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주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가 열리고 있던 서울 목동야구장. 홈플레이트 뒷편 본부석에 자리를 잡은 10여명의 스카우트들이 스피드건과 비디오카메라를 설치해놓고 그라운드를 누비는 선수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아마추어 야구대회가 열리는 곳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낯익은 풍경이다. 그런데 본부석 앞쪽 테이블에 조금은 낯선 분위기를 풍기는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짧은 머리에 동그란 검은색 선글라스, 몸에 달라붙는 반팔 티셔츠 차림으로 그라운드를 응시하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스톱워치와 작은 노트 한권만 놓여있을 뿐이다. 다른 스카우트들과는 분위기가 달랐다.
바로 LG의 스카우트로 활동하고 있는 서용빈(37)이다. 지난 94년 유지현 김재현과 함께 신인삼총사 돌풍을 일으키면서 LG의 '신바람 야구'를 주도했던 주인공이 아마추어야구 유망주를 관찰하기 위해 목동구장을 찾은 것이다.
서용빈은 LG가 8개 구단 최초로 개발한 '코치연수프로그램'의 1호 수혜자다. 연수 프로그램에 따라 지난해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에서 1년간 코치연수를 받았고, 지난해말 귀국해 2월부터 스카우트로 활동하고 있다. 이달말까지 스카우트 경험을 쌓은 뒤에는 6월부터 전력분석팀에 합류할 예정이다. '준비된 코치'로 현장에 컴백하기 위해 각 분야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차근차근 '내공'을 쌓아가고 있는 서용빈을 만나 파란만장했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꿈을 들어봤다.

◇나는 영원한 'LG맨'
현역 시절 그는 준수한 외모와 빼어난 경기력으로 '미스터 LG'라는 별칭을 얻으며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데뷔 첫해 3할대 타율과 안정된 수비력으로 1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94년 4월16일 사직구장에서 벌어진 롯데전에서는 프로야구 통산 6번째 사이클링히트의 주인공이 되는 감격도 누렸다. 선수시절 정점에 올라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도 했지만 병역비리 연루 등으로 고난의 시기도 겪었다.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야구인생이었다.
과거를 회상하던 그는 "참 평범하게 살지는 않았죠?"라며 조용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14년간 몸담아온 LG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 다니고 학연 따지잖아요. 그런데 그보다 훨씬 긴 14년간 내가 몸담아온 곳에 애정이 없을 수 있겠어요? 물론 힘들 때도 있었지만 LG에 입단하고 난 뒤 모두 다 누릴 수는 없는 많은 것을 누리며 살았잖아요. 앞으로는 LG가 내게 베풀어준 것을 되돌려주며 살아야죠. 코치가 돼 후배들 지도하는 것도 그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새롭게 시작한 제2의 야구인생도 '영원한 LG맨'으로 살고 싶다는 의지를 분명히 읽을 수 있었다.
◇후회는 없다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뒤 힘겨운 시절을 보냈다. '단 한경기, 단 한달이라도 서용빈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 뒤 은퇴하고 싶다'는 각오로 피눈물나는 노력을 했지만 끝내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2006년 현역 은퇴를 결정하고 지도자의 길에 접어들었다. 조금은 이른 나이에 은퇴를 하게 된 것에 대한 후회는 없을까? 현재 LG의 주포로 활약하고 있는 최동수가 입단 동기이니 미련이 남을 법도 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단호했다. "글쎄요, 내가 지금 선수로 뛰고 있으면 어떤 모습일까 생각할 때는 있지만 후회같은 것은 전혀 없어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보람이 있고, 또 분명한 계획이 있거든요. 일찍 그만 둔 만큼 또 일찍 시작한 것도 있잖아요. 둘 다 얻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요?"
◇오치아이도 감동한 배움에 대한 욕심
지난해 주니치 연수 시절 그가 배치된 곳은 2군이었다. 선수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코치연수를 받았다. 그러나 7월 들어 오치아이 히로미쓰 감독의 배려로 홈경기 때 1군에 합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2군과 1군은 분위기부터가 달랐다. 그런데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원정경기도 따라가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우연한 기회에 오치아이 감독에게 "원정경기 때도 따라가서 배우고 싶다"고 간곡히 부탁했다. 당연히 "그것은 팀 운영규정 상 안된다"는 대답이 들려올 줄 알았는데 오치아이 감독은 그 자리에서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어 그를 위한 자리를 만들어줬다. 서용빈이 2군에 있을 때부터 작은 것 하나라도 배우기 위해 적극적으로 달라붙는다는 것을 전해 듣고 있던 오치아이 감독이 그의 열정을 인정해준 것이었다. 서용빈은 당시를 떠올리면서 "정말 겁이 없었죠. 어떻게 그런 말도 안되는 부탁을 할 생각을 했는지…"라며 껄껄 웃었다.
◇초보 스카우트가 발견한 LG의 미래
인터뷰를 마칠 즈음 서용빈은 타석에 들어선 한 선수를 가리키면서 "저 선수 좀 잘 보세요"라고 말했다. 경기고 오지환이었다. 원래 내야수인데 그날 경기에서는 투수로도 나서 볼을 던지고 있었다. 왼쪽 타석에 들어선 그는 서용빈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오른쪽 담장을 넘기는 홈런포를 터뜨렸다. 서용빈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면서 "제가 유심히 지켜봤던 선수인데 구단이 1차지명으로 뽑았거든요. 그래서 보람도 있고, 앞으로 LG 내야를 책임질 재목으로 기대하고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이제 3개월된 '초보 스카우트'가 뽑은 'LG의 미래'가 앞으로 어떻게 성장해나갈지 기대가 된다.
◇쌍둥이여, 열정과 근성을 갖고 뛰어라
끝으로 현재 하위권을 맴돌고 있는 LG를 지켜보는 심정을 물었다. 자신이 소속된 구단에 대한 질문이라 조심스러웠던지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감독님과 코치님들이 계신데 제가 어떤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선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있어요. 우리가 했던 '신바람 야구'는 그냥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야구를 잘 해야 신바람이 나거든요. 그리고 야구를 잘 하려면 열정과 근성이 있어야해요. 잘 안되면 잘 되게 하려고 노력하고, 독기를 품고 달려들고, 그런 열정과 근성이 있을 때 발전하고 잘 할 수 있거든요. 요즘 LG 선수들에게는 그런 열정과 근성이 부족한 것 같아요." 단지 방관자의 입장에서 내뱉은 지적이 아니라 후배사랑과 팀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충고였다.
첫댓글 역대야구선수중에_제일좋아했었는데.
뭐한자리 하셔야될텐데....
아 엘지가 용빈성님을 지도자로 체계적으로 키우고 있군요...이건 간만에 기쁜 소식이네...
나중에 엘지 감독 하시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