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라고 증거된 아래의 본문 말씀에서 잘 확인할 수 있는 것이듯이 창조와 관련된 모든 일들은 그 위치와 역할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것이지만 직접적, 현실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성령님으로 인한 실제와 누림들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창조와 관련된 역사들을 위시한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창세 전부터 계획, 약속, 준비,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누리게 하시며 성취해 나가심으로 인해 가능한 것이고 애초부터 시작될 수 있었던 것이며..
또한 그러한 사랑과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공의와 형평과 질서의 하나님 또한 아니실 수 없는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일반 은총이든지 특별 은총이든지 간에 어쨌든 모든 하늘의 힘과 역사들마다, 특히 믿음으로 인한 값없는 은혜와 공짜와 같은 선물인 역사들마다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 구원, 곧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무엇보다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인생들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과 같은 위치와 역할의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우리 인생들에 있어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두 다 이루신 예수님의 구원과 전적으로 직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특히 그에 있어서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특히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 정말 하나하나 모두 다 누리고 경험하며 나타나고 성취되어 지게 하시는 것으로..
근원적으로는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또한 세상 끝 날과 영생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신 분인 것일 뿐 아니라 삼위일체라는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 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다름 아닌 오직 말씀과 함께 하나님으로 인한 모든 창조의 역사들이 계획되고 시작되며 가능하고 진행되며 실제로 생생히 누리게 될 수 있게 된 것임은 본질적으로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야 말로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분이 것이고,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구주 예수님께서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시어 말씀대로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분인 것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실제와 경험과 성취들이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도 단적으로 말해 말씀의 영이신 것으로..
근원적, 본질적으로는 그렇듯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 자체가 바로 말씀이신 것이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며 다 이루시는 분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러한 창조와 관련된 모든 역사들 뿐 아니라 우리들이 잘 알고 있듯이 여리고 성이 무너진 사건에 있어서도 단지 말씀과 함께, 오직 말씀대로의 믿음만으로도 실제로 말씀 그대로 된 것임을 발견할 수 있는 것으로 실상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와 주관과 인도 안에 있는 역사들 중 지극히 일부가 아닐 수 없는 것이고..
뿐만 아니라 그와 같은 믿음으로 인한 값없는 은혜, 공짜와 같은 선물인 역사에 있어서 말씀이 육신이 되신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 구원과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어떤 식으로든 직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게다가 직접적, 현실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와 누림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베드로를 통해 성전 미문의 나면서부터 못 걸었던 자가 구주 예수님의 이름 한 번으로 그 자리에서 일어서게 된 사건에 있어서도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인도 안에 있는 역사가 아닐 수 없는 것이고, 참으로 그와 같은 믿음으로 인한 값없는 은혜와 역사에 있어서도 그 이름과 함께 당연히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다 이루신 구원에 전적으로 직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며, 게다가 직접적, 현실적으로는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와 경험이 아닐 수 없는 것인데..
실상 조금만 따지고 봐도 그와 같은 생생하고 강렬한 역사 또한 그 베드로가 구주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심지어는 저주하고 맹세까지 하며 부인했던 때가 아닌, 사실 그와는 정반대로 말씀대로 믿고 의지하며 사모하고 증거함에 있어서 목숨까지 걸었을 정도의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었을 때였음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와 같은 모든 이치와 원리들은 오늘날의 이 시대 우리들에 있어서도 조금도 다를 수 없는 것인데..
진정 오늘 우리들이 드리는 예배의 열납 한 번에 있어서도, 심지어는 기도의 응답 한 번에 있어서까지도 말씀의 신앙, 곧 진정 어느 정도로 진실하고 절실하며 치열하고 뜨거운 말씀대로의 믿음일 수 있느냐가 생각 이상으로 직결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마다 그 누구라도, 아무리 대단해 보이는 자라고 하더라도, 사실상 단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더 이상 옛 사람과 같이 내 힘과 의, 세상적인 능력과 방법들이 아니라 날마다 순간마다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오늘도 사도 바울과 같이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죄악들과 피 흘리기까지 싸우고 혹 범한 죄악들은 최대한 빨리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다른 그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사모하고 가까이함과 함께 가면 갈수록 더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믿음이 되는 것..
특히 그로 인해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충만케 되고,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에 합당케 됨과 함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 등이 더욱 강렬하게 되면서 더욱 더 죄악들과 싸우고 더더욱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 되는 것이 중요하고 또 중요하며, 긴급하고 또 긴급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주께서 주신즉 그들이 받으며 주께서 손을 펴신즉 그들이 좋은 것으로 만족하다가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그들이 떨고 주께서 그들의 호흡을 거두신즉 그들은 죽어 먼지로 돌아가나이다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시편104:28~30)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6월 5일(수)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