농장을 하며
그동안 힘들게 산 대가로 노년의 행복을 보상받으리라 늘 설계하며 살아왔답니다
저녁노을이 풀어놓은 황금빛 호수 같은 텃밭에 상추를 따서 저녁을 차리려는데
아들 내외가 퇴임을 축하드린다며 찾아왔습니다
모처럼 행복한 저녁을 먹고 난 후
아들 내외는드릴 말씀이 있다며 응접실로 자리를 마련합니다
아들 내외의 뜻밖의 소리 지금 하는 식당이 비전이 없다며
지인의 소개로 떼돈 되는 사업이 있는데 자금이 부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들 내외를 돌려보내고
깊은 시름에 빠진 내외는 서로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밤잠을 못 이룹니다
몇 날 며칠을 그렇게 밤을 보낸 뒤 아내의 간곡한 청도 있고 해서
아침 일찍 송금을 하고 들오는 남편
아내를 보구선
"자식은 저승에서 온빚쟁이라 더만..." 한마디 하군 냉큼 방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뻔질나게 사들고 부모님 집을 드나들던 아들 내외의 발걸음이 뜸해지든 해
밤늦게 빚쟁이들에게 쫓긴다며 도피자금을 달라는 아들놈
아버지는 어이가 없어 방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엄마를 붙들고 온갖 애원을 하는 아들을 쉽게 뿌리치지 못하는 엄마
"그래 밥은 먹었어?"
"엄만 지금 밥이 문제야"
"날 밝으면 아버지 설득해볼 테니깐 어이 들어가 쉬어"
아들의 울음으로 지나든 자리에 아침이 밝아왔습니다
아들과 아내는 처분만 기다리는 죄수처럼 고개만 숙인 채 멀숙한 눈빛으로
서로를 훑어볼 뿐입니다
"이 집은절대 안 된다
네할아버지 때부터 4대가 내려온 집이야절대 팔수 없다"
단호한 아버지 말에
"아버지도 할아버지한테 물려 받은 거잖아요
저도 손자인데 권리가 있잖아요"
라는 말에 빰을 후려치는 아버지 옆에서 지켜보는 엄마는 안절부절못합니다
“아버지 죽어도 절대 안 올 거예요“
라며 대문을 박차고 나가버립니다
아들이 그렇게 돌아간 뒤
남편은 말없이 창문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워댑니다
아내는 부엌 한편에서 애꿎은 그릇 나부랭이들만 딱아대고 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두 사람의 아픔에 스며든 다음날
창백한 눈썹을 달고 며느리가 대문을 열어젖히고 들어옵니다
"어머니., 어머니
"애 아빠가 죽는다고 전화가 왔어요"
어딘지 말을 안 하고 잘 살아라며
아이들 부탁한다며 전화를 끊더랍니다
"어머니
"어머니도 이 집에 몫이 있잖아요아버님한테 달라고 하셔요"
한참을 울먹거리다 머뭇거리든 아내가 남편에게 악다구니를 피워댑니다
"당신이 정 그렇게 나온다면 이혼합시다"
"여보 어떻게 그런 말을...."
"이혼하고 내 몫 주셔요
그 돈으로 아들 살릴랍니다"
방바닥에 고개를 묻고 있는 며느리의 얼굴엔
알 수 없는 미소가 번집니다
냉골이 다 돼버린 집안에
사흘이란 시간은 일 년보다 길어 보입니다
오늘도 며느리한테 온전화를 들고선 밖으로 나가는 어머니는
무슨 말인가에 강한 결심을 한 듯 남편 앞에서 짙은 어조로 첫말을 띄웁니다
"주셔요 네 몫
오늘 이혼하러 갑시다"
"당신 정말 이렇게까지..."
마음 맞춰 정 주고 살 자든 아내가....
말없이 눈물을 훔쳐낸 남편이 방으로 들어가 무언가를 가지고 나옵니다
「인감도장과 신분증」
"갑시다 법원으로"
법원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운전석 앞에 앉은 남편과 뒤 문 옆에 앉은 아내 사이엔 적막이 흘러갑니다
운전석 후방 거울너머로 보이는 아내의 표정은 슬픔으로 군불을 지핀 듯 어둡고 냉담함이 교차하는듯 합니다
가슴에 응어리를 안으로 녹이면서 법원을 나서는 두 사람
"임자 거처할 곳은 있소"
남편의 말에 “걱정 말아요 애들이 좋은 집마련해 준다 했으니”
되돌아가고 싶은 목소리는 마음으로만 되뇌어집니다
당신 있는 곳이 너무 먼 곳이 아니었으면 좋으련만 ...
앞으로 아픔이 낳은 이 시간이 지나는 자리마다 익숙한 것과 헤어져야 할 아내가 먼저 마음 쓰이는 남편입니다
나에게 아내란 새에게 하늘과 같은 것.... 원하지 않는 이별을 자식 땜에하게 되는 순간이 살면서 오리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는데...
