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13장 강의.hwp
통청아카데미 134주(2012.6.13)
노자 도덕경 읽기 (8)
이태호(한국과정사상연구소 연구원)
Ⅰ. 도덕경 12장, 13장 번역
第十二章 檢欲
五色令人目盲, 五音令人耳聾, 五味令人口爽, 馳騁畋獵令人心發狂, 難得之貨令人行妨, 是以聖人爲腹不爲目, 故去彼取此.
제12장 검욕(욕망을 단속함)
오색영인목맹, 오음영인이롱, 오미영인구상, 치빙전렵영인심발광, 난득지화영인행방. 시이성인위복불위목, 고거피취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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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검) : 검사하다, 조사하다, 단속하다.
五色(오색) : 청색, 백색, 적색, 흑색, 황색의 다섯 가지 빛깔
令(영) : 하여금, 가령, 이를테면, ~하게 하다.
五音(오음) : 궁(宮), 상(商), 각(角), 치(緻), 우(羽)의 다섯 음계
聾(롱) : 귀먹을, 귀머거리, 어리석다. 어둡다.
五味(오미) : 단맛, 짠맛, 신맛, 쓴맛, 매운맛
爽(상) : 시원하다, 서늘하다, 시원스럽다, 호쾌하다, 망가지다.
妨(방) : 방해하다, 거리끼다.
馳騁(치빙) : 1. 말을 타고 달리는 것 2. 이곳저곳 바삐 돌아다니는 것
畋獵(전렵) : 사냥. 총이나 활 또는 길들인 매나 올가미 따위로 산이나 들의 짐승을 잡는 일
爲(위) : 1. 하다 2. 위하다 3. 다스리다 4. 되다
去取(거취) : 버림과 취(取)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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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오음은 사람의 귀를 먹게 하고, 오미는 사람의 입을 상하게 하고, 말을 타고 달리며 사냥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발광케 하고, 얻기 어려운 재화는 사람다운 행위를 방해한다. 그러므로 성인은 배를 위하고, 눈을 위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
第十三章 猒恥
寵辱若驚, 貴大患若身, 何謂寵辱若驚, 寵爲下, 得之若驚, 失之若驚, 是謂寵辱若驚, 何謂貴大患若身, 吾所以有大患者, 爲吾有身, 及吾無身, 吾有何患, 故貴以身爲天下, 若可寄天下, 愛以身爲天下, 若可託天下.
제13장 염치(치욕을 꺼림)
총욕약경, 귀대환약신. 하위총욕약경. 총위하, 득지약경, 실지약경, 시위총욕약경. 하위귀대환약신. 오소이유대환자, 위오유신, 급오무신, 오유하환. 고귀이신위천하, 약가기천하, 애이신위천하, 약가탁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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猒(염) : 물릴, 싫증이 날, 꺼릴
恥(치) : 부끄러워 할
寵(총) : 사랑할, 사랑받다.
辱(욕) : 욕되다, 수치스러움.
驚(경) : 놀래다. 두려워하다.
及(급) : 미치다, 닿다, 미치게 하다, 끼치게 하다, 이르다, 도달하다.
寄(기) : 부치다, 보내다, 맡기다, 위임하다, 기대다, 의지하다
託(탁) : 부탁하다. 맡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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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애와 모욕에 놀라는 것 같이 하고, 대환을 귀하게 여기기를 자기 몸과 같이 한다. 무엇을 일러 총애와 모욕에 놀라는 것 같다고 하는가. 총애와 모욕은 (위 사람의 결정에 의해 나의 운명이 달려 있는) 아랫사람이 될 때 일어나는 것이다. 이를 얻어도 놀라는 것 같고, 이를 잃어도 놀라는 것 같으니, 이것을 총애와 모욕에 놀라는 것 같다고 하는 것이다.
무엇을 일러 대환을 귀하게 여기기를 자기 몸같이 한다고 하는가. 나에게 대환이 있는 까닭은, 나에게 몸이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몸이 없음에 이르게 되면 나에게 무슨 재앙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몸을 귀하게 여기기를 천하같이 하면 그에게 천하를 맡길만하고, 몸을 사랑하기를 천하같이 하면, 그에게 천하를 부탁할만하다.
