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밀려오고 가로등이 켜질 무렵 서울시청 앞 광장으로 갔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하여 연등회(燃燈會 2012년 국가무형문화재 지정. 2020년 12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가 열리는 도심으로 연등투어를 떠나기 위함이다. 몇 시간 전에 동행인을 모으고자 주변의 지인 몇명에게 문자를 날린 덕분에 번개팅 단체관광이 되었다. 해마다 5월에만 볼 수 있는 등불관광은 종로를 찾는 이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눈 호사거리다. 이즈음은 전염병 창궐로 인하여 대중교통을 이용한 장거리 여행조차도 모두가 부담스럽게 여긴다. 더우기 해외여행은 아예 불가능한 시절이라 ‘동네나들이’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그동안 잊고 살았던 주변관광지와 동네맛집을 검색하는 일은 이제 생활의 일부분이 되다시피 했다.
(생략)
연등축제의 주인공은 아기부처님과 어머니 마야부인을 형상화한 장엄등이라 하겠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5월인 까닭을 설명해주는 또다른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정의 달 이미지에 가장 어울리는 등이 되었다. 청계천 들머리에는 당당한 모습으로 서있는 아기 부처님등을 위시로 하여 갖가지 모양의 아기자기한 작품들이 흐르는 물 위로 그림자를 드리운 채 물과 함께 흐른다. 그 앞에서 ‘산이 물 위로 간다(東山水上行)’는 운문(864~949)선사의 말씀을 잠시 비틀어 ‘탑이 물 위로 간다’라고 바꾸는 말장난을 하며 풍광을 즐겼다.
옛기록에도 부모들은 아이들을 위해 등을 달아주는 일을 빠트리지 않았다. 특히 잉어등은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바램을 담은 것이다. 잉어가 힘차게 물을 거슬러 올라가 폭포관문을 통과하면서 용이 된다는 ‘등용문’ 이야기가 그 바탕에 깔려 있다. 쓰시마(對馬島)에 들렀을 때 초등학교 운동장과 병설 유치원 건물에서 하늘 높이 힘차게 흔들리는 잉어모양의 연(鳶)을 더러 만나곤 했다. 가이드가 설명했던 등용문 스토리에 대한 기억이 새삼스럽다.
(생략)
근대 우편업무를 시작한 사적지인 우정국 앞쪽에 솟대처럼 세워놓은 수많은 등간(燈竿 등을 단 기둥)도 이채롭다. 홍석모(1781~1857)가 정리한 ‘동국세시기’에는 “등간에는 자녀 숫자대로 등을 달아 주위를 밝히면 길(吉)하다”고 했다. 경쟁하듯 남들보다 높이 달려고 애를 썼다는 조상들의 자식사랑 흔적이기도 하다. 그 자식들은 색동옷 차림의 연꽃동녀 초롱동자가 되어 불교중앙박물관 입구에서 오가는 이들에게 천진불의 미소를 날리며 서있다. 조계사 일주문 앞 룸비니 동산은 아기부처님 모습과 어머니 마야부인을 형용한 명품 등 때문에 인증샷의 명소가 되었다.
(하략)
출처: [원철스님의 '가로세로'] 시청광장-청계천-조계사 연등투어.. 대한민국 5월관광의 백미 - 아주경제 (a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