의미 없이 뜨고 지는 저해와 달이 원망스러워집니다
허망함을 속내로 감추고 지난날 회한의 정을 눈가에 이슬로 매단 채 다른 길로 걸어가는 두 사람
35년 결혼생활이
이렇게 허무하게 깨어지는 게 믿기는 않는 남편은 내 맘과 다른 무정한 당신이 빈 하늘로 남겨준 집으로 돌아가기 싫어 허접한 선술집에 앉아 굳어가는 혀끝을 술로 적셔내며
뜻하지 않은 이별 앞에 눈물과 절망을 술잔에 담습니다
「텃밭에 오이나 밤하늘에 초승달이나 내 맘이 나 굽은 것 똑같은 밤입니다」
아내를 기다리던 아들 내외는 엄마가 건네는 돈을 건네 받으며
"엄마 걱정 마
이것 정리하고 새로 시작하는 장사는 대박이야"
"어머니 저희가 생활비 섭섭지 않게 매달 보낼게요"
천국 문을 통과한 영혼처럼 밝게 달려나가는
아들 내외를 보면서 막다른 후회가 밀려옵니다
“이게 아닌데 .... 이게 아닌데....” 씻지 못한 얼룩이 되어버린 시간은 돌이켜 지질 않는데
때늦은 안타까움이 밀려듭니다
처음 몇 달 간은 말 없어도 들어오던 생활비가
한 달을 건너 뛰더니 이제는 들어오질 않습니다
공공 근로와 허드래 청소 일로 연명하며 딸이 보내주는 생활비로
간신히 연명하듯 살아내기도 빠듯합니다
오늘은 손주 놈도보고 싶고 아들 소식도 궁금해
아들 내외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찾아가는 엄마
행색이 남루한 시어머니를 가게 밖으로 등을 떠밀듯 나와서는
"왜 말도 없이 찾아오고 그래요"
"장사 잘되면 보낼 테니 오지 마셔요"
"아니다 아가, 손주 놈도보고 싶고 아비도 보고 싶고 해서 온 거여
돈 대문에 온 건 아냐"
"됐고요
애도 학원 다닌다고 바빠 저도 얼굴 못 본 지오랬됐어요"
며느리는 냉몰차게 내뱉고는 쫓기듯 돌아서 들어가 버립니다
훌쩍 떠나버린 바람을 바라보듯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남자가 있습니다
'남편'
퇴행성 관절염으로 겹겹이 아픔을 덧칠한 몸으로
마디마디 늙어가는 초침을 닮아가는 아내 슬픔이 말라붙은 남편의 가슴에도 아련함이 찾아오고야 맙니다
"여보"
눈물로 썩여 나오는 남편의 말은
귓전에 맴도는 메아리가 되어 흘러갈 뿐입니다
며칠이 흐른 어느 날
딸이 아버지를 찾아왔습니다
병원에 입원한 엄마의 병원비 때문입니다 말없이 따라 나선 아버지는 병원비를 계산하구선
아내가 있는 병실로 들어옵니다
남편은 아내의 얼굴을 보자
타다만 상처가 떠오르지만
안도의 숨결을 먼저 내어놓습니다
고개는 남편을 의식한 듯 외면하듯 돌아서 있는 아내
병원 앞 파란 눈뜬 공원에 마주 앉은세 사람
「이렇게 마주 앉아보는 것이 얼마 만인지.....」
"여보
내가 그때 이혼에 응해 준 것은 이렇게라도 해야 절반이라도 지킬 수 있었기에..."
앉기 위해 새가 날 듯
그런 속내를 이제야 알아버린 게 미안한 딸과 아내는 눈물만 흘립니다
남편은 슬픔에도 시들지 않는 꽃처럼 아내를 감싸안습니다
"그 돈으로 작은 아파트를 구입해서 지내고 있으니 우리 두 사람 작지만 살 수 있어 같이 합칩시다 ”
아내와 헤어진 뒤 남편의 하루는
바람을 배고 잠든 날들이었기에
아내에 대한 그리움으로 허기지고 찌든 집을 며칠 전부터 도배랑 집 안 청소에 분주한 날들을 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남편이 아내의 짐을 가지러 오기로 한날입니다
아내는 이사 갈 준비에 도우러 온 딸과 함께 짐을 꾸린다고 분주한 모습입니다
약속된 시간이 지나도 남편은 오질 않습니다
딸이 여러 번 전화를 해도 아버지는 받질 않습니다
두 사람은 황급히 남편의 집으로 달려가보니
아내를 찾다 끝내 누르지 못한 채
펼쳐진 전화기를 손에진채 남편이 죽어있었습니다
"심장마비"
아내와 이 집에서 같이 살 그날만을 기다리다
그날이 되는 날 남편은 세상을 따나고 말았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유품을 정리하러 집으로 온
딸과 아내의 눈앞에 책상 위에 서류 한 뭉치가 있습니다
아내와 이별을 하던 그날의 참담함을 담은 한 글자 한 글자 기억 맨 밑바닥으로 시작되어
아내와 합치기로 한 전날의 기쁨까지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노오란 종이가 눈에 들어옵니다 「등기부등본」
소유자“김영자”
아내의 이름이 적혀져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