Ⅱ. 도덕경 12장, 13장 해설
12장 해설
12장은 천재소년 왕필의 해석이 훌륭하다고 생각되어 이것을 인용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왕필은 “성인은 배를 위하고 눈을 위하지 않는다.(聖人爲腹不爲目)”는 구절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였다. 배를 위하는 것은 나를 기르는데 사물이 쓰이는 것(내가 사물의 주인이 되는 것)이고, 눈을 위하는 것은 사물이 나에게 일을 시키는 것(사물이 나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고로 성인은 눈을 위하지 않는 것이다.(爲腹者 以物養己, 爲目者 以物役己. 故聖人不爲目也.)
왕필은 사물과 나 사이의 주종(主從)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성인은 사물을 취할 때 배를 위하는 정도에 머물면 내가 사물의 주인이 되고 눈을 위하는 데까지 나아가게 되면 내가 사물의 노예가 된다는 점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배를 위하는 정도에 머물 수 있기 위해서는 눈을 위하는 삶의 위험성과 무가치성을 알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지혜를 지닌 성인은 우리들의 삶에 있어서 멈출 지점을 알기 때문에 무리(無理)하지 않는다. 그 멈출 지점은 바로 배를 위하는 것까지이고, 눈을 위하기 직전이다. 배를 위하는 것은 몸을 기르는 것(養)이고, 눈을 위하는 것은 몸을 망가뜨리는(爽) 것이다. 따라서 노자는 자신의 몸을 기르는 것까지만 사물을 취하는 것을 몸을 위한다고 한다.
그에 비해 지혜가 얕은 사람들은 자기 몸을 상하게 망가뜨리면서까지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한 힘을 기르려고 무리를 한다. 이것이 어리석다는 이유를 다음 13장에서 노자가 구체적으로 지적한다.
13장 해설
이 장에서는 자기 몸을 귀하게 여겨야 되는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 먼저 나의 삶이 남에 달려 있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래서 총애와 모욕을 놀라는 같이 해야 한다(총욕약경 : 寵辱若驚)는 말로 시작한다. 이것에 대해 남충희 선생이 알기 쉽게 설명했다.
“왕의 총애를 입으면 그것을 잃을까 두려워서 놀라고 총애를 잃으면 화를 당할까 봐 두려워 놀란다. 왕에게 쓸모가 없어진 신하는 버림을 받거나 죽임을 당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신하가 된 자는 벼슬과 봉록을 받는 대신에 왕에게 생사여탈권을 맡겼으니 왕의 변덕을 살피며 늘 전전긍긍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왜 나의 삶을 남에게 맡겨, 그 사람에게 안테나를 맞추고 그 사람의 결정에 항상 놀라면서 전전긍긍해야 하는가? 그 사람이 권력, 지위, 돈 등 사회적 영향력이 높으며, 나의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는 그것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여기에 매달리는 것은 자신의 배보다 눈을 귀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자는 자신의 몸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해야 한다고 하고, 그렇게 하는 사람에게 천하를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말에는 자신의 눈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에게 천하를 맡기면 안된다는 것이 내포되어 있다.
Ⅲ. 일상생활에 적용
도덕경 12장과 13장은 우선, 배를 위하는 삶과 눈을 위하는 삶을 구분하고 있다. 배를 위하는 삶은 몸을 유지하고 성장하는데 필요한 정도로 사물을 취하는데 만족한다. 거기에 비해 눈을 위하는 삶은 끝이 없다. 배를 위하는 삶을 우리가 흔히 쓰는 일상의 용어를 사용하면 ‘소박한 삶’으로, 눈을 위하는 삶을 ‘화려한 삶’으로 이해해도 될 것이다.
화려한 삶은 더 좋은 것을 보기 위해(더 좋은 소리를 듣기 위해, 더 좋은 것을 먹기 위해) 사회적 영향력(권력, 재산, 지위, 명예 등)이 필요하다. 일상에서 대부분 사람들이 이것을 원하기 때문에 이 세계에는 경쟁이 치열하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몸을 망가뜨리는 사람이 많다. 몸을 망가뜨려가면서까지 추구했던 삶의 결과는 어떠한가?
13장에서 노자는 그런 삶은 사물의 노예가 되고, 남의 노예가 될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 노예가 사물의 총체인 천하를 맡아서는 안되고, 자기 몸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사람이 천하를 맡아야 한다는 정치이론을 펼치고 있다. 왜 노자는 그렇게 말하는가?
소박한 삶을 가치 있게 여기는 사람이 정치를 해야 서민들을 업신여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서민들이 자신보다 더욱 소박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정치인은 자신보다 더 소박한 삶을 사는 서민들을 존경까지 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최소한 서민들의 소박한 삶을 소중히 여기며 지켜내려고 한다. 서민들의 삶을 소중히 여기며 지켜내려고 한다면 자연히 서민들의 배를 불리는 일(오늘날 용어로는 민생)을 정치의 최우선으로 한다.
반대로 화려한 삶을 가치 있게 여기는 사람이 정치를 하면, 표를 얻기 위해 온갖 거짓말을 하지만 실제로는 소박한 삶을 사는 서민들을 업신여길 수밖에 없다. 이미 그런 가치의 서열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심하면 속으로는 벌레보다 못한 존재로 여길지도 모른다. 화려한 삶을 가치 있게 여기는 정치인에게 천하를 맡기면, 그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과 같다. 노자는 천하를 맡을 사람의 기본적인 가치관을 13장에서 제시했다.
이 기본적인 가치관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의 일상에 있는 일로서 음식을 예로 들어 보자.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노력해서 입맛을 고급화 시켜 놓으면, 그것보다 못한 음식을 먹어야 될 때는 맛이 없어 불행을 느낀다. 입이 고급화 되면 될수록 그 불행의 농도가 짙어진다. 그 불행을 줄이고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그 고급화된 입맛에 맞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
그런 고급화된 음식은 비싸다. 비싼 것을 먹으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하고, 벌기 위해서는 남의 총애와 치욕에 매이게 된다. 정치인은 표를 가진 유권자와 공천권을 쥐고 있는 권력자에게, 연예인은 시청자와 언론사 간부에게, 사업가는 소비자와 정부기관장에게 총애를 받기 위해 안테나를 맞추고 온갖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결정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다. 이것은 자신의 삶이 아니다. 사물과 남의 노예로서 사는 것이다.
노자는 그 불행의 근원은 입을 고급화 시켜야만 잘 난 사람이 되고 좋은 삶이 된다는 그릇된 가치관에서 비롯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가장 맛없는 음식을 꼭꼭 씹어서 맛있게 먹는 사람이 현명하다고 말한다. 그러면 그 사람은 어떤 음식을 먹어도 맛있고, 더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서 사물과 남에게 매인 삶을 살지 않아도 된다.
이러한 원리는 입맛뿐만 아니라, 눈맛, 귀맛, 코맛, 촉맛 등에도 해당한다. 결국 인생의 살맛은 고급의 사물을 지니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저급한 사물로도 즐길 수 있는 자신이 되는데 있다. 그리고 고급의 사물을 지녔다고 폼 잡고 있는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안타깝게 보는 인생관을 지니는데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물과 남의 노예이다. 거기에 비해 이러한 지혜를 지닌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주인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소박한 의식주 생활을 하면서도 만족하면 굳이 힘들게 살 필요가 없다. 화려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부러워하지 않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도 않는다. 뿐만 아니라 소박한 의식주 생활을 하는 사람을 보고 업신여기지도 않는다. 자식들에게도 소박한 삶에 가치가 있다는 교육이 저절로 이루어진다.
그 자식들은 점수 1점에 벌벌 떨지 않고, 그것에 목숨을 걸어 교사에게 따지지도 않는다. 그리고 주변의 약한 학생을 보고 왕따시키거나 괴롭히지 않는다. 왕따시키거나 괴롭히는 것은 자신의 우월감을 드러내거나 열등감을 감추기 위한 것인데, 소박한 삶에 가치를 두면 우월감이나 열등감이 생기지 않는다. 이러면 개인이나 가족이나 사회가 발광(發狂)하지 않는다.